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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건축 여행
게티 센터와 게티 빌라

백만장자가 대중에게 남긴
두 건축물과 문화적 인프라
Edited by

미국의 대표적인 관광지 로스앤젤레스에는 많은 미술관과 박물관이 있습니다. 할리우드 그 자체인 만큼, 아카데미 미술관을 비롯해 다양한 현대, 고전미술을 만나볼 수 있는 곳들로 가득하죠. 그런데 이 할리우드의 명성에 걸맞지 않게(?) 각종 유럽의 미술품들, 유물들과 현대식/로마식 건축까지 만나볼 수 있는 미술관들이 있습니다. 바로 장 폴 게티(J. Paul Getty)와 게티 재단의 컬렉션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게티 센터와 게티 빌라가 그 주인공이에요. 미술관들이지만 필자는 건축에 조금 더 집중해서 두 곳을 담아왔는데요. 그 생생한 방문기를 여러분과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그래서,
장 폴 게티가 누군데

게티 빌라의 모형을 보고 있는 장 폴 게티
(왼쪽) 게티 빌라의 모형을 보고 있는 장 폴 게티, 이미지 출처: 게티 공식 웹사이트

‘게티이미지(gettyimages)’라는 이미지 스톡 사이트를 아나요? 아마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스톡 사이트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겠죠. 이 게티라는 성이 바로 게티 센터와 게티 빌라의 그 ‘게티’입니다. ‘장 폴 게티(J. Paul Getty)’라는 미국의 한 백만장자는 각종 사업을 전개한 기업인이기도 했지만, 굉장한 미술품 애호가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로스앤젤레스에 거대한 로마식 별장, 게티 빌라를 지어 각종 예술품을 보관하고 대중과 공유했어요. 그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뜻에 따라 게티 신탁(Getty Trust)은 게티 센터를 지어 그 안에 미술관, 도서관과 재단 등을 두어 거대한 게티 부지를 만들어냅니다. 그렇게 지어진 두 곳은 현재까지도 대중에게 무료로 공개되어 로스앤젤레스의 많은 현지인들과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닿는 곳이 되었어요. 이 백만장자의 손자인 ‘마크 게티’가 세운 회사가 바로 우리가 아는 ‘게티이미지’이고요. 역사 얘기는 이쯤 하고, 두 미술관을 방문해 볼까요?


로마의 유적지가 로스앤젤레스로
게티 빌라

게티 빌라
이미지 출처: 게티 공식 웹사이트

우선 먼저 지어진 게티 빌라부터 둘러봅시다. 게티 빌라는 현지인들도 혀를 내두를 만큼 구석진 산꼭대기에 지어져 있어요. 산타모니카 피어에서 바닷가를 따라 2-30분 정도를 내리 달려 산을 오르면 산 중턱에 거대한 부지와 궁전 같은 건물들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제법 높이 올라가는 만큼, 미술관으로 입장하는 길 뒤를 돌아보면 저 멀리 바다의 수평선이 보여요. 일 년 내내 해가 잘 드는 LA인지라 무성하게 자란 나무들이 거대한 건물들의 크기에 지지 않고 둘러싸고 있는 모습도 꽤 인상적입니다.

게티 빌라
게티 빌라

미술관 바로 앞에는 테라코타 벽돌로 지어진 원형극장이 자리하고 있는데요, 한 칸 위의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다시피 무대가 있어야 할 자리에 미술관이 있는 형태입니다. 꼭 극장에 앉아 웅장한 게티 미술관의 전면을 구경하라고 하는 것 같네요. LA의 거센 햇빛을 직선으로 맞은 벽돌은 그 색이 더욱 선명한데요. 이 계단식 좌석들뿐만 아니라, 꼭 밝은 해 아래서 봐주기를 기대한 듯 빌라 전체는 다양한 색의 외벽과 바닥으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다양한 재질의 건축 재료와 곳곳에 심어진 나무들이 어우러지면 하나의 조화로운 컬러 팔레트를 보는 듯한 느낌도 들어요. 부지 전체를 천천히 걸으며 게티 빌라의 색감 자체를 즐기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수 있겠네요.

J. 폴 게티 미술관

자, 게티 빌라의 미술관, J. 폴 게티 미술관(J. Paul Getty Museum) 안에 들어왔습니다. 로마식 건축으로 유명한 이 건물은 실제로 고대 로마 유적지의 한 저택(Villa dei Papiri)을 본떠 지었다고 해요. 중앙 정원에 들어서기도 전에 입구의 홀부터 가운데에 인공 연못이 조성되어 있어 그 호화스러움을 보여주죠. 건물의 특색에 맞게 이 미술관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 에트루리아 유물을 소장하고 있어 꼭 박물관 같은 분위기를 풍깁니다. 잘 알지는 못해도 어디선가 본 듯한 고시대 유물들로 가득하기 때문에 미술에 관심이 없어도 흥미롭게 볼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에요. 건물과 정원을 구경하러 갔더라도 미술관을 한 바퀴쯤은 돌아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게티 빌라

홀을 지나면 화려한 중정이 해를 받아 환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파란 하늘과 따뜻한 색감의 건물이 밖에서 보던 미술관과는 또 다른 분위기를 주지 않나요? 온전히 사람의 손을 타지 않고서는 만들어질 수 없는 반듯한 나무와 풀들이 이 중정에 담긴 정성을 보여 주네요.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을 연상시키는 이 하얀 기둥들은 중정을 지나 가장 큰 야외 정원까지 길게 이어져 우리에게 편안한 길과 시원한 그늘을 선사합니다.

