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함을 더해줄
세 편의 영화

인간의 내면을 깊이 있게 다루는
섬뜩하고 아름다운 영화
Edited by

인간은 어찌나 다면적이고 알 수 없는 존재인지요. 초자연적인 존재나 무시무시한 범죄 사건도 우리를 두려움에 떨게 하지만, 내면에 감추어져 있는 어두움을 꺼내 직면할 때 가슴 깊은 섬뜩함을 느끼곤 합니다.

당신의 여름밤을 책임져 줄, 서늘함을 한 스푼 더한 세 편의 영화를 소개합니다. 이 영화들에는 귀신도 좀비도 악마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저 인간의 면면을 깊이 있게 탐구할 뿐이죠. 어긋난 욕망, 의존과 집착, 법과 제도에 가려진 본성까지. 아름다운 미장셴이나 화려한 편집으로 보는 재미까지 놓치지 않은 영화를 추천합니다.


<살인에 관한 짧은 필름>

죽음을 둘러싼 수많은 문제들

<살인에 관한 짧은 필름>
이미지 출처: IDMb

살인과 사형은 어떤 차이를 가지고 있을까요. 법과 제도가 내세우는 ‘정의’는 누구를 위한 것인지요. 사회적 동물이자 이기적 존재인 인간은 정의로움과 죄의식 사이에서 어떤 판단을 할까요. 영화 <살인에 관한 짧은 필름>은 ‘사람을 죽이는 행위’의 도덕적인 복합성을 탐구합니다. 개인적 살인과 사회적 살인 사이의 모호한 지점을 파고들면서 말이죠.

영화는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세 명의 남자가 얽히게 되는 일을 다룹니다. 분노와 좌절감에 가득 찬 청년인 야체크는 택시 기사 얀을 잔인하게 죽입니다. 이후 체포되어 재판을 기다리지요. 첫 번째 업무를 맡게 된 신입 변호사 피토르는 야체크를 위해 사형 폐지를 주장하며 변론을 합니다.

<살인에 관한 짧은 필름>
이미지 출처: IMDb

빛바랜 필름 위로 펼쳐지는 극한의 상황은 키에프슬로프스키의 스타일리시한 연출과 더해져 특유의 차갑고 서늘한 느낌을 극대화합니다. 파멸과 전락 앞에 섰을 때 어떤 표정을 짓는지. 개인이 수용할 수 있는 어둠의 총량은 어디까지인지. 자아의 사회적 죽음과 그것을 해소하는 방식으로서의 살인을 어떻게 보아야 할지. 여러 질문을 던지지요.

여러분은 어떤 상황에서 죄책감을 느끼고, 어떻게 그 찝찝함과 맞서는지요. 필자는 영화를 보며 살인자인 야체크에게 공감과 연민을 느꼈을 때, 일어난 죽음과 일어날 죽음 사이에서의 명징한 해답을 내리지 못한 채 영화 속에서 떠돌기를 반복했을 때, 당연한 것이 실은 당연한 것이 아님을 맞닥뜨렸을 때의 그 미묘한 기분을, 여전히 잊지 못합니다.


<레퀴엠>

의존과 집착에 대하여

<레퀴엠>
이미지 출처: IMDb

요즘은 새벽이 다 되어도 휴대전화를 쉽게 내려놓지 못합니다. 무의식적으로 무한 스크롤을 반복하면서 말이지요. 자극은 또 다른 자극을 추구하게 만들고, 우린 때론 그것에 의존하게 됩니다. 영화 <레퀴엠>에는 약물 중독에 빠진 네 인물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삶이 망가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개개인이 가진 구멍 난 부분이 의존과 집착으로 잘못 이어졌을 때의 폐허를 그려내면서 말이죠.

초콜릿을 먹으며 TV 쇼를 보는 것이 유일한 낙인 ‘사라’는 살을 빼기 위해 다이어트 약을 오남용합니다. 그의 아들 해리는 친구 타이론과 함께 돈을 벌기 위해 마약을 조달하지만, 그들 역시 중독자가 되었죠. 해리의 여자친구 마리온은 패션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지만, 마약을 사기 위해 매춘까지 감행하게 됩니다.

<레퀴엠>
이미지 출처: IMDb

몰락의 과정은 리드미컬한 편집과 구조적인 이미지의 반복으로 강렬하게 그려집니다. 속도감 있는 편집, 과도한 클로즈업, 화려한 이미지는 관객을 영화적 체험으로 이끌죠. 약을 먹고, 주사를 놓고, 동공이 커지는 장면은 마치 환각 같은 효과를 불러일으킵니다. 역설적으로 관객을 극강의 몰입 속에 위치하게 하는 것이지요.

