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상(銅像)이몽
유물 수난시대

역사적 유물을 보존하는 일
후손들을 위한 선대의 의무
Edited by

“동상을 부수는 시위대는 훼손꾼(Vandals)이자 선동가(Agitators), 테러리스트(Terrorists)다.”

백인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George Floyd)가 숨지며 미 전역에 인종차별 및 경찰폭력 반대 시위가 번지던 2020년 6월. 미국 위스콘신주 그린베이의 타운홀 미팅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시위대를 경고하며 이렇게 말했다. 당시는 인종차별 시위의 일환으로 전국적으로 동상 훼손·철거가 잇따르던 시기였다. 흑인 노예 제도에 직간접적으로 동조했던 정치인들의 동상과 신대륙을 발견했던 콜롬버스 동상이 훼손됐고, 심지어 예수상도 백인으로 만들어졌다는 이유로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수십·수백 년간 보존돼온 역사적 유물들이 한순간에 무더기로 파괴되자 대통령까지 직접 “역사를 말살하는 행위”라며 진화에 나선 것이다.

영국·프랑스 등 유럽까지 번진 대규모 동상 파괴 운동을 두고 여론은 둘로 갈렸다. 한쪽에서는 “치우쳐진 역사를 바로 세워야 한다”며 제국주의와 인종차별을 상징하는 동상들을 모두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고, 다른 쪽에서는 “동상은 역사적·교육적 가치를 지닌 유물이며 일방적으로 재평가되고 파괴돼선 안 된다”며 반대했다. 범시민적인 합의가 없는 훼손 및 철거행위는 중단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사건은 역사적 유물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전 세계에 던졌다. 유물을 파괴하는 행위, 반달리즘은 어느 시대에나 있어왔지만 정치적 양극화가 심해지고, 정치적 반감에서 비롯된 개인의 일탈이 늘어나는 오늘날에는 더욱 중요한 물음이 된다.

페인트칠 된 동상
이미지 출처: Michelle.R.Smith, AP

“마음에 안 들어서”…
한국 유물 수난시대

우리나라에서도 역대 대통령, 정치인들의 동상 등 역사적 유물을 파괴하는 행위는 해마다 반복돼 왔다. 2016년 한 미술작가가 서울 영등포구 문래근린공원에 설치된 박정희 전 대통령의 흉상을 망치로 내려치고 붉은색 락카로 ‘철거하라’라고 적었다. 2020년에는 옛 대통령 별장인 청남대 안에 세워진 전두환 전 대통령 동상의 목이 톱질에 잘려나갈 뻔했다. 범행을 저지른 50대 남성은 동상의 목을 잘라 연희동 자택에 던질 계획이었지만, 주변을 지나던 관광객의 발견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이듬해에는 국립현충원에 전시된 박정희 전 대통령 운구차량의 유리창을 망치로 부순 60대 남성이 붙잡혔다.

올해는 서울 도심 한복판에 설치된 ‘조선공산당 창당대회터’ 표석이 한 보수 유튜버의 무자비한 곡괭이질에 뽑혀나갔고, 중국에 귀화한 음악가 정율성의 흉상을 무너트리는 범행에는 트럭까지 동원됐다. 몇 달 전 경기 남양주시 모란공원에 안치된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묘비에 검은색 락카를 뿌린 용의자는 여전히 잡히지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훼손되지 않은 유물을 찾는 게 빠를 정도로 유물 훼손은 진영을 가리지 않고 계속돼 왔다. 한 개인의 일탈을 넘어, 국가 차원에서 철거가 논의되기도 했다. 국방부는 강한 역풍에도 불구하고 육군사관학교 내 설치된 홍범도 장군 흉상을 교정 밖으로 이전할 계획을 확정했다.

목이 잘린 동상
이미지 출처: Andrew Martin, Pixabay

역사적 유물을 훼손하는 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는 중범죄이지만 실제로 내려지는 처벌은 그다지 무겁지 않다. 국가 공용물을 손상하는 행위는 형법에 따라 최대 7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지만, 실형을 선고 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전문가들은 국가적 법익에 대한 범죄에 관대한 대응이 이뤄지는 이유는 뚜렷한 피해자도 없을 뿐더로 엄벌할수록 정부에 대한 반감 여론이 커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형량이 필요 이상으로 높게 책정됐던 건, 법령이 만들어질 당시인 1990년대는 아직 국가의 권위와 위상을 보호할 필요성이 높았던 시기였던 탓이라고 했다. 처벌을 강화해 유물 훼손을 막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뜻이다.

