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SESSION 2 : 이승희


출발선 뒤의 초조함
Jun 17, 2021
Edited by 박참새
Published by 집무실


  집무실
집 근처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비즈니스 라운지. 
무언가 '사유하고, 작성하고, 만들어가는' 사람들에게 
열정과 영감을 선물하는 공간이 되길 희망한다.


박참새
독립자. 책을 매개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가상실재서점 모이 Virtual Bookstore moi'의 북 큐레이터, 
도서 팟캐스트 '참새책책'의 진행자이기도 하다.

이승희
치기공을 전공했지만 지금은 마케터.

첫 직장이었던 병원에서 센스가 없다며 매일 혼난 탓에
센스를 기르려 읽은 책에서 마케팅의 재미를 느껴 마케터의 꿈을 키웠다.
마케팅을 잘하고 싶어서 일하면서 듣는 모든 이야기를 무조건 받아 적었고,
그 촘촘한 기록을 바탕으로 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대전의 작은 치과에서 병원 마케터로 일하다
2014년에 배달의민족에 합류해 6년 동안 브랜드 마케터로 일했다.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무언가를 함께하는 데서 기쁨을 느낀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외칠 때 무엇이든 잘한다고 믿는다.


어딘가 모르게 의지하고 싶을 때가 있다. 인생에서 만나는 무수한 선택의 기로에서 누군가 답을 내려주면 좋겠다. 실제로 우리를 위로해주는 그 답이 허영된 것이라도 나는 무언가 받아내야 속이 뚫릴 것 같다. 그러나 이승희를 만났을 때 마주한 것은 맑은 웃음이었다. 선배를 대하는 자세로 그에게서 답을 찾는 내가 새삼 부끄러워진다. 이렇게 우리는 답을 찾는 여정에서 짧은 웃음으로 난관을 무마하고 잠시 딴 길로 새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꾸준히 길을 가는 사람이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_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달리기의 회고록'. 수십여 년 간 달리기를 이어 오며 완성된 자신만의 문학적 세계관을 이야기하는 에세이다.


#1 호흡과 중단

참새_ 승희 님도 일을 하신 지 정말 오래되셨잖아요. 몇 년차 이시죠?

승희_ 일을 일찍 시작해서요. 12년 차 정도 되었어요.

참새_ (입틀막)

승희_ (웃음) 그런데 나이도 좀 들어가지고요.

참새_ 그럼 거의 졸업 하자마자 바로 일을 시작하신 거네요.

승희_ 네, 맞아요. 한 번도 안 쉬고요.

참새_ 저도 졸업하고 바로 일을 시작했으니까... 오 년 차인데, 독립적으로 일을 하기 시작한 것은 딱 이 년째인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조금 … 간당간당한 기분이 들거든요.

승희_ (빵터짐) 어떤 느낌이에요?

참새_ '오래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늘 하는 거죠. 예전에는 특출난 재능 혹은 천재적인 무언가가 있어서 누군가가 주목받고 도드라지는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저도 무언가를 계속하다 보니까, 한 두 번 잘하는 것도 중요하긴 한데, 계속하는 게 정말 재능이고 용기인 것 같더라고요. 승희 님이 12년이라는 시간 동안 꾸준히, 멈추지 않고 계속 무언가를 할 수 있었던 이유나 원동력이 있을까요?

승희_ 재미있으면 그냥 계속했던 것 같아요. 저도 한 가지 일을 꾸준하게 하는 사람은 아닌데, 직장들을 오래오래 다녔던 이유는 그 안에서 다른 재미를 계속 발견하고 찾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런데 그걸 일부러 찾은 건 아니에요. 어쩌다 보니, 운이 좋았죠. 그러다가 반복되고 재미가 없어질 때 즈음 다른 환경으로 바꿨던 것 같아요.

참새_ 그럼 지금은 어떤 재미를 찾고 계세요?

승희_ 저는 새로운 경험을 추구해요. 그래서 가끔 어려움에 봉착하기도 해요. 일하는 방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더라도, 새로운 일이다 보니 잘 모르니까요. 12년 일을 했다고 해서 다 잘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런데 제가 좀 변태 같은 부분이 있어서, 잘할 수 있는 걸 하러 가야 하는데, 조금 더 낯선 환경에 저를 던져요.  그래서 되게 불안정한 상황을 조금….

