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인스타그램을 지배한 밈 중 하나를 꼽자면 이것이 있을 것입니다. “나 그녀랑 헤어졌어 그녀가 힙합이 아니어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이 문장은 SNS 피드 위에서, 홍대를 중심으로 한 거리 곳곳에서 유행처럼 번져나갔습니다. 이 밈의 창조자는 1만 명이 넘는 팔로워를 가진 패션 사업가 권태호. 고등학교 졸업 후 취업이 아닌 사업을 택한 그는 100만원이라는 저자본으로 자기 브랜드를 론칭하겠다는 목표로, 청와대 앞에서 자신이 직접 만든 티셔츠를 입고 릴스를 찍어 올리고 홍대 곳곳을 걸어다니며 맥락을 알 수 없는 문장이 적힌 A4 전단지를 붙이고 다녔죠.
결국 전단지 속 멘트에 공감한 사람들이 그의 브랜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2023년 9월 태호서울은 첫 번째 티셔츠 상품을 기습적으로 홍대 한복판에서 선착순으로 판매했습니다. “그때 제 의심과 떨림이 확신과 설렘으로 바뀌었어요.” 이것이 래퍼 양홍원과 패션 인플루언서들이 입으며 입지를 다진 패션 브랜드 태호서울의 시작이었습니다. ANTIEGG는 브랜드 론칭 후 단 한 번도 단독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던 권태호 대표와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앞뒤 맥락이 없는 독특한 문구가 적힌 태호서울의 티셔츠는 대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모델들과 홍대 거리로 나가 힙합 음악을 크게 틀어 놓고 옷을 판 권태호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물어봤습니다.
“인터뷰어를 찾습니다”
2024년 4월 29일 권태호의 인스타에 게시물이 올라왔다. “인터뷰어를 찾습니다”라는 글자가 큼직하게 적힌 A4 용지를 촬영한 릴스였다. “2024년 4월 29일 월요일 기준 제 단독 인터뷰는 하나도 없습니다 저는 지난 약 10개월 동안 제게 들어온 모든 단독 인터뷰, 투자 제안 등을 규모 상관 없이 다 거절해왔습니다 … 제가 며칠 뒤에 망하더라도 지금까지 여러분이 제게 보여주신 관심과 응원이 적어도 가짜는 아니었다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즉 저는 이제는 조금 더 마음 편히 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다웠다. 오는 6월은 태호서울이라는 브랜드가 만들어진 지 1주년이 되는 시점이었다. 1년을 맞이해 자신을 돌아보며, 그동안 단 한 번도 응하지 않았던 인터뷰를 본인이 직접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사실 필자는 이미 권태호(태호서울 대표)라는 사람을 알고 있었다. 처음 그의 존재를 안 건 이런 글이었다. “저는 궁금했습니다 어른들이 과연 안 하는 걸까 못 하는 걸까 못하는 걸까 저는 기다리다 지쳤습니다 그리고 꼬우면 네가 하라는 말이 맞는 것 같아서 제가 하려고 합니다” 무엇을 지향하는지, 무엇을 반박하는지 알 수 없는 거친 문장이었지만 나는 이 문장들에서 강한 에너지를 느꼈고, 이 사람이 대체 무슨 짓을 벌일지, 그 근원에는 무엇이 있는지 파헤치고 싶어졌다. 그런데 마침 인터뷰어를 찾는다는 피드가 뜬 것이다. 운명 같았다. 인터뷰 제안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자리에 바로 DM을 보냈고 하루 뒤 그의 답장이 왔다. “안녕하세요 권태호입니다”
태호서울의 취향
“제게 최악은 저한테도 별로고 심지어 다른 사람들한테도 별로일 때예요.”
_ 권태호 대표
인터뷰에 응해줘서 고맙습니다. 소개를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태호서울의 권태호라고 합니다.
가벼운 질문부터 해볼게요. 지금 입고 있는 옷은 무엇인가요?
세 가지를 입고 있습니다. 최근에 발매한 ‘나 정말 선택해야 하나’라는 이름의 티셔츠와 4년 된 검정색 바지, 그리고 ‘넌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이름 지은 팬티를 입고 있습니다.
