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알 수 없습니다. 정답이 없는 채 읽는 이로 하여금 무언가를 감각하게 할 뿐입니다. 그것이 바로 무엇인지도 모르는 시를 다시 읽게 되는 이유가 아닐까요.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여 시를 소개하는 공간들을 모았습니다. 이러한 시도 끝에 시의 곁에서 울고 웃다 마침내 시와 친해질 수 있을 것 같은 공간들입니다.
문학살롱 초고
한 잔의 칵테일과 시집. 와인 잔과 책이 그려진 초고의 간판을 발견하고 지하로 내려가면 가장 먼저 서가에 진열된 책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서점인가 생각할 때쯤 ‘읽고 쓰는 사람들을 위한 아지트’라는 컨셉의 바가 나옵니다. 낮은 조도와 아늑한 분위기가 어우러지는 이곳의 특징은 문학 칵테일을 판매한다는 점인데요. 이원하 시인의 『제주에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를 시켰더니 감귤 맛 칵테일과 함께 해당 시집이 나왔습니다. 칵테일의 모티브가 된 책을 빌려주는 이곳은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에도 적합한 공간입니다.
평일에는 몰입을, 주말에는 교류를 지향한다는 소개처럼 어떤 밤과 낮에는 북 토크와 낭독회를 비롯한 다양한 문학 행사가 열립니다. 작가와 관객이 함께 술을 마시며 진행되는 <초고 디너쇼>나 1920년 금주법 시절 미국의 은밀히 가게에서 유래했다는 소규모 낭독회 <스피크 이지(Speak easy)> 등 초고가 기획하는 행사들은 술과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흥미로운 제안이 되어줍니다.
주소: 서울시 마포구 독막로2길 3
영업 시간: 목~화 16시~24시 (수요일 휴무)
위트 앤 시니컬
대학로의 오랜 서점 동양서림의 나선형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시집으로 가득 찬 공간이 등장합니다. 유희경 시인이 운영하는 이곳은 1,500여 종의 시집을 보유하고 있는 시집 서점 위트 앤 시니컬입니다. 문학 중에서도 소설이나 수필에 비해 비인기 장르인 시를 이토록 환대하는 공간이라니,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형 서점이라 해도 출간된 모든 시집을 갖추고 있지 않을 때가 더러 있는데 이곳에는 없는 시집을 찾아보기가 더 어려우니 말입니다. 국내 시집뿐만 아니라 다양한 영시집도 펼쳐 볼 수 있고요.
위트 앤 시니컬 안에 있는 <사가 독서>라는 공간에서는 낭독회와 공연, 창작 수업 등 시와 관련된 다양한 행사가 이루어집니다. 그만큼 많은 시인들의 발걸음이 닿고 누군가가 시인이 되어가는 공간이기도 하지요. 뿐만 아니라 공식 인스타그램에 매일 올라오는 서점 지기의 출근 인사도 위트 앤 시니컬을 즐길 수 있는 또 하나의 방식입니다.
주소: 서울시 종로구 창경궁로 271-1, 동양서림 내 2층
영업 시간: 월~목 11시~20시 30분, 토 11시~20시, 일 13시~18시
재미공작소
작은 입간판으로 이름을 알리는 이곳은 서점도 카페도 아닌 문화 예술 공간입니다. 공연과 문학 행사, 전시, 창작 워크숍 등 ‘재밌는 일’을 기획하고 진행한다는 재미공작소. 큰 공간과 화려한 시설 없이도 이곳이 사랑받는 이유는 바로 그들만의 특별한 기획력 때문입니다.
독자가 사랑하는 작품을 만났을 때 그것이 쓰이게 된 배경을 상상해 보는 일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소스 리스트>는 바로 그런 독자의 마음을 눈치채고 만든 행사인 듯합니다. 한 작품의 자양분이 된 영감의 원천 열 두가지가 담긴 소스 리스트를 시인이 직접 소개하고 질문에 답하며 독자의 궁금증을 해소해 줍니다. 또 매년 열리는 특별 전시 <시 공간집>에서는 다양한 방식을 통해 시를 소개하기도 하는데요. 올해는 ‘시 놀이공원’이라는 부제 아래 10명의 시인이 자신의 신작 시를 전시하고 독자들은 빈 책에 시를 옮겨 적는 퍼포먼스를 기획해 필사의 즐거움을 소개했습니다.
주소: 서울시 영등포구 도림로 428-1, 1층 왼편
영업 시간: 변동, 인스타그램 참고
사람들이 시를 어려워하는 이유는 아마도 시를 만날 계기가 부족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열심입니다. 앞서 소개한 세 공간 모두 그렇습니다. 조금 더 읽을 수 있다면, 그래서 볼 수 있다면, 알게 될 시의 아름다운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도약하는 봄, 시를 향한 애정이 가득한 공간에 발걸음 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