‘레퀴엠’은 죽은 자들을 위한 미시곡을 일컫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의 꿈을 죽음으로 이끈 것은 무엇일까요? <레퀴엠>은 단순히 ‘마약의 위험성’을 강조하지 않습니다. 각각의 등장인물이 마약에 빠지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며 관객에게 물어보는 듯합니다. 당신도 무언가에 중독되어 있진 않은지. 결핍을 채우기 위해 무언가에 의존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지 말이죠.


<아이즈 와이드 셧>

어긋난 욕망을 들춰냈을 때

<아이즈 와이드 셧>
이미지 출처: IMDb

인간의 욕망에 끝이 있을까요. 여러분은 어떤 가면을 쓰고 살아가고 있나요. 니콜 키드먼과 휴 그랜트가 주연으로 등장하는 이 영화는 세계적으로 가장 인정 받는 감독 중 하나인 스탠리 큐브릭의 유작입니다.

완벽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한 부부의 삶을 보여주며 영화는 시작됩니다. 아내 앨리스가 자신의 성적 판타지를 고백하며 두 사람 사이의 균열이 시작되죠. 남편 빌은 호기심으로 상류층의 난교 파티에 가게 되고, 이후 위험한 사건에 휘말리게 됩니다. 이들은 욕망과 현실 사이에서 꾸준히 갈등하고, 불신 앞에서 힘없이 흔들리기도 합니다.

<아이즈 와이드 셧>
이미지 출처: IMDb

현실과 환상 사이를 기묘하게 뒤튼 연출은 관객을 한층 더 몰입하게 만듭니다. 특히 가면을 쓰고 쾌락을 추구하는 난교 파티 장면은 기이하기 그지없죠. 동시에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숨기며 살아가는지 돌아보게 만들기도 합니다.

기이한 분위기의 영화 속에서 우리는 되묻게 됩니다. 도덕과 규범으로 둘러싸인 있는 사회에서 당신은 과연 솔직하게 살고 있는지요. 감추어 둔 욕망의 본모습을 마주할 때 나는 어떻게 행동할 수 있을지 생각하게 합니다.


영화는 언제나 우리에게 수많은 물음을 던집니다. 영화 속 장면을 바라보며 우리는 섬망처럼 어떠한 순간을 찾아내기도 하죠. 꿈에서 보았던 끔찍한 장면, 삼켜내야만 했던 생각, 미처 드러내지 못했던 내면의 어두움 같은 것을 말이죠.

세 편의 영화에는 인간의 본능과 본성에 대해 고찰해 볼 만한 지점이 있습니다. 다만 선정적이고 잔인한 장면도 다소 있으니, 개인의 취향에 맞게 선택해 감상하길 바랍니다. 현실을 극대화한 이 영화들을 보며 누군가는 현실을 벗어날 또 다른 탈출구를 찾을 수 있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문보영 시인의 시 「옆구리 극장」의 일부를 인용하며 글을 맺습니다.

나는 문득 현실이 너무 무서워 극장으로 내려가 공포영화를 시청했다. 진짜 공포에서 가짜 공포로 도망가기. 가짜 공포에서 진짜 공포로 도망가기. 탈출하기 위해 극장으로 내려가면 극장은 삶과 똑같은 공포영화를 상영하고 있다. 하지만(중략)

나는 일기장에 쓸 말이 있다. 삶의 옆구리에는 극장이 붙어 있어서 원하면 언제든지 극장을 드나들 수 있는데, 극장은 언제나 공포영화만을 상영하고 나는 이 사실이 무척 마음에 든다고. 나는 공포 이야기 안에서 더 내려가 공포영화를 본다. 이 모든 게 마치 공포 주머니 속 공포 주머니 속 공포 주머니처럼 포근한것이다.

_문보영, 「옆구리 극장」


Picture of 임수아

임수아

아름다운 것만이 삶을 의미있게 만든다 믿으며 글을 씁니다.

에디터의 아티클 더 보기


문화예술 전문 플랫폼과 협업하고 싶다면

지금 ANTIEGG 제휴소개서를 확인해 보세요!

– 위 콘텐츠는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받는 저작물로 ANTIEGG에 저작권이 있습니다.
– 위 콘텐츠의 사전 동의 없는 2차 가공 및 영리적인 이용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