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다 미리 만화 속
복잡할 것 없는 인생

간결한 글과 그림에 담긴
행복의 비결
Edited by

마스다 미리는 데뷔 24년 차, 한국에 소개된 지 10년이 넘은 일본의 만화가이자 에세이스트입니다. 한국에 출간된 만화만 해도 60권 이상이고 에세이와 소설까지 포함하면 100권이 넘습니다. 작가는 오랜 시간 꾸준히 간결한 그림과 담백한 대사로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 이야기를 다루었습니다. 올봄에 나온 신작 『누구나의 일생』은 일본 만화계의 권위 있는 상인 데즈카 오사무 문화상 단편상을 수상하기도 했지요. 오랜 시간 사랑받고 있는 마스다 미리의 만화는 무엇이 특별할까요? 건강한 삶의 태도를 보여주는 마스다 미리의 만화 세계를 소개합니다.


8컷이면 충분한 우리 인생

『오늘의 인생』 (2017)
『오늘의 인생』 (2017). 이미지 출처: 이봄

마스다 미리의 만화는 단순하고 여백이 많습니다. 한 페이지에 크기가 같은 네모 칸 8개가 들어갑니다. 그림도 마찬가지입니다. 쉽게 따라 그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세밀한 묘사나 장식이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눈이 편합니다. 비교적 큼지막한 네모 칸에 그림이든 글이든 꽉 차 있지 않아서 읽는 데 부담이 적습니다. 작가의 만화가 느긋하고 여유 있는 인상을 남기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내 누나』 (2014).
『내 누나』 (2014). 이미지 출처: 이봄

이러한 단순한 형식은 독자가 대사에 집중하는데 효과적입니다. 잠깐 동안 함께 살게 된 남매의 이야기를 다룬 ‘우리 누나 시리즈’(전 5권)는 남매가 퇴근 후 식탁에서 저녁식사를 하거나 술을 마시는 장면이 대부분입니다. 이 작품의 매력은 식탁에 마주 앉아 연애와 인생에 대해 가감 없이 논하는 남매의 유쾌한 대화입니다. 서로 눈치 보지 않고 할 말 다 하며 비난도 서슴지 않는 현실 남매 사이를 잘 반영한 만큼 작가의 작품 중 가장 코믹합니다. 화려한 그림이나 대단한 연출이 없어도 시선을 뗄 수 없는 마스다 미리 만화의 강점은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나온 현실적인 묘사임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나 지금 괜찮은 걸까?
묻고 또 묻기

마스다 미리가 그리는 인물은 20대 대학생, 30대 싱글 여성, 사회생활 10년 이상의 직장인, 결혼 11년 차 딩크족 부부, 함께 사는 남매, 은퇴한 노부부까지 참 다양합니다. 주인공의 상황에 따라 주제는 조금씩 다르지만 작가의 만화 속 인물들은 모두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조금 더 나은 내가 되고자 합니다.

『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 (2013).
『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 (2013). 이미지 출처: 이봄

마스다 미리의 대표작인 ‘수짱 시리즈’의 첫 번째 책 『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2013)는 지친 퇴근길에 가끔 우동 한 그릇 사 먹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곤 하는 수짱의 일상을 담았습니다. 카페에서 일하는 수짱은 어느 날 친구에게 무례한 손님에 대해 이야기하며 싫은 사람을 나열하다가 문득 되묻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닌 걸까?’ 둥근달이 뜬 밤하늘과 국물 음식이 좋다는 수짱의 생각으로 에피소드가 마무리됩니다. 쉽게 결론짓지 않고 쉽게 깨닫지도 않는 물음표의 방식, 작가의 화법입니다. 누구에게나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판단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스스로에게 칭찬은 물론 비난도 어려울 때가 많기 때문이죠. 작가는 질문을 남기고, 독자는 자신만의 대답으로 여백을 채워야 합니다. 수짱의 이야기는 2013년부터 2020년까지 7년에 걸친 5권 시리즈로 완결되었습니다. ‘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했던 이야기가 시리즈 마지막 단행본 제목인 ‘나답게 살고 있습니다’는 마침표로 끝나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평균 연령 60세 사와무라 씨 댁의 이런 하루』 (2015)
『평균 연령 60세 사와무라 씨 댁의 이런 하루』 (2015). 이미지 출처: 이봄

