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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이치 사카모토를
그리워하며 듣는 음악

지친 마음의 심연
우리를 위로해준 선율
Edited by

“우리는 날마다 소리에 둘러싸여 살지만, 보통은 그런 소리들을 음악으로 생각하지 않는데 귀 기울여 들어보면 재밌어요. 음악적으로도 흥미 있고 그 소리들을 내 음악에 넣고 싶어요.”

_류이치 사카모토

류이치 사카모토
이미지 출처: 류이치 사카모토 다큐멘터리

지난 3월 28일, 각종 SNS에 애도의 글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많은 예술가는 물론 그의 음악을 사랑한 팬들이 류이치 사카모토를 추모하기 위해서입니다. 세계적인 음악가이자 다양한 사회활동의 최전방에서 목소리를 낸 그는 위대한 시민으로 평가받습니다. 최근에는 유희열 표절사태 때 포용적 입장을 밝혀 많은 이들의 박수를 받은 바 있습니다.

이 글을 쓰는 필자 또한 사카모토의 별세를 매우 안타까워하였으며, 그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이 아티클을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음악은 절제된 격정이 담겨 있고 많은 이에게 위안을 주거나 빛이 되어 주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그의 음악을 넘어 그의 삶까지 지지하는 데는 그가 남긴 유산인 예술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던 류이치 사카모토의 몇몇 곡을 되짚어 보며 그를 기억합니다.


절제된 격정으로 기억되는 그의 음악들

류이치 사카모토
이미지 출처: 류이치 사카모토 공식 인스타그램

필자가 느끼기에 동양의 예술은 격한 감정이 절제되어 표현되어 있다고 느낍니다. 한국은 대표적으로 ‘한(恨)’이라는 감정으로 대표되고 있으며, 일본은 작품을 대하는 특유의 태도에서 그 감정이 나타나지요.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도 마찬가지로 기쁨과 슬픔 등 다양한 감정이 내포되어 있지만 철저하게 절제된 형태로 존재합니다. 많은 평론가는 이를 두고 ‘절제된 격정’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그래서인지, 그의 음악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생각을 하게 한다’라는 의미는 꼭 내 이야기같이 들린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내 감정에 공감해 주고 위로해 주는 그의 선율은 쉽게 지나치기 어려운 강력한 힘이 있습니다. 그의 음악 앞에서는 잠시 머물다 가고 싶어지는 것이죠. 지친 마음일수록 더 그렇습니다. 그의 음악은 많은 사람을 포용하는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1) aqua

류이치 사카모토의 멜로디와 오오누키 타에코가 자아낸 말로 노래하는 앨범 [UTAU]의 CD2 8번 트랙입니다. 이 앨범의 커다란 바탕은 ‘음악이 가질 수 있는 힘’, 음악에 ‘호소하는 힘’이 있다면 그것이 확고하고 커다란 파워가 되어, 듣는 이에게 전해지는 것에서 비롯된다고 하는데요. 다른 모든 것은 덜어내고 몇 가지 소리만으로 수많은 감정과 다양한 진폭을 표현하여 많은 사랑을 받은 앨범의 대표곡입니다.

동영상 출처: Ryuichi Sakamoto

2) leta

류이치 사카모토의 싱글 앨범에 수록된 곡. 이 노래는 콘택트 렌즈 회사 ‘CREO’의 광고를 위해 제작되었는데요. 그가 죽음을 맞이하여 준비하는 과정에서 얼마 남지 않은 여명에도 불구하고 발매한 곡으로 그의 열정을 엿볼 수 있습니다. 2020년 12월 온라인 공연을 통해 공개한 ‘leta’는 그만큼 특별한 곡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동영상 출처: Ryuichi Sakamoto

3) koko

첫 번째로 소개한 ‘aqua’와 함께 [UTAU] 앨범에 CD2 3번 트랙이자, 이 앨범의 타이틀 곡이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koko’의 도입부는 부드러운 손길로 신체 어딘가를 짚어주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지치고 힘든 상황일수록 그 감각은 더욱 강하게 다가오는데요. 마치 듣는 이의 감정에 공감하며, 함께 대화하듯 음악이 전개됩니다. 서로 다른 공간과 시간에 있지만, 대화를 하는 듯한 이러한 느낌은 그를 더욱 애정하게 하는 지점입니다.