태호님은 예전에 ‘모르는 사람 둘이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을 줄여주는 수단’으로 패션을 지목한 적이 있었죠. 권태호에게 옷이란, 패션이란 무엇인가요?
제게 패션, 즉 겉모습은 표현 수단이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시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를 외모로 판단합니다. 소수의 사람들만이 제 내면을 바라봅니다. 뭐가 좋고 나쁨을 떠나서, 가만히 앉아 그 소수의 사람들이 언젠가 저를 알아주기만을 기다릴 시간이 제게는 없습니다. 저는 지금 당장이기를 바라는 사람이고 그래서 제 겉모습은 저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이 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태호서울의 궁극적인 지향은 모든 사람이 옷을 자신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게 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저는 제가 좋아서 이렇게 입는 겁니다. 제게는 모든 사람들을 제 입맛에 맞게 바꿀 능력이 없습니다. 다만 저는 이 세상에 저와 비슷한 취향을 가지신 분들에게 저와 태호서울을 조금이라도 더 알릴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패션 디자인은 유튜브와 책으로 독학을 한 건가요? 수월한 과정은 아니었을 것 같은데 어떻게 배우셨는지 궁금합니다.
모두 독학입니다. 패션은 학생 때부터 관심이 있었던 분야이기에 제작 과정의 대략적인 흐름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태호서울을 시작할 당시의 저로서는 모르는 게 대부분이었고, 그래서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에서 모르는 건 물어보고 옆에서 배우며 점점 배워나갔습니다. 제가 크게 어려운 걸 해낸 건 아닌 것 같고, 아마 대부분 처음 시작할 때는 다들 이렇게 시작하셨을 겁니다.
태호서울의 티셔츠는 체형적으로 허리가 매우 얇은 사람이 입었을 때 디자인적 아름다움이 배가되는 것 같습니다. 특정 체형에 유리하도록 디자인을 설계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저는 최악을 피하려고 했을 뿐입니다. 여기서 최악은 제가 만든 상품이 저한테도 별로고 심지어 다른 사람들한테도 별로일 때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제가 만든 모든 것들은 우선 제 마음에 들어야 했다. 제 마음에 들기 위해서는 우선 제게 어울려야 했고, 그래서 제 체형에 어울려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저처럼 마른 체형에 더 어울리는 핏의 티셔츠를 만들게 된 것 같습니다.
티셔츠 색상을 검정색 혹은 흰색만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리고 티셔츠에 인쇄된 문구의 폰트 디자인(고딕체)을 고르게 된 과정도 궁금합니다.
두 개의 질문에 하나로 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 마음에 들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저는 언젠가 다른 것들이 제 마음에 든다면 언제든지 용인할 생각이 있습니다.
디자인에 영감을 받은 다른 레퍼런스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옷을 만드는 데 영감을 받은 브랜드는 없는 것 같습니다. 제가 만드는 제품들이 고도하고 복잡한 디자인 기술이 필요한 티셔츠가 아니기도 합니다. 저는 제가 보기에 멋있고 재밌는 그림이면 좋아합니다. 저는 제가 지금까지 만든 티셔츠나 전단지가 독창적인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티셔츠에 글씨가 적힌 티셔츠는 수없이 많고, 글이 적힌 전단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특별한 디자인 영감이나 레퍼런스는 없습니다. 다만 제 것을 다른 것들과 구별하는 건 그 안에 적힌 글이 아닐까 싶은데, 그 글의 영감은 제가 보고, 듣고, 경험한 제 삶에서 옵니다. 그리고 제 삶은 저만 살 수 있으니 그것들이 저를 구별되게 하는 요소가 아닐까 합니다.
태호서울을 사람들에게 알리게 된 계기는 티셔츠에 적힌 독특한 문구들입니다. 이런 문구들은 어떻게 모았나요?
주로 메모를 해둡니다. 예를 들어 저번에는 샤워 도중에 아이디어가 갑자기 떠오르길래, 젖고 발가벗은 채로 밖으로 나가 메모를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기억은 휘발되기 쉬우니까요. 아직까지는 다른 사람들에게서 힌트를 얻은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권태호의 개인 인스타그램을 보면 어떤 게시물은 시(詩) 같기도 합니다. (작사 작업을 포함하여) 평소에도 취미로 시를 쓰고 있나요?
