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의 시선 위로
부유하는 청춘들

시선의 힘을 보여주는 영화
'워터릴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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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타인의 시선에 얼마나 민감한가요. 실제로는 그렇지 않음에도, 타자의 기대와 시선에 응답하려 짐짓 행동해 보신 적 있나요.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기에 시선의 알력에서 영원히 벗어날 순 없겠습니다. 하지만 내가 아닌 타인의 관계를 지켜보며 시선이 종용하는 묘하고 기분 나쁜 알력을 느낄 수는 있겠죠. 셀린 시아마 감독의 <워터릴리스>를 통해, 영화에 등장하는 사랑과 시선의 이미지들을 짚어보려 합니다.


폭발하는 감정을 포착하는
영화적 시선

<워터릴리스>
이미지 출처: ㈜영화특별시SM

셀린 시아마 감독의 <워터릴리스>는 두 여학생 마리와 플로리안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마리는 친구의 싱크로나이즈 공연에 방문했다가 우연히 플로리안을 보고 사랑에 빠지죠. 그 길로 마리는 플로리안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갑니다. 하지만 마리의 호기심 어린 시선은 남성들 사이에서 소위 ‘퀸카’로 여겨지는 플로리안에게 닿지 않아요.

<워터릴리스>는 애타는 마음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마리의 시선을 잘 포착해냅니다. 그의 시선이 뜨거워질수록, 둘의 사랑이 불가능할 거라는 예감이 객석으로 스며듭니다. 그리고 이 예감으로 인해 마리의 사랑은 쓰게 느껴집니다. 영화는 다양한 방식으로 마리의 마음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는데요. 마리가 플로리안의 집에 놀러 간 어느 날, 그는 쓰레기통에 버려진 사과를 주워들고 집으로 줄행랑을 칩니다. 그러고는 플로리안이 먹다 남긴 사과를 한 입 베어 물고 욕지기를 참죠. 영화적 사실은 그가 상한 음식을 먹었다는 것이고, 그로 인해 메스꺼움을 느끼는 것이지만, 이것은 마치 마리의 내면에서 작용하는 폭발적인 감정을 스스로 억누르는 것처럼 보입니다.


사랑을 지키려는 시선과
사랑을 연기하는 시선

<워터릴리스>
이미지 출처: ㈜영화특별시SM

<워터릴리스>의 내러티브를 견인하는 것은 ‘시선’입니다. 플로리안은 학급에서 ‘아무나 만나고 다니는, 조신하지 못한 여자애’로 취급당하죠. 그는 이 사실을 모르는 체하지만, 오히려 그 시선이 플로리안을 조종합니다. 타인의 시선과 기대에 맞춰 행동해야 하는 것처럼 행동하죠. 실제로 남자에게 관심이 없지만 짐짓 그런 체를 합니다.

마리의 사랑은 어떤 결말을 맞이할까요? 마리가 자신을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 플로리안은 마리와 키스를 나눈 뒤 ‘이제 알겠지, 그렇게 어렵지 않지?’라고 되묻습니다. 플로리안은 마리의 사랑을 아무것도 아닌 해프닝 같은 것으로 치부해 버리죠. 그 뒤로 플로리안은 남자친구에게 ‘처녀로 보이지 않기 위해’ 어떤 남성과 동침을 시도합니다. 마리의 도움으로 불행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플로리안을 차지하지 못한 남자친구의 왜곡된 마음은 엉뚱한 타인에게 향하게 됩니다.


타자가 종용하는
시선의 권력

<워터릴리스>
이미지 출처: ㈜영화특별시SM

싱크로나이즈와 수련꽃, 그리고 플로리안에게는 묘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수면 아래와 위의 모습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플로리안은 자신을 조신하지 못한 여자로 취급하는 타자의 시선을 경멸하면서도, 거기에 동화되어 조신하지 못한 여성으로의 가짜 연기를 펼칩니다.

플로리안을 통해 사회 혹은 시스템이 종용하는 묘하고 기분 나쁜 시선의 힘을 느낍니다. 플로리안은 마치 워터릴리스(수상식물 수련꽃의 영문)처럼 우아하게 부유하고 있지만, 그것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타인의 시선에 부응하기 위한 것이었죠. 그와 반대로 끝내 플로리안의 마음을 확인한 마리는 깊은 풀장을 찾아가 몸을 던져 잠수합니다. 그는 타인을 의식하며 수면 위로 예쁜 모습을 흉내 내지 않죠.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마주하는 것과 타자의 시선 위를 부유하는 것. <워터릴리스는> 그 사이로 피어나는 뜨거운 사랑의 시선을 포착해 내는 영화입니다.


어쩌면 너무나 많은 사람이 플로리안처럼 타자의 시선 속에서 죽을힘을 다해 헤엄치고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저 누군가의 관심과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그 수고스러운 물장구를 반복하면서요. 물속으로 뛰어드는 마리의 모습에서 필자는 따스한 용기를 마주하곤 합니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구태여 발설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숨기는 일도 없었죠. 자존감이라는 미명 아래 끝없이 ‘나’로 고착되기를 강요하는 이 시대에 진정한 자신으로 살아간다는 건 어떻게든 수면 위로 얼굴을 내미는 게 아니라 가라앉을 각오를 하더라도 타인을 깊이 사랑할 수 있는 용기에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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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일

차이를 없애버리려는 시도에 반해,
무엇과도 구별되는 세계를 찾아 제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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