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요즘 어떤 음악을 즐겨 들으시나요? 반복적인 멜로디로 중독성 있는 음악, 한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직관적인 가사를 따라 부르고 있나요? 입에 찰떡같이 붙는 노랫말은 많은 사랑을 받습니다. 음악 한 곡의 길이도 4분이 넘어가던 시대를 지나 3분, 2분으로 자꾸만 짧아져 갑니다. 현실의 피로는 멀리 던지고 쉽고 빠르게 즐거움을 주는 노래들을 찾아 듣습니다.
그런데 가끔은 노래를 들을 때 이야기도 듣는다는 걸 잊어버린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음악에는 멜로디, 리듬과 함께 그 안에 담긴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음악은 한 번 들어서는 도무지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많은 비유와 은유를 사용해서, 일상에서 자주 사용하지 않는 표현을 사용해서, 익숙지 않은 감정을 건드려서 그렇습니다. 이런 음악들은 이야기를 만들고 소화하는 과정을 듣는 사람의 몫으로 넘깁니다. 조금은 낯설지도, 이전에 한창 즐겨 했던 가사 탐구 시간이 오랜만에 찾아왔는지도 모릅니다. 분명한 건 직접 해석하는 즐거움을 안다면, 다시 몰랐던 때로 돌아가진 못한다는 것이죠. 듣는 내가 완성하는 음악을 소개합니다.
“한 방울도 줄지 않는
2리터짜리 열두 병”
9와 숫자들, 24L
여기 혼자 사는 사람들의 집집마다
마시지도 못할 물이 가득 쌓여있어
현관 앞에 냉장고 옆이나
베란다 또 거실 한구석에
어김없이 놓인 2리터짜리 열두 병
_9와 숫자들, ‘24L’
시적인 가사로 삶을 노래하는 밴드 9와 숫자들의 ‘24L’입니다. 9와 숫자들은 생수 병들이 가득 쌓인 현관문을 말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물, 너무 일상적이어서 깊게 생각해 보지 않은 물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 강아지랑 어머니만 남은 집
동생은 방콕에 아빠는 병원에
나는 여기 집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도 같은 곳에서
하루하루 목마름에 익숙해가
_9와 숫자들, ‘24L’
9와 숫자들의 음악은 집이라는 공간을 생각해 보게 합니다. 집은 우리가 매일 잠에 들고 밥을 먹고 이야기를 하고 다양한 생활을 하는 일상의 중심이 되는 공간입니다. 사람들은 집에 저마다 다른 추억과 감정을 지니고 살아갑니다.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추억, 지울 수 없는 상처로 얼룩진 곳곳, 바쁜 삶 속에 그저 매일 잠만 자고 스쳐 지나간 기억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집은 곧 가족의 기억으로 연결됩니다. 누구에게나 있거나, 혹은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가족에 관한 다양한 감정들이 떠오릅니다. 함께 있는 이 공간, 그 어떤 곳보다 익숙한 집이라는 공간에서 느끼는 외로움. 9와 숫자들의 음악을 들으며 집과 가족, 외로움의 마음 한편을 살펴보게 됩니다.
“널 사랑하지만
널 좋아하지는 않을 것 같아”
안녕바다, 하소연
널 사랑하지만 널 좋아하지는 않을 것 같아
널 바라보지만 널 그리워하진 않을 것 같아
_안녕바다, ‘하소연’
바다를 동경하는 밴드, 안녕바다의 “하소연”입니다. 음악이 시작되면 모순되는 말이 이어집니다. ‘널 사랑하지만 좋아하진 않을 것 같다’는 어떤 의미일까요? 좋아한다의 다음 단계가 사랑한다인 것만 같았는데 어쩐지 이해되지 않는 말입니다. 사랑과 좋아하는 감정은 포함 관계가 아닌 걸까요? 이어지는 ‘바라보지만 그리워하진 않을 것 같다’는 말은 더 큰 물음표를 띄웁니다. 바라보고 싶어서 눈을 떼지 못하면서도 오늘이 지나면 그 마음이 끝이 난다는 의미일까요?
단 한마디만 위로해 주면 그 한마디로 하루를 살 수 있을 텐데
그 작은 바램들이 강을 이루면 함께 흘러갈 수 있을까
_안녕바다, ‘하소연’
다음 가사까지 듣고 나면 우리는 우리에게 남겨지거나 떠나간, 다양한 모양의 사랑을 떠올려보게 됩니다. 완전한 행복만 주는 사랑도, 오로지 기쁨만 주는 사랑도 없었다는 걸 깨닫습니다. 세상에 단 하나 중요한 존재인 것처럼 좋아하지만 새삼스레 미워지고, 고마움이 가득하다가도 금세 서운해지는 우리. 더 이상이 없음을 알면서 붙잡기도 하고 바라기도 하는 마음을 추억합니다.
