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툭 썰어 끓인
걸쭉한 진심

맑고 고운 영혼의 소유자
낭만 가객 김일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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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수많은 종류의 음악이 존재합니다.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댄스 음악부터 아름다운 가사로 우리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는 발라드 등 그 종류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합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소개하는 김일두의 음악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담백합니다. 화려하긴커녕 심심하게 느껴지기도 하니까요.

김일두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2018년 개봉한 영화 <변산>에 나온 시가 떠오릅니다. ‘내 고향은 폐항. 내 고향은 가난해서 보여줄 건 노을밖에 없네’.

김일두는 자신이 가진 것을 보여주고, 구태여 포장하지 않는 진솔한 아티스트입니다. 긴 호흡으로, 천천히 전개되는 음악을 따라 툭툭 떨어지는 노랫말들을 주워 담다 보면 발끝을 간지럽히는 파도처럼 어느새 그가 만든 서사의 중심으로 와있습니다. 자신의 생활을 툭툭 잘라 묻어 나온 처연함을 노래하는 부산의 싱어송라이터 김일두를 소개합니다.


담백하지만 처연하게
그리고 진실 되게

김일두는 부산 출신의 아티스트입니다. 부산에서 태어나 그곳을 중심으로 음악 활동을 펼치고 있는데요, 2013년에 발매한 첫 정규 앨범 이전부터 꾸준히 활동한 잔뼈가 굵은 인디 가수입니다. 올해에는 ‘김일두와 불세출’이란 밴드를 결성해 주요 페스티벌에 서기도 했지요. 무대가 어디 건 노래를 하기 위해 전국 팔도를 유랑하는 가객이 떠오르는 가수입니다.

이미지 출처: 김일두

말투에 묻어 있는 부산 사투리처럼, 김일두의 정체성은 뚜렷합니다. ‘부산 사나이’로서 살아가면서 느낀 바를 솔직하게 노래에 녹여내죠. 한 인터뷰에서 부산이라는 지역이 자신에게 끼친 영향력에 대해 그는 “강만 보고 사는 사람과 바다를 보고 산다는 건 확실히 다르지 않겠습니까. 무한대의 바다는 끝이 없고, 방파제에 앉아 밤바다를 보면 달빛이 비친 게 저게 은어 떼구나 싶고”라고 말했는데요. 촉촉한 감성을 가진 부산 사나이라는 점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끝을 헤아리기 어려운 바다처럼 김일두의 음악은 자신의 내면을 깊숙이 파고드는 노래를 합니다. 특히 그의 노랫말에는 경제적인 고민과 결핍이 여실히 드러나 있는데요, 그가 생계를 고민하는, 투잡까지 뛰며 음악을 하는 포크 뮤지션이라는 점은 청자로 하여금 그러한 결핍을 절실히 느끼게 하지요. 기교 없이 담백한 노래에 처연함이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지하철 타고
대학 입시 학원에도 다닐 거에요

문제 없어요

동영상 출처: 온스테이지 공식 유튜브

필자가 김일두의 노래를 처음 접한 건 네이버 온스테이지 영상이였습니다. 단칸방에 덩그러니 기타를 끼고 앉아있는 사내. 한 켠에 어지러이 쌓여 있는 물건과 앰프. 본인의 생활이 묻어 나오는 풍경만으로도 ‘진솔한 음악’을 하는 아티스트일 것이란 예감이 들었습니다.

‘문제없어요’는 김일두가 대중에게 처음 선보인 노래이자 그를 대표하는 타이틀입니다. 다양한 세션으로 어레인지 되어 발매되었지만, 필자는 통기타 한 대와 막 잠에서 깬 듯한 목소리로 부르는 초기 버전을 제일 좋아합니다. 김일두라는 사람을 가장 잘 보여주는 노래라고 생각해서요.

‘문제없어요’는 한 남자의 사랑 고백에 관한 노래입니다. ‘그 어둡고 칙칙한 공간에서 당신의 수수함을 횃불 같아요’라는 서문으로 시작하는 노래는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할 수 있는 자신의 모든 것들을 천천히 나열하지요. 남자는 그녀가 ‘이혼녀일지라도’, ‘가진 게 에이즈뿐이라도’, 문제없다고 말합니다.

‘당신이 원한다면 담배뿐 아니라 락앤롤도 끊겠어요. 15번 버스 타고, 특수 용접 학원에도, 지하철 타고 대학 입시 학원에도 다닐 거예요.’라는 가사는 인디 아티스트이면서 고등학교를 중퇴한 김일두 본인을 떠올리게 합니다.

