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 디자인은
존재하는가

한국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에게
한국적인 디자인에 대해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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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카타르 월드컵이 열리기 전, 몇몇 언론 매체를 중심으로 이색적인 월드컵이 열렸다. 지난달 8일 미국 스포츠 전문매체 ESPN은 ‘유니폼 월드컵’을 진행, 올해 최고의 유니폼 디자인을 선정했다. 한국은 세르비아(16강), 크로아티아(8강), 영국(4강)을 차례로 제치며 결승에 올랐지만, 아즈텍신 ‘케찰코아틀’을 형상화한 문양을 앞세운 멕시코에 패배하며 준우승으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ESPN은 한국 홈 유니폼에 대해서는 ‘붉은색상과 호랑이 줄무늬를 연상시키는 검은 패턴이 인상적’이라고 평가했고, 어웨이 유니폼에 대해서는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 다채롭고 붓터치가 창의적’이라고 평가했다. 이 밖에도 한국 유니폼은 텔레그래프, 디 애틀랜틱, NBC 등이 진행한 유니폼 월드컵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는 등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카타르 월드컵의 국대 유니폼
이미지 출처: 나이키코리아

디자인을 맡은 나이키코리아 측은 유니폼에 한국 고유의 문화와 정체성을 반영했다고 밝혔다. 홈 유니폼은 도깨비와 호랑이를 모티프로 착안했고, 어웨이 유니폼은 하늘과 땅, 사람의 조화를 상징하는 한국 전통 문양 ‘삼태극’을 재해석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휘날리는 붓터치는 널리 퍼지는 한류를 상징한다고도 덧붙였다. 이처럼 지극히 ‘한국스러운’ 디자인으로 세계의 인정받은 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동시에 궁금했다. 정말 디자인 속에 녹아든 한국의 정체성을 높게 산 건지. 아니면 그냥 자기들 눈에 괜찮아 보이니 그렇게 평가를 한 건지. 다시 말해, 한국적 디자인이 인정을 받은 건지, 아니면 한국의 디자인 실력이 인정을 받은 건지 궁금했다. 내부와 외부 시선 사이에 괴리가 느껴졌다.

한국적 디자인을 둘러싼 논의는 사실 오래전부터 계속돼왔다. 이번 글에서는 디자이너들의 입을 빌려 그 논의를 짧게 소개해보려 한다. 우리는 무엇을 한국적이라고 할까. 그렇다면 한국적 디자인이란 어떤 디자인을 말하는 걸까. 그런 디자인이 존재하기는 할까. 존재한다면 그런 디자인을 추구해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 차근차근 고민해보자.


무엇이 한국적인가

처마
이미지 출처: unsplash

표준대국어사전은 ‘한국적’이라는 단어를 이렇게 정의한다. ‘한국에 알맞고, 한국의 특징을 보여주는.’ 뭔가 그럴듯한데 설명이 부족하다. 한국 어디에 알맞다는 건지, 어떤 특징을 말하는 건지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수십 년 동안 한국인으로 살아온 우리는 무엇이 한국적인지 이미 잘 알고 있다. 눈을 감고 천천히 그 의미를 되짚어보자.

우선 ‘한국적’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아마도 한복과 기왓장, 흥부와 놀부, 된장과 청국장, 거북선이나 남한산성 같은 이미지가 연상됐을 것이다. 이처럼 ‘무엇이 한국적이냐’라고 물었을 때 사람들은 대부분 ‘전통’을 먼저 떠올린다. 잘못됐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전통은 집단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따라서 한 집단의 특성을 설명할 때 용이한 수단이 되는 건 맞다. 하지만 전통 자체가 한국적인 건 아니다. 한국적인 청국장, 한국적인 한복이라는 말은 조금 이상하지 않나. 가령 한국에서 부대찌개를 먹을 때 “맛이 한국적이다”라고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동유럽 국가에서 굴라쉬(매운 수프)를 먹다가 문득 소주가 당긴다면 “국물 맛이 참 한국적이구나”라고 한다. 따라서, 무언가가 한국적이라고 할 때 그 속에는 ‘뭔지는 몰라도 한국이 떠오른다’는 뜻이 담겨 있다. 한국의 전통은 그런 심상을 불러일으키는 재료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풍물놀이
이미지 출처: unsplash

