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것이 조각이라는
이상한 조각가 에르빈 부름

'조각'이라는 장르를 재창조하는
조각가 에르빈 부름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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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빈 부름은 오스트리아의 빈과 림뷔르호를 기반으로 작업하는 동시대의 조각가입니다. 그에게 조각이란 물성을 가진 조형물일 수도 있고, 신체를 활용한 행위일 수도 있으며, 무형으로 존재하는 개념일 수도 있습니다. 사진과 비디오, 퍼포먼스나 회화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해왔기 때문이죠. 정해진 형식을 유쾌하게 허물고 획일성에 반기를 들면서 말이죠.


스웨터는 하나, 사람은 두 명

에르빈 부름, “UNTITLED(DOUBLE)”, 2002, 혼합 미디어, 이미지 출처: OTTOMURA
에르빈 부름, “UNTITLED(DOUBLE)”, 2002, 혼합 미디어

에르빈 부름은 ‘1분 조각’ 시리즈를 통해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는데요.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먼저 에르빈 부름이 관람객에게 특정한 행동을 지시합니다. ‘두 사람이 하나의 스웨터를 함께 입기’라거나 ‘바르게 앉아 숨을 멈춘 뒤 스피노자에 대해 생각하기’와 같은 비일상적인 포즈를 요구하는데요. 이후 관람객은 사물과 몸을 활용해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만들어냅니다. 1분 동안 그 포즈를 취한 채 멈춰 있고, 그 찰나를 사진이라는 조각으로 붙잡아 두는 것입니다.

에르빈 부름, “PSYCHO I”, 1996, 혼합 미디어
에르빈 부름, “PSYCHO II”, 1996, 혼합 미디어
에르빈 부름, “PSYCHO I”, 1996, 혼합 미디어

작가가 행위를 지시하고 관람객이 1분 동안 동작을 유지한 뒤 사진으로 남기는 모든 과정은 ‘조각’이 됩니다. 행위는 1분 동안만 존재하지만, 작가는 사진을 활용해 그 시간을 정지시켜 유보합니다. 이미지를 통해 영원하고 형태가 없는 조각을 만들어내는 것이죠. 이처럼 에르빈 부름은 조각적인 언어를 빌려 시각적으로 표현하면서 시간과 세계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에르빈 부름, “The Discipline of subjectivity”, 2000, 혼합미디어
에르빈 부름, “The Discipline of subjectivity”, 2000, 혼합미디어

또한 관객으로 하여금 사물과 신체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제시합니다. 예를 들어 작품 “UNTITLED(DOUBLE)”에서는 스웨터가 이용되었는데요. 평상시엔 그저 하나의 의복에 불과할 수 있는 스웨터가 작품 속에서는 사람과 사람을 잇는 매개체가 됩니다. 결국 그 이미지는 타자와 마주하고 함께하는 일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고요. 이처럼 에르빈 부름은 일상적인 사물들을 낯설게 만들어, 인식의 전환을 유도합니다. 작가의 지시로 시작되는 작가의 작품이지만, 익명의 관람객을 통해서 만들어진다는 점도 재밌는 아이러니를 유발합니다.


뚱뚱한 차와 좁은 집

에르빈 부름, “Fat Car”, 2002, 혼합 미디어, 이미지 출처: ©️Arthur Evans

에르빈 부름은 인간의 신체에 대한 관심을 기반으로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왔는데요. “FAT CARS(2001-2005)”에서는 자동차의 모양을 과도하게 왜곡하고 부풀려 몸무게를 늘리거나 줄이는 신체적인 행위를 표현했습니다. 매끈하고 날렵한 자동차는 보통 부와 권력을 상징하는데요. 작가는 이 인식을 뒤집어 비대하고 우글우글거리는 모양의 자동차를 조각해, 더 크고 많은 것을 원하게 만드는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를 재치있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에르빈 부름, “Hot Dog Bus”, 2015, 혼합 미디어

더불어 2015년엔 노란색 마이크로버스를 커다란 핫도그 버스로 만들어, 브루클린 공원에서 시민들에게 50,000개의 무료 핫도그를 나눠주기도 했는데요. 핫도그를 먹는 행위와 소비주의, 음식을 먹는 것과 몸의 부피가 늘어나는 행위 사이의 관계를 고려하며 작품을 구상했다고 해요. 관람객이 직접 핫도그를 먹는 과정까지 하나의 작품이라고 생각하면서요.

에르빈 부름, “Narrow House”, 2010, 혼합미디어
에르빈 부름, “Narrow House”, 2010, 혼합미디어, 이미지 출처: Mischa Nawrata
에르빈 부름, “Narrow House”, 2010, 혼합미디어, 이미지 출처: Mischa Nawrata
에르빈 부름, “Narrow House”, 2010, 혼합미디어, 이미지 출처: Mischa Nawrata

앞선 작품들과 반대로 집을 아주 좁게 구현한 “Narrow house(2010)”라는 작품도 있는데요. 그가 유년시절을 보냈던 오스트리아의 집을 재해석했다고 합니다. 집 안에 직접 들어가면 좁은 공간감에 공포감을 느낄 정도라고 해요. 도시는 끊임없는 발전할 것이며, 개개인이 머물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은 급격히 줄어들 것이라는 작가의 디스토피아적인 시선이 돋보인다는 평도 있습니다.


낯설고 이상한 것이 주는 해방감

에르빈 부름, “INSTRUCTIONS FOR IDLENESS(Don’t even close your mouth while eating)”, 2001
에르빈 부름, “INSTRUCTIONS FOR IDLENESS(Express yourself through yawning)”, 2001

에르빈 부름의 작품은 매끈한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멉니다. 친숙하기보단 낯설고, 평범하기보단 이상합니다. 그에게 조각은 정해진 의미의 조각이 아니며, 그에게 신체는 정해진 용도의 신체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것들은 터무니없이 비대하거나 불균질하고 부적절하죠. 그는 역설적인 각도에서 세상을 바라볼 때, 새로운 관점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합니다.

평론가 마크 피셔는 인간이 가진 가장 강력한 형태의 욕망은 낯선 것, 예상하지 못한 것, 기이한 것에 대한 갈망이라고 말합니다. 기이하다고 느껴지는 것들의 원인을 따라가다보면 현실을 보다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고, 때론 그 기이함은 일상에서의 해방을 이끈다고 말하면서요.


에르빈 부름의 첫 국내 개인전 ≪에르빈 부름: 나만 없어 조각≫이 수원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는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최신작 등을 포함한 61점의 작품을 전시하고 직접 조각의 일부분이 될 수 있는 참여형 작품도 있다고 해요. 작가의 독창적인 작품 세계가 궁금하시다면 전시를 관람하시는 것도 추천드립니다.


≪에르빈 부름: 나만 없어 조각≫ 상세 페이지
WEBSITE : Erwin Wurm
INSTAGRAM : @erwinwurm


임수아

임수아

아름다운 것만이 삶을 의미있게 만든다 믿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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