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즐기면 더 맛있는
맥주 이야기

무심코 마셨던
맥주에 얽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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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 치킨과 늘 환상의 조화를 선보이는 술, ‘맥주’. 가까운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을뿐더러 가격도 저렴해 우리에겐 늘 친근하죠. 일상 속에 깊이 녹아들어 언제 어디서나 기분 상관없이 찾게 되는 맥주. 그러나 정작 이 맥주에 대해 잘 알고 마시는 경우가 드문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알고 즐기면 더 맛있는 맥주 이야기.


근본 술 그 자체

이스라엘 동굴 속 맥주 벽화
이미지 출처: 이집트 투데이

맥주는 과실주와 벌꿀주 다음으로 가장 오래된 술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스라엘 북부 지역의 한 동굴에선 약 13,000년 전에 사용된 맥주 양조 도구들이 발견되었는데요. 이를 토대로 인류가 농경 생활을 시작하기 훨씬 이전부터 맥주가 탄생했다고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또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기원전 18세기 만들어진 인류 최초의 법전 함무라비 법전에 맥주와 관련된 조항이 담겨 있다는 점입니다. 맥줏집 사장이 맥주 양을 속여 팔 경우 물에 빠트려서 익사를 시킨다는 내용입니다. 당시 맥주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죠. 초창기 맥주는 투명한 액체 음료라기보단 걸쭉한 죽의 형태를 띠고 있었습니다. 바닥에는 침전물이 가라앉아있고 표면에는 곡물의 껍질들이 둥둥 떠 있어서 빨대를 꽂아 마시곤 했습니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발견된 그림 속엔 맥주가 담긴 항아리에 옹기종기 모여 함께 기다란 빨대를 꽂아 마시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탄수화물, 비타민, 무기질 영양소가 풍부하게 담긴 식량이자 고된 노동을 잊게 해주는 최고의 피로 회복제 역할까지 담당하였습니다.


라거 VS 에일

여러 종류의 맥주
이미지 출처: pixabay

라거와 에일 중 어떤 맥주를 선호하시나요? 보통 라거는 색이 밝고 맛이 가벼우면서 청량한 느낌, 에일은 색과 향이 진하고 씁쓸한 맛으로 분류하곤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오늘날 라거와 에일을 나누는 기준은 향과 맛이 아닌 바로 ‘효모’에 있습니다. 효모는 그 종류에 따라 가장 활발하게 맥아를 발효시키는 온도가 다릅니다. 라거의 효모는 약 섭씨 10도 부근의 서늘한 온도에서 활동하는데 반해 에일의 효모는 20도 부근의 온도에서 가장 많은 활동을 보입니다. 상대적으로 낮은 온도에서 발효되기 라거는 에일보다 발효 기간이 길지만, 액체의 온도가 낮을수록 기체가 더 많이 녹기 때문에 탄산이 더 들어가게 됩니다. 반대로 에일은 발효 과정 중 액체 표면에 거품이 형성되기 때문에 고유의 향이 덜 날아가게 되는 특징을 보입니다. 이 때문에 자연스레 라거는 청량하고, 에일의 향은 강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최종적인 맥주의 색과 풍미는 맥아나 홉의 구성으로 얼마든 바뀔 수 있습니다. 과일향이 풍성한 라거, 쓰지 않고 목 넘김이 부드러운 에일도 있다는 것이죠. 즉, 라거와 에일은 그저 효모의 차이일 뿐 실제로는 맛과 향에 절대적인 분류법은 아닙니다.


홉, 그 씁쓸함에 대하여

홉
이미지 출처: pixabay

물, 맥아, 효모, 홉은 맥주를 만드는 데 꼭 필요한 네 가지 재료입니다. 이 중 ‘홉’이 가장 생소한 느낌이 드시죠? 홉은 여러해살이 덩굴식물로 맥주의 고유한 향과 쓴맛을 부여합니다. 이것은 ‘루플린’이란 성분 때문인데요. 홉 종류마다 루플린의 비율이 달라 어떤 홉을 어떠한 비율로 쓰는지에 따라 꽃, 포도, 딸기, 레몬 등 제각기 다른 향을 내며 때로는 강한 쓴맛을 때로는 부드러운 쓴맛을 띠게 됩니다. 또한 홉의 잎사귀에는 ‘폴리페놀’이란 성분이 있습니다. 폴리페놀은 맥주의 방부제 역할을 합니다.

최근 유행하는 맥주 스타일인 IPA는 이 홉이 일반 에일 맥주보다 다량으로 첨가되었습니다. IPA는 India Pale Ale의 약자로 19세기 제국주의 시절 인도를 지배하던 영국인들에 의해 탄생한 맥주인데요. 영국에서 생산한 맥주를 인도로 가져오는데, 긴 항해를 버티지 못하고 상해버리기 일쑤였죠. 그래서 영국인들은 방부제 역할을 하는 홉을 대량으로 넣고, 알코올 도수를 더 높여 생산하기 이릅니다. 홉을 많이 넣기 때문에 기존의 에일보다 더 쓰고 향이 풍부한 맥주가 되었으며 오늘날까지 인기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한 땀 한 땀 손으로 만드는
수제 맥주?

