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시선을 따라가는
시인의 산문집 4선

시를 즐기고 싶은 당신에게
추천하는 시인들의 산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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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왜 어려울까요. 어떤 시인은 한 인터뷰에서 때때로 시가 돌덩이처럼 느껴진다고 말했습니다. 시를 쓰는 당사자인데도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가 만들어내는 은유의 아름다움을, 비유의 확장성을 쫓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위 인용문은 교과서에 자주 실리는 속미인곡의 마지막 구절입니다. 달이 되어 사랑하는 임이 계신 방안을 비추고 싶다는 화자의 말에, 그러지 말고 궂은 비가 되어 임을 흠뻑 적시라고 대답하는 또 다른 화자의 목소리죠. 이 문장을 통해 필자는 시가 주는 희열을 처음 맛보았습니다. 비유가 빚어내는 아름다움을요. 하지만 시를 읽고 싶은데 어떤 의미나 재미를 발견하는 것이 어렵다면 그 시를 짓는 시인들의 산문을 먼저 읽어보는 건 어떨까요? 다시 시집을 들었을 때 인과를 깨고 등장하는 단어나 함축된 세상이 새롭게 보일지도 모릅니다.


『시차 노트』, 김선오

산문집 『시차 노트』, 김선오
이미지 출처: 문학동네

『시차 노트』는 두 단어 사이를 오가며 써 내려간 김선오 시인의 사유가 담긴 산문집입니다. 봄과 터널에 대하여, 돌과 글에 대하여, 동떨어진 두 단어를 포착하고 그것을 길고 아름답게 연결 짓는 김선오 시인의 필력이 눈에 띄는 작품입니다. 그의 시선을 거치면 어떤 단어라도 제 위치를 찾아갑니다. 글 속에서 그가 택한 소재는 처음부터 끝까지 힘을 잃지 않고 누적된 이야기를 가지게 됩니다. 마치 한 단어를 떠올리면 단어 자체의 이미지보다 어떤 장면이 한눈에 그려지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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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없는 쓰기』, 이수명

산문집 『내가 없는 쓰기』, 이수명
이미지 출처: 난다

『내가 없는 쓰기』는 이수명 시인의 일상을 한 두 페이지 분량의 짤막한 단편으로 묶은 산문집입니다. 일 년간 날짜 없이 쓰인 일기를 달별로 묶은 책으로 어떤 구조나 외양을 갖춘 작품보다 시간의 흐름에 맞게 유유히 흘러가는 매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시인은 책 머리에 ‘권유가 아니었으면 새로운 풀들이 웃자라 있는 풀밭을 모르고 지나갔을 것이다’고 말합니다. 무언가를 쓰다보니 발견한 장면들이 시인에게 있었던 것이죠. 그의 글을 읽고 있으면 시를 쓰는 어려움이 삶을 살아가는 어려움과 사뭇 비슷하게 느껴집니다. 시상이 찾아 오기를 기다리면서도, 두려운 마음. 명망 높은 시인도 두려움을 갖는다니! 괜히 위로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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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물질적인 밤』, 이장욱

산문집 『영혼의 물질적인 밤』, 이장욱
이미지 출처: 문학과지성사

『영혼의 물질적인 밤』 은 시와 소설을 함께 쓰는 이장욱 작가의 메모를 묶은 산문집입니다. 러시아의 추바시로 여행을 떠나는 일기로 시작해 시에 대한 단상, 소설을 써 내려간 작가의 감각이 생생히 담겨있습니다. 철학과 자유와 시와 소설. 어느 것도 대충 넘겨짚을 수 없다는 듯이 써 내려간 산문집은 밀도가 매우 높습니다. 꼬리에 꼬리 물기로 이어지는 사유를 따라가다 보면 시를 어떻게 읽을 수 있을지, 그 가능성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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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보다 더 아래』, 김승일

산문집 『지옥보다 더 아래』, 김승일
이미지 출처: 아침달

『지옥보다 더 아래』는 놀랍게도 처음부터 끝까지 지옥에 대한 이야기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김승일 시인은 죽은 아내를 지옥에서 되찾아 오기 위해 노래를 불러 뱃사공을 감동시켰다는 오르페우스에 자신을 빗대어 지옥 여행기를 만들었습니다. 언젠가 김승일 시인의 시 속 화자들이 머무르기도 했던 공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옥이라는 어마 무시한 단어와 달리 꽤나 해학적이고 유쾌함을 머금은 산문집으로 지옥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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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들은 주로 고민을 합니다. 스쳐 지나갈 법한 문제에도 골똘해집니다. 한 단어를 끝까지 쫓아가 캐묻기도 합니다. 그래서 일까요.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자주 발견하게 되는 글이 바로 시인이 써 내려간 산문입니다. 오늘 소개한 산문집들이 같은 것을 보고도 더 넓은 사유와 감각으로 우리를 이끌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시가 더이상 어렵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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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인

새로운 시선으로 채워지는 세계를 구경합니다.
그리고 만드는 일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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