같은 글이어도 누군가에게는 시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쓰레기가 됩니다. 그래서 제가 평소에 쓰는 걸 뭐라고 불러야 할지 애매합니다. 뭐가 됐든 평소에도 가끔 뭔가를 쓰는 편입니다.
무언가를 쓰려면 무언가를 입력해야 할 텐데요. 태호님의 머릿속이 궁금합니다.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는 도서관에도 자주 갔던 것 같습니다. 평소 어떤 책을 읽나요?
제가 다독가는 아니지만, 이 일을 생각하기 전과 후로 제 독서의 성격이 나뉜다. 이 일을 생각하기 전에는 유명한 작가들의 유명한 소설이나 만화, 시집 등 장르를 불문하고 명작이라고 불리는 것들을 읽어왔습니다. 이 일을 생각한 후에는 자기 개발이나 마인드셋 등의 내적인 발전과 사업, 경제 등 외적인 발전을 돕는 책들을 읽어오고 있습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책은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그랜트 카돈의 <10배의 법칙>이었어요. 어떤 이유로 인상적인지는 말로 하기 어렵습니다만, 그 책들이 강렬한 감정을 일으켰다는 것만 제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태호서울의 팬덤
“이제 저는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으려고 해요.”
_ 권태호 대표
브랜딩의 방법이 단도직입적이었어요. 거리 한복판에서 무표정한 얼굴로 티셔츠를 펼쳐든 채 서 있는 모델. 아마 이런 방식의 홍보는 태호서울이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의도했던 건가요?
아닙니다. 제가 어떠한 행동을 할 때, 그것이 예상된 결과를 가져올지 혹은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올지는 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제가 무언가를 의도했다, 노렸다 등의 말들은 사실 제게 결과론적인 이야기일 뿐입니다. 다만 저는 ‘해 보지도 않으면 결과도 모른다’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가지고 이제야 행동했을 뿐입니다. 그 행동의 결과마저도 제가 판단하는 게 아니고 사람들의 판단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하기에 저는 유일하게 제 힘이 닿는 행동 단계에 제 후회가 없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권태호를 세상에 알린 뒤 수많은 악플과 비난, 협박을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겉으로 드러난 것만 보면 ‘쿨한 무대응’을 원칙으로 삼고 있는 것 같은데, 도를 넘는 공격이 들어올 경우 권태호와 태호서울의 크루들은 어떻게 대응할 것 같나요?
아까도 말했지만 같은 것을 보여줘도 누군가는 좋아하고 누군가는 싫어합니다. 그리고 저는 이 일을 하기 전부터 이 현상을 진심으로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제게 달린 댓글이 누군가에게는 악플로 보이지만 제게는 그런 ‘현상’ 중의 하나로 보일 때가 많습니다. 따라서 아직까지 도를 넘는 공격을 받았다고 느낀 적은 없습니다. 만약 그렇게 느껴진다면 그때 가서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제 저는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제 태호서울에는 비록 규모는 작지만 ‘팬덤’이 형성된 것 같습니다. 지금은 태호서울과 팬덤이 선순환의 원을 그리지만, 언젠가는 이 팬덤의 영향력 때문에 ‘자신만의 기준’을 위배해야 하는 순간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저는 제 영향력이 더 커지길 바라는 사람입니다. 그래야 제가 목표한 것들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제게도 팬덤이 있고 실제로 제 영향력이 커진다면 제 팬덤도 더 커질 것입니다. 질문하신 ‘커진 팬덤 때문에 오히려 본인의 기준을 위배해야 할까’에 대한 걱정은 지금은 하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아마 그때도 저는 제 목표를 위한 선택을 할 것 같습니다.
지난 약 1년여의 시간 동안 분명 위기의 순간도 있었고, 아슬아슬한 기사회생의 순간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이 과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도움’은 무엇이었나요?
래퍼 양홍원님의 도움이 먼저 떠오릅니다. 제 생각에 아마 양홍원님은 그냥 재미로 한 행동일지 몰라도 제게는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양홍원님이 아니었어도 제가 언젠가는 숨을 쉴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시기가 언제인지인데, 양홍원님이 제 시기를 앞당겨줬다고 생각합니다. 생각해 보면 운이 좋았습니다. 그 날 아침 양홍원님이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을 한 것도, 제가 그 날 새벽같이 일어나 아침 루틴을 끝내고 핸드폰을 하고 있었던 것도, 모든 게 제게는 영화 같습니다.