물론 한국적이라는 게 반드시 한국의 전통과 유사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현재 한국의 생활양식과 습관, 정서 역시 한국적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나누는 기준이 될 수 있다. 한국인들의 특성이라는 건 굳이 말이나 글로 풀어내지 않아도 모두가 잘 알고, 공유하고 있다. 가령 필자는 외국에서 일처리가 빠르게 진행될 때, 인심이 후한 상인을 만났을 때, 뜨거운 면요리를 후후 불어먹는 현지인을 볼 때, 어딜 가든 사진부터 남기려 드는 젊은이를 볼 때 ‘뭔가 한국스럽다’라는 느낌을 받았다. 이처럼 한국인들이 경험적으로 공유하는 한국의 모습은 매우 방대한데, 이러한 특징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한국 가수들의 뮤직비디오에 잘 집약돼 있다. 가령 싸이가 미국 유명 래퍼 스눕독과 촬영한 ‘행오버’에는 폭탄주, 편의점, 목욕탕, 노래방, 당구장 등의 장면이 차례로 등장하는데, 이는 한국인이라면 쉽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풍경들이다. 이러한 한국의 풍경과 분위기가 자연스레 떠오르는 현장, 문화에 대해 우리는 ‘한국적’이라는 꼬리표를 붙일 수 있는 것이다. 즉 ‘한국적’이라는 말은, 한국의 과거 전통과 현대 문화를 모두 아우르는 말이다.

한국적이라는 게 그런 뜻이라면, 한국적 디자인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국내외 디자이너들의 의견을 들어보기 전에 디자인을 모르는 일반인 입장에서는 이렇게 정의내릴 수 있겠다. ‘한국의 과거 전통과 현대 문화가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디자인’ 이러한 정의대로라면 한국 어웨이 유니폼은 한국적이지 않은 디자인이 된다. 구체적인 설명 없이는 한국이 잘 연상되지 않기 때문이다. 빨강, 노랑, 파랑 조합은 오히려 루마니아 국기를 떠올리게 만든다. 따라서 잘 만든 디자인인 건 맞지만, 한국적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물론 디자인의 세계는 복잡하고도 심오한 만큼 단순하게 정의내릴 수도 없다. 이젠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차례다. 디자이너들은 ‘한국적 디자인’을 어떻게 정의할까.

지하철
이미지 출처: Pixabay

한국적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온돌, 스테인리스 컵, 식당 호출버튼.

디자인 전문잡지 『월간디자인』이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 디자이너에게 한국을 대표하는 디자인을 딱 하나만 골라달라고 했을 때 나온 답변들이다(11년 10월호). 모두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해주는 기능을 갖고 있는 물건들로, 미관보다는 실용성에 초점을 맞춘 디자인이다. 앞장의 정의대로라면 이들은 ‘한국적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전통과 문화가 골고루 담긴 물건이기 때문이다. 온돌에는 한국의 전통 기술이 집약돼있고, 스테인리스 컵과 식당 호출버튼에는 한국의 집단주의·신속주의 문화가 녹아들어있다. 해외에서 이런 걸 본다면 (온돌은 보기 힘들지만) 자연히 ‘오! 이거 한국에도 있는 건데’ 하고 떠오를 법한 물건이다. 따라서 지극히 한국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디자이너들의 입장은 어떨까. 그들은 한국적 디자인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온돌
호출벨
스테인리스컵

『월간디자인』은 한국 디자이너 104팀에게 ‘한국적 디자인’에 관해 물은 적 있다(18년 10월호). 답은 모두 제각각이었지만, 핵심메시지는 몇몇 범주로 추릴 수 있었다. 디자이너들에게 한국적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본문에는 답변 내용만 인용했다.