가사의 공백마다 새겨 있는 삶의 내력을 곱씹게 하는 힘은 곡의 주인인 김일두로부터 기인합니다. 대한민국에서 인디 가수로 살아가는 일종의 한(恨) 정서를 떠올리게 합니다. 가난한 음악을 사랑하고, 그걸 할 수밖에 없는 운명인 자신에 대한 일종의 고백과도 같지요. 어쩌면 ‘문제없어요’는 자신의 음악 인생에 대한 절절한 고백일지도 모릅니다.


에라 모르겠다
고로케도 2개 주세요

괜찮은 사람

동영상 출처: 김일두 공식 유튜브

경제적인 곤란함과 번민은 김일두의 음악에서 빠질 수 없는 정서입니다. 그 정서는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 한국의 생활력에 가득 묻어 있지요. 대한민국 사람이기에 알아챌 수 있는 지점들에 알알이 박힌 투박한 표현은 그의 음악을 듣는 또 다른 재미입니다.

‘괜찮은 사람’은 괜찮은 사람을 만난 한 남자에 대해 이야기하는, 네러티브가 뚜렷한 노래입니다. 남자는 빈곤한 상태인데요, 그런 심상은 ‘퇴근길에 들른 시장 빵집에서 오랜만에 찹쌀 모찌 두 개를 샀어요. 에라 모르겠다 크로켓도 2개 주세요’라는 가사로 투영됩니다. ‘아름다운 이 나라의 젖은 고로케, 안타까운 이 나라의 젖은 고로케’로 이어지면서, 그가 썩 괜찮은 상황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죠.

퇴근길 시장 빵집에서 산 찹쌀 모찌와 고로케. 완성된 문장은 아니지만 듣기만 해도 전깃불이 들어온 시장과 꽈배기 튀기는 냄새가 풍겨오지 않으시나요? 김일두의 노래는 그가 살아가면서 두 눈으로 목격한 것들로부터 오기에 지극히 한국적입니다. ‘괜찮은 사람’의 구두를 ‘뾰족구두’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투박함이 사랑스럽게 느껴진다면, 김일두의 노래를 잘 이해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미 그 건 내 몫이 아니었어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

동영상 출처: EBS SPACE 공감

동시에 그는 진실된 사랑을 이야기하는 순수한 남자입니다. 재료들을 큼직하게 썰어 넣어 한 솥 끓인 고기 찌개라고 하면 적절한 비유일까요? 구태여 포장하지 않은 가사들은 사랑의 본질에 조그마한 파문을 일으킵니다. 그리고 우리가 잊고 있던 종류의 사랑을 꺼내 보여주죠.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학창 시절 국어 교과서에서 읽은 신경림 시인의 “가난한 사랑의 노래”를 떠올리게 합니다. 매우 현실적인 종류의 사랑인데요,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진 요즘에는 찾아보기 힘든 클래식한 사랑 노래입니다.

피크로 툭툭 치는 기타 소리 위로 김일두는 낭송합니다. 짧은 가사가 끝나고, 반주가 흐르는 동안 토막 낸 말들을 머리 속으로 채워가다 보면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한 편의 시가 됩니다.


곱고 맑은 영혼

그의 첫 번째 정규 앨범의 이름은 ‘곱고 맑은 영혼’입니다. 그와 마주하여 대화 해 본 적은 없지만, 그간 세상에 내놓은 음악들과 꾸준히 인디씬에서 활동하는 모습들을 보면 기교 없는 노래만큼이나 순수한 사람이란 걸 느낄 수 있습니다. 여전히 부산에서 살면서 개인적인 마음으로 노래를 만들고 있으니까요.

김일두는 그가 느끼고 있는 결핍을 고스란히 보여주기 위해 온전한 문장을 똑바로 말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처럼 노래합니다. 그래서 김일두의 노래들은 아름다움과 멉니다. 오히려 끈적거리는 장판이나 궁핍한 자취방이 떠오르는, 지극히 현실적인 노래들이지요.

하지만 자신의 날 것을 온전히 보여주기에 그의 말처럼 김일두는 ‘곱고 맑은 영혼’의 소유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별한 무언가를 쫓는 시대에서 김일두란 남자의 투박함은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감성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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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현

새삼스러운 발견과 무해한 유쾌함을 좋아하는 사람.
보고, 듣고, 느낀 예술을 글로 녹여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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