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의 위기인가
종이책의 위기인가

한국은 정말 책과 멀어졌나
출판의 미래는 정녕 암울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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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자기계발을 다짐한다. 이는 비단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닌 전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다. 개인의 성장과 발전을 위한 다양한 방법들 중 ‘책’은 결단 이후 가장 능동적인 행동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손 한번 까딱하기만 해도 신묘한 영상들이 눈앞으로 배달되는 시대다. 크게 고심하거나 숙고할 필요 없이 가장 간단하게 새로움을 접할 수 있기 때문에 ‘독서’로 가는 길은 상대적으로 더 멀어 보인다. 그래서인지 독서 인구가 매 년 반토막 나고 있다는 기사는 새로울 것이 없다. 다행인 사실은 이 역시 비단 우리나라만 처한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지만, 그럼에도 심각하게 받아들일만한 건 그 내리막 경사가 우리나라만 유독 더 가파르다는 점 때문이다.

그 우려 때문일까. 감소하고 있는 독서율 관련한 미디어의 태도는 대부분 통계에 기반한 비판적 시선이 가득하다. 사실과 근거에 기반한 비판이야 언론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이지만, 사소한 문제는 그 비판의 대상이 대부분 ‘책을 읽지 않는 독자’라는 데 있다. 얼마 전 안티에그의 이수현 에디터의 ‘한국은 어쩌다 책과 멀어졌는가‘에 내재된 시각 역시 기존 매체의 논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읽지 않는 한국의 독자’를 상정한 이후 책의 효용을 전달하며 독서하지 않는 이들에게 책만의 가치를 설파한 바 있다.


우리는 과연
책을 읽지 않는가

책
이미지 출처: unsplash

문화체육관광부에서 2년마다 시행하는 국민 독서실태 조사는 말 그대로 국민의 ‘독서량‘을 가늠하기 좋은 자료로 가장 많이 활용된다. 많은 미디어들에서 ‘독서량의 감소‘를 언급할 때 근거로 삼는 지표이기도 한 이 국민 독서실태 조사에서 우리나라 성인의 연간 종합 독서율은 47.5%, 연간 종합 독서량은 4.5권으로 19년에 비해 독서율은 8.2%, 종합 독서량은 3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 지표에 의문을 제기할 여지는 없다. 그러나 책을 제외한 콘텐츠 시장으로 그 범위를 확대해 보면 어떨까.

국민 독서실태 조사에서 성인들이 책을 읽기 어려운 이유로 ‘다른 매체 콘텐츠 이용(26.2%)’이 증가했다는 점을 꼽았다. 이와 관련해 전자책 독서율은 오히려 2.5% 포인트가 증가했으며, 전자책을 서비스하는 ‘밀리의 서재’는 어느덧 500만 회원을 돌파했다. 또한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서비스 역시 월간 활성 사용자 수(MAU)가 600만 명을 돌파하는 등 전년도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했다고 하는 걸 보면, 한 권의 종이책을 완독 하는 독서율은 감소했을지 몰라도 텍스트 소비량은 오히려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

유튜브를 비롯한 영상 콘텐츠 시장의 비약적 성장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그중에서도 정보와 지식을 기반으로 한 채널들의 성장 역시 눈여겨볼 만하다. 방대한 책의 내용을 요약해서 구독자에게 전달하거나, 다양한 지식을 영상으로 쉽게 풀어서 설명하는 이들 영상 콘텐츠는 모객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출판 시장과는 반대로 연일 상종가를 치고 있다. 트래픽과 유료 전환이라는 두 가지 지표 모두 큰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책의 범위는
어디까지로 볼 수 있을까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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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종이책을 읽는 독자는 감소했을지 몰라도 다양한 형태로 지식 콘텐츠를 소비하는 비중은 오히려 더 증가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책을 읽지 않는 한국의 독자들’이라는 명제에 더 선명한 반론을 제기하기 위해선 ’독서‘라는 활동에서 그 매개가 되는 다양한 수단들 중 과연 어디까지를 책으로 볼 수 있을지가 관건이 된다.

국민 독서실태 조사에서도 기존의 종이책 외에 종이신문, 종이잡지, 웹툰, 웹진, 소셜미디어 역시도 독서의 영역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답변이 많았다. 이 같은 응답은 성인보다 학생에서 비율이 더 컸으며, 그중에서도 성인과 학생 모두 인터넷신문 읽기, 챗북(채팅 형식의 콘텐츠) 읽기 등도 독서의 범주에 든다고 응답한 비율이 적지 않았다. 심지어 유튜브 영상 역시 독서의 일환이라는 공감대 역시 적지 않은 터라 한 권의 책 외에 책을 통해 2차, 3차 창작된 결과물 역시 책의 일종으로 사람들은 인식하고 있다. 과연 우린 여전히 종이책만을 책으로 규정해야 할까. 그 인식이 2023년에도 여전히 유효한 것이 맞는지, 이제는 공론화될 필요가 있다.

