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베니스 비엔날레
선정 작가는 무엇을 말하는가

향을 전시하는 방법
보이지 않는 것을 탐구하는 구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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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에 한 번씩 우리를 찾아오는 미술 축제가 있습니다. 예술계 최대 축제 중 하나인 베니스 비엔날레입니다. 참여하는 국가마다 전시 공간을 열어 현대미술을 소개하는 자리입니다. 올해 60회를 맞이한 베니스 비엔날레의 주제는 ‘이방인은 어디에나 있다(Foreigners Everywhere)’ 입니다. 이번 한국관은 단독 작가로 구정아 작가가 선정되었습니다. 일찍부터 파리 조르주 퐁피두 센터, 뉴욕 디아 비콘 등 해외 유명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며 이름을 알린 구정아 작가. ‘향’, ‘기억’과 같은 보이지 않는 요소에 집중해 독특한 이야기를 선보이는 구정아 작가의 작품 세계를 소개합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주는 작가

구정아 작가
구정아 작가, 이미지 출처: Courtesy of PKM Gallery. Photo by Kim Je Won

예술 작품 하면 흔히 떠오르는 모습이 있습니다. 백색의 전시 공간, 가지런한 캔버스에 물감으로 색칠된 그림들이 연상됩니다. 예술은 한계를 짓고 정의를 내리기 어렵다고 말하지만, 우리도 모르는 새에 통념적인 모습이 자리 잡은 것이죠.

“Oslo”, 1998
“Oslo”, 1998. 이미지 출처: Guggenheim Museum

그러나 구정아 작가의 작품을 보면 과연 우리가 알고 있던 게 예술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작가는 눈에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는 것을 주제로 탐구합니다. 미국에서 열린 ‘미완의 역사’ 전시에서 작가는 전시가 설치되는 동안 갤러리 구석에 몸을 숨겼습니다. 전시가 오픈되면 구조물은 없어지고 작가가 누워있던 종이 더미의 흔적만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또 다른 전시에서는 작은 옷장에 좀약을 넣어둔, 말 그대로 냄새를 설치한 작품 ‘스웨터의 옷장’을 선보였습니다. 이처럼 작가는 한편에 지워 둔 ‘기억’, 후각으로 감각하게 되는 ‘향’과 같은 주제를 탐구합니다. 작품들은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 있지만 없는 것과 같은 서로 반대의 두 개념이 만나는 순간을 보여줍니다.

“Density”, 2023
“Density”, 2023. 이미지 출처: Courtesy of the artist & PKM Gallery.

작가는 그저 평범한 것은 없다(Nothing is merely ordinary)라고 말합니다. 작품을 만드는 재료 또한 일상 속에서 흔히 보는 것, 예술의 재료나 작품이라고 여기지 않는 것들을 탐색하고 선택합니다. 이를테면 자석이나 나프탈렌, 아스피린 같은 것들입니다. 이러한 재료를 활용해 회화부터 드로잉, 조각, 설치,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형태로 실험을 계속합니다.


온몸으로 느끼는 작품

«아정구 ajeongkoo» 전시 전경
«아정구 ajeongkoo» 전시 전경, 이미지 출처: 아트선재센터

구정아 작가는 소리, 향기, 빛, 온도와 같은 만질 수 없는 요소를 다룹니다. 그래서 보는 순간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작품과의 교감을 가능하게 합니다. 단순히 가만히 서서 작품을 보는 대신 향을 맡고 작품을 만지고 경험하며 공간과 상호작용하게 합니다.

작가의 대표 작품인 ‘OTRO’ 프로젝트에서도 이러한 작품과의 교감이 잘 드러납니다. 2012년 구정아 작가는 프랑스 바시비에르섬에서 도시재생 프로젝트에 참여합니다. 바시비에르섬은 프랑스의 중심지와 멀리 떨어져 있고, 섬의 많은 부분이 그린벨트로 지정된 곳이었습니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많은 젊은 세대가 떠난 낙후된 섬을 되살리는 프로젝트였습니다.

작가는 사람들의 관심을 환기하면서 주변 경관과 어우러질 수 있는 공공미술을 생각했습니다. 근처 학교에서 미술관을 견학하는 수업이 있는 것을 고려해 어린 학생들도 지루하지 않고 즐겁게 경험할 수 있는 예술을 고민했습니다. 동시에 이탈리아 건축가 알도 로시의 유작인 아트센터, 그 근방의 넓은 정원과 매끄럽게 어울리길 원했습니다.

“OTRO”, 2008-2012
“OTRO”, 2008-2012. 이미지 출처: KÖNIG GALERIE, photo-by-LEscaut

이러한 고민을 담아 작가는 스케이트파크를 만들었습니다. 오가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만지고 이용할 수 있는 상호작용형 작품이었습니다. 특히 밤이면 빛을 내는 야광 스케이트파크로 작업합니다. 독특한 점은 밤을 밝히는 이 빛이 낮에 흡수한 빛이라는 점입니다. 낮에 자연의 햇빛과 조명을 통해 흡수한 빛 에너지를 어두운 밤에 다시 뿜어내는 인광을 활용한 작품입니다.

