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을 구분 짓지 않는
오타쿠 작가 무라카미 다카시

문화 간의 경계를 넘어
예술의 영역을 확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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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월, 자신이 뉴진스의 팬임을 밝히며 언젠가 만나길 염원했던 한 작가가 있습니다. 그리고 올해 마침내 그의 오랜 바람을 협업으로 성취해 냈습니다. 뉴진스의 앨범을 사면 그의 작품을 거저 준다는 우스갯소리도 SNS에 떠돌며 대중들의 소장 욕구를 한껏 자극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정체는 바로 세계적인 팝아트 거장인 무라카미 다카시(Murakami Takashi)입니다. 오타쿠를 자처하는 그는 소위 저급 문화라 불리던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현대 미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현대미술의 다양성을 구축하는 데 이바지했다고 합니다. 예술가라기엔 너무나 독특한 그의 행보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보고자 합니다.


‘일본의 앤디워홀’이라고
불리는 오타쿠 작가

작품 앞의 무라카미 다카시
작품 앞의 무라카미 다카시, 이미지 출처: VOGUE INDIA

1962년, 도쿄에서 태어난 무라카미는 어린 시절부터 서예와 전시회를 통해 자연스럽게 미술을 접하며 자라났다고 합니다. 동시에 그는 ‘은하철도999’와 같은 일본 애니메이션에 매료되어 서브컬쳐에 흥미와 관심을 두며 유년 시절을 보냈다고 합니다. 이후 예술대학에서 일본화를 전공하게 되며, 초기에 그는 일본 전통화를 작업하고, 일본화로 박사 학위까지 받아냅니다.

그가 활동하던 초창기, 일본의 순수예술은 서구에 많이 종속되어 있었고 어떤 작품을 선보이더라도 아류작으로 치부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무라카미는 일본 미술만이 가지고 있는 감수성을 연구하기 시작합니다. 동시에 다양한 취향을 존중해야 할 현대 사회에 여전히 존재하던 예술 내의 위계질서에 고뇌를 품게 됩니다. 이에 작가는 서구권의 현대미술에 비해 상대적으로 하위 문화 취급을 받던 만화와 애니메이션 사이의 간극을 평평하게 만들기로 결심합니다. 일본적인 색깔을 드러내며 예술 사이의 경계를 허물어 버릴 해답을 뉴욕의 오타쿠 문화에서 찾아내게 됩니다.

오타쿠 문화는 이미 순수예술보다 더 많은 팬덤과 더 큰 시장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고, 게다가 이러한 서브 컬쳐 감성은 미국에서도 성공했던 사례가 존재했습니다. 마르셀 뒤샹의 샘을 필두로 한 레디메이드, 앤디워홀이 캠벨 수프캔을 미술관에 가져다 두었던 사례, 제프 쿤스가 선보인 네오팝까지 모두 만화적 감성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이 사례를 통해 무라카미는 일본의 오타쿠 문화야말로 유일하게 일본에만 존재하는 확실한 원천이며 고유한 자산임을 확신하게 됩니다.

Murakami Takashi, “727”, 1996
Murakami Takashi, “727”, 1996

이후 그는 순수예술인 일본 전통화부터 서브컬쳐인 오타쿠 문화까지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새로운 사조인 ‘슈퍼 플랫(Super Flat)’을 만들어 냅니다. 슈퍼 플랫은 고급 문화와 저급 문화, 순수 예술과 대중 예술 간에 큰 차이가 없음을 말합니다. 오히려 이들 사이에는 ‘평면성’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일본 전통화, 만화, 애니메이션도 모두 평면성을 강조한 그림이기에 일본의 서브 컬쳐는 과거 전통 미술의 평면성을 계승하고 있음을 강조하며 문화 간의 고저가 없음을 시사합니다. 무라카미는 이 이론을 통해 초기 본인이 작업하던 일본 전통화에서 오타쿠 문화로 넘어온 작품 전개 과정에 설득력을 더합니다.


서브컬쳐를
예술작품으로 끌어들이다

왼쪽부터 “My Lonesome Cowboy(1998)”, “ZuZuZaZaZaZa(1999)”, “Hiropon(1997)”
왼쪽부터 “My Lonesome Cowboy(1998)”, “ZuZuZaZaZaZa(1999)”, “Hiropon(1997)”, 이미지 출처: HELL&

