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작품을 보면 늘 마음이 고요하게 가라앉습니다. 거친 마포 천 위에 세워진 청다색 기둥을 보노라면 필연적으로 슬픔이라는 감정과 맞닥뜨리게 되기 때문이죠. 윤형근의 작품에서 형상화된 슬픔은, 크게 소리 내 눈물을 흘리는 통곡이라기보다는 흐느낄 수조차 없이 마음이 멈추어 버리는 종류의 슬픔과 더 가깝다고 느껴집니다.
윤형근의 생애
윤형근은 1928년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일제강점기와 한국 전쟁을 모두 겪어야 했습니다. 장인이었던 화백 김환기의 영향을 받아 맑은 푸른색을 주로 사용하던 윤형근의 초기 작업은 3번의 복역과 1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며 우리에게 익숙한 형태를 띠게 됩니다. 학창 시절 서울대학교에서 국립대학교 설립안 반대 시위에 참여했다가 제적당한 이력과 전쟁 중에 피난 가지 않았다는 사실 등이 그가 총살 대열에 밀어 넣어지거나 옥살이해야만 했던 이유였습니다. 결정적으로 숙명여고의 미술 교사로 재직하고 있던 1973년에는 중앙정보부장이 뒤를 봐주어 부정 입학한 학생에 대해 따져 묻다가 반공법 위반 혐의를 썼습니다. 이번에는 즐겨 쓰던 베레모가 레닌의 것과 닮았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옳지 않은 것을 목도하더라도 항의할 수조차 없던 이상한 시대, 거친 마포 천 위에 청다색의 기둥은 그렇게 세워졌습니다.
윤형근의 색채
윤형근의 작업은 대부분 직접 만든 틀에 거친 마포(Linen) 혹은 면포(Cotton)를 덧대어 제작된 캔버스를 눕혀 놓은 상태에서 이루어집니다. 암갈색과 푸른색의 유채 물감에 소나무에서 추출한 테레빈유(Turpentine oil) 및 린시드유(Linseed oil)를 섞어 묽게 만든 후, 여러 번 덧칠하는 것입니다. 땅을 상징하는 암갈색(Burnt Umber)과 하늘을 상징하는 푸른색(Ultramarine)을 혼합한 색채를 청다색, 혹은 다·청(Umber-Blue)이라고 부르는데요, 윤형근의 청다색은 가공 처리하지 않은 직물 소재와 만나 기름에 의한 우연한 번짐 효과를 얻게 됩니다. 이는 결과적으로 감상자로 하여금 수묵화 또는 전통 가옥과 같은 한국적인 미감을 떠올리게 하는 실마리가 되어 줍니다.
윤형근의 작품 양식
윤형근의 작품 양식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됩니다. ① 첫 개인전을 열었던 1966년부터 1972년까지 장인 김환기의 영향을 받아 작업했던 색면 추상 ② 1973년을 기점으로 80년대까지 강한 번짐 효과와 함께 나타나는 천지문 양식을 거쳐, ③ 90년대에는 기름의 양을 줄이고 마스킹 테이프를 사용하여 먹빛과 농도를 절제하는 양식으로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여기서 천지문 양식이란 두세 개의 기둥 사이에 여백을 남겨두는 윤형근의 조형 언어를 말합니다. 물감의 농담, 붓을 쥔 힘, 붓질의 횟수 등의 조절을 통해 붓이 지나간 자욱을 따라가 볼 수 있도록 그려진 천지문 양식은 눈물이 마포 천 뒤에서 배어 나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슬프고도 고요한 인상을 줍니다. 이후 윤형근은 미니멀리즘의 대가 도널드 저드(Donald Judd)와의 만남 등을 계기로 보다 단순한 작품 구성을 추구하게 됩니다. 따라서 윤형근의 작업을 보면 그 번짐 정도와 기둥의 개수에 따라 어느 시기의 작품인지를 유추해 볼 수도 있습니다.
윤형근과 철학
비평가인 이일(李逸)은 주체와 객체를 구분하는 서양의 이분법에서 벗어나 합일을 추구하는 동양적 정신성을 강조하는 범자연주의(Pannaturalism)를 통해 단색화의 이론적 기반을 마련합니다. 이것은 화면을 구성하는 물질 자체에 집중하는 서구 모노크롬과 작업 방식에서의 정신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한국 단색화의 차이점을 잘 보여줍니다. 윤형근의 천지문 양식에서도 한국 문인화의 폭포나 계곡 과 같은 이미지를 쉽게 떠올려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당시 한국 화단이 서양 회화와 구분되는 정체성을 찾기 위해 동서양의 이분법을 활용하기도 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윤형근의 회화에서 여백과 색면은 분리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서로를 지탱해준다는 사실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백과 색면 가운데 하나만 있었다면 결코 이루어지지 않았을 상호적인 관계성은 이우환의 현상학으로 해석해볼 수 있습니다. 현상학에서는 예술가를 일종의 만남을 통하여 자기 자신과 결코 양분될 수 없는 세계를 재해석하는 존재로서 이해합니다. 이러한 사상에 기반을 둔 이우환은 표현자와 세계가 만나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물질을 대상화하기보다는 각자의 개별성을 있는 그대로 존중할 것을 제안합니다. 윤형근의 작업 역시 고도의 정신적인 수련을 통해 비어있는 듯한 날 것의 평면에 인위적인 개입을 최소한으로 하여 심연처럼 느껴지는 무한한 깊이를 생성해내고 있습니다.
감동이란 인간사 희비애락과 같다. 희는 곧 차원을 뒤집으면 비가 아닌가? 즉 가장 아름다운 것은 희요, 곧 비이다.그래서 예술은, 가장 아름다운 예술은 슬픈가보다. 그래서 가장 슬프면 눈물이 나고 가장 기뻐도 눈물이 나오게 마련인가보다.
_윤형근
슬픔 그리고 아픔이라는 감정들을 청다색의 묵직한 기둥으로 시각화한 화가 윤형근. 간결한 화면 구성이기에 더욱 응축되어 느껴지는 그의 메시지는 이미 시대를 초월한 듯합니다.
- (주)월간미술. (2015). [윤형근展] 언제 보아도 물리지 않는 그림 _ 류병학 윤형근 미술에 구현된 담(淡)의 정신. 월간 미술, 364, 130-137.
- 조아영. 윤형근의 다·청(茶·靑) 회화 비평 연구. 국내석사학위논문 홍익대학교 대학원, 2023.
- 최하늬. 윤형근(1928-2007) 작품 연구. 국내석사학위논문 상명대학교 일반대학원, 2020.
- 민경채. 한국 모노크롬 회화의 양식적 특성에 관한 연구. 국내석사학위논문 弘益大學校 敎育大學院, 2003.
- 이윤희. 한국 70년대 단색조 평면회화의 흐름을 통해 본 윤형근 회화 연구. 국내석사학위논문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