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라는 전 세계적 화마가 우리의 일상을 휩쓸고 지나간 적 있었죠. 되찾은 일상 속에서 사람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제약과 공포 없는 자유로운 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단순한 전염병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단순한 역병에 우리의 삶은 크게 뒤흔들렸고 당연하게 누려왔던 모든 일상에 결코 작지 않은 많은 제동이 걸렸었죠. 요즘은 길에서 마스크를 낀 사람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역사적으로 ‘재앙’을 바라보자면, 사실 이번 코로나19 바이러스는 과거에서부터 인류를 위협한 수많은 재앙들 중 하나겠죠. 대홍수와 같은 천재지변에서부터 페스트와 전쟁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역사는 눈앞에 닥친 재앙에 맞선 투쟁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때론 대패하여 전 세계적으로 커다란 타격을 입기도, 혹은 환난에 슬기롭게 대처하기도 하는 등, 일진일퇴의 공방을 벌여왔죠. 『저주받은 미술관』은 이 이 재앙을 바라보는 예술가들의 시선을 담고 있습니다. 눈앞에 닥친 위기에 대한 기록으로써, 혹은 그 안에서 새롭게 발견한 아름다움을 화폭에 담으며 당시의 예술인들은 재앙에 대처하는 인류의 노력과 의지, 그리고 사랑을 그려냈습니다. 책의 흐름을 함께 따라가보며, 과거에 어떤 재앙이 존재했었는지, 그리고 그것에 맞서거나 때론 무력했던 당시의 시대상과 사람들의 모습을 확인해 보려 합니다.
인류의 역사에서 발견하는
재앙의 의미
책은 역사 속 시간 순서대로 인류에 닥친 재앙을 표현한 그림들을 소개합니다. 거장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대성당 천장에 그린 창세기의 아홉 작품들 중에서 “대홍수”라는 작품부터 시작합니다. 거대한 대자연의 위력은 과거 신벌로 묘사되곤 했죠. 치수라는 개념조차 없었을 당시, 신의 분노에서라도 이유를 찾지 않으면 견디기 힘들었을 참혹한 현실 앞에서 “대홍수” 속 대부분의 사람들은 각자도생을 노력합니다. 그러나 서로 살고자 아우성치는 멸망의 목전, 그 틈바구니에서도 서로를 위해 손을 내밀며 숭고한 사랑 역시 그림엔 담겨있습니다. 지쳐 늘어진 젊은이를 안아 올리는 사람과 그것을 기꺼이 돕기 위해 손을 내민 노인과 여자를 보며 저자는 재앙을 표현한 이 그림에서 숭고한 사랑의 의미와 아름다움을 이야기합니다.
자크 루이 다비드(1748-1825)가 그린 “테르모필레 전투의 레오니다스”는 인간이 만들어낸 전쟁이라는 재앙을 표현했습니다. 헤로도토스의 책 ‘역사’를 인상 깊게 읽고 이 그림을 그렸다고 하죠. 테르모필레 전투는 기원전 480년 크세르크세스왕의 제2차 원정 전투로 당시 최전선에서 요격한 것이 바로 스파르타였습니다. 영화 <300> 을 통해 사람들에게도 많이 알려진 이 전투를 통해 스파르타가 이끈 그리스 군은 300명의 인원으로 페르시아군 2만 명을 무찔렀지만 결국 패하고 말죠. 하지만 스파르타가 투쟁하는 모습에 고무된 그리스 도시 국가들이 단결하게 되면서, 결과적으로 페르시아군을 물리치고 침략을 방어하게 됩니다.
고통과 패배의 역사 속
숭고한 아름다움
역사는 승자에 의해 쓰인 기록이라고 하지만, 예술은 그 이면에 존재하는 아름다움과 의미를 발굴하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다비드가 오랜 기간에 걸쳐 완성한 “테르모필레 전투의 레오니다스”는 언뜻 보면 단순한 패전의 전쟁을 묘사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책의 저자인 나카노 쿄코는 이 그림에서 나라를 위해 싸운 사람들의 희생과 고귀한 정신을 포착합니다. 인간 스스로가 자초한 재앙이지만, 다음 세대에 전하는 인류의 희망과 함께 나름의 의미를 전승시킨다는 점에서 미술에 그 가치가 있다고 그녀는 말합니다.
