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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만 예술 하나요
비버도 예술 합니다

예술로 실험하는
아키 이노마타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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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눈을 감고 ‘예술가’를 떠올려 봅시다. 어떤 얼굴이 보이나요? 예술사에 빼놓을 수 없는 유명한 얼굴, 혹은 최근 관심을 갖고 지켜본 작가인가요? 저마다 다른 상상을 펼칠 것 같지만, 사실 우리는 비슷한 얼굴을 떠올리고 있습니다. 바로 사람 얼굴을 떠올린다는 점에서 말이에요. 그런데 과연 사람만이 예술에 참여하고 작품을 만드는 주체가 될 수 있을까요? 우리도 모르게 지닌 고정관념에 정면으로 돌파한 작가, 아키 이노마타를 소개합니다.


누구의 작품인가

아키 이노마타, “How to Carve a Sculpture”, 2018-202
아키 이노마타, “How to Carve a Sculpture”, 2018-2022, 이미지 출처: Kioku Keizo, courtesy of Mori Art Museum

지난겨울, 도쿄의 모리 미술관에서 이 작품을 만났습니다. 투박하지만 나무의 결이 느껴지는 작품이 마음에 들어 한동안 그 앞에 머물렀습니다. 이 작품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요? 숙련된 조각가가 고심을 거듭해 나무를 고르고 정교히 조각한 결과일까요? 놀랍게도 이 작품의 주인공은 비버입니다. 유유자적 평화롭게 살아가는 자연의 동물 비버가 어떻게 조각을 만들었을까요?

비버, 2014
비버, 2014, 이미지 출처: Nasu Animal Kingdom

이 작품은 일본의 예술가 아키 이노마타(Aki Inomata)의 아이디어로 탄생했습니다. 이노마타는 우연히 비버가 갉아 만든 나뭇조각을 보고 예술 작품과 같은 모습에 놀라움을 느꼈습니다. 작가는 비버도 사람처럼 예술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질문을 안고 도쿄의 동물원 다섯 곳에 방문합니다. 비버 서식지에 나무토막을 두고 오면 밤새 비버들이 나무를 자유롭게 갉고 씹어 조각을 만드는 것이죠.

다케노 유미의 스튜디오
다케노 유미의 스튜디오, 이미지 출처: 아키 이노마타 공식 홈페이지

비버가 만든 조각은 사람과 로봇에게 전달됩니다. 사람인 조각가와 로봇 CNC(컴퓨터 수치제어 기계)가 비버의 작품을 3배 규모로 확대해 재현합니다. 이 과정에서 이노마타는 사람과 비버, 로봇 간의 흥미로운 차이를 발견합니다. 로봇은 설정된 경로에 따라 규칙적으로 조각을 만들지만, 비버와 사람은 그렇지 않은 것이죠. 로봇과 달리 비버와 사람에게는 더 강조하고 싶은 부분, 제외하고 싶은 부분 등을 결정할 수 있는 의지와 선택권이 있습니다. 이점에서 동물과 사람은 서로 다르면서도 비슷합니다.

작업 과정에서 또 다른 참여자가 등장해 놀라움을 주기도 합니다. 나뭇조각이라는 자연물을 확대해 만드는 과정에서, 딱정벌레가 등장해 나무를 파고들어 그만의 문양을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작품을 통해 이노마타는 사람에서 나아가 동물 또한 예술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생명체가 함께 호흡하며 이 세상을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도시에서 꿈꾼 자연

아키 이노마타
아키 이노마타, 이미지 출처: courtesy of Maho Kubota Gallery

이노마타는 자연과 생명에 주목해 작업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작가가 이러한 주제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엔 나고 자란 도시의 영향이 있었습니다. 이노마타는 일본의 중심인 도쿄에서 살면서 삭막함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도시에서 보기 어려운 정반대의 것인 자연에 관심을 갖고 탐구하게 됩니다. 자연을 표현하는 다양한 갈래의 길 중 이노마타가 택한 건 예술과 기술의 접목이었습니다. 예술 학교에서 디지털 미디어에 집중해 공부한 3D 프린팅, 컴퓨터 프로그램을 적극 활용하게 됩니다.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은 혼자가 아닌 함께하는 작업이라는 점입니다. 공예가, 조각가와 같은 타 장르 예술가를 비롯해 다양한 동식물, 컴퓨터처럼 여러 존재와의 협업으로 작품이 완성됩니다.

아키 이노마타, “Why Not Hand Over a “Shelter” to Hermit Crabs? -Border-”, 2009-지속
아키 이노마타, “Why Not Hand Over a “Shelter” to Hermit Crabs? -Border-”, 2009-지속, 이미지 출처: 아키 이노마타 공식 웹사이트

이러한 이노마타의 관심사와 작업 방식은 소라게와 함께한 작품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3D 프린팅 기술을 이용해 소라게를 위한 쉼터이자 집, 껍데기를 만든 작품입니다. 이노마타는 도시나 자연, 고대 유적지 등 세계 곳곳의 공간을 모델로 게를 위한 껍질을 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게들이 껍질에 들어가길 거부했습니다. 그들에게 맞지 않는 모양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를 본 이노마타는 자연을 찾아 소라게를 자세히 관찰하고 수정을 거듭했고, 마침내 그들이 좋아할 만한 새로운 껍데기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바닷가를 찾았을 때나 볼 수 있었던, 멀게만 느껴지는 게가 작품의 일부가 된 것이죠.


사람과 자연

아키 이노마타, “Shelter”, 2018
아키 이노마타, “Shelter”, 2018, 이미지 출처: 아키 이노마타 공식 웹사이트

이노마타의 작품 앞에선 무수한 물음표가 떠오릅니다. 앞서 살펴본 작품들을 만든 주인은 누구일까요? 비버나 게도 예술을 만드는 주체가 될 수 있는 걸까요? 이 질문은 예술의 정의에 대한 물음으로 이어집니다. 우리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예술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작품에 담긴 예술적 의도, 예술가의 창의성이 예술과 예술이 아닌 것을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일지 고민해 보게 됩니다.

아키 이노마타, “Thinking of the Yesterday’s Sky”, 2022
아키 이노마타, “Thinking of the Yesterday’s Sky”, 2022, 이미지 출처: 아키 이노마타 공식 웹사이트

단박에 질문을 찾기 어려운 질문 속에 이노마타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이야기합니다. 사람만이 예술의 주체는 아니라는 것, 그리고 사람만이 이 세상의 많은 것을 결정하고 선택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예술이라는 주제에서 한발 더 나아가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 상호작용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WEBSITE : 아키 이노마타
INSTAGRAM : @akiinomata


“세상은 사람과 그들의 결정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에서 벗어날 수는 없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다른 방식을 찾고 있습니다.”

_아키 이노마타

이노마타가 남긴 말은 예술을 경험하고,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무엇이 예술인지, 누가 예술가가 될 수 있는지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답을 찾긴 어려울지 모릅니다. 하지만 사람만이 주인공이라는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게 해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작업임은 틀림없습니다. 다양한 존재와 함께 한 이노마타의 작품, 그 앞에서 자기만의 답을 찾아보길 권합니다.

  • Artist Aki Inomata Collaborates With Hermit Crabs and Beavers, (2023.02.13),
    https://www.tokyoweekender.com/art_and_culture/

이수현

이수현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마음.
삶을 깨트리는 예술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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