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석 매진
뮤지컬의 명과 암

유명배우의 출연은
작품의 흥행을 보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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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승우가 뮤지컬을 그렇게 잘 한다며? 옥주현은 어때?”

뮤지컬에 관심 없는 이들이 뮤지컬을 좋아하는 필자에게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다. 특정 배우가 출연하는 뮤지컬이 티켓 오픈과 동시에 매진되었다는 기사를 본 적 있는가. 대극장 뮤지컬의 좌석 수는 1,000석 이상. 이 많은 좌석들이 매진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한 작품을 캐스팅 배우별로 계속 보는 관객들이 많더라도 극장을 가득 채우기 위해서는 평소에 뮤지컬을 즐기지 않는 관객도 극장으로 향해야 한다. 유명 배우의 출연은 뮤지컬이라는 장르에 무관심하던 대중들까지 극장으로 이끈다. 심지어 작품에 대한 내용은 전혀 모른 채 보러 가는 경우도 종종 있다.


당신이 뮤지컬을 보지 않는 이유

1) 폭등하는 뮤지컬 티켓 가격

뮤지컬 대극장 샤롯데씨어터
이미지출처: 샤롯데씨어터

뮤지컬 시장 조성 이래 최대의 호황기라고 불리는 지금, 뮤지컬을 관람하는 관객들이 얼마나 많을까. 문화체육관광부가 발간하는 ‘국민문화예술활동조사’에 따르면 2022년 기준 뮤지컬 관람률은 4.9%다. 뮤지컬 평균 관람 횟수는 0.08회로 그나마 뮤지컬을 관람한 적이 있는 사람을 기준으로 해도 1.67회 밖에 되지 않는다. 뮤지컬 평균 관람 횟수가 적은 이유는 무엇일까. 문화예술을 관람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보완해야 할 부분에 대해서 ‘관람 비용을 낮추어야 한다’가 25.6%를 차지했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22일 서울 충무아트센터에서 개막한 뮤지컬 <웨스트사이드스토리>가 처음으로 16만 원을 돌파한 이후, 대극장 뮤지컬 제작사들이 연이어 높은 가격을 부르며 티켓값이 20%나 인상되었다.

2) 누추한 좌석에 귀하신 분이

뮤지컬 레베카 좌석배치도
레베카 좌석배치도, 이미지 출처:emk뮤지컬컴퍼니

2011년 <오페라의 유령> 초연 당시 VIP석은 프로그램 북 및 주차권, 공연 전 VIP 라운지 이용권, 2005년 <노트르담 드 파리> 내한 공연에서는 인터미션 시간에 와인과 간단한 간식, 뮤지컬 CD 및 프로그램 북을 제공했다. 현재 업계에서는 좌석 제공 외의 어떤 서비스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VIP 좌석 비중이 점점 늘어나 과거에는 R석이던 좌석마저 VIP석이 되었다. 실제로 1,000석 이상 대극장 뮤지컬의 경우, VIP 좌석의 비중이 과거에는 20% 내외였다면 현재는 전체 좌석 중 40% 가량이 VIP석에 해당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공연장이 공연을 위한 극장이라기 보다, 다목적으로 지은 시설이 대부분이다. 공연장의 각도, 음향, 단차 등이 다르기 때문에 2층에서 본다면 공연에 몰입하기 어려워지기도 한다. 맨눈으로는 배우의 이목구비조차 알아볼 수 없는 좌석마저 1층 앞줄과 동일한 VIP석 가격을 매긴다.


인기 스타만으로 흥행할 수 있을까

1) 스타 배우를 이용한 마케팅

옥주현 <레베카> 포스터
이미지 출처: (주)EMK뮤지컬컴퍼니

전 세계 경기 악화 및 물가 상승으로 인력 수급이 어려운 데다가 인건비도 상승했다. 무대세트, 의상, 소품 등을 수입해야 하므로 제작비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 장기 공연으로 수익률을 높일 수는 있으나,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처럼 오픈런 형식이 아닌 단기간 공연으로는 ‘박리다매’가 어려운 상황이다. 뮤지컬 제작사에서는 단기간에 많은 관객을 모으기 위해 보증수표와 같은 유명 배우 혹은 인기 아이돌을 기용한다. 전업 뮤지컬 배우보다는 대중적으로 익숙한 얼굴이기도 하고 이미 연기력이나 가창력이 뛰어나다는 사실 정도는 알려져 있으니 말이다. 스타 배우의 두꺼운 팬층을 모객하기만 해도 티켓과 굿즈의 판매율은 대폭 상승한다. 핑클의 옥주현이나 JYJ의 김준수처럼 뮤지컬 배우로 이름을 날린 사례가 있다 보니 뮤지컬의 문을 두드리는 가수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2) 아이돌 출신 배우의 티켓파워

김준수 뮤지컬 <데스노트> 공연 사진
<데스노트> 공연 사진, 이미지출처: od컴퍼니

김준수는 13년간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면서 웬만한 뮤지컬 배우의 이름값을 넘어선다. 그가 출연하는 작품을 보기 위해 한국을 찾는 해외 팬들도 종종 보인다. 지난 2022년 4월, <데스노트> 삼연은 극이 진행되는 두 달 내내 티켓 오픈과 동시에 전석 매진에 웃돈이 붙은 암표가 중고 거래 시장에 떠돌았다. 관객의 뜨거운 환호 속에서 <데스노트>는 예술의 전당으로 공연장을 옮기면서까지 공연을 연장했다. 만원사례로 시작한 연장 공연마저도 연일 매진. 뮤지컬은 최소 2~3년, 빨라야 1년 후 다음 공연을 올리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6개월 만에 앵콜 공연으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서울에서 시작해 대구, 부산까지 섭렵했다. 공연 기간이 길어질수록 후반부에는 잔여 좌석이 생기기 마련이다. 게다가 빠르게 돌아온 공연임에도 불구하고 홍광호 배우와 김준수 배우의 회차는 마지막까지 극장을 가득 채웠다. 오디컴퍼니에 따르면 공연 평균 객석 점유율 99%, 지방 공연을 제외한 이번 시즌 누적 관객 수가 33만 명을 돌파했다고 한다.