그의 대표작 “Hiropon”과 “My Lonesome Cowboy”는 오타쿠 문화의 ‘모에’ 요소를 적절히 녹여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모에’란 ‘소비자의 특정 관심을 촉발하기 위해 만든 캐릭터’의 특징을 의미하는데요. 어떠한 맥락을 가지고 형성되며 이는 오타쿠 문화의 방대한 데이터 베이스를 구성하기도 한답니다. 두 작품은 피규어에서 볼 수 있는 모에 요소를 따왔습니다. 보통 피규어에서는 캐릭터의 신체에 대한 성적 묘사를 하는데 작가는 이 요소를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재해석하였습니다. 또한 기존의 피규어 크기가 아닌 실제 사람의 크기로 제작하여 전시장에 배치하여, 익숙하면서도 기괴한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작품 “Hiropon”이 등장하고 사람들은 다양한 해석을 내놓습니다. 일각에서는 일본의 버블 경제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평가도 존재합니다. 풍선처럼 부푼 가슴은 일본의 거품 경제에서 거품이 빠져나가는 상황을 상징하며, 춤추듯 줄넘기를 하는 모습은 그 시절 일본의 무능함을 내포했다는 평이 있었습니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서브 컬쳐 문화로 대변되는 인물상에 숨겨진 성적 함의나 상품화, 강박관념과 같은 사회적 이슈를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Murakami Takashi, “도라에몽과 나”, 2019
Murakami Takashi, “도라에몽과 나”, 2019

대표 캐릭터 ‘카이카이 키키’는 괴괴기기(怪怪奇奇), 기괴하다는 뜻을 가진 코스모스(cosmos) 모양의 캐릭터로 꽃 이름이자, ‘우주’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합니다. 다채로운 컬러와 단순한 디자인으로 구성된 시그니처 캐릭터는 사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습니다. 활짝 웃는 얼굴 뒤에 숨겨진 절망과 공포를 드러내고자 그의 작품 세계관을 담은 캐릭터를 만들어냅니다. 이러한 그의 시도는 서브컬쳐를 통해 현대 사회의 이슈를 논하는 기회를 제공함은 물론, 서구권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일본적인 미술을 전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확장된 예술을 생산하다

슈퍼플랫 개념은 경계를 넘으며 미술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만화와 애니매이션까지 아우르는 슈퍼플랫 개념을 통해 부가가치도 창출합니다. 그는 ‘카이카이 키키’라는 회사를 세워 회화 작품은 물론 캐릭터를 새긴 굿즈를 제작하여 판매하기도 합니다.

루이비통x무라카미 다카시 Monogram Multicolors Speedy City Bag
루이비통x무라카미 다카시 Monogram Multicolors Speedy City Bag, 이미지 출처: Louis Vuitton

이후 기업의 대표로서 본인의 예술적 입지를 공고히 할 수 있는 사업을 따내게 됩니다. 패션계와 아티스트 간 협업사례가 없던 시기에 하이엔드 브랜드인 ‘루이비통’과의 협업이었습니다. 당시 루이비통의 수석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Marc Jacobs)는 무라카이와의 협업으로 젊은 소비자들을 타겟팅하기 위해 그에게 직접 러브콜을 보냅니다. 무라카미는 루이비통의 보수적이고 무거운 이미지를 살리기보다, 일본의 키치하고 톡톡 튀는 색감의 만화적 그래픽을 더해 루이비통의 힙한 이미지를 탄생시킵니다.

2009년 루이비통 X 무라카미 다카시 콜라보 매장
2009년 루이비통 X 무라카미 다카시 콜라보 매장, 이미지 출처: Louis Vuitton

이에 힘입어 작가는 장기 프로젝트를 통해 루이비통과의 협업 라인을 제작하며 세대 간의 취향은 물론, 작품과 제품 사이의 간극을 좁히는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그의 개인전이 진행되던 전시장 2층에 루이비통 매장을 차리기도 했습니다. 단지 아트샵 개념이 아닌, 실제 매장의 인테리어 요소를 그대로 사용하며 실제로 매장에 온 듯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이러한 이례적인 협업의 기회로 매장에서만 이루어지던 예술과 상품의 협업을 미술관까지 영역을 넓힙니다.

무라카미 다카시의 “Super Flat Museum” 피규어들
무라카미 다카시의 “Super Flat Museum” 피규어들, 이미지 출처: Artsy

그의 독특한 행보는 이에 그치지 않습니다. 루이비통과 콜라보 이후, 다음 협업 대상은 편의점이였습니다. 협업을 통해 작가는 ‘수퍼플랫 미술관’이라는 50종의 피규어 패키지를 선보였습니다. 각각 피규어는 일련번호가 있으며, 이 피규어들은 단 3천 점만 생산하였습니다. 패키지의 가격이 한화 3천5백원 정도로 저렴하다는 점, 한정 수량이라는 점과 작품의 일련번호와 설명서도 동봉되어 있다는 점이 대중들의 소장욕구를 자극했습니다. 이렇듯 그의 발칙한 협업은 화이트큐브의 경계를 허물고 일상에 녹아듭니다.

