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가을 세계인의 시선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쏠렸다. 9월 29일 세계 최대 구형 공연장 스피어(Sphere)가 개장한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이곳은 구체 형태의 종합 엔터테인먼트 공연장으로 이미 라스베이거스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부상했다. 3조원에 달한 투자 비용으로 120만 개의 LED와 1만6천개의 스피커로 이뤄진 비현실적인 ‘스펙’을 자랑한다. 전례없는 시청각 경험이 가능해진 셈이다. 특별한 형식인 만큼 전용 콘텐츠 제작을 위한 별도의 스튜디오까지 갖춰졌다.
SF 영화 속 미래 배경을 연상케 하는 차세대 매체의 등장은 수많은 브랜드를 긴장시켰다. 스피어는 건물 전체가 거대한 전광판이 되기 때문이다. 현장감과 규모감으로 승부하는 옥외 광고(OOH, Out-of-Home)가 브랜드를 알리는 수단으로 부상한 지금에, 어마어마한 크기의 ‘둥근 도화지’는 옥외 광고 형태의 최전선에 있다. 콘텐츠와 매체가 중요한 요소인 광고에서 콘텐츠 제작이 선행되는 게 일반적이지만 옥외 광고의 경우 매체의 특성을 먼저 고려한 후 콘텐츠를 제작하는 전복성이 강해지기도 한다. 스피어라면 콘텐츠의 내용을 장악하기에 충분하다. 플레이스테이션, 하이네켄은 발빠르게 움직이며 화제성을 선점하고자 공을 들였다.
이처럼 매체가 콘텐츠보다 앞서는 경향은 다양한 문화예술계에 질문을 던진다. 과연 형식이 메시지를 압도할 수 있는가? 기술 개발로 진화를 거듭하는 매체가 콘텐츠의 창작성까지 결정할 정도의 영향력을 드러내는 건 비단 스피어만의 일은 아니다.
진화한 매체가
콘텐츠에 영향을 미친 사례
우선 매체의 사전적 의미부터 짚어보자면 ‘어떤 작용을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전달하는 물체, 또는 그런 수단’을 말한다. 여러 문화예술 양식에서 의도와 메시지를 담는 그릇, 도구로 이해될 것이다. 우리는 흔히 예술을 바라볼 때 메시지 찾기에 몰두하는 것에 익숙하다. 매체는 부차적으로 여기곤 한다. 하지만 스피어가 시사하는 바와 같이 매체가 가진 특성이 콘텐츠보다 앞서서 창작의 의도를 좌우하는 경우도 많다. 무엇보다 매체가 다음 형태로의 전환을 맞이할 때 이런 흐름은 도드라진다.
1) 영화계
요즘 대중에게 아이맥스(IMAX)관을 찾는 일은 낯설지 않다. 반드시 아이맥스관에서 봐야만 하는 영화 리스트가 생기기도 한다. 우리가 현재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영화의 비율보다 위아래가 더 큰 아이맥스 영화의 비율은 캐나다 아이맥스 사에서 개발한 포맷이다. 오리지널 아이맥스 필름은 1.43:1(디지털 아이맥스 카메라는 1.9:1)이라는 독자적인 화면비율을 특징으로 한다. 특수성은 제작에 있어 아이맥스 비율을 염두에 두기를 자극한다.
아이맥스가 개발된 초창기에는 제작비 상승에 직결되는 아이맥스 전용 카메라와 특수 필름을 요하며 영사 방식도 복잡했던 시스템 탓에 쓰임은 짧은 다큐멘터리 제작에 한정됐다. 이후 아이맥스 시스템은 비교적 간소화된 방식의 디지털화가 고안되며 상업영화에도 아이맥스 촬영 수요를 높였지만 여전히 아이맥스 촬영에는 비용, 기술 측면에서 큰 장벽이 존재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런 제약이 오히려 아이맥스 영화만의 결을 형성하기도 한다는 것.