이처럼 구약 시대 속 대자연에서 비롯된 재앙을 표현한 그림에서부터, 고대로 넘어오며 같은 인간들끼리 벌이는 살육의 재앙, 중세에 인류를 덮친 역병들과 종교전쟁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별로 인류를 관통한 거대한 재앙들을 표현한 그림들을 책은 담고 있습니다.
예술은 일반적으로 아름다움을 표현하거나 노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들은 고통, 혹은 난관을 선호하지 않죠.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예술은 극심하게 어려운 현실 꽃을 피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 책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만을 이야기하는 것 대신 인류가 겪은 재앙들, 즉 불행했거나 극심한 어려움을 겪었던 경험과 기록들에서 새로운 도전과 희망을 찾으려 합니다. 예술작품 속에 인류가 직면해야 했던 상황 속 고통과 슬픔, 그리고 분노가 고스란히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아름다움인 동시에 예술적 가치라고 작가가 말하는 것처럼요. 이처럼 저자가 애당초부터 붙잡고자 한 선명한 주제의식이야말로 다른 아름다운 명화들을 소개하고 있는 여타의 도서들과 가장 큰 차별점을 드러내는 요인이기도 합니다.
하나의 미술작품을 바라보는 역사적 맥락과 폭넓은 배경지식을 제공해 주는 것 역시 이 책만의 강점입니다. 일본 홋카이도 태생의 저자 나카노 쿄코는 와세다대학교에서 독일 문학을 전공한 이후 독문학자이자 작가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예술 작품을 단편적으로 해설하는 여타의 도서들과 달리, 그녀는 이 책을 통해 예술 작품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관점을 명확히 제시함으로써, 다양한 명화들을 엮는 독특한 주제의식을 독자들에게 제안합니다. 그런 점에서 극심한 재앙들을 표현한 미술작품들 속 인류의 희망, 혹은 그 안에서도 피어나는 사랑과 위로라고도 이 책을 정의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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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에 언급했지만 우리가 가장 최근에 겪은 재앙은 코로나19였죠. 지나고 보니 정말 황망한 경험 그 자체였습니다. 무섭게 발전했다는 현대 의술과 정렬된 시민 의식도 역병 앞에 형편없이 무너져 내렸었는지, 여전히 우린 기억합니다. 공포와 두려움이 가장 극심했던 팬데믹 초기를 생각하면 죽음의 공포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지 우리는 똑똑히 목도할 수 있었습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아주 극소량의 바이러스는 극심한 혼란과 함께 그 안에서 각개전투처럼 자행되던 이기주의를 통해 인류가 공고히 쌓아 올린 규칙과 규범들을 삽시간에 파훼하고 해체했죠. 당시 우리가 겪었던 참상을 그림으로, 혹은 예술로 표현한다면 우린 무엇을, 그리고 어떤 것을 담을 수 있을까요? 이 책을 다 읽은 독자라면 분명 이 질문과 마주하게 됩니다.
역사를 바라볼 줄 아는 맥락의 힘을 제공함으로써,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를 대입해 보며 새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도록 저자는 독자를 안내합니다. 덕분에 이 책의 진짜 가치는 책을 덮은 뒤 나오는 질문의 힘이라고도 정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겪은 코로나19를 그림으로 표현한다면 무엇을, 그리고 어떻게 담고 싶으신가요. 더 나아가 앞으로 또다시 인류를 위협할 재앙들이 닥칠 때, 우린 어떻게 행동하고 대처해야 할까요?
『저주받은 미술관』이라는, 꽤 위협적인 제목이 붙게 되었지만 이 역시 저자의 위트와 유머가 반영된 결과라는 생각이 책의 말미에서 느껴집니다. 역사를 바라보는 입체적인 관점과 함께 역사에서 등장하는 명화들 각각이 담고 있는 숨은 이야기들을 발견하고자 하는 이에게, 이 책을 권합니다. 더 나아가 삶에서 필연적으로 마주할 수밖에 없는 재앙(과도 같은 일)을 대하는 태도 또한 기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저주받은 미술관』에서 통찰과 위로 모두를 얻어가시길 바랍니다.
해당 아티클은 영진닷컴의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