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쌍의 연인이 괴생물체를 피해 도망칩니다. 황급히 숨은 폐허에서 마주한 커다란 옷 산. 옷의 주인은 누구였을까요? 왜 사라진걸까요? 아이유 ‘Love wins all’ 뮤직비디오 도입의 거대한 옷 더미는 프랑스 예술가 크리스티앙 볼탕스키의 작품 “페르손(Personnes)”을 연상시킵니다. ‘입던 옷’은 부재와 존재를 동시에 환기하는 매체로 예술계에서 자주 쓰이는 대유인데요. 오늘은 낡은 옷가지로 그 뒤의 인간을 떠올리게 하는 대표 작가 2인, 크리스티앙 볼탕스키(Christian Boltanski)와 아이 웨이웨이(Ai Weiwei)를 알아봅시다.
죽음을 직면하는 예술가
크리스티앙 볼탕스키
“사진과 옷의 공통점은 현존하는 동시에 부재를 의미한다. 둘은 객체이면서 주체에 대한 추억의 유품이자 기억이다.”
_크리스티앙 볼탕스키
크리스티앙 볼탕스키는 ‘옷 더미 예술’의 대표주자입니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저장소:카나다(Réserve Canada, 1998)”은 수천벌의 옷이 걸려진 길이 14m, 높이 4.5m 설치 작품입니다. ‘카나다’라는 작품명은 유대인 억류자 소지품 창고에 나치가 붙인 이름인데요. 수많은 옷이 주는 압도감이 유대인에게 자행된 학살의 수와 흔적에 겹친 삶을 상상하게 만들죠. 2021년 유작전이 된 부산 전시에서는 현지 고물상의 옷으로 재현되었습니다.
크리스티앙 볼탕스키는 쇼아(Shoah)1) 작가라고 불립니다. 쇼아란 히브리어로 ‘재앙’이라는 의미로, 유대인이 대학살을 칭할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볼탕스키는 1944년 나치에서 해방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 파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유대인 혈통의 그는 초등학교 시절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친구에게 따돌림을 받고 11살에 중퇴했습니다. 전쟁을 직접 경험하지는 않았으나 전쟁의 트라우마는 물려받은 세대이죠.
볼탕스키는 세계 대전과 대학살 등에서 자행된 집단의 죽음을 그리며 (기억해야 할) 불편한 진실을 수면 위로 올립니다. 동일본 대지진 피해 지역을 방문한 뒤 작업한 “무인의 땅(No Man’s Land)”에서는 입던 옷을 산더미같이 쌓아 올렸고, 2021년 신작 “설국(Pays de Neige)”에서는 병상 시트를 떠올리게 하는 흰 천을 겹겹이 쌓아 올려 코로나19로 숨진 사람들을 표현했습니다. 그의 작품의 상징적인 형태는 무덤으로, 옷이 아니라 사람이 쌓여있는 듯한 느낌을 주어 죽음을 선연하게 느끼게 합니다.
더 나아가 볼탕스키는 인간 존재의 죽음 자체를 탐구합니다. 가장 유명한 작품인 “페르손”은 옷으로 이뤄진 거대한 봉분 위로 ‘신의 손’이라 불리는 크레인이 내려와 옷들을 무작위로 집어 들었다가 내려놓는 작품입니다. 헌 옷 대유가 유명해진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거대한 옷 무덤 앞에 버려진 옷가지들이 69개의 사각형 모양으로 펼쳐져 있고 전시장 안은 69명의 심장 박동 소리가 기계적으로 울립니다. 이 작품은 죽음의 허무함을 고찰하게 합니다. 특정한 옷을 들어올리려는 의도가 없는 크레인처럼, 죽음이란 필연적인 동시에 우연적이고, 죽음 이후 구원도 단지 허상이라는 점을 암시합니다. 더불어 전시장에 난방을 일절 하지 않는 연출을 통해 전시 당시 유럽을 강타했던 추위까지 재현하는데요. 관객은 심장 박동 소리, 추위, 옷 무덤이 선사하는 압도감과 함께 죽음 앞에 선 당혹스러움과 허망함을 느낍니다.
1) 쇼아: ‘홀로코스트’는 그리스어 ‘홀로카우스톤(holokauston)’에서 비롯된 단어로 신에게 바치기 위해 ‘전부(holos) 태우는(kaustos)’ 방식으로 희생된 동물을 뜻합니다. 가스실과 소각로(燒却爐)를 이용한 나치의 대량 학살이 신을 위한 제물에 비유될 수 없다는 이유에서 유대인들은 ‘쇼아(Shoah)’라는 표현을 씁니다.
