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와 가짜의
기준은 무엇인가

희소성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벨류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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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6월, 세계 최대의 다이아몬드 원석 공급 회사인 ‘드비어스(De Beers)’가 결혼 예물 등의 용도로 쓰이는 높은 등급의 원석 도매 가격을 캐럿당 850달러(약 112만 원)로 인하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작년 6월 가격이 1400달러(약 184만 원)였던 것과 비교하면 1년만에 40%나 판매가를 낮춘 것이다. 드비어스 측은 이것이 코로나 팬데믹 특수(特需)가 끝났다고 판단해 그에 대처하기 위해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지만, 업계에서는 실험실에서 인공적으로 배양한 일명 ‘랩 그로운(lab-grown) 다이아몬드’의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추세가 가격 인하의 실질적인 배경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글로벌 다이아몬드 원석 주간 가격지수
이미지 출처: 머니투데이

위치재1)의 대명사 천연 다이아몬드의 디플레이션. 몇몇 전문가들은 이것이 엄청난 시장 점유율로 ‘제국’을 이루었다고 평가 받는 드비어스와 더 나아가 다이아몬드 시장 자체의 점진적인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예견까지 내놓고 있다. 이 ‘천연’과 ‘인공’의 대립에서 우리는 ‘가치’에 관한 좀더 뿌리 깊은 질문들을 발견할 수 있다. 희귀한 것만이 가치로운 것인가? 가격이 낮아진다면 가치가 반드시 훼손되는 것인가? 가치는 과연 무엇으로부터 기인하는 것인가? 이번 그레이에서는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고민해보고자 한다.

1) 위치재: 잠재적 소비자 중 극소수만 구매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가치가 상승하는 재화. 또는 희소하거나 대체제에 비해 소비자의 선호도가 높기 때문에 가치가 생기는 재화. 대체적으로 필수품보다 고급품이나 사치품이 위치재가 되는 경향을 보인다.


가장 단단한 돌,
고귀한 것이 되다

오늘날 우리가 다이아몬드에 대해 갖고 있는 인식은 아마 이 한 문장에서 출발할 것이다.

“A Diamond is Forever(다이아몬드는 영원하다).”

익숙하게 귓전을 울리는 이 문장은 1948년, 드비어스(De Beers)가 마케팅 슬로건으로 채택했던 광고 카피다. 다이아몬드라는 광물의 영구적인 내구성과 연인에게 보석을 선물하며 사랑이 변치 않기를 바라는 만인의 욕망을 매우 적절하게 연결시킨 이 카피는 ‘프러포즈 링 = 다이아몬드 링’이라는 공식을 탄생시키며 드비어스의 폭발적인 성장을 가능하게 했다. 잡지 지면 광고 형태로 처음 등장했던 이 카피는 20세기 후반 텔레비전의 보급을 통해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됐고, 특히 1971년에 다이아몬드 도난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007 시리즈 <Diamonds Are Forever>의 제목으로까지 차용되며 그 문화적인 파급력을 인정받았다. 90년대가 되자 드비어스는 전 세계 다이아몬드 원석 공급 시장의 80%에 육박하는 점유율을 달성하며 독보적인 존재로 군림했다.

지금도 트레이드마크처럼 쓰이고 있는 드비어스의 광고 카피
지금도 트레이드마크처럼 쓰이고 있는 드비어스의 광고 카피, 이미지 출처: Forevermark(드비어스의 자회사) 홈페이지

그러한 드비어스가 갑자기 수세에 몰리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분명한 이유는 앞서 언급한 ‘랩 그로운 다이아몬드’ 시장의 급격한 성장세 때문이다. 랩 그로운 다이아몬드는 사실 글로벌 인프라 기업 ‘제너럴 일렉트릭(GE, General Electric)’이 일찍이 제작에 성공했던 1954년부터 존재했으나, 천연 다이아몬드 시장을 위협할 정도로 그 배양 기술의 완성도가 높아진 것은 2010년대의 일이다. 보석 감정 전문가들에 따르면 지금의 랩 그로운 다이아몬드는 물리적, 화학적, 광학적으로 천연 다이아몬드와 100% 일치하여 세공사들도 특수한 장비를 쓰지 않고는 구별할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 ‘진짜’와 ‘가짜’의 품질적인 차이가 사실상 사라진 것이다.

