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품으로
세금을 낸다면

미술품 물납제와
이를 둘러싼 우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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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2020년 5월, 국내 1호 사립미술관인 간송미술관이 보물로 지정된 삼국시대 불상 2점(금동여래입상, 금동보살입상)을 경매에 내놨다. 간송미술관이 이런 결정을 내린 건 막대한 유지 비용과 거액의 상속세로 인해 재정난이 심화된 까닭이었다. 두 불상은 각각 시작가 15억 원으로 새 주인을 찾았지만 아무도 응찰 의사를 밝히지 않아 번번이 유찰됐다. 결국 국립중앙박물관이 유찰가보다 낮은 가격에 두 불상을 사들였다.

② 2021년 4월, 삼성 측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평생에 걸쳐 모은 미술품 2만 3000여 점을 전국 국립 미술관에 기증했다. ‘세기의 기증’이라 불리는 통 큰 기증을 통해 전국 곳곳의 미술관에 수준 높은 작품들이 공급됐고, 대중에게 공개됐다. 삼성 측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 고인의 뜻’이라며 기증 이유를 밝혔지만, 현행법상 미술품으로 상속세를 납부할 수 없다는 한계가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분석도 나왔다.

미술품으로 세금의 일부를 대신 낼 수 있게 하는 ‘미술품 물납제’에 관한 논의는 잊을 만하면 다시 등장하는 단골손님이다. 올해부터 부분적으로 미술품 물납을 허용하기로 한 법안이 시행됐지만, 물납 요건 완화를 두고 찬반양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한국은 이미 부동산이나 주식 등 가증권으로 상속세를 대신 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미 다른 형태로 물납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미술품 물납에 대한 논의는 대수롭지 않을 수 있겠다. 하지만 기존의 물납 품목과 다른 미술품만의 고유한 특성은 미술품 물납제에 관한 논의를 한층 복잡하게 만든다. 이 글에서는 제도 도입에 앞서 전문가들이 어떤 부작용들을 우려했는지 알아보고, 어떻게 이러한 우려들을 불식시킬 수 있을지 살펴보려 한다.


미술품으로 세금을 낸다면

예술품
이미지 출처: Pixabay

미술품 물납제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그동안 많은 공감대가 있어왔다. 우선 국가로서는 예산으로 작품을 사들이는 기존 방법보다 더 많은 문화재와 미술품을 사들일 수 있어서 이득이다. 상속을 받는 입장에서도 당장 상속세를 마련하기 위해 헐값에 미술품을 내놓는 등 급전을 마련해야 하는 부담을 덜 수 있다. 국민들은 미술품의 보존·공개를 통해 더 풍부하게 문화 예술을 향유할 수 있다.

하지만 미술품 물납제 도입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도 엄연히 존재한다. ‘공정’이 제일의 가치로 떠오른 우리 사회에서 상류층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미술품으로 세금을 면해주는 건 ‘부자 감세’라는 비판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물납 허용 범위와 물납 품목들의 가치 평가 방식을 신중하게 정하지 않으면, 탈세 수단으로 변질될 가능성도 있다.

2021년 말 ‘미술품 상속세 물납 허용’을 골자로 한 세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할 때 수많은 단서조항이 붙은 이유도 이러한 우려를 줄이기 위함이었다. 이 당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물납 대상을 역사적·학술적·예술적 가치가 있는 문화재·미술품으로 한정했으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요청이 있을 때만 허용하기로 했다. 또 국고 손실 위험이 크다고 판단되면 물납 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도록 안전장치도 마련했다. 적극적인 국유화 전략으로 국보 유출을 막고, 국민의 문화향유권을 증진하려는 취지였다.

하지만 여기서 딜레마가 생긴다. 물납의 요건을 지나치게 엄격히 규정할 경우 제도를 도입한 취지가 무색해질 수 있다. 그렇다고 너무 완화하면 수많은 미술품의 가치를 판단하고, 향후 이를 세금으로 전환해야 하는 국가의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중요한 건 미술품의 보존가치, 국민 정서, 부작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적절한 선을 긋는 일이다. 다행히 우리는 앞서 미술품 물납제를 시행한 나라들의 사례를 볼 수 있다. 각 나라 특성에 맞춰 다양한 모습으로 변모한 제도를 분석해, 한국에 걸맞은 제도를 찾는 시도가 수년 전부터 계속되고 있다. 많은 예술계 종사자들이 고대해온 미술품 물납제는 안정적으로 한국에 정착할 수 있을까.


물납이 허용되는 범위

그림 그리는 모습
이미지 출처: Pixabay

미술품 물납제를 도입할 때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문제는 물납 허용 범위다. 세금 대신 어떤 미술품을 받을 것인가. 이 중에서도 특히 생존 작가 작품의 물납을 허용할 건지 여부가 중요하게 다뤄져왔다. 오래전부터 제도를 시행한 국가들에선 생존 작가 작품의 물납을 민감하게 규제했다. 영국과 일본에선 사망 작가의 작품만을 받도록 했으며, 프랑스에선 제한적으로만 이를 승인했다.

