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발레와
친해지는 공연 3선

형식과 반복이 선사하는 감동
고전발레 입문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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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티벌의 계절입니다. 음악은 두말할 것도 없고 봄꽃, 밤산책, 지역 등 다양한 테마의 축제 일정이 줄줄이 이어져 들뜨는데요. 발레 축제도 있다는 소식 들어보셨나요? 2012년부터 시작된 대한민국 발레축제가 올해도 어김없이 5월과 6월에 걸쳐 펼쳐집니다. 국내 국·시립 발레단과 민간 발레단이 참여하고 인기 클래식 발레뿐만 아니라 컨템포러리 발레 등 여러 레퍼토리를 선보여 발레의 아름다움을 전하고 대중화를 실천합니다. 그런데 무작정 축제를 즐겨보자니 아직은 발레가 낯설기만 하다면 클래식 발레의 대표작들을 먼저 만나보기를 권합니다. 발레축제 초청 공연을 필두로 앞으로 상연이 예정된 고전발레 3선을 소개합니다.


국립발레단
<돈키호테>

국립발레단 <돈키호테>
이미지 출처: 국립발레단 홈페이지

<돈키호테>는 국립발레단 제201회 정기공연이자 발레축제의 일환으로 찾아옵니다. 이 작품은 스페인 소설가 미겔 데 세르반테스가 쓴 원작 『돈키호테』를 소재로 하지만 내용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오스트리아의 안무가 겸 무용수였던 프란츠 힐베르딩에 의해 처음 발레로 각색되었고 가장 유명한 버전은 발레계 거장 안무가 마리우스 프티파와 작곡가 루트비히 밍쿠스에 의해 완성됐습니다. 초연 이후 재안무 과정을 거치고 20세기에 들어서 안무가 알렉산더 고르스키가 변경한 부분이 녹아들면서 작품은 영글었죠. 클래식 발레의 매력은 같은 작품도 발레단의 색깔에 따라 미묘하게 변주되는 것에서 나오는데요. 국립발레단의 버전은 보통의 3막 구조와는 다르게 2막으로 구성됩니다.

주요 인물은 키트리, 바질, 로렌조, 가마쉬, 돈키호테, 산초 판자. 기사도 문학을 읽다 잠 든 돈키호테는 꿈속에서 환상의 여인 둘시네아를 마주하고 깨어난 후 산초 판자와 그녀를 찾아 모험을 떠나기로 합니다. 본격적으로 막이 오르면 활기찬 바르셀로나의 광장에서 선술집 주인 로렌조의 딸 키트리가 연인인 이발사 바질과 사랑을 속삭입니다. 그러나 아버지 로렌조는 바질을 못마땅히 여기고 돈이 많은 귀족 가마쉬에게 시집보내려 해 소동이 벌어집니다. 마침 광장에 도착한 돈키호테는 키트리를 보고 자신이 그리던 여인 둘시네아로 착각하다, 키트리와 바질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되면서 자리는 더욱 시끌벅적해집니다.

혼란을 틈타 도망친 키트리와 바질, 그들을 쫓아온 돈키호테가 발길 닿는 대로 도착한 숲에서 우연히 유랑 극단과 만납니다. 유랑 극단의 연극을 엉겁결에 보게 된 돈키호테는 극 중 등장한 괴물을 꿈속에서 둘시네아를 납치한 괴물로 여기고 흥분해 덤벼들지만 사실은 풍차를 들이받고 정신을 잃습니다. 돈키호테의 환각에서는 그리스 신화의 나무 요정 드라이어드와 큐피드가 아른거리기도 하고 키트리가 곧 둘시네아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네요. 결국 돈키호테의 여정도, 키트리와 바질의 관계도, 모든 일은 제자리를 찾아가며 마무리됩니다.

<돈키호테> 3막 키트리 바리에이션, 동영상 출처: Royal Opera House 유튜브 채널

특히 ‘돈키호테의 환상’ 장면은 본래 돈키호테가 거대한 거미와 싸우는 전개였던 것을 고르스키가 새롭게 고치면서 서정성과 풍부함을 더했다고 평가받습니다. 이에 따라 빠른 음악에 맞춰 역동적인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1막 키트리와 우아함과 환상성을 전하는 2막 둘시네아를 모두 맡는 주역 무용수의 폭넓은 면모를 볼 수 있는 특징이 살아났고, <돈키호테>를 감상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마지막 키트리와 바질이 축복받으며 기쁨을 발산할 때 키트리의 다채로움은 한 번 더 확인됩니다. 또 스페인을 배경으로 한만큼 스페인의 민속 무용 세기딜랴, 플라멩코, 판당고 등을 발레화한 캐릭터 댄스가 흥을 돋우는 점을 눈여겨봐야 합니다.


<돈키호테> 상세 페이지


유니버설발레단
<잠자는 숲속의 미녀>

유니버설발레단 <잠자는 숲속의 미녀>
이미지 출처: 유니버설발레단 공식 인스타그램

<잠자는 숲속의 미녀>는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과 함께 표트르 차이코프스키의 3대 발레 명작 중 하나로 인정받죠. 프랑스 동화작가 샤를 페로의 작품을 바탕으로 합니다. 놀랍게도 차이코프스키는 앞서 <백조의 호수> 음악을 발표하고 혹평에 시달리며 발레 음악에서 손을 떼려 했는데, <잠자는 숲속의 미녀>의 각본을 쓴 이반 브세볼로스키의 설득으로 다시 작곡에 나설 수 있었다고 합니다. 안무는 역시나 마리우스 프티파가 맡았습니다. 1890년, 지금은 마린스키 극장이 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황실극장에서 초연한 후 130년 이상 사랑받아왔는데요. 여러 버전 공연이 3시간을 훌쩍 넘기는 것에 비해 유니버설발레단은 극을 압축해 몰입도를 높이기도 했습니다.