나이가 들어도 자신과의 대화는 끊이지 않습니다. 고령화 시대의 가족을 그린 ‘사와무라 씨 댁 시리즈’는 70대 아버지, 60대 어머니, 40대 딸이 함께 사는 이야기입니다. 정년퇴직한 지도 꽤 된 70세의 사와무라 씨는 헬스장에 등록하면서 여전히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픈 마음을 자각합니다. 나이가 들면 나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 바뀌곤 합니다. 나는 여전히 그대로인 것 같은데 괜히 주변 눈치를 보고 겁을 먹기도 합니다. 사와무라 씨 가족을 통해 아직 살아보지 않은 미래와 해보지 않은 질문을 생각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관계를 맺으며 산다

마스다 미리의 만화는 다중 시점을 취해 여러 인물의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주인공과 관계를 맺고 있는 주변 사람들은 또 다른 주인공으로서 작품을 이끌어 갑니다.

『주말엔 숲으로』 (2012).
『주말엔 숲으로』 (2012). 이미지 출처: 이봄

『주말엔 숲으로』(2012)는 시골 살이를 시작한 하야카와와 도시에 사는 그녀의 친구인 마유미와 세스코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서두르지 않는 성격에 자연의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세심한 눈을 가진 하야카와는 친구들에게 숲의 다양한 모습을 소개합니다. 주말마다 하야카와와 함께 숲에서 시간을 보내는 두 친구는 도시의 일상으로 돌아가 숲에서 경험한 지혜를 적용하며 살아갑니다. 싹을 피우는 나무를 보며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건 기분이 좋다’던 하야카와의 말을 떠올린 마유미는 업무에 서툰 후배를 보며 짜증을 느끼지만 결국 다시 한번 가르쳐 주겠다고 말합니다.

『주말엔 숲으로』 (2012). 이미지 출처: 이봄
『주말엔 숲으로』 (2012). 이미지 출처: 이봄

거창한 계획 없이 시골 살이를 시작한 하야카와 역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동네 주민들과 가까워지고, 매주 찾아오는 친구들 덕분에 만족스러운 시골 생활을 이어갑니다. 이렇듯 마스다 미리의 만화는 각자의 위치에서 서로 다른 일하며 사는 사람들이 함께하는 시간을 통해 즐거움을 느끼고, 일상을 충실하게 가꾸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작가는 누구나 소중한 친구가 있고, 가끔 부모님에게 잔소리도 듣고, 어쩌다 한번 무례한 사람도 만나는 사회 속에서 살고 있다는 점을 끊임없이 상기시킵니다.


마스다 미리의 만화는 복잡하지 않습니다. 간결한 선으로 핵심만 표현하는 작가의 그림만큼이나 작품 속 인물들은 그 누구도 인생을 심각하게 대하지 않습니다. 실수를 하면 인정하고, 잘못을 하면 반성합니다. 옆에 있는 사람을 소중히 여기기에 타인의 보이지 않는 마음을 지레 짐작하지 않습니다. 불운을 맞닥뜨려도 훌훌 털고 다시 일어나 걷습니다. 냉소와 비관 대신 자잘한 행복과 웃음이 가득합니다. 우리 모두가 바라는 스스로의 모습이자 타인에게 기대하는 모습일지 모릅니다. ‘그리 복잡할 것 없는 인생.’ 작가는 지금까지 이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작가의 만화를 읽다 보면 그동안 알아채지 못한 인생의 수많은 행복을 발견하는 눈이 생길 거란 기대감이 듭니다. 마스다 미리의 세계가 이토록 오랜 시간 지속된 건 다정한 사람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고 싶은 독자들이 작가가 그리는 동네로 하나 둘 모여들었기 때문은 아닐까요?


Picture of 김자현

김자현

그림과 글, 잡다한 취향의 힘으로 살아갑니다.

에디터의 아티클 더 보기


문화예술 전문 플랫폼과 협업하고 싶다면

지금 ANTIEGG 제휴소개서를 확인해 보세요!

– 위 콘텐츠는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받는 저작물로 ANTIEGG에 저작권이 있습니다.
– 위 콘텐츠의 사전 동의 없는 2차 가공 및 영리적인 이용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