“인생은 금물
함부로 태어나지는 마”
언니네 이발관, 인생은 금물
인생은 금물 함부로 태어나지는 마
먼저 나온 사람의 말이 사랑 없는 재미없는 생을 살거나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네
_언니네 이발관, ‘인생은 금물’
특유의 감성으로 삶의 다양한 면을 노래하는 밴드 언니네 이발관의 “인생은 금물”입니다. 나이가 지긋한 사람이 인생을 한참 살아보고 젊은이에게 이야기를 건네는 장면이 연상됩니다. 인생이란 고통과 슬픔이 가득한 것이니 처음부터 태어나지 말라고 말하는 사람. 회의적으로 삶을 돌아보는 이의 편지 같기도 합니다.
그대는 나의 별이 되어준다 했나요
나의 긴 하루 책임질 수 있다고 했죠
그런데 어두워져도 별은 왜 뜨지 않을까요
한 번 더 말해줄래요 너는 혼자가 아니고
_언니네 이발관, ‘인생은 금물’
사랑도 금물 함부로 빠져들지는 마
그러나 너는 결국 말을 듣지 않고 어느 누군가를 향해서
별이 되어 주러 떠나게 될 걸
_언니네 이발관, ‘인생은 금물’
그러나 염세적인 이 사람은 사실 누구보다 삶을 사랑했던 사람 같기도 합니다. 누군가를 깊이 사랑해 보아서, 좋아하고 바라는 것들을 이루기 위해 온 마음을 쏟아 보아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닐까요? 정답은 찾을 수 없고, 문제를 하나 해결하면 또 다른 문제 아홉 가지가 쏟아지는 삶. 이러한 삶의 모습에 함께 공감하고 자조하면서도 더 나은 날을 바라게 됩니다.
“Maybe I just want to breath”
Oasis, Live Forever
Maybe I don’t really want to know
How your garden grows
cause I just wanna fly
Lately did you ever feel the pain
In the morning rain
As it soaks you to the bone
_Oasis, ‘Live Forever’
영국을 대표했던 밴드 Oasis의 “Live Forever”입니다. Oasis는 너의 정원이 어떻게 자라나는지 궁금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어느 아침 쏟아지는 비 아래 뼛속까지 젖어드는 고통을 느껴본 적이 있는지 묻습니다. 비유가 가득 담긴 가사는 한 번에 이해되지 않지만, 서글픈 감정을 자아냅니다.
Maybe I will never be
All the things that I want to be
But now is not the time to cry
Now’s the time to find out why
I think you’re the same as me
We see things they’ll never see
You and I are gonna live forever
_Oasis, ‘Live Forever’
이어지는 가사에서 자유라는 감각이 생생하게 살아납니다. 뼛속 깊이 찾아드는 아픔을 알고 있음에도, 타인의 삶이 더 이상 궁금해지지 않을 정도로 여유가 없음에도 삶에 대한 의지를 느낍니다. 그저 살고 싶고 날고 싶다 말하는 주체가 ‘나’에서 ‘우리’로 바뀔 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해방감과 쾌감이 느껴집니다.
나만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게 아니라는 것, 이 마음을 공유하고 오늘을 함께 살아나갈 우리가 있음을 깨닫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절대 보지 못하는 것을 함께 바라보는 사이이니까요. 그렇게 우리는 내가 원하는 내가 영원히 되지 못한다 한들, 더 이상 울지 않고 이유를 찾을 때임을 이해합니다. 우리를 훼방하는 수만 가지 이유 속에서도 결국 우리는 하기를 선택합니다. 희박한 확률 속 또 다른 위험이 기다리지만, 삶이 그만큼 가치 있음을 알았으니까요.
세상엔 다양한 음악이 있습니다. 편리하고 쉽게 흥을 돋우는 음악도 있고, 명확하고 쉽게 다가오진 않아도 그 자체로 매력적인 음악들도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음악 속에 나의 생각, 나의 해석이 물드는 순간, 음악은 더 특별한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오늘 만나본 곡들을 시작으로 나만의 해석을 더해보세요. 이 글과 아주 비슷할 수도, 전혀 다른 감상평이 될 수도 있습니다. 각자의 수많은 해석을 기다리며, 음악에 귀를 기울이는 여러분을 상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