태호님의 말을 듣다 보면 본인의 삶이 언젠가는 정답을 향해 나아갈 것이리라는 매우 확고한 믿음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성공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기보다는, 저는 제가 성공할 것이라고 믿기로 선택한 것에 가깝습니다. 그렇게 믿지 않는 것보다 믿는 것이 제 목표에 저를 데려다 줄 확률이 더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태호서울의 장소
“제가 잠깐 왔다 가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야 했습니다.”
_ 권태호 대표
사업을 하면서 심장이 터질 만큼 가장 흥분됐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가장은 고르기 어렵고, 꽤나 떨렸던 건 작년 여름에 있었던 홍대 오프라인 판매였습니다. 2023년 8월 19일 저녁이었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만든 티셔츠를 팔았습니다. 티셔츠 제목은 ‘나 그(녀)랑 헤어졌어 그(녀)가 힙합이 아니어서’. 해당 티셔츠는 7월에 처음으로 판매를 시작했고 이미 2차 판매까지 모두 품절된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사이즈별로 몇 개씩 남겨 둔 재고들을 가지고 그 날 홍대 길거리에서의 판매를 계획했습니다. 그래서 하루 전에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홍대에서 판매할 것임을 알렸고, 정확한 시간과 장소는 당일 한 시간 전에 공개했습니다.
“옷 파는 사람 줄 서는 사람 그걸 구경하는 사람 그 자체가 장소이자 홍보가 될 수 있을까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오토바이에 옷을 싣고 힙합을 크게 틀고 홍대에 도착하니까 사람들이 어벤져스의 그 장면처럼 모여들었고 두려움은 그때 사라졌다.”
_ 권태호 대표 인스타그램
온라인으로 브랜딩을 시작했지만, 결국 태호서울과 태호님의 궁극적인 목적지는 오프라인이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저는 현장이 주는 시청각적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제가 오프라인 판매를 하는 이유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그 시간 그 장소에 제가 등장했을 때 제가 좋아하는 노래가 들리길 바랐습니다. 그래서 당일 낮 당근마켓으로 커다란 스피커를 사갔습니다. 오토바이 탑박스에는 옷들을 담았습니다. 준비는 다 되었는데 저는 약속 장소에 도착하기 직전까지도 떨렸습니다. 가장 큰 걱정은 ‘사람이 하나도 없으면 어쩌지’ 였습니다. 왜냐하면 제게는 온라인에서 사람들이 제게 주는 관심이 오프라인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에 대한 의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약속한 시간은 되었고 저희는 홍대 메인 거리에 힙합을 크게 들고 들어갔습니다. 오토바이를 타고 약속 장소에 도착하는데, 마법 같이 오토바이 주변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그때 제 의심과 떨림이 확신과 설렘으로 바뀌면서 저는 마스크 속으로 크게 기뻐했습니다. 현장에 같이 갔던 모델이 제게 한 말이 기억납니다. “이 많은 사람들이 다 우리를 보러 왔다고?”라고 했습니다.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방식이 가장 안전하고 수월했을 것 같은데, 굳이 여러모로 손이 많이 가고, 변수도 많은 현장에 나간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물론 단기적으로는 온라인 판매가 시간이나 비용적인 측면에서 이득입니다. 그러나 저는 제 브랜드가 장기적으로도 강한 경쟁력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기억에 보다 오래 남아있을 만한 태호서울과 관련된 특별한 경험을 선사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방법들 중 하나가 제게는 오프라인 판매입니다. 언젠가 사람들이 그 장소에 가거나 혹은 그때의 음악을 듣게 되면 저와 함께했던 그 기억이 어렴풋이 느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권태호에게, 그리고 태호서울에게 ‘서울’이라는 도시는 각별해 보입니다. 권태호와 태호서울의 거점이 왜 반드시 ‘서울’이어야 했는지 궁금합니다.