참새_ 자처하는?

승희_ 자처하고, 약간은 즐기는 것 같아요. 사람 마음이 참 신기해요.

참새_ 달리기에도 종류가 있잖아요. 인생의 대부분 모든 것들이 그렇겠지만, 특히 일은 최장거리 달리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만큼 정말 지치지 않고 호흡이 달리지 않는 선에서 내가 가진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잘 배분하는 게 관건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승희 님이 자신만의 에너지 혹은 능력을 능동적으로 배분하는 방법이 있을까요?

승희_ 특별한 방법이 있는 건 아닌데요. 지난날을 복기해보면은, 딱히 계획을 세우지 않는 게 장거리를 달릴 수 있는 좋은 방법인 것 같아요.

참새_ 되게 의외네요. 계획을 많이 세우실 것 같은데요.

승희_ 그쵸. (웃음) 새해마다 버킷리스트 작성하고 그런 건 재미로 하죠. 어떤 프로젝트 단위들의 일을 할 때는 당연히 계획을 세워요. 타인과 함께 하는 일이고 마감이 있으니까요. 그런데 그런 거 말고 개인적으로 업에 대한 계획은 딱히 없어서, 그냥 다녀요. 그래서 길게 갈 수 있는 것 같아요.

참새 _ 내가 이 회사에서 2년 뒤엔 뭐가 되어 있겠다, 5년 뒤엔 이런 걸 하겠다는 그런....

승희_ 마케터로서 어떤 자리에 오르겠다, 이런 프로젝트는 꼭 해보겠다, 조직장이 되어보겠다, 데이터 마케팅 자격증을 따보겠다… 등등 저마다의 니즈가 있잖아요. 그런데 저는 그런 거 자체가 없고, 회사에서 방향성만 주어지면, 저한테 어떤 일이 떨어지면 그냥 하는 스타일이에요. 일을 부러 찾아서 할 때도 있지만 딱히 계획이 없어요. 최종 도착지가 없으니까, 그냥 룰루랄라 가는 거죠.

참새_ 지금 하는 일에 집중하시는 편이네요.

승희_ 네, 맞아요.

참새_ 원대한 목표점이 있어도 조금 지칠 것 같기는 해요. 왜냐하면 너무 멀리 있으니까요. 그걸 향해 계속 달려가야 하잖아요.

승희_ 제 목표는 '마케터가 되고 싶다' 딱 하나였거든요. 그래서 그걸 이루니까, 딱히 그다음 목표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한때는 그게 고민이기도 했어요. 목표가 있었을 때는 재밌었거든요. 마케터가 되고 싶으니까, 세미나랑 강연도 들으러 다니고, 자격증 따고 그런 일들이 다 재밌었어요. 그런데 목표를 이루고 나서는 그런 게 없으니까 처음엔 조금 재미가 없는 거예요. 이다음 무언가가 있어야 재미있을 것 같은데. 그런데 '다양한 경험을 쌓는 마케터'가 되어야겠다고 마음이 바뀌니까, 그때그때 재밌는 일 들어오면 하고 지루하면 안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참새_ 그런데 계획이 없으면, 불안함을 느끼시거나 하지는 않으신가요?

승희_ 느끼죠. 늘 느껴요. 목표가 없다 보니까 늘 쉽게 방향을 잃는 것 같아요. 저는 이 방향으로 간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 거지라고 되묻게 되는 순간이 많아요. 최종 목표는 결국 행복이고, 친구들 또는 가족들이랑 잘사는 것일 텐데, 그게 되게 모호하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되게 많이 방향을 잃고, 되게 많이 픽픽 쓰러지고 우울해하고 불안해하고 그래요.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 가서 화풀이한다는 말이 있잖아요. 친구들끼리 서로 각자만의 한강이 뭐냐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그런데 거기서 제가 대답을 못 한 거예요. 스스로 위안받는, 나만의 한강은 뭐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저는 그냥 집에 누워있는 거예요. 아무도 안 만나고. 그럴 때 콘텐츠를 보면 또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그런 것도 전혀 안 보고요. 어떻게 보면 일을 벌리는 것도…

참새_ (웃기 시작)

승희_ 에너지가 조금이라도 있어야 하는 거거든요.

참새_ (웃음 참으며) 맞아요.