1) 한국적 디자인과 한국 전통의 디자인은 다르다.

“나는 한국적인 디자인을 하고 있다. 그건 내가 한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역사성, 문화적 특성, 생활양식, 기호를 존중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전통으로부터 추출된 상징이나 기호를 차용하는 방식은 한국적 디자인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지역성은 과거의 유물이 아닌 현재의 삶과 연결돼야 한다.”

_이정혜, 『월간디자인』 18년 10월호

“한국성과 전통성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한국성이라는 건 우리가 지금 대한민국 시대에 살고 있는 모습이 반영돼야 한다. 즉 전통이 지닌 가치와 미적 언어를 넘어 현재성과 창의성이 동반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조선성’, ‘고려성’이 아니기에 공간뿐 아니라 건축, 제품, 그래픽, 의상 등 모든 분야에 한국성이 존재한다.”

_백종환, 『월간디자인』 18년 10월호

“일반적으로 ‘한국적인 디자인’이라 하면 한복, 한지, 자개, 도자기 등 전통적인 공예품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이런 공예품이 자주 사용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한국이라는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일상에서 휴대하거나 사용하는 각종 물품을 살펴보고 공통적인 요소나 니즈를 추출하여 적용하는 것이 좀 더 정확하게 한국적인 디자인을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평소에는 못 느끼지만 해외여행을 하다 보면 우리는 어렵지 않게 한국 사람을 알아볼 수 있다. 꼭 말과 행동을 듣거나 보지 않더라도 옷차림, 소지품, 헤어나 메이크업 등을 보면 ‘아! 한국 사람이다’라고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분명 전통적인 요소가 없음에도 말이다.”

_최성훈, 『월간디자인』 18년 10월호

“한국적인 디자인이라고 하면 대개 처마 선, 아리랑, 태극 문양 등을 이야기하지만 사실 지금 시대에 사는 젊은 사람들이 그런 걸 보며 얼마나 한국적인 디자인이라고 생각할지 의문이다. ‘한국적인 디자인’과 ‘한국 전통의 디자인’은 구별돼야 한다. 즉 나는 지금 우리가 향유하는 문화 자체가 한국적이라고 본다. 거기에 외국의 여러 문화가 섞여 있을지라도 우리가 먹고 즐기고 소비하는 것이라면 그게 우리 것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 케이팝을 보며 어느 나라 것이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한국의 것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한국 전통을 존중하고 계승하는 것은 중요하다. 동시에 우리 세대에서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볼 필요도 있다.”

_김봉진, 『월간디자인』 18년 10월호

청계천
이미지 출처: Pixabay

2) 한국적 디자인은 한국인의 경험이 집약된 디자인이다.

“한국적 디자인으로 정의하기보다 한국인의 디자인으로 접근해보는 건 어떨까. 한국에서 태어나 자라며 한국의 교육과 문화, 사회, 자연환경에 영향받은 한국인이 한 디자인은 분명 다른 나라의 디자인과 다른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_윤새롬, 『월간디자인』 18년 10월호

“한국에서 생애를 보낸 디자이너가 작업했다면 그게 바로 한국적인 디자인이라고 생각한다.”

_김은하, 『월간디자인』 18년 10월호

“한국적이라는 단어에 집착하기보다는 우리의 삶에 침투해 있는 형식과 방식, 행위에 대한 고민과 이해가 선행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왜 종이컵을 떡볶이나 호떡을 담는 데 사용했을까?, 다양한 재질을 구매할 수 있는 을지로 거리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효율성은 우리 삶에서 대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같은 질문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다.”