맥주 따르는 모습
이미지 출처: pixabay

수제 맥주란 단어가 어느 새부터 굉장히 자연스러워졌죠. 편의점 한켠에 수제 맥주 코너가 따로 있기도 하고, 수제 맥주 전문점을 표방하는 가게도 흔해졌습니다. 도대체 수제 맥주는 무엇일까요? 한 가지 확실한 건 문자 그대로 ‘손’으로만 만드는 맥주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craft beer’를 번역하다 보니 생긴 오해인데요, 맥주는 기계 도움 없이 만들기 어렵습니다. 사람의 손을 이용한 양조 과정은 19세기 이후부터는 진행되지 않았으며, 당화 과정부터 여과, 효모 주입, 발효 등 모두 기계를 작동하여 작업하게 됩니다.

‘크래프트 맥주’라는 용어는 미국에서 처음 생긴 단어입니다. 미국 양조 협회에서는 외부 자본의 지배를 받지 않고, 소규모 양조장에서 소량으로, 전통 방식을 존중해서 생산하는 창의적인 맥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러한 소규모 양조장들이 대기업에 흡수되는 경우가 늘고 있어 맥주 업계에서 새로운 논쟁거리로 떠오르기도 하는데요. 변하지 않는 중요한 사실은 바로 크래프트 맥주가 떠오르면서 소비자들은 대기업이 생산하던 일괄적인 맛에서 벗어나 다양한 개성을 지닌 맥주를 맛볼 기회의 장이 펼쳐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국내 맥주를 향한 불편한 시선과 오해

대동강 맥주
이미지 출처: 포린트레이드

“한국 맥주는 대동강 맥주보다 맛없다”. 10여 년 전, 영국 이코노미스트 기자 다니엘 튜더가 우리나라의 맥주를 마시고 혹평한 것이 화제였죠. 당시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화를 내기는커녕 이 말에 크게 공감했습니다. 우리나라의 맥주가 이런 평가를 받게 된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세금’때문이었습니다. 7,80년대만 해도 맥주는 우리나라에서 대중적인 술이라기보다는 사치품으로 여겨졌고, 이로 인해 세금이 높게 책정되었습니다. 큰 이윤이 남지 않기에 자연스레 90년대 초반까지는 고작 두 개의 국내 회사가 맥주를 생산했고요. 게다가 원가절감, 대량생산을 위해 옥수수와 쌀 등의 부가물을 첨가하였고, 그 결과 맥주의 맛이 가볍고 밍밍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부가물 맥주는 평가절하 당해야 마땅할까요?

2017년 세계적인 셰프 고든 램지가 갑자기 카스 광고에 나와서 당황했던 기억 다들 있으실 겁니다. 그동안 맛없다고 평가받아온 국내 맥주 광고에 그가 등장하자 ‘자본주의의 노예’라며 놀리는 분위기도 있었죠. 하지만 고든 램지는 “한식의 매운맛에는 이를 씻어 내 줄 맥주가 잘 어울리고 한국 맥주는 이에 걸맞다”라고 평가했습니다. 항상 향이 진하고, 묵직한 맥주가 맛있는 게 아니라 함께하는 음식과의 조화를 무시할 수 없다는 의미였죠.

또한 국내 주세법 개정도 눈여겨볼 만한 대목입니다. 2002년 정부가 ‘소규모 맥주 제조 면허 제도’를 실시하고, 2014년 4월부터는 소규모 양조장에서 만들어진 맥주의 외부 유통이 허용한데 이어 2020년부터 원가 기준으로 세금을 매기지 않고 생산량에 세금을 매기는 ‘종량세’를 도입했습니다. 이러한 정책 개정은 국내 크래프트 맥주 씬에 활력을 불어 넣었고, 그 결과 최근 몇 년간 맛과 대중성을 잡은 다양한 맥주들이 출시되었습니다. 이제는 다니엘 튜더도 국내 맥주를 마시고 흐뭇한 미소를 보일 거라 상상해 봅니다.


흑맥주, 더 이상 NAVER

흑맥주
이미지 출처: pixabay

맥주 덕후들이 싫어하는 단어 중 하나가 바로 ‘흑맥주’입니다. 색이 검다는 것 말고는 각기 다른 흑맥주들의 고유한 특징을 나타내지 못하기 때문인데요. 이를 두고 피부색이 같다고 같은 나라 국민이 아니라는 비유를 들기도 합니다.

맥주가 검게 보이는 것은 오래 로스팅 하여 검게 된 맥아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토스트, 커피, 초콜릿과 같은 향미를 공통점으로 들 수 있지만, 사용되는 홉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다른 맥주로 탄생하게 됩니다. 보통의 맥주들처럼 검은 맥주들도 에일과 라거로 분류되며 포터, 스타우트, 블랙 IPA, 다크 라거, 둥켈 등 세부 종류는 더욱 다양합니다. 흑맥주는 그저 씁쓸하고 텁텁할 거란 편견 멈춰! 깊고 넓은 검은 맥주 세계에 한 번 발을 딛게 되면, 쉽게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됩니다.


“맥주 첫 모금의 맛을 당할 만한 것은 세상에 없다”. 『분노의 포도』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작가 존 스타인벡은 이런 말을 남겼죠. 방금 딴 맥주 한 캔을 들이켜는 그 순간은 누군가에게 천국이 되기도 합니다. 아직 좋아하는 맥주가 없거나 맥주 맛을 모르시겠다고요? 전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생각보다 맥주의 종류는 엄청나고, 아직 여러분 곁에 나타나지 않았을 뿐이니깐요. 건강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늘 즐거운 맥주 라이프를 오랫동안 즐겨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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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현

나와 타인의 건강한 삶을 추구합니다.
일상에서의 예술 그리고 균형 잡힌 라이프 스타일을 글에 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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