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 머니 룩 뒤에
숨겨진 이중의 욕망

피츠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를 통해 본
‘올드 머니 룩’의 유행
Edited by

유튜브는 신기한 공간이다. 유튜브 알고리즘의 바다에서 처음 올드 머니(old money)란 단어를 본 것은 음악 플레이리스트 추천 영상이었는데, 단 한 달 만에 올드 머니 바이브(old money vibe), 올드 머니 에스테틱(old money aesthetic), 올드 머니 스타일(old money style)이라는 문구를 수많은 영상에서 마주치게 되었다. 나도 모르게 홀린 듯이 ‘올드 머니 룩’을 설명하는 동영상을 클릭하고 그 설명을 들었다. 영상에서 설명하는 올드 머니 룩의 주요한 포인트는 ① 값비싼 원단을 사용한 우아한 의상을 입는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브랜드 로고가 드러나거나 요란한 장식이 달린 옷은 입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② 풍성한 머릿결과 윤기 나는 피부를 강조한다. ③ 가장 중요한 것은 여유로운 태도를 갖추는 것이다. ‘나는 노동을 하지 않고도 부유하게 살 수 있다는 여유 혹은 자신감’을 분위기로 드러내야 한다. 왜냐하면 이번 유행의 포인트는 ‘올드 머니’를 드러내는, 혹은 자기 자신을 ‘올드 머니’로 가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올드 머니’란 무엇인가?

상류층 집
이미지 출처: Unsplash

영문 위키피디아의 설명에 따르면 ‘올드 머니’는 상류층 가족으로부터 상속받은 재산이나 이러한 재산을 물려받은 사람을 말한다. 이는 특히 여러 대를 걸쳐서 물려줄 수 있을 만큼 막대한 재산을 가진 부유층을 말하는데, 역사적으로 공식적인 귀족 계급이 없는 미국과 같은 곳에서 실질적으로 귀족과 같은 지위를 누리던 부유한 사람들이 ‘올드 머니’의 대표적인 예시라고 할 수 있다. 이 올드 머니의 반대항을 이루는 말이 바로 ‘뉴 머니’ 즉 신흥 부자들이다. 이 ‘올드 머니’를 한국의 역사적 배경을 염두에 두고 번역해보자면, ‘친일파 룩’이라는 뼈있는 농담도 항간에 떠돌고 있는 듯하다.

『위대한 개츠비 The Great Gatsby』 초판본
『위대한 개츠비 The Great Gatsby』 초판본. 이미지 출처: 위키피디아

이러한 설명을 읽고 나니 바로 떠오르는 작품이 하나 있었다. 바로 F. 스콧 피츠제럴드(Francis Scott Key Fitzgerald)의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다. 『위대한 개츠비』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크게 두 부류로 나누자면 그중 한 무리는 미국의 전형적인 백인, 올드 머니를 상징하고, 다른 인물들은 이 ‘아메리칸 드림’을 쫓아 이 올드 머니의 세계로 입성하고자 하는 이민자, 노동자 계급을 상징한다. ‘황금의 소녀’라고 불리는 데이지 뷰캐넌이 전형적인 올드 머니의 상징이라면, 데이지를 끝없이 갈망하는 주인공 개츠비는 ‘뉴 머니’이자 올드 머니의 세계로 편입되기를 꿈꾸는 ‘아메리칸 드림’의 화신이다.


『위대한 개츠비』에 나타나는
올드 머니와 뉴 머니

『위대한 개츠비』에는 이러한 계급 간의 대립이 여러 가지 장치를 통해 나타나는데, 그중 가장 흥미로운 묘사 중 하나가 바로 뉴욕의 지형을 통해 두 인물군의 관계를 은유하는 구절이다.