게티 빌라가 가장 자랑스러워하고, 많은 사람들이 보러 오는 메인 야외 정원입니다. 모티브로 삼은 로마 저택의 정원을 그대로 따 왔다는 이 정원은 동상의 복제품을 가운데에 두고 사진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긴 길이의 인공 연못, 정원 그리고 산책로를 가지고 있어요. 빌라의 따뜻한 색감과 대비되는 시원한 연못의 색깔이 꼭 더위를 식혀주는 것만 같죠. 실제로 깊이가 거의 1미터 가까이 된다는 이 연못은 실제 로마에서는 수영장이나 양식용으로 쓰였다고 하네요. 오른쪽의 사진을 보면 정원의 식물들이 아주 다양한데, 아이비, 월계수, 석류나무까지 흔치 않은 이 조합은 실제 로마인들이 좋아했던 식물이기 때문에 정원에 들어설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쯤 되면 로마 저택에 대한 장 폴 게티의 진심이 한껏 전해지지 않나요?

게티 빌라

매일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문화적 경험을 누리는 이 게티 빌라는 본디 장 폴 게티 본인의 별장일 뿐이었습니다. 본인의 소장품을 대중과 나누고 싶었던 게티는 본인의 집을 미술관으로 바꾸었다가, 공간이 부족해지자 그 옆에 게티 빌라를 지어 이 아름다운 건축물마저 대중과 공유했어요. 필자는 게티 빌라를 둘러보는 동안 장 폴 게티는 단순히 컬렉터로서 친절을 베푸는 걸 넘어서서 하나의 거대한 미술품인 게티 빌라와 거기서 내려다보는 아름다운 로스엔젤레스의 뷰까지 선물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장 폴 게티가 직접 설계하고 지은 것은 아니라지만 어쩌면 필자가 한 경험 자체가 게티의 작품이 아닐까요?


WEBSITE : 게티 빌라 뮤지엄
INSTAGRAM : @gettymuseum


백색의 건축가가 지은 미술관
게티 센터

게티 센터
이미지 출처: 게티 공식 웹사이트

또 다른 날, 게티 센터에 도착했습니다. 왜 이번에는 건물 사진이 아니냐고요? 게티 센터는 입장 방식이 조금 특이합니다. 차가 있든 없든 모든 관람객은 산을 오르기 전 주차하거나 택시에서 내린 후, 무료로 운영되는 이 하얀 트램을 타고 센터가 있는 산꼭대기로 천천히 올라가야 해요. 모든 이가 이 트램을 타고 올라가게 함으로써 게티 센터는 관객들에게 또 다른 경험을 선사합니다. 새하얀 트램에서부터 보이는 게티 센터의 건축, 트램을 타고 올라가면서 느끼는 기대감과 설렘, 그리고 로스앤젤레스의 상징과도 같은 광활한 고속도로 전경까지. 시야에 따라 고개를 바삐 돌리다 보면 마치 전시를 보는 것도 같고 놀이기구를 탄 것도 같아요. 게티 센터의 관람은 이렇게 산 아래에서부터 시작됩니다.

트램에서 내리니 거대한 그랜드 피아노 같은 건물이 눈에 들어오네요. 게티 센터에는 수많은 건물이 있지만, 저곳이 바로 우리가 향할 미술관의 입구예요.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게 되는 이 구조가 또 한 번 기대감을 증폭시킵니다. 우리는 이 계단을 오르며 미술관 건물뿐만 아니라 게티 센터에 위치한 다양한 건물들과 조경을 둘러보게 돼요. 트램부터 계단까지, 건축가는 우리에게 계속해서 오르는 경험을 주며 센터를 경험하기 전 생각할 시간을 줍니다.

운 좋게도 필자는 건축 투어 시간에 맞춰 도착해 무료 건축 투어를 들어볼 수 있었습니다. 게티 센터와 게티 빌라는 건축 투어, 정원 투어 그리고 컬렉션 투어를 매일 운영하는데요. 모든 투어는 무료로 진행되기 때문에 마음에 드는 투어를 하나쯤은 꼭 듣기를 추천합니다. 필자는 남다른 색의 코트에 중절모를 쓴 큐레이터분과 함께 게티 센터를 45분간 돌며 많은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었어요. 있는 사실을 그대로 듣기보다는, 관람객 모두의 생각을 나누는 투어라 더욱 많은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어요. 오른쪽의 사진은 타일 벽을 두드려 연주하는 큐레이터분의 모습입니다. 모든 타일의 크기와 두께가 다르기 때문에 두드리면 다른 소리가 난다고 하면서요. 게티센터의 투어는 필자 기준 올해 가장 자유로운 분위기의 투어였어요.

