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바람이 목덜미를 타고 코트 안으로 스미고, 몸이 바르르 떨리면서 곧잘 움츠러드는 걸 보니 완연한 겨울이 찾아 왔구나 싶습니다. 단단히 코트를 여미고 손을 호호 불면서도 겨울이 기다려지는 이유는 1년 중 가장 추우면서도 가장 따듯한 시즌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에요. 바로 크리스마스와 송년의 밤입니다. 각자의 소망으로 채워 온 1년의 시간을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음을 축하하고, 또 기념하면서 소중한 사람들과 정을 나눌 수 있는 온기로 가득한 시즌이죠. 이때, 크리스마스 케이크는 빠질 수 없는 주인공입니다. 감사와 소원을 담아 케이크에 꽂은 초를 불고, 빵을 조각내서 서로 나눠 먹으며 그 의미를 상기하는데요. 새하얀 생크림 케이크도 물론 좋지만, 올해는 특별한 케이크를 선택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색다른 경험으로 크리스마스와 송년의 시간을 더욱 특별하게 장식해 줄 역사와 전통이 있는 유럽의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소개합니다.
소복한 눈으로 덮인
독일의 슈톨렌
아무렇게나 생긴 나무토막에 눈이 쌓인 듯 투박한 모양의 슈톨렌은 독일의 대표적인 크리스마스 케이크입니다. 정확한 유래는 없지만 어원은 ‘말뚝’, ‘나무토막’을 의미하는 고대 독일어 ‘슈톨로(Stollo)’에서 파생되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데요. 옛날 중세의 수도사들이 걸쳤던 망토 위에 눈이 쌓인 모습, 혹은 아기 예수를 형상화했다고 전해집니다. 슈톨렌은 다소 투박한 겉모습과 달리 속은 풍성해요. 안에 들어가는 속 재료는 브랜디나 럼에 절인 건과일과 호두나 아몬드 같은 견과류, 동그랗게 빚은 마지판(marzipan: 아몬드, 설탕을 갈아 만든 페이스트) 등으로 진한 풍미를 만들어냅니다. 특히 건과일은 1년 이상 브랜디나 럼 등 술에 절이는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시간과 정성이 무척 많이 들어가는데요. 올해 크리스마스에 슈톨렌을 먹기 위해서 작년 가을부터 준비한 것이죠.
오랜 시간을 준비한 만큼 먹는 방법 또한 특별합니다. 독일에선 크리스마스 한 달 전부터 매주 일요일에 가족들과 한 조각씩 나눠 먹는다고 해요. 1년을 준비한 슈톨렌을 한 달 동안 조금씩 먹으며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것이죠. 듣기만 해도 낭만적이고 설레지 않나요? 슈톨렌은 크리스마스가 다가올수록 숙성되면서 절인 과일과 버터의 풍미가 깊이를 더해 점점 맛있어집니다. 진한 커피나 홍차와 먹을 때도 좋고, 건과일과 견과류의 묵직한 풍미 때문에 뱅쇼나 위스키, 와인에도 잘 어울려요. 한 가지 팁이 있다면, 슈톨렌은 최대한 얇게 가운데 부분부터 썰어서 먹고, 남은 양쪽을 다시 맞붙여 보관하면 빵도 덜 마르고 풍미를 지킬 수 있답니다.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 줄
프랑스의 부쉬 드 노엘