승희_ 그런데 그럴 때는 불안함이 너무 커서 제 에너지를 눌러버리더라고요. 그럴 때는 그냥 …

참새_ 진짜 아무것도 안 해요?

승희_ 그냥 자요. 좋은 에너지가 조금이라도 남아있을 때에 일을 벌리는 것 같아요.

참새_ 그런데 불안함이라는 키워드가 앞서면 약간 판단력도 흐려지고, 조절 자체가 조금 힘들어지는 것 같아요. 이미 충분한데, 일을 더 받아버리게 되고요.

승희_ 맞아요.

참새_ 막 후회하고. 내 그릇은 요만한데, 내가 벌린 일은 막 이만하고. 그런 경우가 많잖아요.

승희_ 매일 친구들이랑 하는 이야기에요. 과거의 제가 미래의 저를 생각하지 못하고 한 선택으로 인해서 현재의 제가 힘들어질 때가 있다고요. 그래서 미래의 내가 여유롭고 행복하려면, 선택을 잘해야 한다고 요즘 느껴요. 그런데 해보고 싶으면 일단 다 하는 편이긴 해요.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받고 몸이 힘들면 나중에 그렇게 또 안 하면 되니까요.

참새_ 미래의 승희가… 알아서 하겠죠.

승희_ (웃음) 그렇겠죠?

집 근처 사무실 집무실, 이미지 출처: 집무실 공식 인스타그램

참새_ 저도 얼마 전에 어떤 독자님이 새로운 걸 하거나 불안함이 클 때 어떻게 이겨내냐는 질문을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이렇게 대답했어요. 일단 첫 번째, 무서워한다. 두 번째,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찾아가서 응원을 강요한다.

승희_ 아, 맞아요. 그거 진짜 필요해요.

참새_ 그 다음에 세 번째로, 그냥 한다.

승희_ 저도 비슷한 것 같아요.

참새_ 어제도 막 엄마한테 전화하고 친구들한테 전화해서 응원 강요했어요.

승희_ (웃음) 저도 있는 거 같아요. 달래달라고 하는 거.

참새_ 그런데 승희 님도 사람이니까, 그런 순간이 있으셨을 것 같아요. '아, 내가 지금은 진짜 지쳤구나, 지금은 정말 쉬어야겠다'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으신가요?

승희_ 그럴 때는 새로운 일로 스스로가 넓어졌던 거 같아요.

참새_ 아, 쉬지는 않으시고요?

승희_ (웃음) 쉼도 어떤 결정을 내리는 거잖아요. 그게 퇴사일 때도 있었고, 퇴사했는데도 불안하면 또 무언가를 하는 거죠. 불안함이 제 삶을 다른 쪽으로 넓혀가게끔 동력이 되어주는 건 맞는 것 같아요. 불안함이 없으면 현상과 현재를 오히려 즐기겠죠. 그런데 불안하다는 건 지금에 대해 불안하다는 거니까요.

참새_ 자꾸 무언가를 바꾸려고 하고요.

승희_ 그런 순간마다 방향을 자꾸 트는 거죠. 그런데 그게 결국 모여서 나라는 사람을 확장시켜주더라고요.

참새_ 그래서 두낫띵클럽이 탄생한 거군요.

승희_ 두낫띵클럽을 같이 했던 규림이라는 친구가, 저랑 되게 다른 사람이에요. 제가 찾아간다는 친구 중에 한 명인데, 감정 기복이 크지 않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더욱 집중할 줄 알거든요. 규림이와 비슷한 시기에 퇴사했는데, 제 선택임에도 불구하고 그게 너무 불안한 거예요, 집에 그냥 가만히 있는 게요. 저는 뭔가가 계속 굴러가야 하는 사람인 거죠. 그래서 그 불안함을 어떻게든 무언가로 해보려고 하다가 나온 게 두낫띵클럽이었어요. 처음에는 규림이가 저를 달래는 정도였는데, 이제는 안 되겠다 싶었던 거죠. 그래서 인스타그램 계정부터 만들라고 한 거예요. (웃음)

참새_ 아무것도 안 하는 계정 만들어.

