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욕망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조르주 페렉의 『사물들』을
통해 본 현대인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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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주 페렉(Georges Perec, b.1936-1982)의 데뷔작 『사물들』(1965)은 스물을 갓 넘긴 실비와 제롬이 학생 신분에서 벗어나 사회인이 되며, 새로운 세계를 마주하는 과정과 이들의 혼란한 감정을 그린 소설이다. 1960년대 프랑스 사회에 대한 사회학적 보고서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당대의 사회상을 반영했다고 평가를 받는 이 소설은 일상을 이루고 있는 사물들을 치밀하게 묘사하며 이야기를 전개해간다. 당시 프랑스는 광고의 발달로 현대 소비사회로 진입하며 소설에서 묘사되듯 주인공들에게 “파리 전체는 영원한 유혹”이었다. 모든 것을 가지기 어려웠던 실비와 제롬에게 파리의 영원한 유혹은 지독한 갈증이 되었고, 이로 인한 “명백한 부재”의 감각은 부를 향한 열망으로 자리하게 된다. 이러한 열망이 비단 1960년대를 살아가는 프랑스 젊은이들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20세기 중반인, 50여 년 전 쓰여진 『사물들』에서 페렉이 전하는 물질과 행복에 관한 이야기는 더욱 교묘하고 촘촘해진 유혹의 굴레에 둘러싸인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행복해지기 위해 ‘모던’해져 보기

“오늘날 물질과 행복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현대 문명의 풍요로움이 어떤 정형화된 행복을 가져다주었지요. 현대사회에서는 행복해지기 위해 전적으로 ‘모던’ 해져야 합니다. (중략) 실비와 제롬이 행복해지고자 하는 순간, 자신들도 모르게 벗어날 수 없는 사슬에 걸려든 겁니다. 행복은 계속해서 쌓아 올려야 할 무엇이 되고 만 것이지요. 우리는 중간에 행복하기를 멈출 수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_조르주 폐렉, ‘레 레트르 프랑세즈’과의 인터뷰 중

실비와 제롬은 사람들이 어떤 욕망을 가졌는지, 상품을 볼 때 어떤 감정이 드는지를 조사하는 사회심리 조사원으로 일한다. 예를 들면 외식을 얼마나 자주 하는지, 중산층은 치커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건조 기능이 있는 세탁기를 선호하는지 등 사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이 그들의 질문거리였다. 전문직이라고 하기는 어려우나 재미나 급여 면에서 업무 만족도가 그리 낮지만도 않았다. 무엇보다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한 이 직업을 통해 실비와 제롬은 새로운 것을, 세상을, 세상의 부를 배워간다.

Galeries Lafayette Haussmann
이미지 출처: Galeries Lafayette Haussmann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실비와 제롬은 여느 사회초년생이 그러하듯 변변찮은 스웨터, 코르덴 바지, 더플코트 등 눈에 띄지 않는 패션 감각을 보여준다. (소설에서는 “학생처럼 있었다. 그러니까 잘 못 입었다.”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이제 새로운 감각에 눈을 뜬 이들은 처음으로 발을 들인 고급 상점을 약속의 땅이라고 여기게 되며 세상의 부에 눈을 뜨고 그 세상으로의 편입을 누구보다 욕망하게 된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과도한 열기를 어느 정도 잠재우는 법을 알아가며 그들의 욕망은 성숙의 시간을 가지게 되는 듯 보였으나 여전히 그들은 유행이 칭송하는 물건에 눈길이 갔다. 유행의 첨단을 걸으면서, 심미안으로 정평이 나고 싶은 당장의 욕구를 충족하고자 했던 그들은 자신들의 욕망에 사로잡혀 부와 풍요로움에 조금씩 잠식되어 갔다.

세상의 물건이란 물건은 모두 그들의 것이어야 했고, 소유의 기호들을 계속 늘려야 했다. 그들은 추구해야만 했다. (중략) 그들은 부(富)의 기호에 쓰러질 지경이었다. 그들은 삶을 사랑하기에 앞서 부를 사랑했다.

