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하면 어떤 이미지가 생각나시나요? 대다수가 ‘아이 러브 뉴욕(I❤️NY)’ 문구를 먼저 떠올릴지도 모르겠는데요. 심각한 경기 침체와 치솟는 범죄율로 골치 앓던 뉴욕은 1975년 도시 브랜딩 캠페인으로 뉴욕을 전 세계인이 사랑하는 도시로 탈바꿈했습니다. 이 성공 사례는 도시도 브랜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고, 여러 도시들도 앞장서서 브랜딩 캠페인을 진행하기 시작했죠. 각양각색의 사람과 문화가 공존하는 거대한 도시를 하나로 정의하기란 무척 어려운 일인데요. 고유한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유연한 도시 브랜딩을 전개한 유럽의 도시 3곳이 있습니다. 바젤과 포르투, 그리고 암스테르담까지. 창의적인 기획과 미래를 내다보는 기민한 전략으로 세상의 흐름에 발맞춰 나가는 도시들을 살펴보았습니다.
탄탄한 산업 위 피어난 예술 도시,
바젤
스위스 바젤(Basel)은 프랑스 및 독일과 국경을 인접한 인구 약 17만 명의 소도시입니다. 매년 6월마다 국제 예술 박람회 아트 바젤(Art Basel)이 개최되는 곳이기도 하죠. 1970년대부터 아트 페어를 개최하고 피카소의 그림을 주민 투표로 구매할 만큼 바젤은 예술에 진심인 도시인데요. 사실 바젤의 성장 기반을 다진 대표 산업은 예술이 아닌 제약과 화학 분야입니다. 500여 개의 제약 및 의학 회사가 자리 잡아 수많은 투자와 일자리를 창출하는 바젤을 단순히 예술만으로 풀어내기엔 한계가 있었죠.
이 고민을 시작으로 바젤은 1999년 본격적인 도시 마케팅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장장 5년에 걸쳐 브랜딩 전략을 수립하고 도시 마케팅 부서를 신설하는 등 체계적인 계획으로 장기적 성장을 도모하고자 했죠. 바젤은 이원화 전략을 채택하여 내부적으로는 산업을 강화하고 외부적으로는 문화로 풍성한 도시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지역 산업에 사용되는 공식 로고에는 스위스 국기를 붙여 신뢰도를 높이고 낮은 도시 인지도를 보완했죠. 문화 분야에서는 ‘Culture Unlimited’ 슬로건을 내세우며 여러 나라와 맞닿은 지리적 위치를 살려 다양한 문화가 교차하는 허브 도시임을 강조했습니다. 또한 아트 바젤이 전 세계와 바젤을 연결하는 행사로 자리 잡도록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그 결과 미국 마이애미와 홍콩으로도 확장되어 개최되기도 했죠. 문화와 산업 두 가지 토끼를 잡으며 스위스 산업의 허브이자 예술 관광도시로 꽃피운 바젤. 바젤의 관광 슬로건은 이제 ‘This is Basel’로, 20년간의 꾸준한 노력 끝에 바젤은 이름만으로 사람을 이끄는 도시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현대적 감각으로 해석한 역사 도시,
포르투
포르투갈에서 2번째로 큰 도시 포르투(Porto)는 2000년의 오랜 역사를 간직한 도시입니다. 포르투갈이라는 국가 이름의 어원이 된 곳이자 해양 무역의 중심지로서 대항해 시대를 개척한 항구도시이기도 하죠. 구도심 역사 지구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며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기도 했습니다. 보통 도시를 대표하는 이미지로 유명한 건축물을 자주 활용하곤 하지만, 포르투는 자연부터 유적지, 음식 등 다채로운 이야깃거리로 가득했기에 하나의 키워드로 도시를 설명하기란 불가능했습니다. 포르투 전체를 아우르는 개념과 현대적인 이미지 변신도 필요한 상황이었죠.