_김진식, 『월간디자인』 18년 10월호

“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솔직한 우리의 모습이 가장 한국적인 디자인이라 생각한다. 강남 거리의 무수히 많은 간판도 우리가 만든 디자인이며, 강북 골목의 미로 같은 길과 을지로의 낡은 철공소 냄새마저도 우리의 공간이자 디자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_김종유, 『월간디자인』 18년 10월호

“개인적으로는 있는 그대로의 지금 한국에서 찾으려고 노력한다. 무엇이든 빠르게 처리되고 처리하는 경험, 새벽 5시까지 술 먹고 놀아본 경험, 어른과 손님께 두 손으로 물건을 받고 드리는 경험, 반찬을 공짜로 리필해먹는 경험. 이런 경험과 의식을 바탕으로 접근한다면 한국적 디자인이라고 생각한다.”

_이의현, 『월간디자인』 18년 10월호

간판으로 빛나는 밤의 거리 모습
이미지 출처: Pixabay

종합하면, 우선 한국적 디자인과 한국 전통의 디자인은 다르다는 주장이 지배적이었다. 전통은 전통일 뿐, 디자인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뜻이다. 이러한 주장은 한국적 디자인에 관한 논의가 그동안 전통에만 한정돼왔고, 많은 디자이너가 이에 싫증을 느꼈다는 걸 방증한다. 대신 디자이너들은 현재 한국의 삶과 문화를 반영한 디자인이 한국적 디자인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국적 디자인이란 한국인들의 경험을 집약한 디자인이라는 뜻이다. 디자인이라는 활동이 디자이너의 경험에 기반한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다면, 같은 경험을 공유해온 한국인들의 디자인은 공통적이고도 고유한 특징을 갖게 될 테다. 따라서, 모든 입장을 대변하는 건 아니지만, 디자이너들이 정의하는 한국적 디자인이란 전통의 틀에 갇히지 않고 현재 한국인들의 생활상을 충실히 반영한 디자인이라 볼 수 있다.

물론 이 밖에도 다양한 답이 있었다. 아이디어가 생명인 직업답게 독특하고 톡톡 튀는 답이 많았고, 때로는 상반되는 두 주장이 나란히 등장하기도 했다. 한국적 디자인에 관한 논의는 누구나 자신만의 답을 내릴 수 있는 회색지대처럼 보였다. 그중에서도 인상적이었던 답은 ‘한국적 디자인’이라는 건 없다는, 혹은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한국적 디자인은 없다

밤의 빛나는 다리
이미지 출처: Pixabay

“한국적인 디자인이라는 말 자체가 모순이다. 이미 글로벌 사회 아닌가. ‘한국적’이라는 말을 없애자.”

_정덕희, 『월간디자인』 18년 10월호

“한국적인 디자인이란 없다고 본다. 국가가 하나의 만들어진 추상물이라면, 특정 국가를 대변하는 디자인 스타일 또한 추상적인 개념에 불과하다. 다만 내가 옹호하는 건 지역적 디자인이다. 그것은 소수의, 변방의, 토착적 디자인이다. 가령 한글이라는 문자가 전체 문자 생태계에서 소수를 차지하고 그럼으로써 문자 생태계의 다양성에 기여한다면, 한글을 디자인 지형의 다양성에 기여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로 인식할 필요는 있다고 본다. 그것은 민족주의나 국가주의 담론과는 별개로 다뤄야 한다.”

_전가경, 『월간디자인』 18년 10월호

“한국의 전통적인 디자인은 존재하지만, 한국적인 디자인은 잘 모르겠다. 그리고 사실 디자인이 한국적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도 있다. 다만 한국이라는 나라가 가지고 있는 전통적인 시각적 특징과 색깔, 특히 한글이 있기에 그 색깔은 분명하다고 본다. 흠, 한국은 현재 굉장히 힙하지 않은가?”