승희_ 처음엔 실질적인 조언을 해주다가, 안 되겠다 싶어서 저한테 '재미'를 준 거죠.  그러니까  두낫띵클럽에 관한 수다를 떠는 것만으로도 즐겁더라고요.  두낫띵클럽으로 또 일이 생기긴 했지만요. 일종의 선언 같은 거였죠. 근데 많은 분들이 두낫띵클럽을 둘이서 퇴사하고 하는 일종의 ‘프로젝트’라고 생각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진짜 그렇지는 않았거든요. 사업자등록증도 없었는데, 사업 제안이 진짜 많이 왔어요. 저희는 정말 재미로 한 건데 사업적으로 바라보시더라고요. (웃음)

참새_ 지금은 어떤 상태에요?

승희_ 지금은 그냥 계정이 있는 상태죠. 우리끼리 그냥 재미였던 거니까.

참새_ 영원히 해체하지 않는 그룹 같네요.

승희_ 각자 취업해서 해체했다고 말하기는 했는데요. 다시 저희가 쉴 때 또 재미로 쓰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데 '두 낫띵Do Nothing'이라는 말 자체가 되게 많은 사람들에게 위안을 줬던 것 같아요.

참새_ 어, 맞아요 맞아요.

승희_ 저를 위한 말이었는데. (웃음) 그래서 저도 큰 위안을 받았어요. 많은 분들이 메시지로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고 말해줘서 너무 고맙다고 하는데… 상상도 못한 반응이었어요. 취준생도 있었고, 회사원도 있었고, 집순이도 있었고…

참새_ 그분들도 저희와 비슷하게 뭔가를 해야한다는 강박, 내지는 내가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는 상태에 대한 불안함, 혹은 완전 그 반대 급부로 내가 뭔가를 너무 많이 하고 있다는 불안감 그 모두를 껴안고 있을 것 같은데요. 저는 지금 약간 후자거든요. 불안해서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끌어안으려고 하는데, 저같이 마구잡이로 일을 벌리는… 아가 선수들한테 한마디 해주신다면요.

승희_ 저도 뭔가를 많이 하잖아요. 상대적이긴 하지만 그렇게 보이는 이유도, 많이 올리니까 그래요. 하나를 해도 막 열 번씩 말하니까. 그런데 저는 참새 님을 비롯한 분들을 보면 확실히 콘텐츠의 힘을 믿거든요. 아무것도 안 하는 것도 좋지만, 이것저것 하면서 스트레스도 받아보고, 자기의 매력을 막 뿜어내는 시기가 저마다 있는 것 같아요. 정작 본인은 스트레스받을지라도요.  저는 어떤 사람의 일하는 모습이나 몰입하는 모습을 보면 사랑에 빠진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배우나 가수들은 그들이 몰입하고 있는 순간을 저희가 계속 보고 있는 거잖아요. 무대에서 혹은 연기로요. 그래서 대중들이 연예인들에게 빠지는 거죠. 그래서 누군가의 몰입하는 순간을 많이 보는 걸 좋아해요. 그런데 본인이 막 벌려도 보고, 고통스러우면은 좀 쉬었다가 가기도 하고요. 그래서 저는 그냥 마음껏, 해봤으면 좋겠어요. 주변에서 너 왜 이렇게 많이 하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요. 그냥 "내 맘이야" 할 수 있잖아요.

참새_ 이게 좋아하는 일은 맞는데, 괴롭잖아요. 그게 되게 역설적인 거란 말이에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 왜 괴로울까 이런 생각을 해보다가, 이제 이게 되게 자연스러운 거라고 결론을 내렸어요.  괴롭지 않으면,  더이상 저한테 그건 일이 아닐 것 같아요. 지금 내가 이걸 하면서 괴롭다는 건 내가 더 잘하고 싶다는 증거고, 내가 무언가를 더 발전시키고 싶다는 걸 반증하는 거라고 생각을 하니까 그 괴로움마저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더라고요.

승희_ 맞아요. 100중에 1만 행복해도 나머지 99를 가져갈 수 있는 것 같아요. 근데 100만큼 행복한 일이 많지는 않은 것 같아요. 마케팅이라는 일도 외부에서 보면 엄청 화려해 보일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보이지 않는 자잘한 일들이 훨씬 더 많거든요. 그런데 작은 하나가 나한테 성취감이나 동기부여가 되면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끌고 갈 수 있는 것 같아요.


#2 영향력 : '내'가 어딘가로 닿을 수 있음에 대하여

참새_ 제가 승희 님을 떠올렸을 때 직관적으로 떠올랐던 단어가 "영향력"이었어요. 실제로 제가 목격한 사례들도 있고요.