다이아몬드 비교
이미지 출처: Beverly Hills Magazine

양산형 다이아몬드가
제안하는 가치

그렇기 때문에 천연 다이아몬드의 25% 수준인 랩 그로운 다이아몬드의 가격은 원석 시장에 거스를 수 없는 파장을 일으켰다. 2016년에 이미 10억 달러에 달했던 랩 그로운 다이아몬드 시장 규모는 2022년 120억 달러까지 꾸준한 성장을 이어왔고, 이 추세는 앞으로도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들불처럼 번지는 랩 그로운 다이아몬드의 수요에 맞서기 위해 드비어스는 2015년과 2016년, 다이아몬드 생산자 협회(DPA, Diamond Producers Association)와의 협업을 통해 자연에서 채굴한 다이아몬드만이 진정한 가치를 지닌다는 메시지를 담은 ‘Real is rare(진짜는 귀하다)’라는 슬로건의 마케팅을 펼치기도 했다. 그러나 기대한 만큼의 반향을 일으키지 못한 드비어스는 결국 2018년, 랩 그로운 다이아몬드를 전문적으로 생산해 판매하는 자체 브랜드 ‘라이트박스(Lightbox)’를 론칭하며 새로운 판세에 투항했다.

브랜드 라이트박스의 론칭 캠페인
브랜드 라이트박스의 론칭 캠페인, 이미지 출처: 라이트박스 홈페이지

이러한 흐름은 소비자들이 단지 가성비 좋은 양산형 다이아몬드를 선호하게 되었다는 표면적인 현상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천연 다이아몬드와 랩 그로운 다이아몬드는 각각 다른 가치의 진영을 대표하고 있다. 천연 다이아몬드가 우리가 전통적으로 보석에게 기대하는 가치인 희소성, 순수성, 진정성 등을 상징한다면, 랩 그로운 다이아몬드는 접근이 비교적 용이한 가격을 통해 더 많은 이들이 다이아몬드를 소비하는 경험을 누릴 수 있게 하는 어떠한 민주성의 추구를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이 두 진영의 대립에서 랩 그로운 다이아몬드가 우세를 차지하고 있는 형국은 우리 사회의 소비 가치관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는 향후 시장을 주도할 20-30대 소비자들이 다이아몬드 시장의 새로운 핵심 구매층으로 급부상하고 있다는 분석과도 맥락을 같이 한다.


희소성을 넘어
민주적인 가치 향유를 위하여

가치로운 것은 희귀해야 한다는 통념을 깨고 더 많은 사람이 가치에 공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시도는 또 다른 위치재 기반의 시스템인 예술계에서도 나타난다. 그중 특히 주목할 만한 사례로 필자는 뉴욕 기반의 아트 딜러이자 개념 예술을 세상에 알린 큐레이터였던 세스 시겔롭(Seth Siegelaub, 1941-2013)『제록스 북(The Xerox Book, 1968)과 그에 얽힌 후대의 프로젝트들을 소개하고 싶다. 시겔롭은 필자의 이전 아티클인 “예술하는 자의 권리와 의무”에서 예술가의 저작권에 대한 경제적 처우를 개선하려는 프로젝트였던 ‘아티스트 계약(The Artist’s Contract)’의 기획자로도 소개된 바 있다. 그는 커리어 전반에 걸쳐 ‘갤러리’라는 장소적인 틀을 벗어난 예술을 위한 시도를 거듭했는데, 그중 책의 형태로 만들어진 전시 『제록스 북』이 대표적이다.

『제록스 북』의 타이틀 페이지
『제록스 북』의 타이틀 페이지, 이미지 출처: Indiepost

책의 원제목은 ‘칼 안드레, 로버트 베리, 더글러스 휴블러, 조셉 코수스, 솔 르윗, 로버트 모리스, 로렌스 위너’로, 프로젝트에 참여한 개념 예술 작가 7인의 이름이 알파벳 순으로 나열된 것이다. 이 작가들이 각자에게 똑같이 할당된 25페이지를 원하는 방식대로 활용하며 채워나가는 것이 전시이자 책의 내용이다. 『제록스 북』이라는 이름은 책의 초판 1,000부를 제록스 복사기를 사용해 발행했기 때문에 별칭처럼 붙여진 것인데, 시겔롭은 그러한 제작 과정을 주변에 적극적으로 드러내 초판 인쇄본의 배포가 끝난 후에도 같은 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 독자/관람객에 의해 책이 얼마든지 복제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암묵적으로 전제했다. (책의 타이틀 페이지에 형식적으로 포함된 ‘무단 복제 및 배포를 금한다’는 저작권 메시지가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이렇듯 시겔롭은 원본의 의미를 부정하고 작품의 복제를 정당한 예술 행위로 인정함으로써 제도권 예술계가 우선시했던 가치인 작품의 진위, 독점 가능성, 희소성 때문에 예술이 그저 값비싼 상품으로 압축되는 현상으로부터 작가들을 해방하고자 했다.

