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한
이별을 위하여

사망 인구 30만 시대
공장이 돼가는 화장장
Edited by

“곧 화장이 시작되니 서둘러주세요.”

한 무리의 유족이 영정사진과 관을 들고 화장장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고인의 아내로 추정되는 여성은 아직도 남편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지 양옆에서 유족들의 부축을 받으며 겨우 발걸음을 옮겼다. 흰 장갑을 낀 직원들이 바퀴가 달린 철제 트레이를 끌고 와 그들을 맞았다. 직원들 뒤로는 10개의 화로 입구가 벽을 따라 일렬로 설치돼 있었다. 직원들은 관을 트레이에 싣고는 빈 화로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제 유족들에게 남은 일은 관망실로 이동해 고인의 관이 화로로 들어가는 마지막 모습을 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유족들은 관이 들어가는 모습을 끝내 보지 못했다. 그들이 관망실에 도착하기 전 화로 문이 닫혔기 때문이었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알게 된 여성이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렇게 가면 안 된다,.. 안 된다…” 통곡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다른 유족들의 눈시울도 금세 붉어졌다. 문이 닫히자 대형 화로가 가동되며 9구의 시신을 태우기 시작했다. 안내판엔 ‘화장 진행 중’이라는 문구가 떴다. “너무 순식간에 끝나버리네요” 유족들 중 한 명이 혀를 찼다. 화장은 그로부터 두 시간 뒤 끝났다. 안내 방송이 나오자 그들은 수골실로 이동해 A4용지 한 장 만한 좁은 창구를 통해 유골가루를 넘겨받았다. 그들 뒤로 수골을 기다리는 긴 줄이 있어 유골함을 싼 보따리를 엉거주춤 들고 곧장 밖으로 나서야 했다.

올해 1월 인천의 한 화장장에서 펼쳐진 풍경이다. 정해진 시간에, 여러 시신을 한 번에 소각하는 이러한 구조는 인천 화장장뿐 아니라 전국 대부분의 화장장에서 동일하게 나타난다. 많게는 하루에 100구 넘는 시신을 처리하기도 한다. 물론 국내 화장장들이 처음부터 이런 모습이었던 건 아니다. 사망자 수가 늘고, 장례 문화가 변화하면서 보다 효율적인 시신 처리 방식을 필요로 하게 됐고, 이에 맞춰 변화를 거듭해온 결과다. 본격적인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오늘날, 화장장의 ‘공장화’는 더 첨예해지고 있다. 화장장마다 매년 화장로를 늘리고 있는 실정이다.

당장 화장 시설이 부족해 4일장, 5일장을 치르는 이들도 나오는 상황에서 “존엄한 이별을 보장해달라”는 건 뜬구름 잡는 말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전 세계의 화장 문화를 살펴보면 꼭 불가능하다고 할 수도 없다. 일본에서는 입로부터 수골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 유족들이 직접 참여한다. 유럽에서는 화로 1~2구짜리 소규모 화장장들이 보편화돼있다. ‘님비(NIMBY)’라고 불리는 지역 이기주의를 극복하고, 화장장 수를 늘려 밀도를 낮춘다면 우리에게도 고인의 마지막을 충분히 배웅할 시간이 주어질지 모르는 일이다.


더 효율적으로…
“시신소각공장” 돼가는 화장장

근대적인 모습의 화장장이 한국에 들어온 건 일제강점기 때였다. 장작으로 불을 때 시신을 태우던 화장 방식은 선사시대 때부터 있어왔지만, 건물 내부에 설치한 화장로에서 시신을 화장한 건 1902년 5월 서울 중구 신당동에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화장장인 ‘신당리 화장장’이 생기면서부터였다. 당시 새로운 화장장을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았다. 유교 문화가 강하게 뿌리내린 조선시대에선 조상 숭배 사상으로 인해 국가 차원에서 화장을 엄하게 금지했다고 한다. 여기에 더해 일본에 대한 반감이 더해지며 화장은 ‘왜놈들의 장례법’으로 치부됐다. 또 초창기 화장장은 시설이나 운영 측면에서도 매우 열악했다. 실내는 연기에 그을린 흔적으로 어두침침했고, 기름 냄새가 진동했다. 굴뚝에서는 검은 매연과 먼지가 뿜어져나와 현지 지역 주민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이 당시 화장장에 대한 인식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화장장을 혐오시설로 낙인 찍고, 훗날 님비 현상을 불러일으키는 직접적인 요인이 됐다.