KANYE WEST 'GRADUATION' 앨범 커버
KANYE WEST ‘GRADUATION’ 앨범 커버, 이미지 출처: JUXTAPOZ MAGAZINE

그의 협업은 음악과 미술의 경계를 넘나들기도 합니다. 퍼렐 윌리엄스(Pharrell Williams), 카니예 웨스트(Kanye West), 빌리 아일리시(Billie Eilish)등 세대를 대표하는 아티스트들의 뮤직비디오, 앨범 커버 및 굿즈는 그의 독창적인 손길이 담겨 있습니다. 그의 예술 세계에는 위계 질서가 없었듯, 대중들이 사유하는 어떠한 문화 간에도 장벽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뉴진스 ‘Right Now’ 뮤직 비디오 티저 장면
뉴진스 ‘Right Now’ 뮤직 비디오 티저 장면, 이미지 출처: ADOR

무라카미는 권위에 얽매이지 않고 세대를 넘어 소통하기도 합니다. 그는 2024년 뉴진스의 일본 정식 싱글 [Supernatural] 에도 참여하며 더 넓은 범위의 대중들에게도 그의 세계관을 선보입니다. 가방 형태 앨범에는 다채로운 컬러의 ‘뉴진스X무라카미 다카시’ 협업 캐릭터가 그려져 소장 가치가 더해졌습니다. 5월 1일 공개된 ‘Right Now’의 뮤직비디오 티저에도 뉴진스와 무라카미의 시너지가 담긴 감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뮤직비디오 티저 말미에서 등장한 ‘뉴진스X무라카미 다카시’ 협업 캐릭터는 멤버 각각의 개성을 고스란히 담아내었다는 폭발적인 호평을 받기도 합니다. 이러한 협업 과정이 소속사 어도어의 대표 민희진의 인스타그램에 업로드되기도 해 팬들에게 보는 재미를 더했답니다.


대중을 위한 작품활동
혹은 노골적인 마케팅

<예술 기업론>표지
<예술 기업론>표지, 이미지 출처: 카이카이 키키

하지만 일각에서는 그가 상업성을 위해 그럴듯하게 설득력 있는 사조를 만들었다는 비판이 존재합니다. 2006년에 무라카미가 출판한 <예술 기업론>은 예술을 기업처럼 운영하는 방식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예술이라는 분야가 결국에는 상상력을 벌이는 장사라는 걸 인정해야 하며, 도파민에 중독된 현대인의 감성을 뒤흔들어야 함을 자신의 책을 통해 주장합니다. 몇몇 독자들은 철저히 사업적으로 예술에 접근하며 자본주의를 무작위로 수용하는 그의 모습에 실망하기도 합니다.

 “미스 코코(Miss Ko²)”와 무라카미 다카시의 모습
“미스 코코(Miss Ko²)”와 무라카미 다카시의 모습 ,이미지 출처: 대구미술관

앞서 언급한 피규어 작품에서도 또 다른 논란의 여지는 존재합니다.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노골화하는 오타쿠 문화를 비판하기는커녕 아무 생각 없이 차용하여 작품에 담아냈다는 의견과 더불어 슈퍼 플랫이 예술의 본질을 흐린다는 의견도 피해 갈 수 없는 논점 중 하나입니다.

물론, 그의 책을 찬찬히 다시 읽어보면 왜 이러한 방향성을 추구하였는지 조금은 납득 가능하기도 합니다. 자신이 있는 미술계에서는 생계를 꾸려나가는 방법도 가르쳐 주지 않고, 현실 세계와 동떨어진 곳이기에 예술가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사업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렇기에 자신의 작업에 명분을 더해줄 수 있는 미술사적 가치를 만들어 작품의 가치를 높이고 이렇게 쌓은 부를 기반으로 또 다른 작업을 해나가야 한다고 토로합니다. 실제로 애니메이션 감독인 토미노 요시유키도 초기에는 무라카미 다카시의 작품을 보고 애니메이션의 본질을 망쳐놓았다고 주장하며 신랄하게 비판하였습니다. 그러나, 점차 작가가 추구하였던 방향성에 대해서 이해하며, 오히려 서브 컬쳐를 순수미술에 유입시켜 문화의 고저를 없애기 위한 그의 노력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INSTAGRAM : @takashipom


무라카미는 자신만의 사조를 통해 소위 말하는 저급한 서브 컬쳐를 고급 미술 시장에 출품해 예술에 동등한 자격을 부여했습니다. 동시에 경계 없이 평평하게 확장된 미술을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합니다. 그가 창시한 슈퍼 플랫은 현대 예술의 한 축으로서 기능하며 미술사에 한 획을 그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혁신적인 행보에 대해서 다양한 의견이 오가는 중입니다. 이에 대처하는 그의 반응은 간결합니다.

그에 대한 평가는 확연히 갈립니다. 일본의 앤디워홀이라 칭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예술가의 탈을 쓴 사업가라고 평가 절하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돌팔이와 진정한 혁신가를 처음부터 구별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예술의 진정성을 덮고 있는 낡은 형식적 틀에 도전하는 그의 방식이 어찌보면 본인이 옳다고 억지부리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한 판단은 그가 얼마나 미술사에 깊이 있게 오래 관여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는 것 같아 보입니다. 우리는 그의 무궁무진한 행보를 계속해서 지켜보고 후에 그가 어떠한 사람인지 정의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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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희

일상에서 찾을 수 있는 작은 바람들을 느끼며
예술의 향유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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