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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도와 분위기로
밤을 감각하게 하는 영화 4선

저마다의 시선으로 밤을 감각하는
네 가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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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산책을 떠나본 적 있으신가요. 필자에게 이즈음의 계절은 가로등 아래 스스-하며 흔들리는 나뭇가지와 피부를 포근하게 스치는 바람에 대한 감각으로 기억되곤 합니다. 유난히 술맛이 좋은 날이 있듯, 이런 계절에는 반드시 영화를 봐줘야 하지요. 여기, 온도와 분위기로 기억될 네 편의 영화를 소개합니다.


축축한 교착상태의 밤
<남국재견>, 허우 샤오시엔

영화 <남국재견>
이미지 출처: 왓차피디아

허우 샤오시엔 감독의 <남국재견>은 앞으로도, 뒤로도 나아갈 수 없는 교착상태를 그립니다. 주인공인 가오는 아버지의 식당 운영을 도우며 불량배 일로 돈을 모아 일확천금의 성공을 꿈꾸고 있는데요. 가오의 동생, 아비와 그의 여자친구 마화는 가는 곳마다 문제를 일으켜 그의 꿈을 가로막습니다. 너저분한 현재를 타파하기 위해 발버둥 치면 칠수록 깊은 수렁에 빠지는 가오의 모습은 끈적하고 습한 장마철을 연상케 합니다. 극 중 아비 역할을 맡은 배우 임강은 <남국재견>의 사운드를 책임진 음악감독이기도 한데요. 오프닝과 엔딩 시퀀스에 깔리는 거칠고 강렬한 테크노 사운드는 모두 그의 작품이라고 합니다. 최근 다시 유행하는 Y2K 무드의 패션을 좋아하신다면, 등장인물들의 옷차림을 눈여겨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남국재견> 상세 페이지


사랑과 좌절, 폭발의 밤
<나쁜피>, 레오 까락스

영화 <나쁜피>
이미지 출처: 왓차피디아

레오 까락스 감독의 두 번째 작품, <나쁜 피>는 텁텁할 정도로 강렬한 여름날의 밤을 닮았습니다. 사랑 없이 성관계를 맺는 연인들에게 생기는 STBO라는 유행병이 도는 세상, 주인공 알렉스는 여자친구 리즈를 떠나 안나라는 여성과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요. 무엇에 홀린 듯 그에게 접근하지만, 이미 누군가와 사랑에 빠진 안나와 알렉스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뜨거운 밤, 그는 내면에 쌓여가는 사랑을 주체하지 못하는데요. 데이비드 보위의 노래, ‘Modern Love’에 맞춰 질주하는 알렉스의 모습은 그야말로 ‘폭발’이라는 단어를 형상화한 듯합니다. 이는 노아 바움벡 감독의 <프란시스 하>에서 오마쥬 되기도 한 장면이죠. 한 가지 팁을 드리자면, 배우들의 감정과 색감에 집중해 보세요. 영화가 끝나면 한 편의 시를 감상한 듯 파도처럼 일렁이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나쁜피> 상세 페이지


불면과 오해의 밤
<택시 드라이버>, 마틴 스코세이지

영화 <택시 드라이버>
이미지 출처: 왓차피디아

눈꺼풀은 무겁지만 쉬이 잠들기 어려운 날이라면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택시 드라이버>를 감상해 보세요. 베트남 전쟁에서 복역 후 돌아온 트래비스는 사회의 악을 쓸어버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그렇게 택시를 몰게 된 그는 선거운동본부에서 활약하는 베티라는 여성에게 호감을 느끼고 접근하지만, 둘의 문화적 격차 때문에 쉬이 가까워지기 어렵습니다. 그러다 거리에서 매춘하는 어린 소녀 아이리스를 만나게 되고, 그를 구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히는데요. ‘정의’라는 광기에 사로잡힌 트래비스의 행동은 점점 극단적으로 변하게 됩니다. <택시 드라이버>에서 특히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오프닝 시퀀스로, 알프레드 히치콕, 오손 웰스 등 거장들의 영화 음악을 작곡한 ‘버나드 허먼’의 사운드를 끈적한 밤거리의 풍경과 함께 만나볼 수 있습니다. 나긋한 색소폰 소리와 함께 뉴욕의 밤을 유영해 보시기 바랍니다.


<택시 드라이버> 상세 페이지


상처, 그리고 희망의 밤
<키즈리턴>, 기타노 다케시

영화 <키즈리턴>
이미지 출처: 왓차피디아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키즈리턴>이 희망을 이야기하는 방식은 보통의 영화들과 다릅니다. 선선하게 불어오는 봄바람을 닮은 이 영화는 청춘을 ‘실패해도 괜찮다’는 정도로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접근한 청춘들은 끝없이 추락하거나, 죽음을 맞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키즈리턴>이 분명히 희망에 관한 영화인 것은 엔딩 시퀀스가 있기 때문인데요. 제각기 복서, 야쿠자 생활을 하다 처참히 실패한 불량 학생, 신지와 마사오는 학교에서 다시 마주치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 이제 끝난 걸까요?’라고 묻는 신지의 말에 마사오는 ‘바보, 우린 아직 시작도 안 했어!’라고 답하는데요. 실패했음에도 미래를 향해 자신을 내던지는 청춘들의 모습에 미소가 절로 납니다. 영화의 배경 음악은 ‘스튜디오 지브리’의 애니메이션 수록곡을 작곡한 히사이시 조가 담당했습니다. 현악기를 튕기며 내는 청아한 사운드가 희망의 기운을 전해줄 거예요.


<키즈리턴> 상세 페이지


영화가 상영되는 공간에서 우리는 저마다의 밤과 꿈, 그리고 동틀녘을 압축적으로 경험합니다. 영화가 시작될 무렵 극장의 불이 꺼지며 밤이 찾아오고, 우리는 자리에 앉아 상영되는 꿈을 바라보지요. 엔딩크레딧이 올라간 뒤 불이 켜지면, 아침이 찾아오듯 어떤 감정이나 온도가 우리 마음에 쥐어져 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에, 우리는 영화를 그저 보기만 하는 게 아닙니다. 쇼트와 쇼트 사이의 리듬, 구도와 사운드를 피부와 눈, 그리고 귀로 느끼며 ‘감각’하지요. 그러므로 영화에서 서사만을 추적하려 하는 것은 영화의 많은 부분을 놓치는 것입니다. 영화를 보고 난 뒤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을 경험한 적 있으신가요. 위에서 소개한 네 편의 영화 안에 깃든 이미지와 사운드를 통해 이 밤을 새로이 감각하시기 바랍니다.


박종일

박종일

차이를 없애버리려는 시도에 반해,
무엇과도 구별되는 세계를 찾아 제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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