“ARROGATION”, 2016
“ARROGATION”, 2016. 이미지 출처: KÖNIG GALERIE, BIENAL DE SÃO PAULO

많은 사랑을 받은 스케이트파크는 영국 리버풀 비엔날레, 브라질 상파울루 비엔날레, 밀라노 트리엔날레에도 소개되며 작가의 대표작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사람들이 직접 스케이트를 타며 즐기는 작품인 만큼 만드는 과정에서 공간을 자주 즐기게 될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기도 했습니다. 브라질 상파울루 비엔날레 당시엔 도시의 스케이트 보더들에게 많은 메일을 받기도 합니다. 상파울루는 스케이트보드가 대중화된 도시이지만 이를 즐길만한 시설이 없고, 작가의 작품 또한 비엔날레 이후 철거될 예정이었습니다. 보더들 사이 작가의 스케이트파크를 철거하면 안 된다는 반대 운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구정아 작가의 작품은 이를 보고 경험하는 이들과 상호작용합니다. 나아가 작품을 탄생시킨 작가 또한 작품을 매개로 많은 이들과 소통하고 하나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 앞에서 우리는 예술 작품의 의미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작가는 일상에서 예술을 경험하면서 예술의 의의를 생각하게 하고, 같은 사회를 살아가는 구성원들과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작품을 보여주었습니다.


한국의 향을 찾아서

이처럼 구정아 작가는 보이지 않는 것을 주제로 작품, 그리고 그것이 놓인 공간과 특별한 경험을 하게 합니다. 미술계 대표적인 축제로 손꼽히는 베니스 비엔날레, 올해 한국관에서 작가는 어떤 작품을 선보일까요?

구정아 작가
구정아 작가, 이미지 출처: 노블레스닷컴

작가는 ‘오도라마 시티(Odorama Cities)’라는 주제를 선택했습니다. 오도라마 시티는 향기를 뜻하는 ‘Odor’와 드라마의 ‘rama’가 합쳐진 단어입니다. 이전부터 탐구해온 향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전시입니다. 다양한 향들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전시 공간 곳곳에 숨어 관람객들을 맞이할 예정입니다. 여러 향이 얽히며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기도, 불편한 느낌을 주기도 할 것입니다.

특히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한국의 향’을 다룹니다. 한국의 향이란 한국에서 나고 자란 한국인들에게 익숙한 향만을 뜻하는 것일까요?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의 주제가 ‘이방인은 어디에나 있다(Foreigners Everywhere)’인 만큼 작가는 한국의 향이라는 주제의 범위를 넓힙니다. 한국인 뿐만 아니라 한국을 찾아온 외국인, 타국으로 향한 입양아, 한국에 사는 외국인 근로자, 새터민 등 다양한 이들을 불러옵니다.

이처럼 사람들이 한국에 관해 지닌 각기 다른 경험과 이야기가 향을 통해 표현됩니다. 실제 한국의 향과 관련된 다양한 기억을 채집하기 위해 설문을 진행했습니다. 남북한에 거주하는 사람들부터 한국 외교부, 한국계 입양인 커뮤니티, 서울 외신 기자 모임 등을 통해 600개의 이야기를 수집합니다. 그중 한 참여자는 ‘할머니가 모시던 제단 위 향냄새가 절여진 밥 냄새’로 1990년대를 떠올립니다. 오래전 입양으로 한국을 떠나 덴마크로 향한 참여자는 ‘김포국제공항에서 느낀 기쁨과 상실감이 뒤섞인 공기’의 기억을 이야기합니다. 수많은 사연 중 17개를 새로운 향으로 만들어 한국을 표현할 예정입니다.


INSTAGRAM : @koojeonga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Margaret Mead)가 모든 감각에 호소함으로써 전시를 더 총체적 방식으로 설계할 수 있다고 말한 것처럼, 제 작업 또한 항상 다중 감각적입니다. 이것은 관람객이 더 많은 연결을 경험하고 전시장에서 더 긴 시간을 보낸다는 것을 의미하죠. 사람들이 전시에서 즐거운 시간을 이왕이면 오래 만끽하기를 항상 바랍니다.”

전 세계에서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구정아 작가의 작업과 이야기를 살펴보았습니다. 작가가 다루는 향과 빛, 소리와 온도, 기억과 같은 감각을 미술관에서 마주한다면 아주 낯설게 느껴질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 속에선 어쩌면 가장 자주 경험하는 것들일지 모릅니다. 구정아 작가의 이야기를 만나보고 직접 작품을 온몸으로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수현

이수현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마음.
삶을 깨트리는 예술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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