_조르주 페렉, 『사물들』, p28

그들이 좇는 길, 새롭게 눈뜬 가치, 전망, 욕망, 야망, 이 모든 것이 종종 어쩌지 못할 만큼 공허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었다. 위태하거나 모호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바로 이것이 그들의 삶, 암울함, 이상으로 알 수 없는 불안의 근원이었다. 무엇인가 입을 무한히 크게 벌리고 있는 것 같았다.

_조르주 페렉, 『사물들』, p39

1960년 파리 시내
1960년 파리 시내, 이미지 출처: Charles Weever Cushman

소설에서 그려지는 당시 프랑스는 소비자를 유혹하는 각종 광고에 등장하기 시작하며, 현대 소비사회로 빠르게 진입하던 시기이다. 페렉은 이러한 사회상을 사물을 열거하는 자신만의 문법을 통해 개인의 일상을 넘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삶을 그린다. 제1장에서 그가 가정법으로 그려낸 소유와 욕망이 모든 지점에서 일치하는 묘사를 예로 들어보자면, “보름마다 포도주, 올리브유, 설탕이 배달될 것이다. 문장(紋章)이 찍힌 파란 타일이 깔린 널찍하고 환한 부엌에는 황금빛 아라베스크풍 자기 접시들이 반짝이고, 사방에는 붙박이 찬장들이 있고 중앙에는 근사한 흰색 나무 식탁 … 책으로 둘러싸인 벽들 사이에서, 오로지 그들만을 위해 만들어진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사물들에 둘러싸여 … 삶이 언제까지나 조화롭게 흘러가리라 생각할 것이다”라는 구절처럼 주변 사물들의 조화가 어떤 삶을 지시하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묘사하는지 볼 수 있다. 이러한 묘사는 곧 이를 꿈꾸는 자들에게는 더 없는 결핍과 끝없는 욕망을 불러왔을 것이다.


이제 쇼윈도 진열장에는
사물만 자리하지 않는다

오늘날 현대사회는 사람들이 점점 부유하지도 가난하지도 않게 되어가고 있다. 누구나 부를 꿈꾸고 부자가 될 수 있는 시대이다. 여기서 불행이 시작된다.

_조르주 페렉, 『사물들』, p63

페렉이 소설에 담아낸 1960년대 프랑스는 보통의 사람들이 그랑 부르주아가 누리던 사치와 안락함을 마치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처럼 눈앞을 아른거리는 사물들에게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시기이다. 이처럼 부를 향한 열망을 부추기는 사회에서 ‘모던’해지기 위해 끊임없이 욕망하는 개인들의 이야기를 그린 『사물들』에서의 상황은 현재 어떻게 변모했을까.

프랑스의 거리 모습
이미지 출처: Unsplash

자신의 진정성을 무엇보다 소비로 표현하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사물은 어떤 의미일까. 모든 것이 정보와 자본으로 축적되고 교환되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상품과 광고로 뒤범벅된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라디오, 잡지 등의 일방향적 매체를 통해 전달되는 광고는 어느새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매체의 다변화를 거쳤고, 이로 인해 사물들의 유혹은 더 깊숙이 우리의 일상에 침투하여 작동하게 되었다. 사물들은 ‘친근함’이라는 새로운 전략을 통해 더 깊숙히 우리의 욕망에 다가간다. 본 아티클에서는 ‘소통’이라는 기술을 통해 우리의 사고관과 행동양식에 교묘히 작동하며, 사물을 향한 우리의 열망을 불러일으키는 콘텐츠들에 주목해보고자 한다.

우리는 다양한 형태의 광고가 일상에 널리 퍼져있어 무엇이 광고인지 아닌지를 가늠하기 어려운 사회에 살고 있다. 물론 많은 광고를 보고 겪으며 각자의 필터링을 가지고 영화, 드라마에서의 간접광고나 인플루언서의 피드에서 흔히 보이는 협찬 등의 광고에서 만들어내는 유혹은 적절히 대처하며 판단하는 법을 배웠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 자신이 상품으로, 사물로 진열되어가고 있음은 눈치채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다.