일반인이 홧김에 유물을 훼손하는 사건이 반복되고, 비판은 커녕 이를 지지하는 반응까지 나오는 건 유물들이 지닌 상징성에 경도된 나머지 유물이 지닌 역사적·교육적 가치가 무시됐기 때문이다. 물론 동상을 만들 때는 박물관 속 유물과는 다르게 무언가를 과시하고 선전하기 위한 목적이 다분한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목적이 어떻든 간에 당시 시대상과 인물의 지위 등을 엿볼 수 있는 유물들은 그 자체로 역사적·교육적 가치를 지닌다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오랜 역사 만큼 많은 유물을 보유한 해외 국가들에선 이미 이러한 가치를 인정해 아무리 대역죄인이라도 유물을 보존해야 한다는 시각이 자라있다. 당장은 마음에 들지 않아도, 역사를 평가할 기회는 후손에게도 주어져야 할 당연한 권리이며, 유물을 보존해 그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선대의 당연한 의무임을 받아들인 것이다.

역사적 동상
이미지 출처: Jacques Gaimard, Pixabay

“동상은 사람들이
진실을 찾도록 돕는다”

독일은 일찍이 역사적 유물들에 대한 교육적 가치를 인정하고 이를 보존하기 위해 많은 품을 들이고 있다. 얼마 전 히틀러 생가의 개축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란이 대표적이다. 정부가 히틀러 생가를 지역 경찰서로 바꾸고, 공간을 추가해 경찰을 위한 인권 교육장으로 활용하겠다는 방안을 밝혔는데, 인근 주민들이 “역사적 의미를 지우는 처사”라며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히틀러의 만행을 생각하면 그의 흔적을 어떻게든 없애려 할 만도 한데, 독일 시민들은 기억을 환기해 슬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교육적 가치를 더욱 높게 봤다. 같은 시기 한국에서는 정반대의 일이 벌어졌다. 경기 성남의 한 유치원 인근에 이완용 생가터 비석이 설치됐는데, 인근 주민들은 “세금을 들여 매국노 비석을 세우는 게 말이 되냐”고 강하게 반발하며 일주일 만에 철거된 것이다. 당시 비석에는 이완용이 시류에 따라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빠르게 변신한 을사5적, 친일반민족행위자란 설명이 명확하게 나와있었지만 아무도 교육적 가치를 인정하지 않았다.

역사적 유물에 관한 독일의 태도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사막의 여우’로 불리며 지략가로서 명성을 날린 에르빈 롬멜 장군 동상 존치 논란에서도 엿볼 수 있다. 롬멜 장군은 뛰어난 전쟁 영웅으로 칭송 받는 한편, 그의 업적에는 엄청난 양의 지뢰를 매설해 수만 명의 사망자와 장애인을 만들어낸 장본인이라는 분명한 암(暗)이 존재한다. 이로 인해 독일 시민들 사이에선 독일 남부의 소도시 하이덴하임시에 세워진 ‘롬멜기념비’를 철거해야 한다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고 한다. 하지만 시는 롬멜기념비를 철거하는 대신 롬멜 장군의 공과 과를 모두 기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기념비 옆에 다리가 잘려 목발을 짚고 있는 지뢰 피해자의 동상을 세운 것이다. 그 당시 베른하르트 일그 하이덴하임시장은 “동상은 그 자체로 진실을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진실을 찾도록 돕는다”라며 유물의 역사적·교육적 가치를 강조했다.

