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시하는 시선 끝
노이즈 슈게이징 음악

힙스터의 음악 으로 알려진
슈게이징 음악의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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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의 한 종류인 슈게이징은 듣는 사람만 듣는 ‘힙스터의 음악’으로 불릴 정도로 매니악한 장르입니다. 록의 역사에서도 그렇게 널리 소비되던 음악은 아닌데요.

하지만 사운드에 집착하는 슈게이징 밴드의 음악들은 기존의 록 음악과는 다른 몰입감을 줍니다. 생각이 꼬리를 무는 겨울밤. 흩날리는 눈발처럼 정처 없이 떠도는 상념들을 직시할 수 있는 슈게이징 음악을 소개합니다. 손끝으로 만든 소음의 중심에서 오늘의 고민을 한 겹 한 겹 풀어보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슈게이징이란

몰입과 탐닉의 장르

록 밴드 모습
이미지 출처: FUZZED UP

록 음악은 밴드가 추구하는 사운드와 연주 주법에 따라 다양하게 파생되고, 발전되었습니다. 게다가 재즈나 힙합처럼 접점이 없을 것 같은 장르와 크로스 오버 되기도 하고, J-ROCK처럼 자신들만의 신을 만든 분야도 있다 보니, 장르 구분에 엄격한 록 매니아가 아닌 이상 구분하기가 힘듭니다.

그런 점에서 슈게이징(Shoe Gazing)은 비교적 직관적인 장르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신발을 응시한다.’는 뜻 그대로 슈게이징 밴드의 맴버들은 공연 내내 고개를 숙이고 자기 신발만 응시합니다. 흔히 떠올리는 록 공연처럼 멋들어진 무대 매너는 없습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오롯이 자신들이 추구하는 사운드를 완벽히 연주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정확한 때에 발아래 놓인 이펙터 패달보드를 밟아 의도한 소리를 내기 위해 계속 아래만 바라보는 겁니다.

슈게이징 장르가 첫 모습을 드러낸 1980년대만 하더라도 록 밴드 사운드가 성취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이루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대중적으로 사랑 받을 수 있는 음악이 뚜렷하다 보니 록도 대중화가 되었습니다. 반대로 ‘새로운 사운드의 음악’에 대한 갈증은 계속 커가고 있었고요. 이런 뉴 사운드에 대한 탐구는 밴드 단위의 록이 아닌 레이브(Rave)나 디스코(Disco) 같은 댄서러블한 클럽 음악으로 넘어가고 있었지요.


의도된 노이즈

정밀하게 만든 소음

슈게이징 신을 대표하는 밴드 ‘마이 블러디 밸런타인’
슈게이징 신을 대표하는 밴드 ‘마이 블러디 밸런타인’, 이미지 출처: Death By Sound

슈게이징 밴드는 기존 록 음악에서 듣지 못한 ‘새로운 소리’를 찾고자 하는 욕구에서 등장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의 음악을 들으면 ‘이게 록이라고?’ 싶은 생각이 드실 겁니다. 트랙 전반적으로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 자동차의 차 문을 내렸을 때 나는 듯한 요란한 굉음이 가득하고, 보컬의 목소리는 노이즈에 파묻혀 들리지도 않으니까요.

평단에서는 슈게이징 밴드들의 무성의한 무대 매너와 난해한 음악을 조롱하는 의미에서 ‘슈게이징’이란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슈게이징’만큼 그들의 음악을 정의하기 적절한 단어도 없었기에, 자연스레 장르명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동영상 출처: 마이 블러디 밸런타인 공식 유튜브 채널

슈게이징의 가장 큰 특징은 ‘소음’입니다. 일렉기타에 이펙터를 하나씩 겹겹이 쌓거나, 기타 앰프 출력을 최대로 올려 구체적인 형태를 맺지 않은 노이즈를 의도적으로 만듭니다. 슈게이징을 대표하는 밴드인 마이 블러디 밸런타인(My Bloody Valentine)의 음악을 듣다 보면, 내가 음악을 듣고 있는 것인지, 지하철을 타고 있는 건지 구분이 안되기도 합니다. 귀가 피로해서 연달아 듣기도 힘들고, 보컬의 노랫말은 웅얼거리는 것처럼 들리거나, 아예 악기처럼 취급돼 찾아 듣는 걸 포기하게 되지요.

그럼에도 이 장르가 매력적인 이유는 아날로그한 방식으로 실험적인 소리에 집중한다는 점입니다. 이펙터와 기타 그리고 앰프. 아날로그 장비로 낼 수 있는, 본연의 밴드 장비들을 바탕으로 사운드를 만듭니다. 비슷한 장르의 앰비언트(Ambient)와 달리 슈게이징 장르에서 인간적인 따듯함이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사람의 손으로 연주한 악기에서 빚어낸 소음들. 그 안에 만들어져 있는 규칙성을 찾으면, 한 인간이 만든 소우주를 만나보실 수 있으실 겁니다.