게티 센터
게티 센터
게티 센터

여기를 봐도 하얀 네모, 저기를 봐도 하얀 네모! 이곳은 온통 하얀 네모로 가득합니다. 게티 센터는 건축을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익숙한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Richard Maier)의 설계하에 지어졌어요. 리처드 마이어는 ‘백색의 건축가’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흰색을 선호하기 때문에 오늘 둘러 볼 게티 센터도 온통 흰색으로 가득할 예정입니다. 사진에서도 보이듯, 리처드 마이어는 흰색이라는 범주 내에서 다양한 재질과 색을 보여줍니다. 바닥과 계단은 테라코타로, 벽은 미색의 타일로, 난간은 새하얀 철로. 건축 투어에서 들은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이 하얀색들에 이름이 있다는 사실이에요. 약간의 미색이 도는 중앙의 하얀 타일 색은 게티 화이트(Getty White), 완전한 흰색을 띠는 난간의 하얀색은 마이어 화이트(Maier White)라는 명칭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미술관을 돌아다니다 보면 이 두 화이트를 겹겹이 교차해 놓은 모습을 자주 볼 수 있고, 그게 이 공간을 한층 깊이 있게 만든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어요.

게티 센터
게티 센터

한참을 전시관에 있다가 필자가 도착한 곳은 게티 센터의 카페테리아입니다. 굳이 식당을 소개하는 이유는 게티 센터가 보통의 미술관보다 훨씬 크고 제대로 된 푸드 코트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그도 그럴 것이 단순히 미술관이 아닌 하나의 센터로 도서관과 연구소, 재단 등 많은 시설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이 워낙 많은 데다, 엄청난 양의 컬렉션 탓에 관람객들도 체류하는 시간이 상당히 긴 편이에요. 아마 미술관의 절반 정도만 봐도 배가 고픈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전 세계의 음식이 모여 메뉴도 다양하고, 비건 옵션도 빠짐없이 준비되어 있답니다.

이미지 출처: 게티 공식 웹사이트

비가 오는 날씨 탓에 모두 담아오진 못했지만, 게티 센터는 네 개나 되는 정원을 가지고 있어요. 계절마다 그 비주얼이 바뀌는, 500종이 넘는 식물로 가득 차 있다는 이 정원들 중 가장 특별한 건 오른쪽의 선인장 정원입니다. 게티 센터의 가장 끝, 로스앤젤레스가 내려다보이는 가장자리에 자리한 이 정원은 선인장이 잘 자라는 로스앤젤레스의 특징과 그 전경까지 센터가 가지는 위치적 장점을 모두 담고 있는 정원이에요. 관객들은 관람 중간중간 건물을 오가는 사이 다양한 정원을 즐기며 뇌를 환기하고 휴식할 수 있습니다. 거대한 센터를 만든 만큼 그 사이사이의 휴식도 챙긴 이 설계가 정말 멋지지 않나요?

게티 센터
게티 센터

건물 개수로만 쳐도 네 개의 건물을 가득 채운 방대한 컬렉션을 관람하다 보니 어느새 저녁이 되었네요. 저녁이 되면 이 센터는 또 다른 매력을 보여줘요. 해의 색이 바뀌고 조명이 켜지며 리처드 마이어의 하얀 건물은 더 다채로운 색을 띕니다. ‘하얀색은 모든 색깔이다’라는 리처드 마이어의 말답게 흰색은 색이 없는 만큼 더 많은 색을 비추고 담아내죠. 해가 져가는 오후 시간 시시각각 변하는 센터의 모습까지 즐겼다면 필자는 감히 당신이 이 미술관을 충분히 즐겼다고 말해봅니다.


WEBSITE : 게티 센터


지금까지 두 미술관을 둘러보았는데요, 함께 재미있게 즐기셨나요? 모든 건축과 전시도 물론 인상적이지만 게티의 가장 큰 특징은 아마 무료라는 점이 아닐까 싶어요. 장 폴 게티의 의지 아래 설립된 게티 재단은 세계의 예술 문화유산을 전시, 보존, 연구하고 또 사람들과 나누는 데에 전념하는 예술 단체입니다. 두 곳 모두 무료인 만큼 많은 수의 단체관람 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요. 보통 미술관 입장료가 20달러가 훌쩍 넘는 이 도시에서 이 방대한 양의 정보와 예술을 무료로 공개한다는 건 도시의 문화적 인프라를 상상 이상으로 넓히는 일이죠. 어쩌면 게티는 방문하는 모든 이들에게 예술을 더 가까이하는 인생을 살라며 설득하는 것인지도 몰라요.


유니

유니

더 밖으로 넓어지기 위해 더 안으로 들여다보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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