권태호도, 태호서울도 서울을 필요로 했기 때문입니다. 저 권태호는 경기도의 한 동네에서 태어나 거기서 20년을 지냈습니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어른이 될 때 즈음 그 사실이 점점 싫어졌습니다. 어른이 되어도 앞으로도 여기서 똑같이 살고 있는 제 자신이 눈에 보였습니다. 저는 여기서 나가려면 뭐라도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태호서울을 만들었습니다. 이와 동시에 태호서울은 많은 사람들에게 빠르게 태호서울을 알려야 했습니다. 그것에 최적화된 장소는 서울이었습니다. 이것이 서울을 배경으로 활동하게 된 이유인 것 같습니다.
“나는 서울에 왔음을 즐비한 마천루로부터 느끼거나 멋진 사람들로부터 느낀다 오늘도 그랬고 오늘은 특히 옆자리 사람들의 대화 주제까지 멋졌다 서울에 오면 내 안의 뭔가가 끓어오른다.”
_ 권태호 대표 인스타그램
태호님이 느끼는, 태호님이 기억하는, 태호님이 욕망하는 ‘서울’의 모습이 궁금합니다.
저는 아직 값비싼 집이나 차, 옷, 화려한 인맥 등을 가지고 싶은 욕심은 없습니다. 다만 그것들을 원한다면 언제든지 가질 수 있는 능력을 원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그런 것들이 가장 많이 있는 곳이 서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서울에 갈 때면 가끔씩 무뎌지는 제 욕망이 다시 생깁니다. 서울이 아닐 때는 잠시 잊혀지는 현재의 제 위치를 다시금 깨닫게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서울은 여러 가지로 제게 필요한 곳입니다.
예전에 잠깐 태호서울의 목적지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패션, 장소, 음악, 방송, 도서, 학교, 정치 등등. 이 중에서 ‘장소’가 궁금합니다. 태호서울의 공간적 미래는 무엇인가요?
제게는 이루고 싶은 장소가 있습니다. 하나는 유형(有形)의 장소(場所)이고 하나는 무형(無形)의 장소입니다. 다가오는 태호서울의 1주년에 패션과 음반에 이은 저의 세 번째 도전이자 제가 이루고 싶은 ‘무형의 장소’를 공개하려고 합니다. 하나의 커뮤니티를 만들 생각입니다. 지금보다는 조금 더 소수의 사람들과 더 긴밀하게 소통하는 커뮤니티를 만들어나갈 것입니다. 저만 제공할 수 있는 것을 사람들에게 제공하고, 사람들은 제게 돈을 지불하는 구조를 그리고 있습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아직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제가 이제야 장소를 기획하게 된 이유는 말할 수 있습니다. 우선 저는 저를 증명해야 했습니다. 제가 잠깐 왔다 가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저한테도, 사람들한테도 증명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1년이 되어가고 있고, 이 정도면 최소한의 증명은 했다는 생각을 하기로 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의 저는 다른 스무 살처럼 같은 돈을 벌어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벌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내일 당장 망할 수도 있는 게 사업이지만, 1년이라는 기간을 유지했다면 태호서울 그리고 태호서울에게 보여준 사람들의 관심과 응원이 적어도 순간적인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태호서울의 선택
“이제는 이전과 반대되는 삶을 살아보기로 선택했습니다.”_ 권태호 대표
사업 시작 후 많이 바빠졌을 것 같습니다. 사업가로서 권태호의 하루 루틴이 궁금합니다.
저는 최대한 규칙적인 생활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래는 제 오전 루틴입니다.
기상 – 언제 자든 아침 8시 전후로 일어난다.
100번쓰기 – 일어나면 ‘태호서울로 월 1억’을 100번씩 쓴다.
시각화 – 오늘 하루를 3개의 파트로 나누어 시각화한다.
독서 – 분량과 상관없이 매일 독서한다.
운동 – 종류, 강도와 상관없이 매일 운동한다.
찬물 샤워
자기 암시
아까 언급한 ‘장소’에서 위 1~5번을 매일 인증하고 있습니다. 인증한 지 31일 차가 되면 태호서울의 1주년이 옵니다. 저도 제가 ‘장소’에 정말로 진심인지 궁금해서 시작했습니다. 오전 루틴 이후에는 택배 포장, 영상 편집, 콘텐츠 구상, 글쓰기 등을 하며 시간을 보냅니다. 촬영이 있는 날이면 촬영을 하러 서울로 갑니다. 최근에는 음악도 시작해서 음악을 하기도 합니다. 할 일은 많은데 시간이 없습니다. 이제는 핑계를 댈 수도 없습니다.
