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듈 가구는 여러 방식으로 조합할 수 있는 하나의 기본 단위를 뜻하는 단어, 모듈러(Modular)에서 비롯된 시스템입니다. 이 시스템은 부재를 적절히 조합해 어떤 조건에서도 최적의 모습을 찾아내며, 공간에 꾸준히 변화를 주고 싶은 이들에게 효과적인 대안이 되어 줍니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공간을 다양하게 변모시키는 모듈 가구 브랜드를 소개합니다.
투명하고 견고하게
빌드웰러
빌드웰러는 아크릴과 금속으로 모듈 가구를 만드는 디자인 스튜디오입니다. 플레이트와 전산볼트, 조인트 등 여섯 가지 요소로 이루어진 모듈은 각각을 조합하는 방법에 따라 명함 스탠드, 스툴과 테이블, 때로는 전시 부스까지 무한한 형태로 변신합니다. 가구에는 소재의 물성이 그대로 드러나며, 가볍고 투명한 모습으로 공간에 녹아듭니다.
스튜디오를 설립한 대표 김유석과 정우열은 빌드웰러가 공간을 소비하는 방식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됐다고 말합니다. “공간이 한시적으로 쓰이고 빠르게 바뀌는 데 비해 건축 공사는 너무 많은 자재와 노동력이 듭니다. 지속 가능한 방식을 고민하다 원하는 대로 바꿔 쓰는 모듈 가구를 떠올리게 되었어요.”
빌드웰러의 모듈은 단일 제품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파티션과 선반, 전시대까지 여러 가구를 조합해 공간의 규모로 확장하죠. 동일한 디자인 언어를 갖는 아이템이 모이면 그 자체로 분위기를 형성하고 브랜드의 콘셉트를 강화하게 됩니다.
왕십리에 위치한 카페 인더매스에서는 넓은 공간을 빌드웰러의 하얀 테이블과 의자로 채워 가볍고 탁 트인 분위기를 냈습니다. 가방 브랜드 오소이(OSOI)의 쇼룸은 빌드웰러의 시스템으로 구성하고 신제품 출시에 맞춰 공간을 다시 한번 리뉴얼하기도 했습니다. 부수고 새로 짓는 것이 아니라 모듈을 해체하고 재조합하는 훨씬 간편한 방식으로 말이죠.
WEBSITE : 빌드웰러
INSTAGRAM : @builddweller
부드러움으로 채운 공간
몰로
몰로는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를 오가며 공간을 작업하는 캐나다의 디자인 스튜디오입니다. 여느 건축가와 달리 이들은 제조에 관심을 두고 인테리어와 리빙 제품을 적극적으로 만들어 왔는데요. 그 결과 지금의 소프트 컬렉션이 탄생했습니다.
소프트 컬렉션은 종이를 아코디언처럼 여러 겹 접어 모듈을 만들고 펼쳐서 사용하는 가구입니다. 한 장의 종이는 금방이라도 찢어질 듯 약하지만 여러 번 접고 겹치면 수백 kg의 무게를 지지할 정도로 튼튼해집니다. 몰로는 이 방식으로 조명, 스툴과 테이블, 파티션 등 공간을 채우는 다양한 규모의 아이템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대표 디자이너인 스테파니 포사이드(Stephanie Forsythe)와 토드 맥앨런(Todd MacAllen)이 소프트 컬렉션을 시작하게 된 계기 또한 빌드웰러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의 장소를 여러 가지 방식으로 이용하기 위함이었죠. 다만 견고한 금속, 딱딱한 아크릴을 사용한 빌드웰러와 달리 이들은 종이와 텍스타일을 택했습니다. 부드러운 소재로 파티션을 만들어 공간을 가변적으로 분할하고 재편성하는 방법을 제안했습니다.
몰로의 가구는 펼치면 공간을 가득 채울 정도로 넓지만, 겹겹이 접으면 한 뼘 정도로 줄어듭니다. 이 같은 작동 방식과 가벼운 무게 덕분에 소프트 컬렉션은 일정 기간만 운영되는 전시회나 박람회장에서 더욱 빛을 발합니다. 전시회의 부스, 관람객이 쉬어 가는 벤치가 되는가 하면 때로는 패션쇼의 무대가 되기도 합니다. 소재 특유의 질감으로 인해 따뜻함과 편안함을 한껏 느낄 수 있다는 것도 소프트 컬렉션의 큰 장점입니다.
시대를 초월하는 디자인
비초에
비초에는 가구 판매상인 닐스 비초에(Niels Vitsoe)와 디자이너 오토 자프(Otto Zapf)가 1959년 설립한 영국의 가구 브랜드입니다. 간결하면서도 미니멀한 디자인을 추구하며, 특히 SNS의 홈인테리어 이미지에서 자주 등장하는 벽걸이형 수납 시스템으로 잘 알려져 있죠. 바로 ‘606 유니버설 셸빙 시스템(606 Universal Shelving System)’입니다.
독일의 디자이너인 디터 람스(Dieter Rams)와 함께 만든 이 가구는 물건을 효과적으로 수납하면서도 벽과 바닥에 최소한으로 접한 모습으로 자유롭고 아름다운 벽면을 완성해줍니다. 그 덕분에 처음 선보인 이후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시그니처 아이템으로 널리 사랑받고 있습니다.
가구는 벽에 부착해 선반의 무게를 지지하는 E-트랙과 최소한의 두께로 제작한 선반, 고정핀으로 이루어집니다. 일정한 폭으로 트랙을 설치한 다음 원하는 레이아웃대로 선반을 끼우고, 핀으로 고정해 완성합니다. 선반은 기본 형태 외에 서랍장, 스탠딩 데스크, 잡지나 신발을 둘 수 있도록 경사를 준 선반, 걸이용 레일을 더한 옷장용 선반 등 여러 타입이 있어 다양한 수납 방식에 대응합니다. 어떤 유형을 선택하고 조합하는지에 따라 무수한 모습으로 달라지며 주방에서도, 안방이나 거실에서도 어울리는 모습을 만들어 냅니다.
WEBSITE : 비초에
INSTAGRAM : @vitsoe
이번에 소개한 세 브랜드는 각자가 디자인을 풀어가는 방식은 다르지만, 그 끝은 지속 가능한 공간을 위한 노력에 닿아 있습니다. 더 적은 자원으로 오래 사용하는 방법을 고민해 만든 그들의 디자인은 결과물만이 아니라 과정까지도 아름답고 간결하며, 효과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