2014년 포르투는 디자인 스튜디오와 함께 브랜딩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시민들에게 ‘What is your Porto?’라는 질문을 던지며 가장 많은 답변이 나온 22개를 아이콘으로 제작하죠. 비주얼 그래픽은 오래된 건축물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아줄레주(azulejo)’라는 푸른 전통 타일 장식에 영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성당부터 포트 와인 등 포르투를 대표하는 요소는 타일 무늬로 표현되었고, 다양한 조합으로 어디든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되었습니다. 브랜딩 로고는 ‘Porto.’는 마침표를 찍음으로써 포르투는 무엇으로도 정의할 수 없다는 확신을 드러냈죠. 전통을 젊은 감각으로 풀어낸 경쾌한 리브랜딩은 지역 주민의 사랑과 지지 속에 점차 확장되며 포르투를 전 세계로 널리 알렸고, 지금도 도심 곳곳에 녹아들어 유쾌한 얼굴로 시민들을 환영하고 있습니다.
경계를 허무는 자유의 도시,
암스테르담
네덜란드의 수도이자 인구 절반이 이민자인 도시 암스테르담(Amsterdam). 낭만이 깃든 운하부터 풍차와 튤립이 펼쳐진 동화 같은 풍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한데요. 창의적인 문화 예술이 숨 쉬는 자유분방한 매력의 도시이지만, 마약과 성매매 등 부정적인 이미지를 벗어나야 한다는 고민을 안고 있었죠. 이에 암스테르담은 시민과 관광객 모두를 포용하면서도 유흥적인 이미지를 쇄신할 도시 브랜드 개발에 착수합니다.
그렇게 2004년 마케팅 슬로건으로 ‘I amsterdam’이 탄생합니다. 이 도시에 있는 모두가 암스테르담 시민이라는 뜻이죠. 사람을 끌어들인 주체적인 문장은 암스테르담이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공존하는 도시임을 드러내며 관용의 자세를 드러냈습니다. 슬로건은 국립 미술관 등 주요 건축물 앞에 조형물로 설치되어 관광객들의 사진 명소로 탄생했습니다. 도시 디자인에는 3개의 십자가 모양(XXX)을 활용하여 암스테르담의 역사적 인물 세인트 앤드류를 기렸습니다. 유연하고 개방적인 브랜딩 캠페인 이후 암스테르담은 수많은 관광객과 해외 투자를 이끌었고, 시민들의 자긍심을 고취하며 암스테르담을 자유와 포용의 도시로 승격시켰습니다.
원하는 도시를 선택하여 여행하고 살아갈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하면서 도시 브랜딩의 중요성은 점차 커지고 있습니다. 역사와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를 기반으로 도시만의 강점과 차별점을 함축적으로 전달해야 하는 도시 브랜딩. 도시는 세상과 상호작용하며 변화하는 복합적인 존재이기에, 브랜딩 또한 흐름에 발맞춰 유연하게 움직여야 합니다. 장기적인 전략 없이 단순히 슬로건과 로고만 변경하는 것은 평면적인 변화에 불과할 뿐이죠. 앞서 소개한 유럽 도시의 사례들을 통해 한국의 도시 브랜딩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읽어내 보는 건 어떨까요.
- 이코노미조선, 유연한 도시 브랜딩의 모범 사례, 바젤 <上>, 2021.06.21
- 이코노미조선, 유연한 도시 브랜딩의 모범 사례, 바젤 <下>, 2021.07.12
- 이코노미조선, ‘아줄레주’로 해결한 도시 포르투의 비주얼 브랜딩, 2022.03.20
- 디자인프레스, 100개의 아이콘으로 만든 도시의 모습, 포르투 도시 브랜딩, 2019.11.18
- 월간 디자인, [도시 브랜딩] 포르투Porto
- 월간 디자인, [도시 브랜딩] 암스테르담 Amsterdam
- 한국경제신문, 품위있는 도시, 스위스의 바젤, 2017.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