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고민으로 머릿속이 복잡할 땐 무엇을 하시나요? 저는 책꽂이에 꽂힌 소설책을 집어 들거나 서점에 들러 문학 코너 앞을 서성이곤 하는데요. 활자로 풀어진 이야기에 집중하다 보면 어지러운 마음도 이내 차분해지는 듯합니다. 소설 속 주인공의 상황에 깊이 공감하거나 진한 여운을 남기는 구절을 곱씹으며 위로받곤 하죠. 부유하는 생각을 정리된 문장으로 만났을 때의 희열은 무엇도 대신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세계문학부터 시와 에세이, 그리고 추리소설까지. 일상을 한층 풍요롭게 만들어 줄 문학 기반 큐레이션 서점 네 곳을 소개합니다.
[세계문학] 서점극장 라블레
정겨운 풍경의 마포구 염리동 어느 교차로 앞. 신호등을 건너 가파른 언덕길을 조금 오르다 보면 궁금증을 일으키는 공간 하나가 등장하는데요. 서점극장 라블레는 낮에는 서점으로, 밤에는 비밀극장으로 변신하는 서점입니다. 2021년 4월 문을 연 이곳은 세계문학을 기반으로 더 많은 사람이 고전을 재밌게 즐길 수 있도록 돕고 있죠.
벽면을 채운 서가에는 『돈키호테』나 『신곡』 등 널리 알려진 작품부터 낯설지만 주목할 만한 작가의 작품들로 빼곡히 채워져 있습니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저녁이 오면 서점은 문을 닫고 새로운 무대가 되는데요. 고전 단편을 각색한 소규모 연극이 펼쳐지거나 목요 낭독회가 열리고, 삼삼오오 모여 서로의 감상을 공유하는 북클럽이 진행되는 등 다채로운 이벤트가 개최됩니다. 서점을 나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고전이 주는 짙은 울림에 흠뻑 취한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주소: 서울시 마포구 백범로 25길 5
영업 시간: 수~토 14시~20시
[에세이] 무슨서점
순간의 단상을 모아 엮은 에세이는 비교적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을 지녔는데요. 연남동 끝자락 조용한 골목에 위치한 무슨서점은 올해 8월 문을 연 에세이 전문 서점입니다. 일부터 사랑, 마음, 여행, 관계 등 다양한 키워드를 주제로 각자의 삶을 들려주는 산문집을 만날 수 있죠. 에세이 외에도 읽고 쓰는 삶을 도와줄 인문 서적과 꾸준한 기록 생활을 도와줄 노트와 필기구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무슨서점에는 오롯이 집중하기 좋은 필사 공간이 마련되어 있는데요. ‘무슨 의자’라고 불리는 녹색 의자에 앉아 병에 담긴 문장을 뽑아 노트에 자유롭게 필사하거나, 사전 예약을 통해 자리를 빌려 온전한 몰입의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밤에는 독서 모임이 진행되기에 하루의 끝을 보다 낭만적으로 만들어줄 것입니다. ‘무슨’으로 시작하는 무수한 질문에 나만의 명쾌한 해답을 찾고 싶다면 방문해보는 건 어떨까요.
주소: 서울시 마포구 성미산로17길 105-4, 201호
영업 시간: 화~일 12시~20시 (월요일 휴무)
[추리소설] 미스터리 유니온
신촌 기차역 옆 골목길에는 노랑 불빛이 은은하게 새어 나오는 책방 하나가 있습니다. 미스터리 유니온은 ‘추리소설 연합’이라는 이름 그대로 전 세계의 미스터리가 모여 있는 추리소설 전문서점입니다. 비주류에 속하던 추리소설이 이곳에서만큼은 당당한 주인공이죠. 약 1,600여 권의 추리소설이 구비된 서점에는 소설 속 문장이 적힌 책갈피가 곳곳에 걸려 있고, 미스터리 작가의 단편을 소개하는 잡지 『미스테리아』 시리즈도 구비되어 있습니다.
서점은 매달 특정 주제로 책을 큐레이션 하여 선보이고 있으며, 서재는 작가와 나라별로 분류되어 있어 원하는 책을 찾기 편리합니다. 한정판 추리소설이나 굿즈도 판매하고 있어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죠.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오싹한 추리소설도 결국은 삶에 대한 이야기와 다름없습니다. 언제나 새롭고 흥미진진한 사건들이 넘치는 이곳. 추리소설을 사랑하는 마니아라면, 혹은 언젠가 추리소설에 한 번쯤은 도전해보고 싶었다면 비밀스럽고 아늑한 아지트가 되어줄 것입니다.
주소: 서울시 서대문구 이화여대길 88-11
영업 시간: 화~토 13시~20시 (일, 월요일 휴무)
[시] 아침달 북스토어
낯선 단어와 표현으로 평범한 일상을 비틀고 새로운 시선으로 응시하는 시. 한 번에 이해되지 않아 때론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렇기에 뜻을 곰곰이 되풀이하며 음미할 수 있어 매력적이기도 합니다. 아침달 북스토어는 출판사 ‘아침달’이 운영하는 시 전문 서점으로, 아침달에서 출간된 출판물을 비롯한 문학 도서를 소개하는 공간입니다. 이외에도 필기구를 비롯한 아기자기한 소품도 함께 판매하고 있죠.
아침달의 시집은 얇지만 강렬한 여운을 남깁니다. 오은과 김승일 등 유명 시인의 작품부터 참신한 시선이 돋보이는 젊은 신인 작가의 작품을 꾸준히 출간하고 있죠. 차분한 색감을 지닌 감각적인 표지 디자인은 각 시집의 제목과 연결고리를 갖고 있어 책의 만듦새를 더욱 높여줍니다. 서점에선 저자와 함께 진행하는 시 낭독회도 열리고 있기에 시와 한층 친해지는 계기를 만들어 줄 것입니다.
주소: 서울시 마포구 성미산로 153-16, 2층
영업 시간: 월~토 13시~20시 (일요일 휴무)
문학이 들려주는 사람 냄새 나는 이야기. 가만히 읽다 보면 지금 우리 삶의 모습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수십 년 전 이 세상에 살았던 누군가도 나와 똑같은 고민을 했다는 사실은 말할 수 없이 든든한 힘과 위로가 되어줍니다. 문학을 읽는 이유는 결국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치열하게 고민하며 삶의 이유를 찾아 나가기 위함이 아닐까요? 올해를 며칠 남겨두고 있지 않은 지금, 문학과의 만남을 통해 새해에는 나다운 선택을 하며 단단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