_황신화, 『월간디자인』 18년 10월호

“왜 그런 것에 집착해야 하나. 그렇다면 반대로 세계적인 것은 뭔가? 디자인의 발생은 자연 발생적이다. 그냥 놔두면 알아서 한국적 디자인이 된다. 뭔가 보여주려는 강박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그런 허상의 개념에 집착한다. 좋은 디자인을 하면 되지 왜 한국적 디자인을 하려고 안달하는가? 문화는 의도를 갖고 만드는 게 아니다. 수많은 사람의 불특정한 공감이 자연 발생해서 밀집되는 거다. 놔두면 알아서 케이팝도 되고 케이디자인도 된다.”

_주면, 『월간디자인』 18년 10월호

디자이너들의 답변을 관통하는 또 다른 축은 한국적 디자인이라는 문구에 대한 반감이었다. 디자인은 디자인이지, 굳이 한국적인 디자인을 추구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밑바탕에 깔려있었다. 이러한 반감의 기원은 세계 속에서 한국을 드러내야 한다는 강박, 이전에 오리엔탈리즘과 국위선양 관련 아티클에서도 다뤘던 문화적 열등감에서 비롯된 집착이 아닐까 싶었다. 교육과 문화 전반에 남아있는 과거의 잔재들 말이다. “문화는 의도를 갖고 만드는 게 아니다”라는 주면 디자이너의 말처럼, 한국적인 디자인을 형식화하고, 이를 강요하는 건 한국 디자인의 발전을 저해하는 올가미가 될 수 있다. 그런 맥락에서 한국적 디자인 같은 건 없다고 선언하고, 더 나은 디자인을 향한 노력 자체를 중시하려는 흐름이 탄생했다고 느꼈다. “한국에서 한국적인 디자인을 찾는 것보다 잘한 디자인을 찾는 게 더 우선일 것 같다”는 한 디자이너의 일침이 결론으로 적절해 보인다.

한글 조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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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이지 않은 디자인

우리는 먼저 일반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적 디자인을 정의해봤다. 일종의 튜링테스트처럼, 어떤 디자인을 봤을 때 한국의 전통과 문화가 연상된다면 한국적 디자인이라고 정의하고 시작했다. 하지만 디자이너들의 생각은 달랐다. 한국적 디자인이 자꾸 전통으로 회귀한다는 사실에 대한 싫증이 있는 듯했다. 디자이너들은 현재 한국인의 평범한 일상과 한국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담은 디자인이 진정한 한국적 디자인이라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한국적 디자인이라는 표현 자체에 대한 반감을 확인했다. 세계 속에서 한국 문화가 인정받아야 한다는 구시대적인 강박을 벗어던지고, 오로지 디자인 실력으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국 월드컵 유니폼이 그 안에 담긴 한국적 의미가 아닌, 디자인 자체로 준우승을 차지했듯이 말이다. 토착에 대한 추구가 옳은지에 대한 논의는 디자인뿐만 아니라, 문화예술의 다양한 영역에서 이뤄지고 있다. 독자 여러분도 자신만의 답을 내려보길 바란다.

닫힘 버튼에만 포장이 벗겨진 모습

얼마 전 한 오피스텔 엘리베이터에서 재밌는 현상을 발견했다. 버튼 포장도 안 벗긴 신식 엘리베이터였는데, 열림 버튼이 크게, 닫힘 버튼이 작게 디자인돼 있었다. 디자이너의 의도를 읽을 수 있는 디자인이었다. 사람들이 문을 열고 기다려주는 일에 인색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녹아있었달까.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얼마나 연타를 했는지 닫힘 버튼 쪽 포장만 볼품없게 벗겨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참 한국인을 모르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한국적 디자인이란 평범한 한국인이 이상함을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그러니까 우리가 현재 일상에서 마주하는 거의 모든 디자인을 일컫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 ESPN, World Cup 2022 kit ranking: Every jersey in Qatar assessed to crown champions, 2022.
  • 월간디자인, 디자인계에 도움이 될 만한 31개 질문들, 김민정, 2018년 10월호.
  • 월간디자인, 한국의 디자인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박경식·박은영, 2011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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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우주

흑백의 세상에서 회색지대를 찾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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