즉 형식이 어떤 장르를 강화하는 추동력이 되는데 비슷한 현상은 영화사적으로 반복된 바 있다. 텔레비전 시청자의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을 때의 사례다. 미국에서 텔레비전 수상기의 대량생산이 시작된 1947년을 기점으로, 당시 극장 비율인 4:3을 똑같이 채택한 텔레비전은 영화의 강력한 경쟁자로 떠올랐다. 웬만한 시각 경험을 텔레비전으로 하게 된 이들을 붙잡기 위해 영화계는 작고 선명도가 떨어지는 텔레비전에 비해 다른 포맷의 대형 화면과 컬러감으로 우위를 점하고자 했다. 이에 영화 제작사 간에는 와이드스크린 포맷 경쟁이 벌어졌다. 그리고 특수렌즈를 이용해 전통적인 필름 폭으로 압축 기록하고 다시 화면이 가로로 넓게 재현되도록 한 시네마스코프 방식은 업계를 지배했다. 2.35:1의 와이드스크린이 ‘영화적 경험’의 표본으로 떠오를 때 해당 포맷의 수혜를 가장 크게 입은 콘텐츠라면 뮤지컬과 서부영화와 같은 고전적인 장르였다. 최초의 시네마스코프 영화 <성의>는 옆으로 긴 시각적 효과를 이용하여 대규모 인원이 동원된 전투 장면을 효율적으로 연출하며 성공을 거뒀다. 이후 고화질 와이드 스크린 기술로 정점을 이룬 역사스펙터클 영화가 윌리엄 와일러의 <벤허>다.
더 거슬러가자면 무성영화가 유성영화 시대로 넘어온 변곡점에서 매체의 성격이 발휘하는 지휘력을 목격할 수도 있다. 무성영화일 때 인정받던 예술로서의 영화가 소리를 장착하며 변화한다면 가치가 퇴색된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무성 매체에서 가능한 다방면의 연상 작용이 음향으로 인해 무의미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일었다. 영화 이론가인 루돌프 아른하임은 자신의 논문 ‘예술로서의 영화’(1932)에서 매체의 변화로 영화예술의 죽음까지 예견했다.
2) 미술계
한편 최근 미술계에서도 매체와 창작물 간의 상관성을 돌아볼 계기가 생겼다. 라이트룸 런던이 2023년 2월 데이비드 호크니와 협업해 진행하고 있는 몰입형 미디어아트가 그 대상이다. 11월부터 라이트룸 서울에서도 전개되고 있는 ≪데이비드 호크니: 비거 앤드 클로저(Bigger and Closer)≫는 생존 작가가 직접 제작한 몰입형 전시로서 최초다. 유려하게 흐르는 비주얼에 데이비드 호크니의 내레이션, 음악과 조명이 더해지는 형태다.
그간 몰입형 전시에 대해 평단은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주로 작고한 거장의 작품을 현대의 시선으로 인용함에 지나지 않으며 미학의 실천보다는 상업성에 초점을 맞춘다는 이유다. 작품을 곱씹어봐야 하는 사유의 과정을 삭제하고 그저 눈과 귀를 빠르게 사로잡기 위해 매체가 피상적으로 활용된다고 여겨진다. ‘참을 수 없는 매체의 가벼움’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이번 전시는 여러 의견을 낳을 가능성이 있다. 우선 철저히 작가의 의도가 투영됐다는 점이 눈에 띈다. 기존작을 테마로 삼기에 새로운 창작 활동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지만 데이비드 호크니는 엄연한 신작이라고 선언했다. 나아가 컴퓨터, 인터넷 기술의 발달로 등장한 ‘뉴미디어’ 환경 속 전시 조건은 전시장 밖 SNS형 참여까지 유도하는 각종 시청각 수단을 마냥 거부할 수는 없다. 진작 뉴미디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던 그는 역시나 매체를 넘나드는 예술적 실험의 연장선에서 몰입형 전시를 구성했다는 설명이다. 물론 데이비드 호크니의 행보가 몰입형 미디어아트에 대한 위상을 바꿀지는 아직 미지수다.