승희_ (웃으며) 목격이라뇨.

참새_ 말이 너무 이상한가요. (같이 웃는다) 승희 님을 지켜보면서 진짜 영향력이라는 게 있다고 느꼈어요. 저도 체감을 해봤으니까요. 그런데 거기에는 양가적인 면모가 있을 것 같아요. 저는 가끔 너무 많은 사람이 나를 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승희_ 무섭죠. 숫자로 볼 때.

참새_ 네, 무서워지고 조심스러워지더라고요. 옛날 같았으면 별로 생각 없이 했을 행동도 한 번 더 검열하게 되고, 이런 말을 해도 될까라고 종종 생각하게 돼요. 그런데 승희 님은 저보다 훨씬 독자님이 많잖아요. 그러면 그게 더 많이 느껴지실 거 같거든요. "내가 무엇을 보고 듣고 말하는 게 정말 중요하구나, 혹은 그런 순간이 이미 왔구나"라고 체감하신 적이 있으신가요?

승희_ 작년에 호찌민 여행을 간 적이 있었어요. 코로나 전이었죠. 당시에 반일 감정이 되게 커서,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이 심할 때였거든요. 그런데 호찌민에 너무 멋진 유니클로 매장이 있는 거예요. 호찌민의 로컬 아티스트들이랑 협업해서 정말 멋진 매장을 선보였었어요. 그래서 제가 그걸 영감 계정에 올렸는데, 욕을 좀 먹었죠. (웃음)

참새_ 정말요?

승희_ 아무리 호찌민이라고 해도 이건 좀 아니지 않냐는 그런 반응이 엄청 많았어요. 그때 깜짝 놀랐죠. 그 이후로 행동을 똑바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SNS가 내 자유 채널이기는 하지만, 조심하게 된 건 맞아요. 그중에서도 제일 조심하려고 하는 부분은, 상처 주는 말을 하지 않는 거예요. 저도 취향이 있으니까 어떤 게 별로일 수 있잖아요. 그런데 별로인 건 어디에 올리거나 절대 평가하지 않아요. 저도 마케팅하면서 늘 열심히 하지만, 사람들의 반응이 그때마다 똑같지는 않거든요. 별로일 때도 있어요. 하지만 저희는 매번 최선을 다해요. 예산 같은 내부적인 한계가 있을 때, 저희 마음대로 잘 안 되거든요. 그런 경험을 직접 해보니까 이게 어떤 프로젝트의 최선일 수도 있겠다고 깨달은 거죠. 내부의 상황을 모르는 채로 절대로 쉽게 판단하고 평가하지 말자고 다짐했어요. 책도 비슷해요. 어떤 책을 읽으면서 제가 절대로 평가할 수 없는 이유는, 읽는 일과 쓰는 일이 정말 다르기 때문이에요. 직접 써보면은 제 글 수준이 얼마나 처참한지 느끼게 되거든요. 읽을 때는 좋은 글이 뭔지 아는데, 막상 쓸려고 하면 그렇게 안 되잖아요. 그러니까 그런 걸 자꾸 경험하면서, 평가하지 않게 된 거죠. 생산자 입장에 설수록 쉽게 말하지 않게 되는 것 같아요.

참새_ 아무도 다치지 않는 말을 하고 싶으신 거군요.

승희_ 근데 그런 건 있어요. 해야 할 말을 하기는 해요.

참새_ 틀린 말을 정정한다거나 하는 거요.

승희_ 그런 경우일 수도 있고, 욕은 먹을 수 있지만 내 생각을 전달해야 할 때요. 어떤 걸 보더라도, 내 생각을 안 쓸 수 있잖아요. 그런데 생각을 정리하고 써야겠다는 마음이 들 때는 또 쓰는 것 같아요. 참새 님도 그렇지 않나요? 이번 7주기 때, 참새 님의 목소리를 사용하신 거요. 그런 것도, 사실 안 할 수 있잖아요. 안 해도 되고요. 그런데 그냥 써야겠다는 마음이 드는 일들이 있는 것 같아요.