1991년 숲 한가운데 위치한 수원시립화장장
1991년 숲 한가운데 위치한 수원시립화장장. 이미지 출처: 경향신문

하지만 화장장은 현대로 넘어오며 발전을 거듭해 보다 깔끔하고 친환경적인 모습으로 발전했다. 일본의 방식을 그대로 답습했던 한국의 화장장은 1900년대 후반 산아제한 정책으로 핵가족화 현상이 심해지고, 농촌 사회에서 도시산업사회로의 급속한 이행이 진행되며 본격적으로 독자적인 형태를 띠기 시작했다. 서울 등 대도시에선 묘지 부족 현상도 빚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책 결정자들에게도 많은 면적을 차지하지 않고, 누구나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으며 환경에 해롭지 않은 화장은 매력적인 장례 방식으로 여겨졌다. 1980년대 정부는 화장장을 현대화해 화장율을 높일 수 있도록 장려하는 취지의 훈령을 공포했다. 2001년엔 ‘장사등에관한법률(장사법)’을 제정해 정식으로 이를 제도화했다. 이에 맞물려 SK그룹 최종현 회장 등 각계 인사들이 타계 후 화장 방식을 선택해 인식 변화를 꾀했고, 집중호우로 인한 대규모 분묘 유실 사태도 벌어지며, 화장률은 폭증하기 시작했다.

현재는 사망자 10명 중 9명이 화장을 택할 정도로 화장 방식이 보편화돼있다. 많게는 수천 만 원이 드는 매장 방식에 비해 훨씬 저렴하고, 관리도 어렵지 않은 장점 때문인지 화장 건수는 매년 빠짐없이 증가해 오늘날 30만 명이 넘는 시신이 화장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새로운 문제가 발생한다. 사망자 수와 화장 건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반면, 화장시설은 좀처럼 늘지 않아 적체 현상까지 빚어지기에 이른 것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2년 국내 화장 인구는 34만2128명으로, 2018년 대비 8만2781명 늘었다. 같은 기간 전국 화장로는 347개에서 382개로 35개 증가하는 데 그쳤다. 각 지자체가 장사시설을 늘리려 할 때마다 주민 반발에 부딪혀 화장장을 60곳에서 62곳으로 2곳밖에 늘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서울, 경기 등 대도시에선 화장장 자리가 없어 타지역으로 ‘원정 화장’을 떠나거나, 자리가 날 때까지 4~5일장을 벌이는 현상도 빚어졌다. 화장장 건립이 지지부진한 사이, 각 화장장은 늘어난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화장로를 늘리고, 운영 시간을 확대해야 했다. 더 많은 시신을 더 신속하게 처리할 방법들이 속속 도입되며 점차 오늘날 화장장의 모습을 띠게 됐다. 한 전문가는 이러한 발전상에 대해 “한국의 화장장은 시신소각공장이 돼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일본의 화장장
‘존엄한 이별을 위한 배려’

이미지 출처: unsplash

일찍이 한국에 화장장을 보급했던 일본은 1000년 전부터 이어져온 전통적인 화장 문화를 보존했다. 화장장 곳곳에 ‘존엄한 이별’을 위한 배려의 흔적들이 남아있다. 별도의 고별실을 마련해 고인과 마지막 인사를 나눌 시간을 충분히 보장한다. 배웅 공간에서 관이 마지막으로 화장로에 들어가는 모습을 확인하고, 화장이 끝나면 수골 공간에서 젓가락 등으로 유족들이 직접 유골을 수습한다. 사람들이 북적거리지 않도록 동선을 분리하고, 운영 시간을 조정하기도 한다. 이러한 배려가 가능할 수 있었던 건 화장 수요에 비해 공급이 원활하게 유지한 덕분이다. 현재 일본 전국에는 약 1400개의 화장장이 있다고 한다. 현재 일본 인구를 대입해보면 화장장 1곳이 약 8만9000명의 화장 장례를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화장장이 60여 곳밖에 없는 한국에서는, 단순 셈법으로도 1곳당 80만 명의 장례를 맡게 된다. 일본은 이렇게 여유로운 와중에도 최근 화장장을 신증축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물론 일본은 화장 문화가 오랫동안 보존돼온 만큼, 이미 지어진 화장장이 많다는 배경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는 작은 한 단면일 뿐이며, 일본의 각 지방자치단체들이 화장장 건립을 위해 쏟는 노력들을 보면 그들의 선진적인 화장 문화가 납득이 될 수밖에 없다. 핵심은 지역 주민들과의 열린 의사소통이다. 2015년 준공된 나고야 제2화장장이 대표적인 모범 사례다. 이 화장장을 짓는 과정에서 일본 정부는 총 15년 동안 2700회에 걸쳐 주민과 대화의 장을 열었다고 한다. 심지어 이 지역 어린 학생들이 “귀신이 나오는 게 무섭다”는 답을 듣고 이러한 걱정을 불식하려는 노력을 보여줬다고 한다. 장의차량이 동네에 드나드는 게 싫다는 사소한 불만사항부터 주민들을 위한 간이야구장을 함께 지어달라는 요구까지 듣고 협의한 끝에 반발 없이 화장장을 건립할 수 있었다. 3년 뒤 준공된 가와구치시 화장장도 마찬가지였다. 10년에 걸친 소통 끝에 고속도로 휴게소 옆, 키즈카페와 산책로를 갖춘 화장장을 세울 수 있었다. 일찍이 초령화 사회에 접어든 일본이지만, 오래 전부터 늘어나는 수요에 맞게 준비해온 덕분에 우려는 없다. ‘화장 대란’을 앞두고 있는 우리나라와는 정반대의 상황이다.

