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힐을 신은
우크라이나 남성 그룹 카자키

전쟁 국가가 아닌
문화예술 선도국으로서의 우크라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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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 침공이 만 2년째를 앞두고 있습니다. 신냉전이라 불리며 국제사회를 떠들썩하게 했고, 세계의 곡물창고로 활약했던 우크라이나의 고립으로 인해 식료품값 상승과 주가 불안정이 이어졌습니다. 덕분에 그 어느 때보다 낯선 나라의 존재를 일상에서 체감했던 시간이었죠.

근 몇 년간, 우리가 우크라이나에 대해 접할 수 있는 정보는 모두 전쟁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사태가 발발된 역사적 배경, 피습으로 무너진 도시, 참혹하고 처절한 학살의 풍경뿐이었죠. 오늘은 우크라이나를 ‘전쟁 국가’가 아니라 음악과 댄스씬에 영향을 끼친 ‘문화예술’의 나라로서 소개하고자 합니다. 세계적인 실력으로 파격적인 힐 댄스를 선보였던 그룹, 카자키를 통해 풀어 갑니다.


카자키

카자키 Kazaky at Anouki Bicholla Fall 2011/12 UFW
이미지 출처: Kazaky at Anouki Bicholla Fall 2011/12 UFW

카자키(Kazaky)는 2010년 데뷔해 2019년 마지막 족적을 남긴 우크라이나 남성 뮤지션 그룹입니다. 활동 기간 중 3~5인조의 멤버 조율이 있었고, 모두 발레를 기반으로 한 전문 무용수 출신입니다. EDM이 주류인 유럽답게 전자음을 활용한 신스팝을 기반으로 합니다. 첫 발매한 싱글 ‘In the Middle’이 키이우의 마이웨이 댄스 어워즈에서 ‘올해의 브레이크상’을 받으며 주목받았고, 이어진 대표곡 ‘Love’가 유튜브에서 수백만 조회수로 바이럴을 타며 세간에 알려졌습니다.


스틸레토 힐 위에서

그룹 정체성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대표곡 ‘Love’. 동영상 출처: kazakyofficial

14cm(5.5인치) 힐, 밀착된 가죽 레깅스, 가슴과 복근을 선명히 드러낸 의상. 그리고 그것을 걸친, 십수 년의 훈련으로 견고히 짜인 무용수의 몸. 선정적이라기보단 조각처럼 웅장하고 우아한 비주얼이었습니다.

카자키는 ‘여성스럽다’고 취급당하던 것들의 고유한 미를 보여줬습니다. 얇고 높은 스틸레토 힐이 주는 관능적인 카리스마, 타이즈가 강조한 신체의 곡선 등은 성적 편견을 담지 않고 그 사물 자체에만 집중한 올곧은 시선이었습니다. 여성의 것으로만 치부되던 것을 남성이 장착했음에도 희화하거나 모방하지 않았죠.


전위적인 퍼포먼스

동영상 출처: kazakyofficial

성적 규범에 갇히지 않고 자연적인 육체미를 강조하는 태도가 그들의 우수한 실력과 만나자, 폭발적인 시너지를 발휘했습니다. 본디 오랜 훈련을 축적한 댄서들이었기에 제한 없는 상상력으로 독창적이고 실험적이면서, 고품질의 작품을 만들어 냈습니다.

‘What You Gonna Do’에선 흑과 백, 선과 대칭을 강조해 조형미를 보여줬고, 구속복을 한국 탈춤의 한삼처럼 활용했습니다. ‘Pulse’에선 교도관의 곤봉으로 정제미를, ‘Milk-Choc’에선 1980년대 디스코와 에어로빅 비디오를 완벽히 재현했죠. 절도 있고 강인하며, 기품 있고 섹시한 퍼포먼스였습니다.

그룹의 존재감이 드러나자 여러 곳에서 러브콜이 밀려들었습니다. 중성적이고 세련된 이미지는 패션쇼 런웨이에서도 크게 선호되었죠. 특히 2012년 마돈나 ‘Girl Gone Wild’에 댄서로 출연한 것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유명 남성 모델들을 전라로 대거 등장시키며 여성의 뜨거운 욕망을 그려낸 뮤직비디오는 카자키의 방향성과도 잘 맞아떨어졌죠.