화려한 포장 아래 작품성

1) 뮤지컬 배우 없는 뮤지컬의 정체

뮤지컬 <모차르트!> 포스터
<모차르트!> 포스터, 이미지 출처:emk뮤지컬컴퍼니

무조건 인기 스타를 캐스팅한다고 해서 흥행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 6월 <모차르트!>는 칠연으로 돌아왔다. 이번 시즌의 모차르트 역에는 이해준, 수호, 유회승, 김희재가 캐스팅되면서 논란이 되었다. 네 명 중 단 한 명만이 전업 뮤지컬 배우인 데다가 트로트 가수 김희재는 어떠한 경력도 없이 대극장 주연으로 발탁되었기 때문이다. 인기 가수가 대극장 주연배우로 출연하는 일이 자주 있는 편이지만 이번만큼은 상황이 달랐다. 모차르트 역은 ‘내 운명을 피하고 싶어’를 포함한 고난도의 넘버와 수준 높은 연기력을 요구한다. 대극장 뮤지컬의 타이틀롤 주연을 맡기에는 뮤지컬 실력이 검증되지 않은, 경험이 부족한 아이돌이나 가수라는 점에서 대중들은 그들이 역할을 소화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었다. 프레스콜에서 김희재 배우가 건강상의 이유로 참여하지 못하게 되면서 논란의 불씨는 커져만 갔다. 김희재를 대신해 수호가 ‘왜 나를 사랑하지 않나요’를 불렀던 것이 화근이 되었다. 실수로 가득 찬 무대를 본 대중들은 그의 가창력과 연기력에 대한 수많은 비판과 비난을 쏟아냈다. 티켓 예매업체 인터파크에 따르면 뮤지컬 ‘모차르트!’ 예매자 중 50대 비율은 17.5%를 차지했다. 중장년층 팬을 보유한 김희재를 캐스팅한 덕분에 다른 뮤지컬과 비교하면 50대 비중이 매우 높은 수준이다. 지난 시즌 50대 비중은 5.1%로 새로운 관객을 유입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서사가 부족하고 개연성이 떨어지는 <모차르트!>는 조용히 막을 내렸다.

2) 작품이 아닌 배우를 보기 위한 뮤지컬 관객들

뮤지컬 <베토벤> 포스터
<베토벤> 포스터, 이미지 출처: emk뮤지컬컴퍼니

대중적으로 알려진 작품이 아니라면 캐스팅에 힘을 쏟을 수밖에 없다. 국내 초연 작품이나 창작 뮤지컬 등 작품 자체에 대한 인지도가 없다면 유명 배우의 출연 소식만큼 대중의 이목을 끄는 것은 없다. 지난 1월 창작뮤지컬 <베토벤>의 초연이 개막했다. 유명 연출가와 작곡가를 필두로 가수 박효신, 옥주현과 최정상급 뮤지컬 배우 박은태 등 화려한 캐스팅으로 개막 전부터 많은 이들의 기대를 샀다. 그러나 개막 후 <베토벤>의 후기는 처참했다. 개연성 없는 스토리, 매력 없는 캐릭터들과 애매한 넘버들. 베토벤의 원곡에 가사를 붙이기만 한 넘버로 작곡가가 무엇을 작곡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제작사인 EMK뮤지컬컴퍼니는 폐막 한 달 뒤 극장을 옮겨 <베토벤 시즌2>라 명명하며 공연을 이어 나갔다. 시즌으로 나누기보다는 사실상 지난 공연의 캐릭터성과 넘버를 수정하여 개선한 공연이었다. 그럼에도 후기는 변함이 없었다. 티켓파워를 가진 배우들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평점을 유지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높은 평점을 준 관객들도 작품 자체에 대한 평점이라기보다는 관람한 배우에 대한 평점일 뿐이라면서 좋아하는 배우가 나오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보러 가는 것이라는 후기가 주를 이룬다. 다음 시즌에도 유명 배우가 참여하지 않는다면 과연 <베토벤>을 보러 갈 관객이 있을까.


‘국민문화예술활동조사’에 따르면 문화예술행사 관람 시 우선적으로 보완이 필요한 부분으로 26.%가 ‘작품의 질을 높여야 한다’고 응답했다. 앞서 언급한 관람 비용보다도 우선시하는 것은 작품의 질이라는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유명 배우의 출연이 작품의 흥행 보증수표가 아니다. 제작사에서는 작품이 아닌 스타를 내세워 구매 욕구를 자극할 것이 아니라 작품의 질을 개선해 작품을 바라보고 극장을 찾는 관객이 생기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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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현정

사라져가는 예술을 글로서 영원히 기억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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