어느 글에서 태호님은 스스로의 삶을 ‘소박하고 안정된 삶’과 반대되는 삶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이를 ‘도전적이고 불안한 삶’이라고 해석해도 될까요? 소박하고 안정된 삶은 내가 그동안 살았던 삶을 의미합니다. 제 그동안의 삶은 대다수에 속해서 살아가므로 안정적이고, 어느 정도의 방향도 정해져 있는 삶이었습니다. 남들처럼 일어나고, 남들처럼 먹고, 남들처럼 공부하다가, 남들처럼 놀고 쉬는 삶. 남들이 하니까 따라서 했던, 그런 시절 말입니다. 다만 저는 그런 것들에 이제야 싫증이 났고 이제는 그 삶과 반대되는 삶을 살아보기로 선택했습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이전보다는 불안정하고 위험해졌고 재밌어졌습니다. 뭐가 맞고 틀린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저는 목표가 바뀌었으면 그에 맞게 행동도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제 목표가 그런 삶을 수반해야만 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패션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뭐가 됐든 자신만의 기준을 가져라 그리고 그걸 다듬어라그러면 어떤 느낌이 드냐면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빠져나와서 혼자 따로 걷는 느낌이 든다그건 외롭지만… 시원하다…
_ 권태호 대표
이제 갓 약관의 나이를 지난 권태호는 대체 어쩌다 이토록 ‘마이 웨이’에 집착하게 된 걸까요?
겉보기에는 그렇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제가 아직도 다 제 마음대로 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세상과 타협을 합니다. 다만 그 정도가 이전보다 훨씬 줄었을 뿐입니다. 제 부모님은 제가 행복하기를 바란다고 하셨습니다. 대부분의 부모가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저는 예전보다 지금이 더 행복합니다. 확실한 건 적어도 더 편합니다. 저는 저와 제 가족들을 위해 살고 있으니까, 이렇게 사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겁니다.
(물론 지금도 소년에 가깝지만) 문득 소년 권태호의 모습이 궁금해지네요. 인스타그램에서 ‘구색을 갖춘 축구’를 해야겠다는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고등학생 권태호는 또래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공을 차는 소년이었나요?
그렇습니다. 축구는 교복을 입기 전부터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축구는 그 시절의 제가, 혹은 우리가 가질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행복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친구들에 대한 고마운 감정이 적지 않아 보입니다. 그럼에도 ‘마음만 받았’다고 고백했던데, 과거의 친구들과 선을 긋는 이유가 따로 있나요?
이유가 있다면 이제 저는 달라진 제 우선순위에 맞게 행동하게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친구들과 즐겁게 노는 것이 제 중요한 가치들 중 하나였다면 지금은 태호서울로 성과를 내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래서 여러 선택지가 주어지면 ‘옛 친구들과 어울리기’보다는 태호서울과 관련된 일들을 선택하게 됩니다. 물론 옛 친구들을 싫어하는 건 아닙니다. 제 옛 친구들마저도 제게는 얼마 없는 소중한 친구들이었습니다. 지금도 가끔 만나 밥도 먹고 같이 옷 포장도 합니. 다만 그 빈도가 상당히 줄었을 뿐입니다.
권태호의 도전과 용기, 성공을 바라보며 실체 없는 두려움에 맞설 용기를 얻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반대로 디스하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고요.)
두려움과 불안함은 지금도 있습니다. 다만 그 정도가 이전보다 크게 줄었습니다. 저를 달라지게 한 가장 큰 요인은 태호서울인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제 삶은 단 하나만 제외하면 과거와 똑같습니다. 그 하나만 제외한다면 어쩌면 더 나빠졌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태호서울 하나로 제 안과 밖이 좋은 방향으로 바뀌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여기에 내 발자취를 남겨야겠다. 이왕 온 김에 하고 가야겠다. 그리고 내가 끊어야겠다. 작게는 나의 가난, 비자유, 크게는 폐습, 구악, 병폐 등등(을) 고치고 싶다. 그리고 정당한 대가를 받고 싶다.” 태호님의 글 중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읽은 글입니다. 여기서 ‘정당한 대가’를 받아야 할 주체가 누구인지 궁금합니다.