대표적인 슈게이징 밴드

과거 슈게이징 밴드는 수명이 길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록 음악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이후 뮤지션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것은 사실이지만, 일상적으로 즐기기엔 무리가 있는 음악이다 보니 대중으로부터 빠르게 멀어져 갔지요. 그럼에도 마이 블러디 밸런타인을 비롯해 굵직한 족적을 남긴, 슈게이징의 교과서로 불리는 밴드들이 있습니다.

1) 라이드

동영상 출처: KEXP 유튜브 채널

모든 슈게이징이 마이 블러디 밸런타인의 음악처럼, 보컬도 안 들리고, 소음만 가득한 것은 아닙니다. 오아시스(Oasis)의 전 베이시스트 앤디 벨(Andy Bell)이 속한 라이드(Ride)의 음악은 좀 더 희망차고 멜로디 컬합니다. 보컬도 명료하게 들리는 편이지요. 그래도 귀에 웅웅 울리는 기타 사운드는 여전합니다. 1집 [No Where]의 수록곡 ‘Vapour Trail’의 후반부에서처럼, 슈게이징 이후에 태동한 브릿팝에서 보이는 서정적인 면모도 있고요.

2) 슬로우다이브

동영상 출처: 슬로우다이브 공식 유튜브 채널

슬로우다이브(Slowdive)의 음악은 비교적 정돈된 노이즈 위로 몽환적인 텍스처가 도드라진 말랑말랑한 팝 사운드를 보여줍니다. 슈게이징에 영향을 준 음악 장르 중 드림 팝(Dream Pop)의 특징을 많이 계승한 밴드이기 때문입니다.

‘Alison’을 들으시면서 시가렛 에프터 섹스(Cigarettes After Sex)가 흐릿하게 보이지 않으셨나요? 두 밴드는 국적은 다르지만, 장르적 계보는 유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시가렛 에프터 섹스도 슈게이징 또는 드림 팝 밴드로 구분되기도 합니다.

3) 국내 슈게이징 씬

동영상 출처: 혁오 공식 유튜브 채널

국내 밴드 중에서도 걸출한 슈게이징 사운드를 구사하는 밴드들이 있습니다. 대중적인 인지도가 있는 밴드 중에선 혁오의 2집 [사랑으로]가 대표적입니다. 밴드의 상징과도 같았던 보컬 오혁의 목소리는 줄어들고, 그 공백을 변화무쌍한 기타 사운드가 자리 잡았죠. 앨범의 마지막 트랙 ‘New born’의 라이브 영상을 보시면 슈게이징의 특징을 확연히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혁오 맴버들은 쿨하고 무뚝뚝하게 연주만 하고 있죠.

동영상 출처: 온스테이지 유튜브 채널

지금은 해체했지만, 압도적인 사운드를 보여주던 국내 슈게이징 밴드들도 있습니다. 프렌지(Frenzy)와 로바이페퍼스(RAW BY PEPPERS)가 그 주인공입니다. 엄격한 기준으로 구분하자면 두 밴드 모두 인스트루멘탈(Instrumental) 성격이 짙은 포스트 록(Post Rock)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만, 기존의 록 음악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는 점에서 동일한 장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그냥 ‘보컬이 없구나.’ 정도로 생각해 주셔도 됩니다. 두 밴드는 노이즈를 아주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아티스트였습니다. 탄탄한 연주력은 물론, 공간을 꽉 채우다 못해 터트릴 듯한 사운드는 슈게이징의 매력을 한껏 느끼기 충분합니다.

동영상 출처 : 온스테이지 유튜브 채널

이외에도 오래전부터 꾸준히 국내 슈게이징 & 포스트 록 신을 이끌어 온 ‘속옷밴드’와 ‘불싸조’. 젊은 밴드로는 ‘끝없는잔향속에서우리는’와 ‘브로큰티스’ 등 우리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슈게이징 음악을 하는 밴드들이 많습니다만, 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아티클에서 시간을 들여 소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슈게이징 밴드의 노래는 레이어 케이크(Layer Cake) 같습니다. 이펙터로 기타의 소리를 분해하고, 차례대로 쌓은 뒤, 몽환적인 질감의 멜로디를 그 사이마다 펴바르고 노이즈로 겉면을 넓게 칠한 그런 케이크요. 그 모습은 다양합니다. 위태롭게 무너질 듯한 모래성의 모습일 때도 있고, 사랑해 마지 못한 따스한 침대일 때도 있습니다.

겨울의 눈처럼 새하얗게 낀 노이즈. 그 위로 쌓아 올린 소리의 층위들. 여러분들의 귀를 조금만 예민하게 세우고 그들이 소리 위에 손가락으로 긁어 만든 무늬들을 하나씩 더듬어 보세요. 그러다 보면 조금은 흐릿하게 나마 그들이 의도한 레이어와 맛을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슈게이징을 음미 해보시면서 올 한해의 고민들을 천천히 풀어놔 보세요. 고개를 숙이고 신발 코를 바라보시면서 감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네요. 대신 음량은 줄이시고요. 백색소음처럼 무해한 노이즈는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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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현

새삼스러운 발견과 무해한 유쾌함을 좋아하는 사람.
보고, 듣고, 느낀 예술을 글로 녹여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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