이처럼 생존 작가의 작품이 물납 대상에서 제외된 건 높은 가격 변동성 때문이다. 작가가 살아있는 한, 작품의 평가가 극적으로 달라질 위험은 항상 존재한다. 예를 들어 지난달 ‘새로운 바스키아의 탄생’이라는 극찬을 받던 익명의 화가가 마돈나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작품에 대한 평가가 급격히 악화한 일이 있었다. 또한 작가의 언행이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으며 작품의 값어치가 달라진 사례도 있었다. 국가가 미술품으로 세금을 대신 받을 경우 이러한 ‘변화’는 고스란히 국고 손실로 이어지기에 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미술품 물납제는 문화재 보존 및 국민 문화향유권 증진이라는 고유의 목적을 갖고 있으므로 수익성만이 기준이 돼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있다. 국가가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보존가치가 높은 작품의 물납을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해외에서 세수 손실을 감수하고 유물을 받은 사례도 있다. 그러나 미술품 물납제는 자선사업이 아니며, 그 본질은 납세 제도이므로 안정적인 세금 환수가 우선돼야 한다는 입장이 더 지배적이다.

한국에서 물납과 관련된 세법 개정은 국가의 수익 안정성을 담보하는 방향으로 이뤄져 왔다. 가격 변동성이 높은 부동산, 유가증권의 물납제도 역시 세금을 제대로 환수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았으며, 이는 증여세, 양도소득세 등 대부분의 세목에서 물납을 폐지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처럼 그동안 물납의 범위를 정하는 일에서는 국고 보전이 우선시됐으며, 미술품 물납 요건을 정하는 일 역시 같은 기준을 따를 것으로 보인다.


값을 정하는 방법

가격 택
이미지 출처: Pixabay

어떤 품목이든 물납을 받으려면 금전적인 값어치를 정확히 산출해야 한다. 하지만 물품의 가치는 매번 달라지기에 정확한 산정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나마 부동산이나 유가증권의 경우, 수요와 공급에 의해 시가가 비교적 뚜렷하게 좁혀지므로 인정 결과에 대한 이의와 반발이 적은 편이다. 하지만 미술품 감정의 경우 정성적인 요소가 워낙 많은 탓에 전문가의 감정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다. 한국은 해외에 비해 경험적인 데이터도 부족하고, 시가를 감정을 하는 전문가의 수도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인프라가 부족한 상황에서 대대적으로 물납제를 시행하는 건 공정성 논란 등의 부작용을 낳을 우려가 있다. 따라서 감정 전문가를 양성하는 등 필요한 인프라를 갖추기 위한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국가가 나서서 미술품의 값을 정할 경우, 미술품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비슷한 성질을 지닌 부동산 실거래가와 공시지가를 보면 이해하기 쉽다. 공시지가는 정부가 편리한 정책 수립과 과세를 위해 감정평가사들에게 의뢰해 산출한 토지 가격이며 실거래가는 부동산이 실제로 시중에서 거래되는 가격이다. 정부 공시지가와 실거래가의 차이가 커질수록 투기 과열, 로또 청약, 세금폭탄 등 문제가 발생했다. 자연적인 시장 흐름에 인위적인 기준을 넣자 수많은 부작용이 탄생한 것이다. 미술품은 어떨까. 정부 공시가와 실거래가에 차이가 발생한다면 또 다른 문제가 파생되지 않을까.


악용될 여지는 없나

더럽혀진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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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품 물납제 도입 논의가 더디게 이뤄진 배경에는, 제도가 탈세의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서두에서 사례로 든 이건희 컬렉션의 경우, 작품들의 구입 경위가 분명하지 않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건희 컬렉션에 삼성 리움미술관의 소장품으로 알려진 작품도 일부 포함돼 있었다고 한다. 많은 미술품들이 암암리에 거래되며 소유권이 불분명한 경우가 많은 상황에서 미술품 물납이 허용된다면, 개인이 부담해야 할 상속세를 회사 자금으로 대신 내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 구입 경위를 투명하게 공개한 작품에 대해서만 제한적으로 물납을 허용하는 등의 대안이 필요한 이유다.

물납한 자산을 다시 사들이는 방식으로 탈세한 전례도 있다고 한다. 주식으로 세금을 물납하고, 이후 관계사나 주주, 심지어는 지인을 통해 이를 헐값에 되사 세금을 감면하는 수법이었다. 제도의 취지가 무색해지지 않도록 이러한 악용 가능성도 사전에 모두 차단해야 할 것이다.


밖에서는 중국의 문화공정이 거세지고, 안에서는 미술관들이 운영난에 허덕이는 상황이다. 국가가 두 팔 걷고 나서 문화재 보존 사업을 주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던 중 미술품 물납제가 도입된 건 당연한 수순처럼 보인다.

물납제는 이미 여러 선진국에서 큰 문제 없이 시행돼왔다. 잘 정착된 사례가 있는 만큼 너무 인색하게 굴 필요도 없을 듯하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공정’이라는 가치가 갖는 무게는 그 어느 때보다 무겁다. 특히 먹고사는 문제와 직결되는 조세제도는 모두에게 공평해야 하며, 물납제가 일종의 ‘뒷문’이 된다면 국민들이 느끼는 박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도입된 미술품 물납제가 첫 발을 잘 뗄 수 있도록 철저한 감시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 이재경, 미술품 상속세 물납제의 도입(입법과 정책 제13권 제1호), 국회입법조사처, 2014, p241-258.
  • 양현미, 상속세에 대한 미술품 물납제도 도입방향 연구(예술경영연구 제41집), 한국예술경영학회, 2017, p68-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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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우주

흑백의 세상에서 회색지대를 찾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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