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을 주제로
지혜를 말하는 소설

무언가 잃어버린 듯한 기분이 들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우리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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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감정 느낀 적 없나요? 인생에서 얻을 수 있는 건 이미 다 얻었고, 앞으로 잃어갈 일밖에 없다고 느껴질 때요. 누군가와의 이별을 예견할 때, 인생의 한 시절이 돌아갈 수 없는 챕터로 막을 내렸음을 실감할 때 마음은 지레 움츠러들고는 합니다. 하지만 여기 그런 느닷없는 슬픔이 당신 혼자만의 것은 아니라고 말해주는 소설들이 있습니다. 소설 속 인물과의, 혹은 그 인물을 빚어낸 작가와의 공감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겠지요. 다가올 상실에 대한 두려움으로 움츠러든 마음에 조금씩 기지개를 켜볼까요? 오늘은 결핍을 끌어안은 채 살아내는 이야기가 담긴 소설 3권을 소개합니다.


F.스콧 피츠제럴드,
『피츠제럴드 단편선 1』

소설 『피츠제럴드 단편선 1』
이미지 출처: 민음사

‘상실’이라는 키워드를 생각하면 피츠제럴드가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1920년대 미국 재즈 시대를 관통하며 『위대한 개츠비』로 찰나의 명성을 누린 피츠제럴드. 얼마 지나지 않아 빚에 떠밀린 채 생계를 위해 여러 매거진에 단편을 기고하며 전전하다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하는데요. 불꽃같은 인생을 살다간 그는 아마도 순식간에 지나간 행복에 대해 가장 잘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겠지요. 『피츠제럴드 단편선 1』에는 여러 단편에 걸쳐 무언가를 잃어버린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다시 찾아온 바빌론」에서는 딸을, 「겨울 꿈」에서는 사랑의 열정을, 「비행기를 갈아 타기 전 세 시간」에서는 추억을 상실당하죠.

단편들은 인물이 상실을 감지하는 바로 그 찰나에서 끝이 나기에 씁쓸한 뒷맛이 남습니다. 하지만 개인의 경험이기만 할 때는 서글펐던 일도 공통의 경험이 되면 위로가 되지요.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머나먼 미국 땅을 배경으로 그려진 인물들도 지금의 우리와 똑같이 외로워하고, 허탈해한다는 점은 그래서 위로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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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

소설 『노르웨이의 숲』
이미지 출처: 민음사

‘상실’을 이야기할 때 『상실의 시대』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있을지요. 두 번째로 소개할 소설은 오랫동안 『상실의 시대』로 불려왔지만 이제는 더 익숙한 제목, 『노르웨이의 숲』입니다.

하루키는 작가로서 피츠제럴드를 좋아하는 걸로도 유명합니다. 실제로 『노르웨이의 숲』 속 주인공 와타나베가 『위대한 개츠비』를 즐겨 읽는 설정이기도 하지요. 그래서인지 30대에 발표한 『노르웨이의 숲』부터 70대에 발표한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까지, 하루키의 소설 속에는 무언가를 (주로 첫사랑을) 잃어버린 인물이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주인공 와타나베는 10대의 끝자락에서 단짝 친구 기즈키를 떠나보냅니다. 사유는 자살이었는데요. 그의 곁에 남은 건 오직 두 명입니다. 20대의 초입에서 새로이 만난 인물, 미도리. 그리고 기즈키에 대한 기억을 공유하는 유일한 인물이자 기즈키의 전 여자친구, 나오코. 와타나베는 나오코와 천천히 가까워지지만 그녀 또한 언제든 자신을 떠날 수 있다는 생각에 늘 두려운데요. 소설의 끝자락에서 나오코는 어느 날 갑자기 불현듯, 그의 인생에서 사라집니다. 20대의 초입에 다시 한번 상실을 겪는 와타나베는 여름부터 봄꽃이 질 때까지 오래 앓습니다.

새로운 사랑으로 대변되는 미도리가 기다리는 길. 그리고 기즈키와 나오코가 먼저 지나간 길. 두 갈래의 갈림길에서 와타나베는 결국 어느 쪽을 선택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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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루 포터,
『사라진 것들』

소설 『사라진 것들』
이미지 출처: 문학동네

마지막으로 소개할 이야기는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으로 유명한 앤드루 포터의 두 번째 소설집, 『사라진 것들』입니다. 첫 번째 소설집과 지금의 소설집 사이에는 무려 15년의 시간이 있었는데요. 그동안 앤드루 포터가 작가를 넘어 한 명의 인간으로서 얼마나 지난한 시간을 견뎌왔는지 증명이라도 하듯, 『사라진 것들』 속 단편들에는 공통적으로 진득한 상실의 정서가 베어 나옵니다.

육아를 거치며 정신없이 삶을 꾸리다 문득 지난 날을 돌아보는 인물, 우리의 사랑이 아직 푸르렀을 때를 그리워하는 인물, 끝나버린 관계를 우두커니 서서 바라보는 인물. 『사라진 것들』 속 인물들은 이미 무언가 사라지고 있다는 현실과 그 사실을 이제야 깨달은 현재 사이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우두커니 서있습니다. 이들은 아마 우리와 닮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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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상대방을 ‘어른’이라고 느끼는 순간이 있나요? 필자는 누군가 상실에 익숙하다는 걸 포착할 때 그가 확 어른으로 느껴집니다. 소중한 무언가를 잃어도 의연하게 일상을 꾸릴 때, 저 사람이 저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필요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럴 때 상대방은 정말 어른이고 그와 나 사이에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시간의 강이 흐른다는 사실을 실감합니다.

상실 앞에서 초연해지려면 결국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한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오늘의 비-상실에 감사하며 잠자리에 드는 것 뿐이겠지요. 인생의 끝자락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잃을까요? 또 얼마나 많은 것을 그리워하게 될까요?

그럼에도 이 순간을 분명 그리워할 미래의 내가 있기 때문에 지금이 더욱 귀해진다 생각합니다. 미래의 그리움을 기억하며, 여러분께서도 만연한 이 봄을 두려움 없이 만끽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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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재

파주출판단지 노동자
무해한 삶을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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