참새_ 저도 매년 그러지 않았거든요. 심지어 저는 참사 당시에 제 나이와 그 아이들의 나이가 거의 같았어요. 몇 개월 차이가 안 났죠. 제 또래 아이들한테 그 일이 정말 크게 남아있지만, 너무 무력한 거예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고, 차원이 다른 문제와 싸워야 하는 것 같아서 매년 4월 이맘쯤이 되면, 그냥 모르는 척했어요. 마음속으로만 아파했죠. 그러다가 저를 지켜봐 주시는 분들이 늘어나니까, 그 사실이 무서우면서도 여태 하지 못했던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한 거죠. 저를 응원해주시고 지지해주시는 분들께 제가 말하고 싶은 걸 알리고 싶었어요.

승희_ 그걸 보고 저도 영향을 받았거든요. 단 한 명이라도 누군가를 기억할 수 있다면, 내가 쓰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 큰 위로가 될 수 있다면 움직이는 것 같아요.

집 근처 사무실 집무실, 이미지 출처 : 집무실 공식 인스타그램

참새_ 저도 의도치 않게 저를 너무 많이 노출하면서 살아가고 있는데요. 승희 님도 마찬가지이고요. 그에 따른 기쁨도 되게 많으실 것 같아요. 아까 말씀해주신 것처럼 불특정 다수에게 굉장히 많은, 감사한 말씀을 들으신다고 하셨잖아요. 저도 그래요. 저를 노출하지 않았다면 없었을 행운이죠. 그런 건 없어요? 막 길 가다 알아보고…

승희_ (웃으며) 진짜 가끔. 근데 그게, 예를 들면 저 같은 사람들이 모일만한 장소에 갔을 때 종종 그래요. 저를 팔로우하고 있는 분들이 대부분 마케팅 지망생들 아니면 마케터다 보니까, 마케터가 갈 만한 한정판 행사나 팝업 스토어 가면 마주쳐요. "어, 승희 님!" 하고요.

참새_ 저도 빈번하지는 않은데… 가끔… 진짜 가끔.

승희_ 어떤 장소에서 마주쳐요?

참새_ 서점!

승희_ (박수치며) 그쵸, 마주칠 만한 데서 마주친다니까요.

참새_ 그럼 반대로 승희 님이 누군가의 영향력을 체감해보신 적도 있으세요?

승희_ 저도 모르게 누군가가 툭 던진 한마디 말을 종일 곱씹게 될 때요. 그럴 때 말의 힘과 영향력이 되게 세다는 걸 느껴요. 그 한마디로 계속 고민하는 저를 볼 때,  한 사람이 하는 말의 영향력이 나한테 크게 작용한다고 느껴요. 이슬아 작가님이 인터뷰 시작하시면서 그러셨잖아요. 마이크를 나누어 쥐고 싶다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목소리의 힘을 나누고 싶다고요.  그걸 보면서 좋은 영향력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게 된 것 같아요. 슬아 작가님이 아니었다면, 제가 어떻게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겠어요. 그럴 생각도 못 했을 거고요. 어디서도 해결해주지 못한 문제들도 한 사람이나 어떤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는 미디어가 문제의식을 일으켜서 어떻게든 바꿔나가려는 움직임을 일으키기도 하잖아요. 그런 현상들에서 영향력을 많이 체감해요.

참새_ 그럼 앞으로 어떤 영향력을 가진 이승희가 되고 싶으세요?

승희_ 선한 물결을 일으키고 싶어요. 더 나은 방향으로 영향을 끼치고 싶어요. 나 한 명으로 인해서 주변 두 명에게라도 영향을 줄 수 있다면, 그게 정말 해야 하는 일들이라고 생각해요.

참새_ 해야만 하고, 목소리 내야만 하는 일들요.


#3 기록 : 끝없는 외연의 확장

참새_ 승희 님과 계속 영향력이라는 것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영향력을 일정 정도 확보할 수 있었던 계기로 '기록'이라는 행위를 빼놓고는  말을 할 수 없을 것 같은데요. 기록자라고 본인을 소개하기도 하시잖아요. 몇 가지 경로로 기록을 하고 계시나요?

승희_ 지금 이렇게 인터뷰를 하는 것도 제게는 기록의 일부에요. 제 생각을 다른 채널로 전달할 수 있는 기회잖아요. '섞인다'고 표현하기도 하고요. 전혀 다른 세계를 가진 사람과 만나서 섞이는 인터뷰도 굉장히 소중한 기록이에요. 인스타그램, 블로그, 유튜브, 페이스북 등 거의 다 하죠. 노트도 많이 쓰고요. 다양하게 하는 거 같아요.

