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의 육체적 사랑을
공론화한 뮤지션 사키마

노골적인 섹슈얼리즘이
퀴어팝의 트렌드가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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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 들린 타코야끼”는 작년 한국을 달군 유명한 밈이었습니다. 영국 남성 가수 샘 스미스가 신곡 ‘Unholy’에서 섹슈얼한 의상으로 춤을 추는 모습에 붙게 된 재밌는 묘사였죠. 덕분에 수위 높은 가사와 퀴어 문화를 내포한 곡이었음에도 한국 음원 차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며 또 하나의 친숙한 팝송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비교적 보수적인 한국에서도 퀴어팝을 수용하고 즐기고 있는 대세입니다. 특히 퀴어팝은 점점 섹슈얼리티를 자유롭게 개방하는 부분으로 변화하고 있죠. 오늘은 퀴어팝이란 장르와 이 섹슈얼리즘의 세태를 일찍이 선도했던 영국의 인디 뮤지션 ‘사키마’를 소개합니다.


퀴어팝의 등장

1973년, 데이빗 보위의 아이코닉한 패션 화보
1973년, 데이빗 보위의 아이코닉한 패션 화보. 이미지 출처: Masayoshi Sukita, Vogue

퀴어팝은 그 범주와 기준이 모호하기에 집단의 역사와 문화를 되짚으며 정의합니다. 1970년대 영국 뮤지션 티랙스와 데이빗 보위가 주도한 글램 록이 게이 해방 운동과 맞물려 팽창했고, 프레디 머큐리와 엘튼 존까지 더해져 젠더리스가 유행하게 됩니다. 또 사회 통념을 벗어나 은신처이자 아지트로 활약한 게이 클럽에선 춤을 곁들일 수 있는 하우스와 디스코 사운드를 즐기고 있었죠.

1980년대, 에이즈가 ‘게이의 질병’이라 낙인찍히며 암흑기에 빠지지만, 게이 문화를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퍼포먼스에 수용한 마돈나를 필두로 다시 천천히 성장세를 이어갑니다. 다양성과 포용성이 대두된 2010년대에 들어서자 퀴어 코드를 담은 곡들이 차트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보이며 대중적으로도 인기를 얻었죠.

다큐멘터리 영화 <진실 혹은 대담>(1991)에 출연한 마돈나와 게이 댄서들
다큐멘터리 영화 <진실 혹은 대담>(1991)에 출연한 마돈나와 게이 댄서들. 이미지 출처: HUFFPOST

우리는 흔히 퀴어를 소재로 하거나 집단의 정체성을 담은 곡을 퀴어팝이라 부르곤 합니다. 아래와 같은 곡을 예시로 들 수 있는데요.

  1. 퀴어의 사랑을 가사로 다룰 때: ‘여자와 키스해 봤는데 너무 좋았어’ 라는 가사로 화제를 모았던 케이티 페리의 ‘I Kissed a Girl’, 아버지에게 커밍아웃하며 ‘자신이 남자를 사랑함’을 적극적으로 드러낸 샘 스미스의 ‘HIM’
  2. 퀴어 문화를 내포하거나 고취하는 내용을 다룰 때: ‘넌 존재 자체로 아름다워’라며 모든 정체성을 긍정한 레이디 가가의 ‘Born This Way’, ‘폭풍 아래 있지만 그 위엔 늘 무지개가 떠 있어’라며 LGBTQ 커뮤니티에 위로를 전한 케이시 머스그레이브스의 ‘Rainbow’

쉽게는 켈라니, 킴 페트라스, 크리스틴 앤 더 퀸즈처럼 본인의 정체성이 퀴어라 밝힌 뮤지션의 노래를 퀴어팝이라 부르기도 하며, 더 넓게는 퀴어팬층이 두터운 뮤지션의 노래를 칭하기도 합니다. 막강한 게이팬덤을 가진 레이디 가가나 케이티 페리, 비욘세, 푸시캣돌즈, 칼리 래 잽슨 등을 포함하기도 하죠.


퀴어팝의 트렌드

트로이 시반, Something To Give Each Other
트로이 시반, Something To Give Each Other. 이미지 출처: 지니 뮤직
릴 나스 엑스, 'Montero' 뮤비의 한 장면
릴 나스 엑스, ‘Montero’ 뮤비의 한 장면. 이미지 출처: Lil Nas X

퀴어팝의 최근 동향은 규모가 큰 팝스타 샘 스미스와 트로이 시반, 릴 나스 엑스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성 정체성 혼란 속에서 유약하고 불안정한 소년이었던 트로이 시반은 점점 사랑을 긍정하며 발화해 작년 ‘Rush’로 정점을 찍었습니다. 남성의 다리 사이에 기대 활짝 웃고 있는 커버 사진과 ‘rush’라는 말이 게이들 간 성관계에서 유행하는 최음성분제를 뜻하기도 한다는 점에서 성적 향락과 도취를 넘치듯 담아낸 앨범이었습니다.

