에이블리, 브랜디, 지그재그, 무신사… 여러 번 듣고 한 번 이상 이용해본 플랫폼일 것이다. 의류의 거래엔 온라인을 빠트릴 수 없다. 이커머스는 우리 생활 깊숙이 뻗어있고, 이제 우린 온라인에서 옷을 살펴보고 구입하는 일에 익숙해졌다. 신기한 일이다. 우리가 입는 옷은 오프라인인 현실에 위치한 물질적인 대상이기 때문이다. 물질을 비물질적으로 거래하고 구경하는 일이 당연해졌다. 쉽고 빠르고 편리하기 때문이다. 이 효율은 어떻게 실현될 수 있었을까?
효율을 달성한 세상
‘풀필먼트’라는 단어를 들어보았는가? 풀필먼트란 판매자를 대신해 제품 입고, 보관, 상품 준비, 검품, 포장, 배송, 교환 및 환불까지 한꺼번에 처리하는 물류 대행 서비스다. 복잡한 물류 과정을 일괄 처리함으로써 판매자와 소비자 사이를 쉽고 빠르게 연결한다. 쿠팡이 풀필먼트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표적인 기업으로, 로켓배송의 속도를 떠올리면 풀필먼트 서비스로 도달할 수 있는 효율을 체감할 수 있다. 유통이 쉽게 해결되니 판매자는 판매하기 쉽고, 소비자는 소비하기 쉬운 환경이 마련되었다.
풀필먼트는 패션 산업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최신의 키워드다. 에이블리나 브랜디 등도 풀필먼트 시스템을 바탕으로 판매와 소비가 이루어지는 플랫폼이다. 동대문 시장 근처엔 대규모의 풀필먼트 센터가 세워지면서 도매상과 소매상을 연결하고, 소매상과 소비자를 연결하는 플랫폼이 생겨났다. 이젠 지방에 사는 판매자가 서울에 방문하지 않고도 동대문 시장 제품을 사입하고 판매할 수 있을 정도로 의류 거래의 편리가 높아졌다.
효율에 가려 보이지 않는 노동
편리엔 대가가 따른다. 온라인으로 유통을 처리하며 판매자와 소비자가 가까워졌지만, 이로 인해 그 사이의 무수한 노동이 비가시화되었다. 판매와 소비 사이엔 물건을 분류하고, 찍어 올려서 데이터화하고, 검수하고, 옮기는 많은 육체적인 노동이 있다. 동대문 시장에 방문하지 않고도 제품을 사입해서 판매하려면, 누군가는 하루 수만 개가 쏟아지는 동대문 시장의 신제품을 온라인으로 데이터화해야 한다. 누군가는 검품을 하고, 누군가는 포장을 하고, 누군가는 운반을 해야 한다. 동대문 시장 근처 풀필먼트 센터에서는 몇십 명의 노동자가 수만 개의 제품을 처리하며 일한다. 작업은 새벽까지 이어진다.
기술의 발달로 로봇을 이용하는 곳도 많지만, 자본을 갖추지 않으면 자동화는 환상이다. 한섬은 자동으로 제품을 분류하고 운반하는 로봇을 도입해 자동화된 물류센터를 마련했는데, 여기에 500억 원을 투자했다. 아직 사람의 손을 거쳐야 하는 작업이 많다. 이토록 노동집약적인 산업이다. 주문하면 문앞에 도착하는 일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질 때, 우리는 누군가 그 물건을 갖다놓는다는 사실을 쉽게 잊는다. 손짓 한 번에 물건을 사고팔 수 있는 시스템은 판매와 구매 사이의 노동을 보이지 않게 만든다. 풀필먼트의 등장 이래 얼마나 많은 육체가 주변화되었나? 쿠팡 물류센터가 착취의 현장이었다는 소식을 떠올려보자. 디지털 너머 실물의 세상에서 땀흘려 일하는 누군가가 보이지 않는다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
노동하는 자는 누구인가?
물류가 외주화되고 효율이 높아지면서 모든 과정은 조각조각 나뉘고 파편화되었다. 분류, 검수, 상하차, 운송… 한 사람은 이 중 하나의 일만 반복적으로 수행할 뿐이다. 이때 노동자의 정체성은 기계로 대체될 수 있으며, 산업은 하나의 공장과도 같아진다. 이처럼 반복적인 단순 작업은 곧 낮은 임금을 의미한다. 작업은 분해되고 노동의 가치는 저하된다. 보이지 않는 노동의 가치를 누가 알아볼 수 있을까? 존재조차 쉽게 지워지는데, 그 노동의 가치가 얼마나 존중 받을까?
디지털 기술의 발달은 노동의 양극화를 야기했다. 자동화, 인공지능 등 기술(technology)의 발달로 인간이 기술(skill)을 숙련할 필요가 낮아졌고, 숙련된 노동자에 대한 가치가 격하됐다. 즉, 기술을 숙련할 필요 없이 반복된 작업만 하는 저임금 노동과, 고도의 교육과 정보를 바탕으로 한 고임금 노동으로 양극화되는 것이다. 저임금·저숙련 노동자는 더 세부적인 업무로 분리되고, 언제든지 대체 가능한 인력이 되며, 계속해서 저숙련 노동의 영역에 머무르게 된다. Kristal 등의 연구자는 처음부터 IT 정보와 기술을 다룰 수 있는 계층이 구분되어 있었고, 그 구분이 심화되어 가는 것뿐이라 해석했다. 반복적인 단순 업무를 처리하는 저임금 노동자는 계급적 환경에 의해 저임금 노동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로써 계급의 구분은 다시금 견고해진다.
풀필먼트는 두 얼굴을 지녔다. 누군가는 동대문에 방문하지 않고도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반면, 누군가는 끊임없는 반복 작업에 갇혀 있다. 온라인 세상은 둘로 나뉘는 셈이다. 효율을 누릴 수 있는 자와 효율을 생산하는 자. 효율의 대가는 끝없이 노동하는 파편화된 개인에게 드리워진다.
편리와 효율은 누릴 수 있는 자와 누릴 수 없는 자를 구분한다. 누릴 수 없는 자는 지속적으로 도태된다. 이미 디지털의 바깥이 소외된다는 이야기는 심심찮게 들린다. 그 경계는 나이일 수도 있고, 계급일 수도 있다. 즉, 이 시대의 삶이 편하다 말할 수 있는 자는 비장애인일 것이며, 빈곤하지 않고, 적당한 교육 수준을 갖춘 자다. 그렇다면 이 배제의 구조를 만들어낸 편리와 효율은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가? 전 세계가 좇을 만한 가치가 맞는가?
- 한겨레. 인공지능과 로봇, ‘노동의 종말’보다 ‘노동의 질 저하’ 걱정해야(2022. 6. 13)
- 조선일보. 새벽 4시, 쿠팡 물류센터?…소상공인 전용 ‘동대문 풀필먼트’예요(2021. 5. 27)
- McRobbie, A., Strutt, D., & Bandinelli, C. (2023). Fashion as creative economy. Polity Press.
- Kristal, T. (2020). Why has computerization increased wage inequality? Information, occupational structural power, and wage inequality. Work and Occupations, 47(4), 466-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