매체가 먼저인가?
콘텐츠가 먼저인가?
매체를 받아들이는 창작의 사례를 나열하자니, 매체와 콘텐츠의 선후관계를 따질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이 남는다. 무엇이 더 우월한 지위를 차지할 수 있을까 견주게 되지만 종국에는 ‘서로가 서로의 조건임을 이해하는 관점’이 하나의 실마리로 떠오른다.
미디어 철학자 빌렘 플루서는 장치(매체)와 신체(창작자)의 접점을 조명하며 상호작용성을 강조했다. 특히 사진촬영에 대한 고찰이 양자적 가능성을 담아낸다. “사진의 몸짓 속에서 사람의 몸은, 몸과 카메라 중 어느 하나에 특별한 기능을 배분하는 것이 거의 무의미할 정도로 장치와 융합된다”고 언급하며 “촬영 위치를 탐색하는 사진가의 몸이 카메라의 도구라고 주장하더라도 마찬가지로 합당한 주장이 될 것이다”라고 한다. 카메라에 물질적으로 프로그래밍된 기능, 예컨대 반사경을 통해 사진가는 자신만의 관점으로 들여다보기를 멈추는 순간을 결정한다. 장치와 인간은 특정한 몸짓에 함께 참여한다는 의미가 된다.
나아가 빌렘 플루서는 창작자가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상태에 대해서도 말했다. 자유는 규칙을 이용하는 데서 생겨나는데, 여기서 ‘기술적 상상’이라는 개념에 주목해볼 수 있다.
인간은 기술그림의 프로그래밍과 기능 방식을 꿰뚫어 보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이것은 오직 기술그림의 해독과 이해에 필요한, 완성된 기술적 상상으로써만 달성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그는 다시금 장치들을 자신의 통제 아래 둘 수 있고 단순히 장치의 기능에만 안주하지는 않게 된다. 플루서는 기술적 상상을 이렇게 정의한다. “‘기술적 상상’이란 장치에 의해서 생산된 그림(‘기술그림’)을 암호화하고 해독하는 능력이라 불리어야 한다.”
_올리버 비들로, 『빌렘 플루서의 미디어철학』, 커뮤니케이션북스
잠시 유성영화의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영화의 끝을 예언했던 그룹 저편에서는 기술적 상상력을 더한 시도가 엿보였다. 소음과 대화를 시각적인 요소와 대립시키거나 의도적인 어긋남을 연출하며 의미를 만들어내는 등 실험 정신을 발휘한 감독에 의해 기술적 상상이 실천된 것이 아닐까. 음향이 무성 매체의 결점을 보완하는 데 이용한 움직임도 마찬가지.
결국 다양한 창작자의 메시지와 의도를 전달하는 매체는 단순히 통로로서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매체가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때도 창작자의 결정권이 더해지지 않는 한 가치는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대상을 바라봄에 있어 ‘달을 보라고 가리켰던 손가락, 그 손가락이 곧 메시지의 본질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더불어 매체 자체에 천착하는 과정은 독창적인 콘텐츠의 탄생을 이끌기도 할 터. 매체와 콘텐츠는 유기적이다. 매체의 진화가 더욱 가속화되는 시대 속 콘텐츠를 자유롭게 상상하길 기대해본다.
- 안드레아 그로네마이어, 『영화: 한눈에 보는 흥미로운 영화이야기』, 예경, 2005
- 빌렘 플루서, 『몸짓들: 현상학 시론』, 워크룸 프레스, 2018
- 올리버 비들로, 『빌렘 플루서의 미디어철학』, 커뮤니케이션북스, 2020
- 한국경제, 몰입형 전시에는 비평을 하지 않는다…모조품에 그러하듯 (2023. 09. 11)
- 한국경제, 호크니의, 호크니에 의한 빛의 방…86세 거장은 3년을 쏟아부었다 (2023. 11. 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