‘어그로 장인’이라 불리는 릴 나스 엑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엄격한 기독교 사상과 인종주의로 편견의 무게를 더 크게 체감하는 ‘흑인 게이’로서 그 속박을 정면으로 풍자했죠. ‘동성애를 하면 지옥에 간다’라는 유구한 저주에 ‘Montero’ 뮤비에선 직접 지옥행에 떨어져 악마와 성관계를 맺었고, 이후 ‘Industry Baby’에선 아예 알몸으로 춤을 추며 그들이 혐오하던 게이의 몸은 모두와 다를 게 없다는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Unholy' 라이브 무대의 샘 스미스
‘Unholy’ 라이브 무대의 샘 스미스. 이미지 출처: JC OLIVERA/WIREIMAGE

샘 스미스의 ‘Unholy’까지 포함하면 셋의 공통점은 성적 욕구를 감추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과도할 정도로 솔직하게 드러내며 욕망을 표면화하는 것은 근래 퀴어팝의 트렌드가 되었습니다. 레즈비언이자 젠더퀴어 뮤지션 킹 프린세스도 ‘Pussy is God’이란 곡에서 여성 간 성행위를 구체적으로 숭배하곤 했죠.

필자는 이 유행에 대해 한 인디 뮤지션을 주목하고자 합니다. 퀴어팝에 과감하고 꾸준하게 섹슈얼리즘을 첨가한 영국 뮤지션, 사키마입니다.


조명 받아야 할
퀴어 뮤지션 사키마

퀴어 뮤지션 사키마
이미지 출처: Courtesy Photo

찰리XCX의 ‘Boys’ 커버로 그를 처음 알았습니다. 노래하는 화자가 남자임을 증명하는 굵직한 저음이 성애의 상대로 남성을 특정했다는 것, 심지어 ‘바쁠 정도로’ 어떤 행위에 몰입하고 있었다는 수위에 잠시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영국의 싱어송라이터이자 프로듀서 ‘사키마(Sakima)’였습니다. 2014년 데뷔했고 일렉트로 알앤비 장르에 속하며,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1991년 생의 젊은 뮤지션입니다. 8살 때부터 피아노를 연주했고 고등학교 시절 프로듀싱에 입문하며 다양한 장르의 융합을 익혔습니다.

사키마
이미지 출처: sakimaVEVO

이성애를 표준으로 둔 대중음악에선 어렵지 않게 성적 뉘앙스를 느낄 수 있습니다. 신체를 품평하고 그 결합만을 위해 달려가는 서사는 아주 편하고 익숙하게 욕구 불만을 호소하죠. 하지만 성소수자의 성적 행위는 여전히 암묵적이고 음지화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대중문화가 퀴어친화적으로 발전하고 있다지만 성적인 상상을 유도하는 언급은 꺼리는 분위기, 사키마는 바로 이 점에 의문을 제시했습니다.

그렇기에 사키마가 다루는 주제는 ‘게이 섹스’입니다. 더 노골적일 수 없을 만큼 노골적으로, 성소수자의 육욕을 여과 없이 표현하는 게 그의 방식입니다. ‘he’, ‘him’, ‘boy’와 같은 단어로 대상의 성별을 명확히 하고, 성적 행위의 기쁨과 즐거움, 은밀한 패티쉬즘을 관능적으로 표현합니다.

1) 파격적인 수위로 단번에 선을 넘다 ‘Daddy’

동영상 출처: sakimaVEVO

대표적으론 그의 히트곡 ‘Daddy’가 있습니다. 나이 차가 나는 성숙한 남성을 가리키며 지배/복종의 패티쉬를 함유한 성적 은어 ‘daddy’를 전면화한 곡입니다. ‘나를 거칠게 다뤄줄 대디를 찾고 있어’라는 가사에 걸맞게 뮤비 속 사키마는 코피를 흘리며 남성과 진한 스킨십을 하는 누드씬을 보여줍니다.

경악할 만한 수위였지만 노래는 주목 받았습니다. “퀴어 음악은 재밌고 접근하기 쉬워야 한다”는 그의 철학에 맞게 가볍고 중독성 있는 멜로디가 잔상을 남기며 그 자체로 ‘좋은 노래’를 만들었기 때문이죠.