참새_ 저도 기록을 많이 하는 편이거든요. 인스타그램하고, 가끔 음성 메모도 하고요. 네이버 블로그도 하고, 그리고 저는 일기를 진짜 많이 써요. (일기장을 펼쳐 든다)

승희_ 진짜 아름다워요. 텍스트적 인간이다.

참새_ 그런데 저의 무언가를 배출하기 위해 기록해요. 자신을 비우고 깨끗해지려고 하는 기록인데, 제가 보았을 때 승희님이 하시는 기록은 확장을 위한, 외연을 넓혀가려는 관찰이라고 느껴지거든요. 그래서 두 가지 측면의 기록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승희_ 저도 블로그나 브런치는 확실하게 참새 님이랑 똑같아요. 가끔 일과 관련된 것을 포스팅해야 할 때는 조금 다르게 쓰긴 하지만, 블로그는 확실히 그렇게 쓰고요.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은 말씀하신 것처럼 확장과 선언을 위한 플랫폼인 것 같아요. 보여지고 싶은 모습이나  알리고 싶은 콘텐츠를 노출하죠, 무언가를 담고 싶은 아름다운 그릇인 셈이죠.

참새_ 그런데 자극이 너무 많으면, 약간 지치지 않으세요?

승희_ 지치죠.

참새_ 저는 가끔 세상에 너무 많은 자극이 있어서, 이걸 다 차단하고 싶다는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그런 요소들을 수집하는 게 승희 님의 일과 연결되어 있기도 하잖아요. 그게 피로로 다가오진 않으신가요?

승희_ 지칠 때는 저도 완전히 피해요. 삭제하죠. 내일 다시 깔지언정.

참새_ 아, 어플을 삭제하시는 거예요?

승희_ 네. 귀찮더라도 삭제해요. 하루라도요. 핸드폰을 꺼버리기도 하고요. 주변 사람들은 제가 잠수를 잘 탄다는 걸 알아요. 너무 지치면, 짧더라도 그렇게 자신을 지키는 거죠. 그런데 수집을 할 때 또 에너지가 너무 충만하면 막 스무 개씩 올리고… 그래서 게시물 많이 올리는 날에 가끔 지인들이 연락 와요. "오늘은 기분이 좋나 봐~" (웃음)

참새_ (같이 웃으며) 승희~ 오늘 기분 좋나 봐~

승희_ 저도 지치면 절대 안 해요. 완전 스스로를 차단하는 스타일인 것 같아요.

참새_ 스스로를 감지하는 감각이 좋으신 편이네요.

승희_ 그쵸. 저는 좋게 말하면 감정이 풍부하고, 안 좋게 말하면 기복이 심하거든요. 내가 상태가 안 좋거나 지칠 때 뭘 보잖아요, 그러면 너무 힘들어요. 그래서 또 그 힘듦을 해소하겠다고 명상을 틀면, 그것마저도 저한테는 자극인 거예요. 그래서 정말 지치면 다 끊어버리죠.

집 근처 사무실 집무실, 이미지 출처: 집무실 공식 인스타그램

참새_ 승희님, 기록의 힘을 믿으시나요.

승희_ (웃는다)

참새_ 저는 안 믿었었거든요. 그런 상투적인 말 있잖아요, 계속하면 나아진다, 무조건 해라, 나아질 거다 계속해라. 예전에는 그런 말을 안 믿었는데요. 저도 무의식중에 무언가를 계속하게 되고, 또 그게 쌓이고 기록이 되니까 이제 제가 부정하려고 해도 부정이 안 되는 거예요. 왜냐하면 그 전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훨씬 나으니까요. 그래서 저도 기록의 힘을 조금 믿기 시작했어요. 승희 님이 생각하시는 기록의 힘은 어떤 것일까요?

승희_ 여러 가지가 있겠죠. 요즘은 기록이 무언가를 '기억'하게 해주는 것 같아요. 당시의 감정, 당시의 상황, 누군가의 상황, 그걸 다 기억해주는 게 기록이더라고요. 나를 기억하게 해주기도 하고, 타인을 기억하게 해주기도 하고요. 무언가를 기억하게 해주는 일이 세상을 살아가는 힘을 주는 것 같아요. 반대로 누군가에게 힘을 줄 수도 있고요. 그래서 기록이라는 일이 한 시점에 방점을 찍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기록이 저한테 굉장히 많은 기회를 줬어요.