인스타그램하는 모습
이미지 출처: Unsplash

디지털을 매개로 관계 맺는 요즘 저명한 보안전문가이자 보안 기술자인 브루스 슈나이어의 말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그는 “어떤 서비스가 무료라면, 당신은 고객이 아니라 상품”이라고 말하며 우리의 메타 데이터를 수집한다는 것은 곧 우리를 감시하는 것이라 주장한다. 이처럼 소셜미디어는 자본, 소통, 정보의 끊임없는 업데이트를 통해 페렉의 표현처럼 벗어날 수 없는 사슬에 걸리게 한다. 소통을 기반으로 자본과 정보의 세계적인 순환을 보여주는 소셜미디어는 사람과 사람, 사람과 정보를 촘촘한 정보의 망으로 연결한다. 소셜미디어의 알고리즘은 사물을 향한 욕망에 끊임없이 도달하게 하며, 자본에 의해 만들어진 취향을 자신의 온전한 취향으로 오인하게 한다. 나아가 자기 자신마저 상품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며, 또다른 욕망하는 인간들에게 도달하게 한다.

나 혼자 산다 포스터
이미지 출처: MBC

개인의 사적 영역이나 프라이버시마저도 정보와 자본으로 축적되고 교환되는 신자유주의의 단면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관찰형 예능인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나 유튜버들의 브이로그 콘텐츠 역시 그러하다. 친근한 소통의 전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이러한 콘텐츠들은 스타나 인플루언서의 라이프스타일을 내세운다. 특히 관찰형 예능은 여러 대의 카메라로 스타의 일상을 ‘진정성’ 있게 담으며, 스타의 삶과 공감되는 지점을 느끼기도 하고 겪어보지 못한 타인의 삶을 경험해보기도 한다. 이때 인터뷰와 자막은 관찰자인 우리와 출연자 간의 거리를 좁혀주며 타인의 삶을 관음증적으로 들여다보기 보는 것이 아닌 스타나 인플루언서와 일상을 교류하며 소통하는 기분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진정성’ 있는 접근은 곧 타인의 삶을 “영원의 유혹”으로, 상품으로, 사물들로 진열하며 또다른 “부재의 감각”을 불러온다.

제독철학자 한병철은 “인터넷은 오히려 자아의 전시 공간들로 해체되고, 이 공간들 안에서 사람들은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광고한다. 오늘날 인터넷은 고립화된 자아의 공명 공간일 뿐”이라고 말한다. 이제 쇼윈도에는 사물만 자리하지 않는다. 스스로 상품이 된 자아들이 여전히 사물에 대한 욕망을 품은 채 정처 없이 표류한다. 이처럼 우리는 자본주의 시장의 매커니즘의 작동 속에서 행동과 인식의 변화가 소비로 직결되고 결국은 개인 스스로 상품이 되는 동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페렉이 마주한 사회상보다 더 욕망에 쉽게 사로잡히고 나아가 스스로 ‘사물들’이 되어가며 말이다.


이 소설에서 페렉은 소비사회로의 급격한 전환을 겪고 있는 현실을 비판하기보다는 부에 대한 열망과 사물을 향한 욕망을 멈출 수 없는 개인들의 심리를 묘사하는 데 집중한다. 아티클 서두에서 다룬 인터뷰에서 페렉이 이야기했듯이 “우리는 중간에 행복하기를 멈출 수 없게 되고 말았다”에서 “중간에”는 중요한 의미를 시사한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시대를 살고 있으나 여전히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고 부를 향한 끝없는 욕망에 언제나 형언할 수 없는 공허에 사로잡히는 우리는 아마 페렉이 직시했듯 중간에 행복해지는 법을 모를지도 모른다.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여 여전히 사물들에 대한 욕망에 매몰된 채, 심지어 자신들이 사물들이 되어버리는 동시대의 우리에게 이 소설이 진정한 행복에 대해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 브루스 슈나이어, 『당신은 데이터의 주인이 아니다』, 이현주 옮김(서울: 반비, 2016)
  • 이은희, 「관찰 혹은 자발적 감시 = 리얼리티 프로그램과 신자유주의 감시 사회의 정경」, 『한국방속학보』Vol 28 No.2, 2014
  • 조르주 페렉, 『사물들』, 김명숙 옮김(경기: 펭귄클래식코리아, 2011)
  • 한병철, 『타자의 추방』, 이재영 옮김(서울: ㈜문학과지성사,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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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희연

느리지만 가치 있는 발걸음들에
발맞추어 걷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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