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사랑의 아이콘
제인 버킨

시대를 풍미한 스타일 아이콘
제인 버킨을 기억하며
Edited by

Yesterday Yes a day
Like any day
Alone again for every day
Seemed the same sad way
To pass the day
The sun went down without me
Suddenly someone else
Has touched my shadow
He said “Hello”

어제는 어느 날과 마찬가지로 홀로 외로웠습니다.
매일 언제나 슬프게 하루가 가기 때문입니다.

나 없이도 해는 지고,
누군가 갑자기 나의 그림자에게
“안녕”하며 인사하는 것입니다.

_제인 버킨, ‘Yesterday yes a day’

제인 버킨의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가 담긴 노래로 글을 시작합니다. 지난 7월 16일, 제인 버킨(Jane Mallory Birkin)이 향년 76세를 일기로 프랑스 파리 자택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자유롭고 화려했던 삶의 종착입니다. 누군가의 마지막 앞에서 우리는 다시금 한 생의 반짝이는 고유함을 발견하게 됩니다.


제인 버킨

제인 버킨
이미지 출처: Getty Images
제인 버킨
이미지 출처: Getty Images

흰 셔츠와 청바지, 굽이 낮은 스니커즈에 바스켓 백을 든 그의 모습을 패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한번 쯤 마주쳤을 것입니다. 스타일의 아이콘으로 산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요? 1970-80년대 프렌치 시크의 대명사인 그는 런던에서 해군 장교인 아버지와 배우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납니다.

배우 활동을 시작한 제인 버킨
이미지 출처: Krause & Johansen/Andrew Birkin

제인 버킨은 22세에 프랑스로 넘어와 배우 활동을 시작하며 새로운 인생을 맞이합니다. 이탈리아 출신 거장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영화 <욕망>(1966)과 <칼레이도스코프>(1966)에 단역으로 출연하며 영화배우의 길에 들어서게 됩니다. 2년 뒤인 <원더 월>(1968)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후 <수영장>(1969), <슬로건>(1969) 등에 출연하며 배우로서의 입지를 다져갑니다. 특히 <슬로건>(Slogan)에서는 그의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연인, 세르주 갱스부르(Serge Gainsbourg)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요. 그는 작곡가였던 존 배리와의 결혼 생활을 정리하고 세르주 갱스부르와의 삶을 선택하며 인생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뮤즈로서의 삶과 사랑

1968년, 갱스부르는 그의 전 연인이었던 브리지드 바르도를 위해 만들었던 곡 ‘Je T’aime Moi Non Plus (난 나보다 당신을 더 사랑해)’를 제인 버킨과 함께 녹음해 영국에서 큰 인기를 끌게 됩니다. 트랙 내내 갱스부르와 제인 버킨의 숨찬 호흡과 신음으로 가득한 이 곡은 가사가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여러 국가에 수입이 금지되었는데요. 오히려 그 점이 이 곡을 더 유명하게 만들었습니다. 교황청에서는 곡이 너무 음란하다는 공식 성명을 발표했고, 프랑스에서는 밤 11시 이후로만 틀 수 있는 노래로 처분을 받습니다. 이런 이슈들을 타고 ‘Je T’aime Moi Non Plus’는 영국 차트에서 1위를 기록한 최초의 외국어 싱글이 되었습니다. 훗날 갱스부르는 동명의 영화를 제작하기도 하죠.

갱스부르와 함께 있는 제인 버킨
이미지 출처: Getty Images
갱스부르와 제인 버킨, 딸 샤를로트 갱스부르
이미지 출처: net-a-porter

제인 버킨의 많은 사진들은 갱스부르와 함께입니다. 둘은 함께 있을 때 빛나는 연인이죠. 18살의 나이차와 상관없이 그들은 서로의 뮤즈가 되어 함께 여러 작품을 만들어나갑니다. 둘의 재능을 똑닮은 딸 샤를로트 갱스부르(Charlotte Gainsbourg)를 낳았지만 그들은 1980년, 12년간의 연인 관계를 마치게 됩니다. 하지만 이별 뒤에도 세르주 갱스부르가 죽을 때까지 제인 버킨은 그에게 존경을 표하며 함께 작품 활동을 이어나가죠.


자유롭고 단단한

제인 버킨
이미지 출처: SHUTTERSTOCK

1984년, 파리에서 런던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버킨은 우연히 에르메스의 회장이었던 장 루이 뒤마에르를 만납니다. 제인 버킨의 바스켓 가방 안이 어지럽게 들어있는 것을 본 그는 제인에게 디자인을 제안했고, 제인은 우아하면서도 수납력이 좋은 디자인을 원한다고 말했죠. 그렇게 탄생한 가방이 바로 에르메스의 버킨백입니다. 최소 1000만원대를 호가하는 버킨백은 하나를 제작하는데 30~48시간이 걸린다고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품질 유지를 위해 장인들에게 맡겨 일주일에 2개 이상 만들지 못하도록 한다고 하죠. 이렇게 제작된 버킨백은 실적이 높은 충성 고객들도 최소 몇 개월을 기다려야 구매할 수 있는 최고의 명품 가방이 되었습니다.

제인 버킨
이미지 출처: Dominique Charriau/WireImage

하지만 제인 버킨은 버킨백 생산에 악어가 잔인하게 살해된다는 사실을 알고 2015년 에르메스에 서한을 보냅니다. 국제 규범에 맞는 제작 방식이 나올 때까지 자신의 이름을 사용하지 말아달라는 요청이었죠. 이렇게 나이가 든 제인 버킨은 점차 환경과 인권 등 다양한 분야로 관심을 넓혀갑니다. 자신이 소장하던 버킨백 세 개도 경매에 내놓고 벌어들인 돈을 모두 자선단체에 기부해버리죠.

그는 미얀마의 민주화에 큰 관심을 보이며 미얀마 정치인 아웅산 수지의 석방을 위해 수년간 노력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아이티 지진 때는 이동식 천막에서 지내며 아이들을 돌보았죠. 버킨백 대신 편안한 차림으로 재난 지역을 찾아다니며 봉사하는 모습을 통해 그가 새로운 자유를 찾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젊은 시절 사람들의 시선은 상관없다는 듯 자유롭고 도발적이던 모습을 지나 사회운동가가 된 노년의 그도 너무나 빛나고 아름답습니다. 그는 자기만의 속도로 나이 든 자연처럼 느껴집니다. 사람들은 젊은 시절의 제인 버킨을 기억하며 그를 한 시대의 아이콘이라고 부르지만, 필자는 그가 생의 각 시절마다 알맞게 자신의 빛을 뽐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삶을 연기하는 배우, 누군가의 연인이자 뮤즈, 아이의 엄마, 사회운동가까지. 모든 것이 사람과 사랑으로부터 출발했다고 말하는 제인 버킨의 인생을 필자는 오래도록 기억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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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인

새로운 시선으로 채워지는 세계를 구경합니다.
그리고 만드는 일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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