이 두 지역은 뉴욕시에서 30킬로미터쯤 떨어져 있다. 그런데 거대한 달걀 모양을 한 이 두 지역은 겉모습이 똑같은 데다 이름뿐인 만을 사이에 둔 채 서반구의 바다 중에서 인간의 손길이 가장 많이 닿은 곳, 즉 롱아일랜드 해협의 큼직한 앞마당 쪽으로 튀어나와 있다. 이 두 지역은 완벽한 타원형은 아니지만― 콜럼버스 이야기에 나오는 달걀처럼 서로 접하고 있는 양 끝이 납작하니 말이다― 워낙 생김새가 닮아서 아마 그 위를 나는 갈매기들도 헷갈릴 것이다. 날개가 없는 인간들은 모양과 크기를 제외하고는 그 두 지역이 모든 면에서 서로 다르다는 사실에 더욱 큰 흥미를 느낀다.

_F.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김욱동 역, 민음사.

웨스트에그와 이스트에그의 실제 배경이 되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지역
웨스트에그와 이스트에그의 실제 배경이 되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지역. 이미지 출처: 구글 맵스

개츠비의 저택이 있는 웨스트에그와 데이지의 저택이 있는 이스트에그는 마치 쌍둥이처럼 닮은 지역이다. 그러나 이 두 지역은 만을 사이에 두고 갈라져 있을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매우 다른 공간이다. 이 두 지역의 차이를 저 멀리 하늘에서 바라보는 갈매기는 아마 알아차리기 힘들겠지만, 지상 위에서 사는 인간들은 뼈저리게 느낄 수밖에 없다. 개츠비의 저택이 아무리 크고 웅장하더라도, 그 저택은 ‘노르망디 시청사를 본뜬’ 것처럼 보일 수밖에 없으며 ‘지은 지 얼마 되지 않는’ 분위기를 풍긴다. 그에 비해 데이지가 사는 이스트에그의 저택은 궁궐처럼 반짝거리는 곳으로 ‘조지 왕조 식민지 시대풍’의 외관을 가지고 있으며, ‘석유 재벌 드메인’이라는 명사가 소유했던 이력을 가지고 있다. 이 두 지역에 사는 사람들도 이 지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이름마저도 거짓인) 개츠비는 자신이 샌프란시스코 출신으로 가족들에게 거액의 유산을 상속받은 후 유럽을 떠돌며 보석을 수집하고 사냥과 그림에 빠져 살았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그를 잘 알지 못하는 서술자 닉 캐러웨이가 듣기에도 웃음이 나올 정도로 작위적이다. 그에 비해 데이지의 남편 톰 뷰캐넌은 닉과 ‘뉴 헤이븐(예일)’에서 대학을 나왔으며 전 풋볼 선수로 사교계의 유명 인사다. 이들은 특별한 직업을 갖지 않고 결혼 후 쾌락을 좇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이스트에그에 정착한다.


이중의 욕망

이미지 출처: Unsplash

따라서 개츠비가 욕망하는 것은 바로 황금으로 번쩍이는 이스트에그의 세계, 올드머니의 세계이다. 개츠비는 밀주로 트라말키오처럼 돈을 벌었어도 데이지가 속한 올드 머니의 세계로 넘어갈 수가 없었다.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개츠비와 데이지의 저택이 위치한 웨스트에그와 이스트에그이다. 개츠비의 저택에서 만을 건너서 보이는 데이지의 저택 앞 부두에서 퍼져 나오는 아련한 초록 불빛은 개츠비가 수없이 많은 파티를 열게 하는 이유이며, 휘청거리는 무절제의 시대에서도 데이지로 상징되는 낭만적인 꿈만을 바라보며 나아갈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다.