독서를 위한 수단으로 ‘책’이 유일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다양한 방식으로의 독서가 가능한 데다가, 콘텐츠를 담아낼 수 있는 수단 또한 이전보다 훨씬 다양해진 지금이야말로 독서의 본연의 의미를 새롭게 담아낼 사회적 여건이 마련된 셈이다. 한 달 또는 1년에 읽는 종이책, 그것도 완독 기준으로의 분량을 독서량과 동일하게 인식하는 좁은 틀부터 넘어 독서에 대한 개방적이고 유연한 시각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 인식의 옳고 그름은 차치하고서라도 책이라는 외피를 벗겨내 그 안에 내재된 콘텐츠를 하나하나 발라내어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롱블랙’, ‘폴인’, ‘북저널리즘’ 등과 같은 텍스트 기반 콘텐츠 매체의 출현과 그것에 폭발적으로 반응하는 대중들의 선호는 책이라는 물성에 국한되지 않는 콘텐츠 자체의 소비력을 증명한다. 앞서 질문한 ‘책의 범위’에 대해 책의 본질이 종이라는 물성에 있는 것인지, 혹은 그 안에 담긴 콘텐츠에 있는지로 풀어 자문해 본다면 그 해답이 조금은 명확해지지 않을까. 분명한 건 텍스트의 강점과 힘은 종이책을 읽지 않는 지금도 여전하다는 것이겠다.


출판의 위기인가,
혹은 종이책의 위기인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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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점에서 음악 시장의 사례는 눈여겨볼 만하다. 음악 시장 역시 한 장의 CD로 전 곡을 모두 구매해야 했던 과거를 지나 개별 음원의 시대로 진입한 지 오래다. 시대적 요구와도 같았던 디지털화의 흐름 속에서 CD 단위로 구매해야 했던 기존의 시장에서 음원 단위의 스트리밍 시장으로 체제를 전환해야 했고, 과거의 음반이 아닌 음원 중심으로 체제가 재편되면서 결국 쪼개진 개별 음원 단위의 구매가 보편적인 소비 형태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렇듯 음악의 본질이 음반에 있지 않고 음원 자체에 내재되어 있다는 단순한 사실은 ‘그렇다면 책의 본질이 무엇이냐’를 생각해보게 한다.

책이란 결국 콘텐츠를 담고 있는 그릇이다. 본질은 그 그릇 안에 담긴 내용물이며 그 그릇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외형을 달리해왔다. 앞선 통계 자료에서 알 수 있었듯, 종이책이라는 그릇을 찾는 사람들의 숫자가 감소하고 있는 건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책의 단위를 콘텐츠로 쪼개고 그 배포 채널과 방식을 종이책에 국한하지 않았을 때 콘텐츠는 여전히 건재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럼에도 지금을 책의 위기로 진단하는 출판계에서 바라보는 심대한 위기의 징후로, 몇 십만 부 이상의 판매를 달성한 메가 히트작이 서점가에서 사라졌다는 점을 꼽는다. 그러나 빠르게 트렌드가 변화하고 그에 따른 취향 역시 점차 파편화되고 있는 요즘, 출판계를 비롯한 모든 산업 분야에서 메가 히트작은 출현하기 어려워졌다. 또한 단순히 가격 할인만으로 대중들을 설득하기도 어려워졌기 때문에 대부분의 브랜드나 기업들에선 단순 마케팅을 넘어 브랜딩을 구축하며 소비자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는 시도들을 쌓고 있다.

그러나 출판의 경우 이 같은 다양한 시도와 새로운 기획에서 다른 매체들 대비 큰 설득력을 독자들에게 주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단순한 발행인을 넘어 오랜 세월 동안 수면 아래에서 쌓아온 독자들과의 관계를 수면 위로 올리는 시도와 더불어 잘게 소분된 텍스트의 장점을 통해 사람들에게 다가가야 한다. 종이책을 읽지 않는 독자를 탓하기에 앞서 그들이 선호하는 매체를 통해 책의 장점과 ‘읽어야만 하는 이유’를 설득해야 한다. 한 발 앞선 새로운 기획과 화두를 통해 ’그럼에도 굳이‘ 사람들이 책을 읽도록 만들어야 한다. 다른 산업들이 모두 그러한 노력을 기울이듯 말이다.