일본 가와구치시의 화장장
일본 가와구치시의 화장장. 이미지 출처: Wikimedia Commons

한국에서는 주민 반대나 정치인들의 치적 지우기 등으로 화장장 건립이 무산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2020년 8월경 이천시는 이천화장장 후보지를 여주시 경계에 인접한 마을로 정했다. 이에 여주시 주민들이 들고 일어나 삭발 투쟁 등을 거행하며 최종 무산시킨 것이다. 경남 거제시도 최근 자체 화장장 건립을 추진했지만, 국비 확보에 실패하고, 여야 시의원들의 알력다툼 등 악재가 겹치며 잠정 중단된 상태다. 2022년 가평 화장장도 주민 반대에 부딪혀 진행에 차질을 빚던 중 군수의 임기가 끝나며 흐지부진됐다. 현재 가장 준공 가능성이 높은 양주시 광역화장장은 2029년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적어도 5년 동안은 화장장 확충 없이 수요를 충당해야 한다는 뜻이다. 통계청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10년 뒤인 2034년경 연간 사망자 수는 지금보다 10만 명 넘게 증가해 45만 명을 넘을 전망이다. 30년 뒤인 2054년경엔 72만 명을 넘겨 지금보다 2배 늘어난다고 한다. 화장 대란이 확실시된 상황에서 늦게라도 화장장을 늘리기 위한 밑작업이 필요한 시점이다.


‘묘지는 사회의 거울’…
산 자를 위한 장례식

홀로 죽음을 맞이하는 이들의 공영장례를 책임지는 영국 공무원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스틸 라이프(2013)>의 감독 우베르토 파솔리니는 국내 한 영화사와의 인터뷰에서 “한 사회의 품격은 죽은 이들을 대하는 방식에서 드러난다. 사자(死者)에 대한 태도는 결국 그 사회가 살아있는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무엇이든 빠르고 효율적으로 처리하려는 한국 화장장의 모습에서 큰 위화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그 안에 투영된 운영 철학이 결국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시대 정신과 맞닿아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대기업의 반도체 공장과 속초의 유명 닭강정 집과 국내 화장장들이 모두 비슷한 모습이 돼가는 건 우연일 수 없다.

정부가 5년마다 발표하는 장사시설 수급계획엔 장사수요를 예측하는 통계와 수치들로 가득하다. 화장장을 늘리는 것은 반드시 선행돼야 할 일이지만, 동시에 시설 확충의 궁극적인 목적 역시 잊어서는 안 된다. 수요를 넘어서는 충분한 공급. 그래야 일본처럼 존엄한 이별을 위한 배려가 가능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국내 장사법이 처음 제정될 당시 정책 결정자들은 ‘1지자체 1화장장’을 기본 원칙으로 세웠다고 한다. 실제 장사법 제4조(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는 “지자체는 지역주민의 화장에 대한 수요를 충족할 수 있는 화장시설을 갖춰 매년 관리 실태를 점검하고, 필요한 경우에는 유지·보수를 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것이 현실화된다면 화장장은 어떤 모습이 될까. 시군구별로 화장장을 짓는다면 더 작은 규모로 지을 수 있고, 그만큼 유족들은 더 조용한 공간에서 충분한 추모의 시간을 제공 받을 수 있을 테다. 이를 위한 지역 주민과의 소통은 아무리 빨리 시작해도 늦다.

장사시설 확충에 대한 논의가 늦어지며 이미 지어진 화장장에 화장로를 늘리는 방식으로, 화장에 소요되는 시간을 줄이는 방식으로 버티려고 하면, 닫힌 화로 앞에 주저앉는 이들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고인의 마지막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때로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는다. 인간이 만든 모든 장례 문화는 오로지 산 자를 위한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현우주

현우주

흑백의 세상에서 회색지대를 찾는 사람

에디터의 아티클 더 보기


문화예술 전문 플랫폼과 협업하고 싶다면

지금 ANTIEGG 제휴소개서를 확인해 보세요!

– 위 콘텐츠는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받는 저작물로 ANTIEGG에 저작권이 있습니다.
– 위 콘텐츠의 사전 동의 없는 2차 가공 및 영리적인 이용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