이야기는 우리에게 익숙합니다. 오로라 공주의 탄생을 기념하는 축하 잔치에 초대받지 못해 분노한 마녀 카라보스는 ‘공주가 16세가 되면 물레바늘에 손가락을 찔려 죽게 될 것’이라는 저주를 내리고 사라집니다. 시간이 흘러 오로라 공주는 카라보스의 저주에 휘말리게 되지만 수호신 라일락 요정이 나타나 죽음 대신 깊은 잠에 빠지게 하며, 진실한 사랑의 입맞춤만이 공주를 깨울 수 있도록 마법을 겁니다. 이렇게 100년간 깊이 잠들어버린 공주는 데지레 왕자의 사랑으로 깨어나고 결혼식을 올립니다.

<잠자는 숲속의 미녀> 로즈 아다지오, 동영상 출처: Royal Opera House 유튜브 채널

<잠자는 숲속의 미녀>는 성대한 무대와 화려한 의상, 형식미 등으로 꽉 차 있습니다. 기본에 충실해 정교하게 소화해야 하는 오로라 공주와 왕자들의 ‘로즈 아다지오’는 보는 이를 단번에 매료하는 기교라기보다는 고전발레의 정석적인 고난도 표현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클래식 발레의 교과서라는 수식어가 붙기도 합니다. 나아가 후반부에 이르러 오로라 공주를 지키는 신비로운 여섯 요정이 결혼식을 축하하는 독무나 샤를 페로의 다른 동화인 『장화 신은 고양이』, 『빨간 모자』, 『신데렐라』 속 캐릭터가 나오는 대목은 볼거리로 빈틈이 없습니다. 남녀 무용수 2인무를 뜻하는 파드되도 놓칠 수 없는데 오로라 공주와 데지레 왕자의 파드되가 단연 압권입니다.


<잠자는 숲속의 미녀> 상세 페이지


국립발레단
<라 바야데르>

국립발레단 <라 바야데르>
이미지 출처: 국립발레단 홈페이지

프랑스어로 인도의 무희를 뜻하는 <라 바야데르>에는 19세기 유럽에서 경이롭게 여겼던 인도의 이국성이 스며있습니다. 마리우스 프티파는 고대 인도 굽타 제국의 시인이자 극작가인 칼리다사가 지은 『샤쿤탈라』가 발레로 제작된 것에서 영감을 받아 4막으로 구성된 <라 바야데르>를 만들었습니다. 작곡가는 <돈키호테> 음악도 작곡한 루트비히 밍쿠스. 현재까지 공연되는 버전은 세 가지 정도로 갈리는데 프티파의 안무를 원형으로 삼고 무용수 바크탕 차부키아니, 나탈리아 마카로바, 루돌프 누레예프가 보완한 결과들입니다. 4막이 3막으로 수정되거나 끝맺음에서 차이가 생겼습니다.

인도 황금 제국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얽히고설킨 비극적인 드라마는 제례를 올리는 제사장 브라만과 수도승 그리고 무희들이 문을 엽니다. 제례가 끝나고 모두가 떠난 자리에서 아름다운 무희 니키아와 전사 솔로르는 서로에 대한 사랑을 약속하지만 니키아를 남몰래 흠모하던 제사장 브라만은 이를 엿듣고 분노하죠. 한편 더그만타 국왕이 공주 감자티와 솔로르가 약혼할 것을 공표하자 브라만은 니키아와 솔로르의 관계를 국왕에게 누설해 비극의 씨앗을 뿌립니다. 막대한 권력을 쥔 공주 감자티는 솔로르의 마음을 뺏기 위해 어떠한 방법도 서슴지 않으며 니키아와 신경전을 벌이고 국왕은 니키아를 처형할 계획을 세웁니다. 권력의 함정과 절망감에 빠진 니키아는 죽음에 이르고 맙니다.

<라 바야데르> 쉐이즈 군무, 동영상 출처: Opera national de Paris 유튜브 채널

120여 명의 무용수, 200여 벌의 의상 등이 투입되는 <라 바야데르>는 발레계의 블록버스터로 설명되곤 합니다. 압도적인 규모와 더불어 인도 궁전의 색채감이나 대표적인 클래식 발레 의상 형태와는 결이 다른 니키아의 의상이 돋보이기도 합니다. 완벽한 기교가 느껴지는 남성 솔로 ‘황금 신상의 춤’은 긴 잔상을 남깁니다. 하지만 <라 바야데르> 하면 무엇보다 3막 망령들의 왕국에서 ‘쉐이즈 군무’를 떠올릴 수밖에 없습니다. 자연스레 주역 무용수에게 관심이 쏠리기 마련이지만 이 작품은 군무가 백미인 것입니다. 32명의 무용수가 경사진 무대를 따라 일정한 간격으로 선보이는 발레블랑(ballet blanc)1)은 숨이 멎을 듯한 몽환적인 분위기를 고스란히 전합니다.


<라 바야데르> 상세 페이지


발레는 사람의 몸이 빚어내는 이야기를 이상화한 예술입니다. 몸선으로 미의 완전함에 가닿고자 하는 갈망이 담겨있습니다. 특히 클래식 발레가 규범적인 것은 이런 이유가 한몫합니다. 유연성, 체력, 기술력, 표현력 등을 모두 갖춘 무용수들이 아름다움을 위해 엄격히 짜여진 형식을 수행하는 것. 그래서 어렵다고 여겨지기도 하지만 이상을 추구하는 우리의 본성이 낳은 예술은 어느새 감동을 전하고 있을 거예요. 오랜 세월을 관통한 고전은 역시 고전이긴 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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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가장 보편적인 일상의 단면에서 철학하기를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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