종이책의 반격은 가능한가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의 출판을 ‘데이터 퍼블리싱’이라고 재정의한 일본 출판사 고단샤의 메시지는 눈여겨볼 만하다. ’출판이란 무엇인가 ‘에 대해 일본 출판사 고단샤는 말한다. 디지털 시대의 출판은 지금까지와 다르다고, 달라야 한다고 말이다. 지금까지 출판은 종이를 기반으로 한 상품과 잡지의 광고 상품을 판매하는 행위로 귀결되었다. 그러나 이제 더는 아니다. 출판이 곧 종이책을 판매하는 행위로만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 출판의 판(版)은 ‘데이터’라고 할 수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출판은 ‘데이터의 퍼블리싱’이라고 고단샤는 재정의했다. 데이터를 중심으로 출판사업이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출판사는 종이, 인쇄, 서점이 유일한 시스템이라는 사고에서 탈피를 해야 하며, 디지털의 개념을 제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종이책을 그대로 전자책으로 만드는 것이 출판의 디지털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종이책을 읽는 독자를 증대시키기 위해선, 출판계 역시 기술의 발달과 함께 변화하고 있는 독자들의 기호와 그것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포맷 개발이 필요하다는 결론으로 수렴한다. 그런 면에서 2023년 초 출간되며 사람들의 큰 관심을 받은 ‘세이노의 가르침‘의 사례는 눈여겨볼만하다.

세이노의 가르침
이미지 출처: 데이원

2000년도 초부터 일간지 칼럼에 기고한 글들과 커뮤니티 내에서 발행한 글들을 모아 엮은 이 책은 출간 직후 전자책을 무료로 배포하는 등, 출간 과정과 마케팅 모두 이례적인 방식이었다. 특히 무료로 전자책을 배포하는 방식은 출판계에선 전례 없던 일로 이로 인한 저조한 종이책 판매를 우려했으나, 결과적으로 무료 배포라는 방식을 통해 종이책 판매 상승을 이끈 것으로 나타났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종이책 판매와 무료 전자책 다운로드 비중이 64.8% 대 35.2%로, 무료라는 선택지가 있음에도 종이책 판매가 2배 가까이 높았다. 기존 출판사들이 종이책 판매량을 확보하기 위해 먼저 종이책을 충분히 판매한 후에 전자책을 출간하는 일반적인 유통 형태와 상반된다. 전자책의 높은 화제성이 오히려 소장본 개념인 종이책 판매까지 견인한 사례다. 이처럼 시의성 있는 책을 ‘기획’하고 ‘발견’되도록 한다면 독자들은 반응한다는 사실을 ‘세이노의 가르침’의 사례는 증명한다.


책의 위기는 출판의 본질을 외면하고 있는
보수적 시선에서 비롯되는 것 아닐까

결국 출판 산업의 부진을 ‘책을 읽지 않는 독자’에게 돌리기보다 새로운 기획과 스토리 발굴의 계기로 삼아야 하고, 출판사마다 차별적이면서 고유한 브랜딩에도 힘을 쏟아야 하며 파편화된 취향의 독자들을 엮을 수 있는 커뮤니티와 새로운 기획을 고심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이 전제될 때에야 비로소 변화하고 있는 환경 속 독자들의 니즈를 충족시킬 수 있는 책이 출간될 수 있으며, 결국엔 사람들의 선택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단순한 사실을 ‘고단샤’의 사례와 ‘세이노의 가르침’을 통해 배울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위기의 본질은, 책의 내용보다 외피에 천착하고 있는 보수적 시선이 아닐까. 종이책의 위기를 읽지 않는 독자에게 돌린다 한들 달라지는 것은 없다. 2년마다 갱신되는 참담한 감소폭을 계속 마주하지 않기 위해서는 출판의 결과가 곧 종이책이라는 단편적 시선에서 벗어나 ‘독자’를 봐야 한다. 독자가 어디에 있는지, 어떤 콘텐츠에 반응하는지 살피며 그것을 양질의 책으로 환원해야 한다. 퍼블리싱의 재정의를 통해 방식의 유연성을 확보하여 새로운 독자층을 발굴하는 한편, ‘종이책을 읽지 않는 독자’들까지 설득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수백 수천년 간 이어져 온 출판의 정수이자 종이책 독자들을 모으기 위한 반격의 실마리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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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성

책을 읽고 곱씹으며 생각을 정리합니다. 그리곤 글을 씁니다.
다양한 이야기를 담으려고 합니다. 재미를 발굴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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