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다이빙이라는 스포츠를 들어본 적이 있나요? 프리다이빙은 잠수 장비나 산소통의 도움 없이, 말 그대로 자유롭게 물속을 유영하는 종목이에요. 그럼 그냥 물놀이 아니야?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전문 자격증이나 대회까지 있을 정도로 마니아층이 두터운 스포츠죠. 무호흡으로 수압을 견디며 바닷속 수십미터 아래로 내려가는 일은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로 위험한 일이지만 그걸 감수하고 진심을 다해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으려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도대체 물속에는 어떤 매력이 있길래 육지 동물인 우리가 이런 일을 벌이는 걸까요.
필자는 최근 서울의 올림픽수영장에서 프리다이빙을 시작한 후 이 매력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혔습니다. 정말 너무 어렵고 때로는 아프기도 한 스포츠이지만 그럴수록 더더욱 신중하게 코를 막고 집중해서 잠수하는 저 자신을 보며 프리다이빙이 우리의 인생과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프리다이빙이 궁금한 당신에게, 혹은 이미 프리다이빙을 사랑하는 당신에게 추천하는 영화 3선입니다.
<가장 깊은 호흡>
A24의 말 그대로 ‘숨 막히는’ 다큐멘터리
올해 여름, 7월 19일에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이 영화는 A24와 넷플릭스가 함께한 다큐멘터리 영화예요. 2022년 선댄스 영화제 초정작이기도 합니다. 프리다이빙 다큐멘터리라니, 귀하고도 특이하죠. 많은 프리다이버의 모습을 담았지만, 이탈리아의 프리다이버인 알레시아 제키니와 프리다이버의 안전을 책임지는 세이프티 다이버 스티븐 키넌의 이야기를 주로 다루고 있습니다.
<플로리다 프로젝트(2017)>,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2022)>, <애프터 양(2022)> 등 우리에게도 익숙한 작품들을 다수 제작한 A24가 참여한 만큼 영화의 퀄리티는 기대해도 좋아요. 직접 촬영된 영상들도 아름답지만, 10년도 더 된 옛날 영상들과 자료들을 역추적해 프리다이빙이라는 장르를 담아내는 정성이 돋보이는 영화입니다. 다큐멘터리가 맞나 싶을 정도로 그 흐름은 각본보다 흥미진진하고 탄탄합니다. 제목이 바다가 아닌 인간의 ‘가장 깊은 호흡’인 만큼 영화는 사람의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담았어요. 심해 그 자체보다는 그 안의 인간, 인간의 한계와 그걸 극복하고자 하는 욕망과 용기를 보여주고자 하죠.
실제로 위험천만한 순간들을 담아낸 장면들을 보고 있자면 숨이 막히기도 하고, 프리다이버들의 감정에 더 이입하게 됩니다. 산소통 하나 없이 목숨을 걸고 물속으로 들어가는 프리다이버들을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은 많겠지만 인생에서 언제나 한계에 부딪히고 극복해 나가려는 마음만큼은 우리 모두 공감하겠죠. 프리다이빙에 관심이 없더라도 그저 열심히 살아내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은 영화입니다.
<노 리미트>
실화를 기반으로 한 프리다이버의 사랑 이야기
‘노 리미트’는 프리다이빙 대회에서 그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가장 깊게 내려가는 종목의 이름입니다. 그 이름을 따라 작명된 2022년 넷플릭스 공개작 <노 리미트>는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는데요, 실제 프리다이버였던 오드리 메스트리 선수가 노 리미트 대회 중 세계 신기록에 도전하다가 사망한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오드리 메스트리는 프리다이버인 남편의 기록을 깨려고 도전하던 와중 사고를 당했다고 해요. 해당 사건 이외에는 모두 각색된 내용이지만, 프리다이빙을 사랑한 두 사람이 서로를 사랑했다는 상황만큼은 동일하죠.