이미지 출처: Rommel-Denkmal

유럽 전역으로 동상 파괴 운동이 확산할 당시 영국 옥스퍼드대학 내 대영제국 사업가 세실 로즈 동상이 철거될 위기에 놓이자 이 대학 총장은 “역사를 숨기는 것은 진정한 계몽으로 향하는 길이 아니다”라는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의 말을 인용하며 저지에 나섰다고 한다. 임마누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대국민 연설을 통해 “인종차별에는 반대하지만 우리는 역사에서 어떤 흔적, 어떤 이름도 지우지 않을 것이며 어떤 동상도 철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들의 반감이 절정에 달한 상황에서도 유물의 역사적·교육적 가치를 보호하며 선을 그은 것이다. 이처럼 해외에서는 유물들의 상징적인 측면을 중시하는 시각과 역사적·교육적 측면을 중시하는 시각이 엇갈리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반면 우리나라에선 이러한 담론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기념하는 동상,
기억하는 동상

한국에서 동상이 대거 세워진 시기는 한국전쟁 직후, 국가주의 색채가 짙던 시기였다고 한다. 그 당시 동상을 세우는 목적은 국가 권력의 위상을 공고히 다지고, 국가적 이데올로기를 주입해 북한 등 공산주의 국가들에 대한 대적관을 뚜렷하게 확립하기 위함이었다. 시간을 좀 더 거슬러 올라가보면 일제강점기 땐 교육자와 일본인 자본가들의 동상이 만들어져 초등학교 운동장이나 광장 등 공공장소마다 배치됐는데, 조선 사람들에게 성실함, 실천력 등 원활한 식민 지배를 위해 필요한 도덕적 이념을 주입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이렇듯 한국에선 정치적인 의도가 담긴 동상들이 줄곧 세워졌기에 동상에 담긴 상징성에만 주목하게 된 거란 분석도 나온다.

동상의 기능은 시간이 흐르며 달라지기도 한다. 현대로 넘어와선 기억과 환기를 목적으로 한 동상이 늘었다. 위안부 소녀상, 천안함 영웅 동상 등의 유물은 희생자를 기리고 아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후대에게 경각심을 심어주기 위해 제작됐다. 한발 더 나아가 시간이 지나면서 문화예술의 영역으로도 편입되기도 한다. 동상을 오래 연구한 조은정 한국인물미술사학회장은 우리나라 동상의 역사를 기술한 책 『동상』에서 “일제강점기 때 계몽을 빌미로 한 통치수단으로 생겨난 한국의 ‘동상’은 정치적 수단으로 사용되다 지금은 문화·관광 상품으로 경제적 목적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살아있거나, 돌아가신지 얼마 안 된 현대사의 인물의 유물은 수모을 당하고 있으나, 시간이 많이 흘러 역사적 평가와 합의가 끝난 유물들은 모든 시민이 즐길 수 있는 문화 콘텐츠가 돼간다는 뜻이다. 요즘도 광화문 광장에 설치된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의 동상 앞은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사진을 찍는 외국인과 나들이객으로 붐비고 있다.

이순신 장군 동상
이미지 출처: Usagi_post, Pixabay

정율성 흉상 훼손 논란이 일자 한 대학 교수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폭력적 행동이 집단으로 발현하면 민주주의를 위협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장 정치적으로 평가가 엇갈려도 있는 그대로 보존해 후대를 위해 합의와 평가의 기회를 남겨두는 게 민주주의 정신에 부합하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물론 저 말은 박정희, 전두환 전 대통령의 흉상을 두고도 똑같이 적용돼야 할 것이다. 유물을 훼손하다 잡힌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변명이 있다. “우리나라를 위해서”라는 말이다. 하지만 인물의 공적, 역사적 사건의 경중은 한 개인이 온전히 평가내릴 수 있는 게 아니다. 더 많은 시간이 흐르고 충분한 논의가 쌓이면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혼자만의 정의감을 앞세워 동상을 훼손하는 건 과거에서 미래로 이어지는 방대한 역사 앞에 겸손하지 못하기 때문 아닐까.

이미지 출처: Infinite_ai777, Pixabay

Picture of 현우주

현우주

흑백의 세상에서 회색지대를 찾는 사람

에디터의 아티클 더 보기


문화예술 전문 플랫폼과 협업하고 싶다면

지금 ANTIEGG 제휴소개서를 확인해 보세요!

– 위 콘텐츠는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받는 저작물로 ANTIEGG에 저작권이 있습니다.
– 위 콘텐츠의 사전 동의 없는 2차 가공 및 영리적인 이용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