성적 개방,
페티시즘의 양지화

동영상 출처: kazakyofficial

‘육체’를 근원에 둔 만큼 카자키가 다루는 소재에서 ‘섹슈얼리즘’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성적 욕구를 원초적이고 간결하게 표현합니다. “F**k, Money, Trend, Fame, Sex (‘Love’ 中)”를 나열하며 욕정을 발상시키는 육감미를 여과 없이 보여주죠.

특히 음지에 있던 성적 페티시즘을 상당히 구체적인 방식으로 구현합니다. 공항 보안검색대에서 몸을 더듬어질 때의 간질거리는 긴장감(‘Touch Me’), 경찰이나 교도관처럼 제복을 입은 자들에게 압도적인 지배를 받고 싶다는 굴복욕(‘Pulse’), 철창에 감금한 채 짐승처럼 분출된 생욕을 은밀히 지켜보고 싶다는 관음증(‘Crazy Law’)처럼 말이죠.

이 기조가 됐던 ‘억압의 반작용으로 더욱 맹렬히 솟구치는 욕망’은 역시 LGBTQ 커뮤니티와 이어집니다. 카자키도 퀴어 팬덤의 많은 지지와 호응을 얻었는데요. 아티스트 또한 “자유와 평등이 창의성의 영감”이 된다고 화답하며, 1970~1980년대 퀴어 예술가들의 주요 창작지였던 뉴욕의 ‘클럽 57’에서 공연하기도 했습니다.

또 섹슈얼한 퍼포먼스 탓에 게이일 것이라 속단하는 추측에 대해선 멤버들의 성 지향성을 밝히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우리는 어떤 성 지향성에 대해서도 선입견이 없으며, 작품은 오직 춤과 움직임에 관한 것”이라고 말했죠.


남성의 힐 댄스

동영상 출처: kazakyofficial

그만큼 카자키가 댄스씬에 끼친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남성의 힐 댄스라 한다면 게이 클럽의 볼룸 문화에서 영향을 받아 2000년대 초반 미국 안무가 브라이언 프리드먼(Brian Friedman)이나 존테 모닝(Jonte’ Moaning), 2014년 프랑스의 야니스 마샬(Yanis Marshall) 등을 대표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데요.

한국에선 2015년 댄스 서바이벌 ‘댄싱9’에서 제이블랙이 걸리쉬댄스를 추는 또다른 자아 제이핑크를 소개하며 본격적으로 알려졌습니다. 이후 가수 조권이나 춤에 대한 대중의 높은 관심도를 통해 남성 댄서가 하이힐을 신은 모습은 그리 경악할 만한 일이 아니게 되었죠.

이 세태에서 카자키는 장르의 수준을 끌어올리고 공식화하는 역할을 도맡았습니다. 발레로 다져진 고도의 테크닉으로 퀄리티를 상향시켰고, 기성 노래에 춤을 추던 댄서와 달리 본인들의 곡에 안무를 창작하며 오리지널리티를 강화했죠. 이는 남성의 힐 댄스가 흔히 ‘여장’하고 추는 춤이라는 성적 규범도 무력화시켰습니다.


INSTAGRAM : @kazakyofficial


카자키는 꾸준히 앨범을 내다 2016년 잠시 재충전의 시간을 가진 뒤, 2019년 ‘Push’라는 곡을 마지막으로 잠정적 활동 중단 상태입니다. 멤버를 보강하고 보깅 장르를 차용한 야심찬 복귀였지만, 곧 팬데믹이 터지고 이후 국가적 위기까지 봉착합니다. 현재는 각자의 삶에 충실하며 작곡가로서 곡을 쓰거나 타국으로 몸을 옮겨 활동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데뷔 때부터 오랜 시간 이들을 지켜보며 왜 능력과 잠재력만큼의 인기를 누리지 못하는지 속상해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침공 직후, 너무나 한번에 무너져 버린 나라를 보며 문화예술에도 국적이란 장벽이 있다는 걸 새삼스레 체감했습니다.

전쟁을 통해 들여다보게 된 낯선 나라엔 생각보다 훨씬 급진적이고 개방적인, 회자될 만한 예술가들이 많습니다. 전쟁의 얼룩이 지워진 우크라이나의 문화예술은 어떤 모습일지, 더 많이 기대되는 날입니다.


박태임

박태임

다 보고 난 후에야 '진짜 시작'을 외치는 과몰입 덕후.
좋아하는 게 많아 늘 바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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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카자키 ‘Greatest Songs’ 앨범 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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