영화는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다이버 록사나가 프리다이빙 세계 챔피언 파스칼을 만나 사랑에 빠지며 시작됩니다. 프리다이빙은 위험한 종목인 만큼 2인이 한 조를 이루어 물에 들어가 서로의 안위를 항상 체크하는 ‘버디 제도’로 진행되는데요, 친구이자 동료이자 내 생명줄이기도 한 버디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이 영화는 돋보이는 영상미로 담아냅니다.
특히나 대사가 끼어들 수 없는 물속 장면들은 다큐멘터리라고 해도 믿을 만큼 사실적이고도 아름다워서 이들이 이토록 위험한 모험을 계속하는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합니다. 두 캐릭터의 파괴적인 사랑을 다루기에 다소 선정적이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물속의 고요함과 그 아름다움에 공감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경험해봐도 좋을 영화예요.
<그랑 블루>
뤽 베송이 꿈꿨던 바닷속 세계
영화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이 포스터를 한 번쯤은 봤을 수도 있어요. 이 파란 바다에 사람과 돌고래만이 그려진 포스터는 개봉한 지 30년이 지난 지금도 영화 포스터샵에서 여전히 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이미지 하나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에게 인상을 남겼던 영화. 영화 <레옹(1995)>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뤽 베송 감독의 1988년작 <그랑 블루> 입니다. 레옹 역을 맡았던 배우 ‘장 르노’가 <레옹> 이전 뤽 베송 감독과 찍었던 작품으로도 알려져 있죠.
영화는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한 두 친구, 자크 마욜과 엔조 몰리나리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어릴 적 잠수 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자크는 바다와 돌고래를 친구 삼아 살아가는데, 어릴 적 유일한 잠수 라이벌이자 친구였던 엔조와 함께 성인이 되어서도 잠수 대회에 참가하게 되죠. 두 사람과 바다, 돌고래를 주체로 우정, 경쟁 그리고 바다에 매료된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이 영화는 목숨을 걸 정도로 바다에 매료된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해 주죠. 특히나 바닷속에서 돌고래와 춤추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프리다이빙의 위험성 따위는 잠시 잊게 됩니다.
실제로 세계적인 프리다이버였던 자크 마욜은 친구 엔조 마요르카와의 경쟁구도를 기억하며 본 영화의 제작에 참여했는데요, 두 사람의 경쟁 구도를 제외하면 모두 픽션이라고 합니다. 그가 직접 참여해서인지, 프리다이빙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도 물 속에 있는 기분이 들 정도로 섬세한 연출이 특징이에요. 오래 된 작품인만큼 시각적 연출과 흐름이 독특하고 매력적인 영화입니다. 비교적 낮은 화질 속 몽환적인 효과들과 요즘은 듣기 힘든 장르의 OST들이 당신을 바다에 더 매료되게 할 거예요.
사실 물 속은 굉장히 무섭습니다. 깊은 물에 한 번이라도 풍덩 빠져본 일이 있다면 아마 공감하실 거예요.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겠다’ 라는 감정 말이에요. 우리는 물속에서 숨을 쉴 수 없고, 발이 땅에 닿지 않는 감각은 막연한 불안감을 주죠. 그럼에도 사람이 잠수를 하는 이유를 초보 프리다이버인 필자가 감히 말씀드리자면, 딱 내 키만큼의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육지와 달리 팔다리를 휘저으면 어디든 갈 수 있다는 그 무한한 공간감, 그리고 내 신체 구조가 허락하지 않는 환경에 적응하고 극복해나가는 성취감 때문이라고 하고 싶네요.
우리는 물 밖에서 호흡하는 육지 동물이지만, 본디 물에서 태어났고 물로 만들어진 생명체이기에 그 안에서 매력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안에서 자유로워지려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연에 순응하는 것이 중요해요. 더 침착하고 차분하게, 또 겸손하게 내가 자연의 일부가 되어야 하죠. 그리고 이 태도는 물 위에서도 적용됩니다. 주어진 세상과 상황 앞에 겸손하고, 또 자신을 극복하려는 마음까지. 프리다이빙은 사실 우리의 삶과 많이 닮아 있을지도 몰라요. 물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위 영화들을 본다면 인생을 살아가는 태도에 대한 어떤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