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사의 아픔을 담은
그래픽노블 3권

흑백 그림에 새겨진
생생한 개인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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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흥행한 영화 <서울의 봄>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본 이유는 무엇일까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합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도 하지요. 정말인지 확신할 수 없지만 잘 만들어진 콘텐츠를 통해 직접 겪지 않은 역사를 간접 경험하는 이유는 배우고 기억하고 싶은 마음 때문 아닐까요? 알아야만 할 것 같은 이야기, 잊어서는 안되는 역사라는 생각이 드니까요.

오늘 소개할 만화는 1930년대 폴란드와 중국, 그리고 조선에서 살던 세 사람의 실화를 다룬 이야기입니다. 이들은 나치에 의해 아우슈비츠에 끌려갔다 살아 돌아온 유태인, 임시정부의 일원으로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는 부모 밑에서 태어나 일본의 수많은 공습에서 살아남은 아이, 심부름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붙잡혀 위안부가 됐다가 생존한 여성이었습니다. 그 어떤 역사책보다 자세하고 생생한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가 흑백 그림과 함께 시작합니다.


살아남은 자의 괴로움

『쥐』, 아트 슈피겔만

『쥐』, 아트 슈피겔만
이미지 출처: 아름드리미디어

만화가인 아들이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아버지 블라덱의 이야기를 책으로 썼습니다. 유태인을 쥐로, 독일인을 고양이로 표현한 시각적 은유는 인간의 비인간성을 효과적으로 보여줍니다.

체코 출신의 블라덱은 폴란드 백만장자의 딸 아냐와 결혼합니다. 장인의 도움 덕분에 직물 공장을 운영하며 풍족하게 살 수 있었죠. 하지만 호화로운 생활은 나치에 의해 한순간에 깨집니다. 블라덱은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아야겠다는 일념으로 관리자를 회유하고 꾀를 내기도 하면서 결국 생존합니다. 그러나 동화처럼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지 못했습니다.

남은 평생 악몽에 시달리며 잠에서 깨기 일쑤였고 살았다는 안도감 못지않은 죄책감에 괴로워했습니다. 그런 아버지와 다르게 전쟁을 경험하지 않았을 뿐더러 미국에서 자유롭게 자란 아들은 여전히 수용소의 어두운 기억에 사로잡힌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강압적인 생활 탓에 건강과 절약에 집착하며 자신의 생존방식을 강요하는 모습이 대표적이었죠. 작가는 아버지와의 관계를 세대 차이를 넘어선 세대 간의 괴리라고 표현합니다. 이는 누구의 탓도 아닙니다.

그래픽 노블 최초 퓰리처상 수상작이자 그래픽 노블 계의 고전이라 꼽히는 이 만화는 나치의 유태인에 대한 차별과 학살을 낱낱이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비극적인 역사가 개인의 삶에 어떤 영향까지 끼칠 수 있는지 섬세하게 표현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습니다. 이 만화를 읽기 전까지는 가늠할 수 없었던 이야기입니다.


『쥐』 구매 페이지


아직 끝나지 않은 소녀의 이야기

『풀』, 김금숙

『풀』, 김금숙
이미지 출처: 보리

위안부 피해자인 이옥순 할머니의 이야기를 담은 만화입니다. 이 책은 35 개국에 번역 출판되며 위안부의 진실을 전 세계에 알리는 데 일조했고 2020년 ‘만화계의 오스카’라고 불리는 하비상을 받았습니다.

이옥순 할머니는 가난했던 어린 시절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을 부러워했습니다. 학교를 보내준다는 말에 수양딸로 갔던 우동집에서 식모살이를 하게 된 그날부터 소녀 이옥순의 삶은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이 됩니다. 다시 집으로 데려다준다기에 따라간 곳은 울산에 있는 기생집이었습니다. 식모살이를 하며 심부름을 다녀오는 길에 순사인지 군인인지 알 수 없는 조선인 남성 두 명에 의해 다짜고짜 어디론가 끌려갔습니다. 한참 기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중국 연길. 그렇게 위안부가 되었다는 할머니 말은 재차 되묻고 싶을 정도로 황당하기 그지없습니다.

작가는 실제로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나눔의 집에 방문합니다. 만화는 작가가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내적으로 갈등하는 장면까지 고스란히 담았습니다. 이옥순 할머니는 존엄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던 위안소 생활과 뒤늦게 알게 된 해방, 우여곡절 끝에 한국으로 돌아오기까지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천천히 들려줍니다. 마치 할머니 할아버지의 옛날이야기를 듣는 것처럼요. 그 이야기가 상상도 못할 만큼 끔찍하고 슬플 뿐입니다.

여전히 일본에게 사과받지 못한 현재에서 만화는 끝납니다. 이옥순 할머니는 2022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절판된 이 책은 올해 개정판이 출간될 예정입니다.


『풀』 펀딩 페이지


모두의 희망이 된 아이

『제시이야기』, 박건웅

『제시이야기』, 박건웅
이미지 출처: 우리나비

1938년 중국 장사에서 제시라는 이름의 여자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아이의 부모인 양우조, 최선화는 나라를 뺏긴 조선 사람이었고, 임시정부의 일원인 독립운동가였죠. 중국에서 시작한 결혼 생활과 육아는 피난의 연속이었습니다. 날이 맑을 때 일본 전투기가 더 자주 날아다녀서 비가 오면 오히려 마음이 놓이곤 했습니다. 제시는 임시정부의 이동경로를 따라 일본군의 공습을 피해 장사, 광주, 유주, 기강, 중경까지 중국 대륙 깊숙이 돌아다닙니다.

중국에 있는 조선인들이 하루하루 암흑 속을 걸으며 사는 동안 제시의 눈짓과 몸짓, 말 한마디는 임시정부 식구들의 큰 기쁨이자 지키고 싶은 미래였습니다. 제시는 전쟁도 폭탄도 독립도 죽음도 아무것도 모른 채 몸을 움직이고 말을 배우며 날마다 세상을 깨칩니다. 부모는 그런 딸을 보면서 살아 있음에 감사하고 희망을 잃지 않습니다. 남의 집 문턱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게 된 제시의 모습을 보며 분산된 독립 단체들의 화합을 생각하고, 아픈 곳 없이 튼튼하게 커가는 딸을 보며 개개인이 힘을 합쳐 만드는 튼튼한 나라를 꿈꿉니다.

부부가 남긴 육아 일기인 『제시의 일기』를 바탕으로 한 이 만화는 열악한 상황에서 아이를 낳아 키우던 초보 엄마 아빠의 이야기이자 당시 조선 모든 부모의 이야기일 것입니다. 수많은 공습에도 살아남은 제시 가족은 1946년 마침내 부산 땅에 도착합니다.


『제시의 일기』 구매 페이지


이 만화들을 읽다 보면 2차 세계 대전과 제국주의라는 거대한 역사보다 한 개인의 삶이 가까이 다가오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평범하게 꿈을 꾸고 미래를 그리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희망 한 조각 찾기 어려운 지옥 같은 생의 한 가운데에 떨어졌습니다. 그들은 버텨내고 살아낸 인생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놓습니다. 붉은 피 한 방울 표현되지 않은 흑백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곳곳에 스민 비참한 하루하루와 삶에 대한 처절한 의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잊어버리면 안 되는 역사는 어느새 잊을 수 없는 어떤 사람의 이야기가 됩니다.


김자현

김자현

그림과 글, 잡다한 취향의 힘으로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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