롤로 프레스가 복사해 낸 제록스 북의 모습
롤로 프레스가 복사해 낸 제록스 북의 모습, 이미지 출처: Eastside Projects 홈페이지

시겔롭의 바람대로 오늘날 우리는 얼마든지 『제록스 북』에 접근할 수 있다. 물론 예술 시장은 상품화의 욕망을 버리지 못하고 책의 초판 인쇄본을 3,500달러가 넘는 가격으로 경매에 붙이고 있긴 하지만, 1960년대 복사기 기반의 정보 양산 문화가 인터넷 매체로 확장되며 프로젝트의 반향은 더욱 커졌다고 할 수 있다. 후대의 많은 예술가들이 시겔롭의 민주적인 의지를 잇고자 했고, 지금까지도 다양한 곳에서 『제록스 북』은 ‘무단 복제 및 배포’가 되고 있다. 2010년에 스위스 취리히 출신 디자이너 우르스 레니(Urs Lehni)가 출판 프로젝트 ‘롤로 프레스(Rollo Press)’를 통해 해적판 『제록스 북』 100부를 인쇄하여 전시하고, 그것을 다른 책과 교환해주는 방식으로 관람객들에게 배포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가장 접근성이 좋은 채널 중 하나로는 절판된 예술 출판물을 전문적으로 복간하는 비영리단체 ‘프라이머리 인포메이션(Primary Information)’의 웹사이트에서 PDF 버전의 『제록스 북』을 무료로 다운로드할 수 있다.


프라이머리 인포메이션 『제록스 북』 상세 페이지


랩 그로운 다이아몬드와 가격 디플레이션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필자는 이 현상이 궁극적으로 다이아몬드 시장의 붕괴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몇몇 전문가들의 분석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다이아몬드 시장의 재편은 어느 한쪽의 소멸을 예고한다기보다는 소비자들의 가치관이 다양해지고 그에 따른 수요의 갈래가 나뉨에 따라 시장이 더 많은 선택지를 내놓는, 그동안 극소수의 회사가 가치 제안을 독점했던 시장이 건전성을 되찾는 과정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무언가의 가치는 결국 우리가, 즉, 사회가 가치관을 통해 부여하는 것이다. 어떤 불가항력의 힘이 정해둔 것이나 가격이라는 숫자와 연동된 것이 아닌, 소비의 주체로서 고민하고, 추구하고, 시장에 요구할 수 있는 것임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자원의 희소성을 바탕으로 하는 가치의 독점을 통해 성장했던 전통적인 시장만큼 가치로운 것의 증산, 공유, 그것을 통한 다수와의 공감이 의미를 갖는 시장도 견고하게 성장할 수 있기를 바라며 이번 그레이를 마친다.

  • 국제신문, 다이아몬드 시장 판도 바뀌나…실험실 다이아 주목 (2023. 09. 12.)
  • 머니투데이, 실험실의 반란…영원하던 다이아몬드 깨졌다 (2023. 10. 07.)
  • 조선비즈, 드비어스는 왜 ‘인공 다이아몬드’ 판매에 나섰나? (2018. 10. 13.)
  • 조선일보, 인조 다이아몬드 인기 끌자, 천연 다이아 값이 뚝… 뚝… (2023. 09. 05.)
  • Eastside Projects 공식 홈페이지, Rollo Press “Xerox Book”, 2023. 10. 20.
  • Indiepost, <제록스 북>, 만약 전시를 복사할 수 있다면 (2023. 03. 12.)
  • The Eye of Jewelry, De Beers’ most famous ad campaign marked the entire diamond industry (2020. 04.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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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주

예술이 모두에게 난 창문이 되는 날을 위해
읽고, 쓰고,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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