참새_ 아, 그렇죠.

승희_ 오늘 참새 님을 이렇게 만나게 된 것도 기록이 제게 준 기회 중 하나죠. 아무것도 기록하지 않으면 어떠한 만남도 이루어지기 어렵잖아요. 작은 파편이라도 나의 것을 남긴다면, 누군가와 계속 연결되고 일에 대한 기회도 생기는 거 같아요.

참새_ 저는 승희 님이 기록이라는 행위 자체로 보여줄 수 있는 가능성을 몸소 증명하셨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향후 계획 같은 게 있으실까요? 기록을 중심으로요.

승희_ 저는 아까 말한 것처럼 계획을…

참새_ 안 세우신다고 하긴 했지만요.

승희_ 조금 더 다양한 갈래로 기록해보고 싶은 마음은 있어요. 예전에는 일에 대한 기록이 대부분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기록해보고 싶기도 하고요, 다른 분야의 기록도 해보고 싶어요. 제가 다른 걸 잘 안 해요. 너무 일에만 미쳐있는 것 같은 거예요. 내면의 카테고리를 넓혀가고 싶어요. 다양하고 다채롭게요.

참새_ 사실 기록이 참 번거로운 일이잖아요.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사실 귀찮은 일들이죠. 그런데 우리는 그 번거로운 과정이 있어야만 기억을 한다고 하더라고요, 슬아 작가님이. (웃음) 그래서 그 번거로움을 이겨내고 기억하기 위해서 하는 게 글쓰기 내지는 기록이 아닐까 이런 말씀을 하셨는데, 저도 많이 공감했어요.

승희_ 기록은 왜 이렇게 번거로운 걸까요?

참새_ 사랑해서…? 사랑이 되게 번거롭잖아요.

승희_ 나 지금 소름 돋았어

참새_ 다 기억해야 하잖아요. 얘는 이런 걸 싫어하고 이런 걸 좋아하고…

승희_ 너무 좋은 답변인 것 같아요. 저는 '수고로움'이라는 단어를 좋아하는데, 되게 비슷한 느낌이에요. 저한테 '번거롭다'라는 건 부정적인 의미로만 있었는데, 이렇게 들으니 좋게 다가오네요.

참새_ 이승희의 영감이 되었다.

승희_ 오늘의 영감.

‌(다같이 웃음)

참새_ 계속해서 새로운 환경을 마주하시게 될 거잖아요. 자유로운 환경이 될 수도 있고, 또 다른 곳으로의 소속이 될 수도 있겠죠. 새로운 환경에서의 이승희는 어떤 속도로 달리게 될까요?

승희_ 다양한 곳에 소속이 되면서 느낀 건, 환경마다 속도가 다 다르다는 거예요. 저는 제 속도가 평균값이라고 생각하고 살잖아요. 그런데 여기는 엄청 느리게 가고, 저기는 엄청 빠르게 가고. 환경에 따른 속도감의 차이를 크게 느꼈어요. 그래서 이제 드는 생각은, 나의 속도로 맞추려고 하지 말고 그 환경의 속도로 살아보고 싶어요. 느리면 느린 대로, 빠르면 빠른 대로 내가 적응할 수 있는 만큼요. 마라톤에도 페이스 메이커가 있잖아요. 제가 너무나 새롭고 낯선 환경을 직면하게 될 때, 페이스 메이커가 꼭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지 않으면  혼자서 속도를 찾아가는 건, 어떤 환경이든 어려운 것 같아요.

참새_ 어쨌든, 달리는 건 맞네요. 계속요.

승희_ 걸을 수도 있죠.

참새_ 단지 오래, 오래 할 뿐.

승희_ 맞아요.

참새_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세계관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방향과 속도는 누가 정하는 것일까. 우리는 그 방법을 모를뿐더러 기준도 알 수 없다. 이것이 맞는지에 대한 판단도 어렵다. 때문에, 그가 전해준 것은 부족한 나의 모습을 인정하는 태도와 주변의 도움을 구하는 행위였다. 나아가든 멈추든, 우리는 나름의 성장을 조절해가며 스스로를 살필 여력을 필요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