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곡된 병
조울증

미디어는 조울증을
어떻게 그려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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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하반기 가장 화제가 되었던 드라마 하나를 꼽아보라면, 단연 넷플릭스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일 테다. 지금껏 쉬이 조명되지 않았던 정신병동 안에 감춰졌던 삶들을 바깥으로 꺼내보인 작품으로 회차마다 큰 호응을 얻었다. 특히 1화부터 조울증(양극성 장애)1)을 가진 환자의 이야기가 펼쳐진다는 점은 상당히 놀랍다. 조울증은 한국 사회에서 잘 다뤄지지 않았을 뿐더러, 대중에게 익숙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질환 자체가 대중에게 익숙하지 않을수록, 매체에서의 묘사는 대중에게 그대로 받아들여진다는 점이다. 즉, 매체에서 조울증의 현실을 입체적으로 반영하지 못할 경우, 대중은 조울증에 대한 편협한 사고방식을 가지게 될 수 있다. 따라서 필자는 해당 아티클을 통해, 미디어에서 다뤄지는 ‘조울증’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어떻게 형성되고 있는지, 그리고 조울증의 복잡한 면이 얼마나 잘 반영되고 있는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누드 상태로 춤을?

이미지 출처: 넷플릭스

우선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의 첫 번째 에피소드를 면밀히 살펴보자. 우아한 백조같은 삶을 살아온 오리나. 금수저에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고,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삶을 살아온 듯 보인다.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그녀의 위태로움은 상상을 초월한다. 어머니의 어긋난 양육 방식 아래에서 말 잘 듣고 착실히 노력하며 살아왔지만 정작 본인이 원하는 행복한 삶을 알지도, 살아보지도 못한 그녀. 조증 삽화를 겪으며 억눌린 욕망을 표현하고, 잘못된 성적 관계를 이어나가거나 누드 상태로 춤을 추는 등,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을 보인다. 결국 조울증 진단을 받으며 정신병동에 입원하게 된다.

해당 드라마는 조울증이 단순히 감정 기복이 아닌, 조증과 울증으로 이루어진 질환이라는 것을 서사를 통해 풀어낸다. 하지만 작은 자극에도 크게 반응하여 조증 상태로 변해버리는 등 조증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춘 모습도 보인다. 특히 누드 상태로 춤을 추는 장면에서는 과장된 연출이 사용되고, 조울증 환자는 예측 불허의 극단적 행동을 한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여지를 주었다. 조울증이 생소한 대중들에게 해당 에피소드가 어떻게 받아들여 졌을까. 조증에 더 다가간 장면들은 조증에 더 다가가버린 시청자들을 만들진 않았을까.


기이한 행동은
조울증 때문이야

이미지 출처: hypebeast

해외라고 조울증에 대한 미디어의 소구 방식이 다를까. 칸예 웨스트를 둘러싼 논란은 주로 그의 조울증과 연관된다. 작년 킴 카다시안과과의 이혼에 대한 기사에서도 ‘조울증 때문’이라는 헤드라인이 심심치 않게 보였다. 그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가 되어버린 것이다.

과거 파리 패션위크에서 인종차별 반대 슬로건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를 차용하여 ‘백인 목숨도 소중하다’라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등장해 공분을 샀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이후 여러가지 잡음이 일어날 때마다 미디어에서는 그의 행동을 조울증과 결부시키곤 했다.

그의 질환이 행동방식에 영향을 주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그리고 언행이 옳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모든 논란을 그의 조울증과 관련지어야만 했을까. 기이하고 이해할 수 없는 그의 행동이 모두 조울증 때문이라고 말해버리는 언론이 조울증에 대한 선입견을 강화하고 있지는 않은가.


있는 그대로 날 이해해줘

이미지 출처: imdb

뉴욕타임즈의 ‘Modern love’라는 칼럼의 ‘Take me as I am’이라는 에피소드 또한 조울증을 다루고 있다. 조울증을 앓고 있는 변호사 렉시에 대한 이야기다. 기분이 매우 좋던 조증 상태의 어느날, 렉시는 슈퍼마켓에서 제프라는 남자를 만나게 되고, 사랑에 빠진다. 둘의 첫 데이트 날이 다가오는데, 렉시는 다시 울증 상태에 빠지며 회사에도, 결국 약속에도 나가지 않게 된다. 점차 펼쳐지는 그녀의 이야기는 조증 상태 또한 곧잘 묘사하지만, 울증 상태도 섬세하게 묘사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유 없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울증 상태, 그리고 조증과 울증 사이에서 느끼는 큰 괴로움, 나아가 이를 치료하기 위해 노력하는 그녀의 용기까지. 제목대로 조울증을 있는 그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한 작품이다.


매체에서 조울증에 대해 과장되거나 편평한 묘사를 할수록 대중들은 조울증에 대해서 편협한 인식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이러한 편견의 강화는 질환과 환자들에 대한 실질적인 이해를 막고, 결국 그들에게 제대로 된 치료와 도움의 손길을 줄 수 없는 상황까지 초래한다.

그러나 모든 것이 그렇듯, 정신질환에 대한 이야기도 자주 노출되고 논의될수록 인식은 변해간다. 그렇다면 우리는 편협할지라도 조울증이 자꾸만 소비되기를 바라야 하는 걸까? 정신질환으로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례들이 익숙해질 만큼 잦아지는 요즘,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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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

쉽게 내뱉지 않기 위해 속을 채워갑니다.
부끄러움을 깨닫고 나아가려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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