장작을 뜻하는 프랑스어 ‘부쉬(Bûche)’와 크리스마스를 뜻하는 ‘노엘(Noël)’의 합성어로 ‘크리스마스 장작’이란 의미를 담고 있는 부쉬 드 노엘은 프랑스의 전통적인 크리스마스 케이크입니다. 말 그대로 따뜻한 의미를 가진 이 케이크는 생김새부터 남다른데요. 실제 장작으로 사용할 수 있는 크기의 통나무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있는 모양이에요. 독특한 형태만큼 그 유래 또한 특별합니다. 중세 이전, 12월의 끝자락에 한 해 동안 때다 남은 장작을 태우면서 묵은해의 액운을 태워 보냈다는 설부터, 가난한 이웃에게 땔감을 선물하면서 따스한 마음을 전하기 위함이라는 설, 다음 해의 풍작을 기원하면서 크리스마스이브부터 새해까지 오랫동안 탈 수 있는 장작을 골라 밤낮으로 불을 지피던 전통에서 시작했다는 설까지 다양해요. 19세기에 들어 전통 난로가 사라지면서 장작의 필요가 사라졌지만, 그 의미와 전통을 계승하고자 케이크를 만들어 먹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액땜과 이웃 사랑, 새해 소망이란 의미를 두루 담은 부쉬 드 노엘은 사실 평범한 롤케이크 종류예요. 흔하게 사용하는 제누아즈(génois: 스펀지 케이크)에 초콜릿 크림을 바르고, 포크를 사용해 나무의 질감과 나이테의 결을 표현해 그럴듯한 통나무 모습을 만들어주면 됩니다. 거기에 슈가 파우더를 뿌려 눈 내린 장면을 연출하던가, 롤 시트 한 조각을 잘라 옆구리에 올려 나무 단면을 보여주는 등 장식적인 센스가 돋보이는 케이크예요. 달콤한 초콜릿의 맛처럼 사랑을 불 지펴 주는 크리스마스 장작, 부쉬 드 노엘을 먹으며 소중한 사람들과 마음을 나눠보세요.
천연 효모로 발효시킨
이탈리아의 파네토네
이탈리아 밀라노의 상징과도 같은 빵, 파네토네는 10~15cm 높이의 돔 형태로 비교적 평범해 보이지만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크리스마스 케이크입니다. 파네토네의 탄생 비화 역시 전래 동화같이 아름답고 따뜻한 이야기로 가득해요. 귀족 청년과 제빵사 딸의 사랑 이야기부터, 애니메이션 라따뚜이에 나올 법한 요리 보조원의 우연한 실수로 만들어진 이야기, 성스러운 축복의 마음이 담긴 수녀 이야기 등 동화책 읽듯 그 상징과 의미를 곱씹으며 파네토네를 즐기는 것 또한 이 빵을 먹는 즐거운 방법 중 하나예요. 파네토네의 가장 큰 특징은 천연 효모를 사용해 최소 2~3번 발효시켜 반죽을 부풀리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발효종에 따라 그 맛이 크게 달라지는데, 이탈리아 정부가 파네토네종의 외부 유출을 막아 국내에서는 제대로 된 맛을 느끼기 어렵다는 안타까운 단점도 있죠. 그럼에도 몇몇 국내 유명 빵집에서 꾸준히 천연 발효종을 연구한 덕분에 이탈리아 파네토네 본연의 맛을 꽤 구현할 수 있다고 해요.
본토의 파네토네 맛은 발효 빵 특유의 깊은 풍미로 와인과 특히 잘 어울리며, ‘파네토네종’이라고 불리는 천연 효모를 사용해 숙성시키기 때문에 장기 보관도 가능합니다. 쫀득한 식감과 단맛으로 한국에서도 마니아층이 두껍죠. 밀라노 가정에서는 이맘때 가족이 모두 모여 버터와 달걀, 건과일과 견과류를 듬뿍 넣어 손수 파네토네를 만들고, 가장은 빵을 굽기 전 파네토네 반죽 윗면에 새해 소망과 행운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칼로 십자가 모양을 긋는 풍습이 있어요. 크리스마스에 먹다 남은 파네토네는 보관해두었다가 이듬해 2월 3일, 목을 보호해주는 성인 산 비아지오(San Biagio) 축일을 맞아 목과 감기를 예방하는 의미에서 남은 빵을 먹는 전통도 있습니다.
오늘 소개한 케이크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국가에는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특별한 디저트가 많습니다. 영국의 민스 파이, 오스트리아의 바닐라 키펠, 호주와 뉴질랜드의 파블로바, 미국의 에그노그 등등 쿠키부터 음료까지 종류도 다양해요. 크리스마스 디저트의 달콤한 맛과 향을 즐기면서, 동시에 그 유래와 역사를 곱씹어 보며 이번 크리스마스에 특별한 의미를 남겨줄 낭만 한 스푼 더해보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