잊혀진 난민을 가시화하는
아이 웨이웨이
반체제 예술가 아이 웨이웨이는 헌 옷을 통해 잊혀지는 난민의 문제를 상기합니다. 그들이 쓰던 옷과 물건으로 기억 속에서, 그리고 실제로 사라지는 난민을 조명합니다. 2016년작 “빨래방”은 그리스와 마케도니아 국경의 이도메니아 난민 캠프에서 작가가 수집한 옷, 신발 등을 전시한 작품입니다. 이도메니아는 난민의 서유럽 진입로인 발칸 루트가 막히면서 발이 묶인 곳인데요. 이 곳에서 수집한 난민의 옷 579벌, 신발 32켤레를 전시하여 고통받는 난민의 삶을 떠올리도록 만들었습니다. 관객은 신생아, 어린이용 드레스도 포함된 응축된 현실을 목도하고 안타까움과 분노, 무력함을 느낍니다. 더욱이 그들의 옷이 우리가 입는 옷과 별반 다르지 않아 난민 문제가 우리 곁에 밀착한 사실이라는 점을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거대한 뱀 한마리가 천장 위를 굽이치는 “구명조끼 뱀” 또한 난민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는 작품입니다. 그리스 남동쪽 레스보스섬에 난민들이 벗고 간 구명조끼 140벌을 연결한 22m 길이의 거대한 설치물입니다. 조끼를 구한 레스보스섬은 유럽으로 들어가려는 난민들의 주요 경유지인데요. 그들이 왜 이동의 필수품인 구명조끼를 남겨두었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낡은 구명조끼가 필요 없을 정도로 안전한 배가 구하러 왔거나, 새로운 구명조끼를 갈아입고 다른 지역으로 떠났을 수도 있죠. 혹은 구명조끼를 입고 온 레스보스 섬이 그들의 종착지였을 수도 있습니다. 오직 남아 있는 것은 겉이 반들반들해진 닳은 구명 조끼로, 그 안에 담긴 많은 이야기를 상상하게 만듭니다. 길고 좁은 공간을 가득 메운 형상은 뱀보다 용에 가깝게 느껴지는데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난민 조끼의 부피감에 잊혀졌던 난민의 문제를 상기시킵니다.
아이 웨이웨이는 이 외에도 구명조끼로 여러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구명조끼야말로 난민의 생존적 삶을 가장 잘 상징하기 때문일텐데요. 구명조끼 1만4000여개로 베를린 콘체르트 하우스 기둥을 뒤덮은 작품으로 시리아와 이라크 등에서 목숨을 걸고 해협을 건너는 난민들의 아픔을 알렸습니다. 또한 쓰촨 대지진 때는 현장에서 발견한 아이들의 가방을 연결하여 길고 커다란 뱀 “천장의 뱀(2008)”을 만들었습니다. 사회적인 문제를 조명하기 위해 그들의 옷을 재배열하는 아이 웨이웨이의 방식이 예술에서 새롭고 획기적이라고는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난민의 손때가 그대로 묻은 옷을 직접 구해서 전시하는 행위는 잊혀진 난민의 삶을 조명하는 데에는 충분히 효과적입니다.
아이 웨이웨이 작품에 묻어난 디아스포라(diaspora)2)성의 시작은 유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떠도는 삶을 살았습니다. 시인 겸 동양화가였던 그의 아버지 아이칭이 문화대혁명 당시 마오쩌둥 정권으로부터 ‘우파 지식인’이라는 이유로 블랙 리스트에 오르며 전 재산을 몰수당하고 신장(新疆, Xinjiang)으로 유배 당했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였던 웨이웨이는 가족들과 함께 먼 타지에서 유랑생활을 하며, 조롱과 수모를 당하던 아버지의 삶을 바로 옆에서 지켜봐야 했습니다. 이런 그의 삶이 작품에 당사자성을 부여하며 부조리함을 포착하는 날카로운 시선을 만들어 주었을 것입니다. 국제 엠네스티에서 인권상을 수상한 계기로 여권을 돌려받고 유럽에서 작품활동을 하며 반이데올로기와 표현의 자유, 인권을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는 예술가로 활동 하고 있습니다.
2) 디아스포라(diaspora): ‘디아스포라’는 본래 팔레스타인을 떠나 세계 각지로 흩어져 떠돌아다녔던 이스라엘 유대인을 지칭합니다. 최근 의미가 확장돼, 자신의 터전을 떠나 타지에서 삶을 영위하는 집단을 가리킬 때 사용되고 있습니다.
옷에는 사람이 새겨집니다. 무릎이 나오고 반들거리는 청바지, 얼룩진 옷 소매, 닳고 늘어진 티셔츠를 버리지 못하고 넣어두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겠지요. 크리스티앙 볼탕스키와 아이 웨이웨이가 전하는 이야기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사라진 인간 혹은 그들에게 얽힌 서사를 기억하고 담론하는 일, 그들이 잊히지 않도록 꾸준히 수면 위로 건져 올리는 일. 동시대를 살고 있지만 다른 현실을 겪는 이들이 지금도 어딘가 존재합니다. 그들은 언제나 존재했지만 동시에 부재했고, 그럼에도 살아가고 있습니다.
- 크리스티앙 볼탕스키: 4.4, 키아프서울
- 사진으로 다시 보는 볼탕스키 유고전…고요한 풍경 속 번득이는 죽음의 이미지, 경향신문, 2022.02.14
- 권위주의에 날린 가운뎃손가락···아이웨이웨이 ‘인간미래’ 전, 경향신문, 2021.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