이미지 출처: Unsplash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바로, 데이지가 상징하는 올드머니의 세계 역시 어떤 부재에 대한 욕망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위대한 개츠비』에서 피츠제럴드가 묘사하는 미국의 올드 머니는 유럽의 ‘진짜 귀족’을 동경하고 그들이 되기 위해 발버둥 친다. 이들은 자신이 사업으로 돈을 번 사람의 후예라는 사실을 잊고 싶어 한다. 소설의 첫 장에서 닉 캐러웨이가 소개하는 자신의 가문은 ‘버클루 공작’이라는 영국 귀족의 후예라는 말이 내려오지만, 실제로는 남북 전쟁 때 철물 도매업으로 돈을 번 가문이다. 이들은 영국에서 주로 귀족들이 기거하던 조지안 양식을 따라서 건물을 짓고 마치 영국의 귀족처럼 폴로 게임을 즐기지만 결국 그들의 뿌리는 ‘미다스 왕과 J. P. 모건과 마이케나스만이 아는 눈부신 비밀’, 즉 미국의 자본주의 체제다. 이러한 구체제에 대한 욕망은 그대로 올드 머니가 되기를 욕망하는 개츠비에게도 굴절되어 투사된다. 그러나 개츠비 같은 인물에게 ‘진짜 귀족이 있는 유럽’은 대중문화에서나 접할 수 있는 것으로, 개츠비가 꾸며내는 유럽적인 정체성은 매우 작위적이다. 그는 ‘옥스퍼드 대학’에 다녔다고 주장하며 그 당시 친구가 현재 ‘동캐스터’ 백작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톰 뷰캐넌을 비롯한 사교계 인물들은 그의 주장을 믿지 않는다. 개츠비의 모습과 행동이 마치 광고나 영화에서 걸어 나온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어째서 다시 ‘올드 머니’일까?

개츠비의 모습을 비웃는 톰 뷰캐넌의 모습에서 또 다른 동영상이 하나 떠올랐다. ‘함부로 올드 머니 룩’을 따라 하면 안 된다는 요지의 동영상이었다. 올드 머니 스타일을 잘못 따라 하다가는 사실은 이 옷이 값비싸지 않은 싸구려라는 사실을 들켜버릴지도 모른다는 경고를 동영상은 이야기하고 있었다. 우리가 제이 개츠비가 되어버릴지 모른다는 경고일까? 아니면 다시 찾아온 혼란 속에서 우리도 개츠비처럼 열심히 올드 머니를 가장해야만 한다는 이야기일까? 물론 올드 머니 룩이 올드 머니 자체를 겨냥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어떤 스타일을 따르는 것과 우리의 실제 삶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어떤 유행이 ‘올드 머니’라는 용어를 사용해서 우리의 소비 심리를 자극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고, 이에 대해 잠시 거리를 두고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 뒤에는 어떤 탈력감이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 유명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일명 ‘네포 베이비’에 대한 갑론을박이 터져 나오는가 하면, 올드 머니에 대한 선망이 유행으로 돌기도 한다. 아무리 개인이 노력해봐야 ‘금수저’는 따라갈 수가 없다는 망연자실이 일종의 자명한 사실처럼 여겨지고 있는 듯 보인다. 마치 피츠제럴드가 그린 ‘잿더미의 계곡’처럼 절망 위로는 거대한 광고판이 번쩍거리고 있다. 그러나 조금만 눈을 돌려도 우리는 많은 희망을 발견한다. 이 모든 것을 유희의 영역으로 보내버리고 그 뒤에 어떤 선망이 자리 잡고 있는지, 그 올드 머니의 우아하고 찬란한 모습마저도 결핍에 대한 욕망에서 발현한 것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순간 우리는 유행에 휘둘리지 않을 힘을 발견하게 된다. 스타일은 스타일의 영역으로, 삶은 삶의 영역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유진

유진

예술과 사회, 그 불가분의 관계를 보고 기록하고 탐구합니다.

에디터의 아티클 더 보기


문화예술 전문 플랫폼과 협업하고 싶다면

지금 ANTIEGG 제휴소개서를 확인해 보세요!

– 위 콘텐츠는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받는 저작물로 ANTIEGG에 저작권이 있습니다.
– 위 콘텐츠의 사전 동의 없는 2차 가공 및 영리적인 이용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