동영상 출처: Ryuichi Sakamoto

4) Mizu no Naka no Bagatelle

한국말로 해석하면 ‘물의 가운데에서 바가텔’이고 바가텔은 클래식 음악에서의 피아노를 위한 성격 소품 중의 하나로, 프랑스어로 ‘사소한 것’, ‘하찮은 것’ 등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화 음악의 거장이기도 했던 그의 작품답게 영화의 심상이 느껴지며 가벼운 왈츠풍으로 경쾌하고 정중하게 곡을 전개합니다.

동영상 출처: Ryuichi Sakamoto

5) energy flow

1999년 [BTTB]에 앨범을 통해 공개된 곡. [BTTB]는 ‘Back to the Basic’이라는 뜻을 가진 앨범명입니다. energy flow는 ‘(생태계의) 에너지 흐름’을 뜻하는데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들의 삶의 흐름을 음악으로 표현했다고 합니다. 혹자는 일본에서 유행한 기운 혹은 피로를 치유해 주는 알파파(7~13Hz인 ‘슈만 레저넌스’에 조정된 릴랙션의 엑기스)에서 비롯되었다는 후문이 있습니다.

동영상 출처: Ryuichi Sakamoto

6) amore

왼손이 4박을 연주하는 동안 오른손이 분할된 3박, 즉 8분음표를 6개를 연주하는 것이 특징으로 잘 알려진 곡입니다. 그만큼 특별한 분위기를 연출하는데요. ‘amore’는 이탈리아어로 사랑이라는 뜻을 가졌습니다. 이탈리아인의 솔직하고 격정적인 사랑이 곡에 잘 담겨 제목과 잘 어울리는 류이치 사카모토의 대표곡 중 하나입니다.

동영상 출처: Ryuichi Sakamoto

7) solitude

이 곡을 들은 누군가는 ‘넓은 고독의 슬픈 황야’와 같다고 말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토니 타키타니>의 ost로 활용된 곡이라고 하는데요. <토니 타키타니>는 고독이라는 감정의 역설에 대한 영화입니다. 고독이라는 감정을 인지하지 못하였으나 누군가 있다가 없어지니 도저히 채워지지 않는 고독이라는 감정의 모순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영화의 서사처럼 이 곡은 인물의 텅 빈 내면, 즉 고독을 여실히 표현하고 있습니다.

동영상 출처: Ryuichi Sakamoto

8) 20220302

2023년 1월에 발매된 그의 마지막 음반 [12]의 수록곡. 이 앨범은 그가 병마와 싸우며 일기처럼 스케치한 곡들을 담은 것인지라, 곡들이 모두 일기처럼 날짜가 제목으로 붙여졌습니다. 즉, 이날의 단상이 담긴 곡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 자신이 죽을지 모르기에 인생을 마르지 않는 영원한 샘이라고 생각하지만 모든 것은 몇 번 동안만 실제는 아주 적은 횟수로 일어난다. 당신 인생을 좌우했다고 생각할 정도로 소중한 어린 시절 오후의 추억은 앞으로 몇 번이나 마음속에 떠오를까? 기껏해야 네, 다섯 번 정도일 것이다. 몇 번이나 보름달이 떠오르는 것을 볼 수 있을까? 아마 20회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무한정의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_ 류이치 사카모토

동영상 출처: Ryuichi Sakamoto

그가 남긴 심상,
선율은 영원하리

류이치 사카모토가 아니었다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 많습니다. 즉, 그 때문에 벌어진 세상의 일이 참 많다는 것이지요. 사회 속에서도 우리 개개인의 삶에도 그의 존재는 많은 변화를 만들어 냈습니다. 적어도 그의 예술은 필자에게 하나의 큰 사건이었습니다.

죽음은 인간의 생을 끝낼 수 있지만, 예술을 멈추지는 못합니다. 그가 남긴 심상과 선율은 세상에 남아 꾸준하게 그의 존재를 대신해 줄 것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형운

형운

현실을 지배하는 인과관계를 이해하고 활용하는 '원칙'을 추구합니다.
ANTIEGG 만들고 있는 형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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