2) 억압의 역사를 언어화하다 ‘Polari’

동영상 출처: Sakima – Topic

그는 퀴어 커뮤니티를 대변하고 있다는 책임에도 진중히 임했습니다. 동성애가 불법이었던 1950~60년대 영국에서 게이들끼리 사용하던 암호화된 언어 ‘polari’를 끌어 올려 곡을 만들었습니다. 틴더와 같은 데이팅 앱에서 원나잇을 위해 메시지를 주고받는 상황을 묘사하며 ‘우린 지금 polari로 얘기하고 있어’라고 말하죠. 윗세대의 과거 은어를 현대의 연애 방식에 차용하며 퀴어의 역사를 잇는 시도였습니다.

3) 퀴어가 보편적 경험을 할 권리 ‘Virtus Domum’

동영상 출처: sakimaVEVO

사키마는 이성애자가 음악을 들으며 개인의 경험을 떠올리는 보편적 기회가 퀴어에게도 주어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는 누구든 쉽게 접할 수 있는 사적인 이야기, 이별과 상실, 후회에 대해서도 얘기합니다. ‘Virtus Domum’에선 열아홉 소년이 코카인에 취해 낯선 이로부터 강압적 행위를 당한 내용을 그렸습니다.

“술을 주는 대로 모두 마신 것, 그를 밀어내기엔 내가 너무 어렸다는 것 모두 내 잘못인지도 몰라”라며 자책하지만, 종국엔 “그런데 당신은 왜 나를 계속 만졌어? 왜 내가 당연히 받아줄 거라 생각한 거야? 난 당신 도움 같은 건 필요 없었어”라며 성적 의사 결정권과 주체성을 회복하는 모습을 보여줍니. 흔히 겪을 수 있는 상황에 대입해 공감하고 위로 받는 것, 사키마는 이 또한 하나의 권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4) 관능적이고 매혹적인 화법 ‘Show me’

동영상 출처: sakimaVEVO

한편 그의 음악이 사랑 받는 건 원색적이면서도 천박하지 않은, 세련되고 매혹적인 화법 때문입니다. 성관계란 애정과 호감이 동반되는 행위이기에 사키마는 이를 재치있고 달콤하게 포장합니다.

“우린 밤새도록 얘기 나눌 수 있어. 만약 말이 끊긴다면, 몸으로 대화하면 돼. 그게 더 시끄러울 테니까.” ‘Show Me’는 한 여름밤의 꿈을 꾸듯 몽환적인 분위기로 원나잇을 묘사합니다. 아침이 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상대에게 여지와 흔적을 남기는 멜로 드라마처럼 말이죠.

5) K-POP 작곡가

온유 <DICE>
온유 <DICE>, 이미지 출처: 지니뮤직
아이브 <ELEVEN (Japanese Ver.)>
아이브 <ELEVEN (Japanese Ver.)>, 이미지 출처: 지니뮤직

가수로서의 활동이 적고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의외로 우리에게 친숙한 음악가입니다. 독특한 분위기와 감각으로 케이팝 제작에도 참여했는데요. 온유의 ‘Love Phobia’와 아이브의 ‘Queen of Hearts’에서 작곡가로 활약했으며, 최근엔 런던에서 케이팝 송라이팅 캠프에 참여하는 등 활발한 관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자음을 섬세하게 활용하는 그의 스타일이 케이팝엔 어떻게 적용될지 기대되는 근황입니다.


INSTAGRAM : @sakimamusic


“저는 성욕에 미친 변태가 아니에요.”

_사키마

노골적인 수위 뒤에 자리한 사키마의 궁극적 사명은 퀴어의 사랑에 대한 지지입니다. 그는 퀴어 섹슈얼리즘을 수면 위로 내놓으며 누군가 부정하려 했던 행위의 실재를 가시화합니다.

그가 이런 대담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었음에도 큰 명성를 얻지 못한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언더그라운드에서 꾸준히 작업하고 있을 동안 퀴어팝의 위상과 트렌드는 점차 달라졌습니다. 퀴어 뮤지션들은 성적 욕구를 표현하는 데 거침없어졌고 대중 또한 이를 더 친숙히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샘 스미스의 요란한 복장이 ‘사탄 들린 타코야끼’라는 밈으로 무려 한국에서 사랑받은 것처럼 말이죠.

그러니 이 시기 다시금 조명받아야 할 뮤지션을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전교생이 3천 명인 학교에서 유일하게 커밍아웃한 소년이었기에 부정적 반응은 전혀 두렵지 않았다는” 용감하고 창의적인 뮤지션, 사키마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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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임

다 보고 난 후에야 '진짜 시작'을 외치는 과몰입 덕후.
좋아하는 게 많아 늘 바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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