‘정당한 대가’라는 의미는 제가 사람들에게 뭔가를 제공하면 저는 그 대가로 돈이나 돈과 관련된 것들을 받고 싶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정당한’을 사용한 이유는 그동안의 사업가들이나 예술가들이 부조리한 처지에 있다는 뜻에서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지금의 사회 구조를 불평할 시간도 없지만, 제가 사업가가 된 지도 1년이 채 되지 않았기 때문에, 즉 뭐 아는 게 없기 때문에 그럴 자격도 없어보입니다.) 다만 저는 ‘제가 만들어 낸 것들로 정정당당하게 값을 받아내겠다’라는 의미였습니다.
태호님이 추구하는 삶의 모습은, 얼핏 ‘자기계발서’에 등장하는 성공법, 동기부여 같은 청교도적 메시지와 겹쳐 보입니다. 그런데 이런 언어들은 기존 질서를 거부하고 제 멋대로 살라고 말하는 듯한 힙합의 문법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서 늘 신기했습니다. 제가 권태호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걸까요, 힙합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걸까요?
각자가 생각하는 힙합의 기준이 달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저는 힙합을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옳음’의 기준도 ‘솔직함’의 정도도 ‘표현’의 방식도 개인에 따라 달라집니다. 저는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목표를 위해서라면, 규칙적으로 건강하게 사는 삶을 바탕으로 실행에 옮기는 것이 그것에 저를 더 빠르게 데려다 준다고 믿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런 삶을 위해 노력하고 있을 뿐입니다.
‘나중에 공개할 원대한 목표’가 있다고 했는데, 그중 아주 일부만 여기서 공개해줄 수 있나요?
비밀입니다.
그렇다면 권태호의 다른 비밀 1가지만 말해주세요!
저는 고등학교 졸업 이후로 여자친구가 한 명이 아닌 적이 없습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나 태호서울 보고 사업 준비 중이야.” 태호서울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우린 눈만 봐도 알잖아> Official Video 영상에 달린 댓글 중 하나인데요. 이 댓글을 단 이름 모를 사람에게 태호님은 뭐라고 말해줄 건가요?
“근데 난 너네 덕에 하는 중이야.”
태호서울은
‘제2의 무언가’가 아니다
처음에는 어떤 면에서는 괴상하기까지 한 그의 소통 방식과 언어 그 자체에 흥미가 일었지만, 지난 1년 관찰자 시점으로 지켜볼수록 저의 좀 더 깊은 곳에서 질문이 터져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언제 뜨거워지는가?’ 관심사도, 나이도, 사는 곳도 그 어느 하나도 공통점이 없었던 브랜드였지만 저는 어느새 인스타그램 피드에 그들의 소식이 올라오거나 권태호 대표의 사적인 고민이 담긴 글들이 피드에 올라오면 홀린듯이 그 콘텐츠를 흡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궁금해졌습니다.
‘이 알 수 없는 감정이 브랜딩의 시작이 아닐까?’
2023년 9월 태호서울은 자신들의 첫 번째 티셔츠 상품을 당일 1시간 전 장소와 시간을 SNS에 공지하고 홍대에서 기습적으로 오프라인 판매를 했습니다. 놀랍게도 수많은 사람이 모였고 1시간도 되지 않아 모든 상품이 매진됐죠. 수많은 콘텐츠가 범람하고, 대단한 브랜드와 사람들의 이야기가 넘쳐나는 시대에, 역설적으로 그 누구도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 공간에 모이려 하지 않고 보장된 효용이 없는 한 돈을 주고 무언가를 구입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태호서울의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해집니다. 아무런 자본과 인지도도 없이, 권태호라는 맨몸으로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 사람을 모으고 브랜드를 론칭하고 돈을 벌고 있는 태호서울과 권태호의 행보가 말이죠.
사실 이번 인터뷰의 목적 중 하나는 ‘레퍼런스’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이 작은 괴물 같은 브랜드가 세상에 뛰쳐나온 연원과 근원을 알고 싶었습니다. 무엇이 권태호 대표에게 영향을 주었고, 무엇이 그의 마음에 방아쇠를 당겼는지 궁금했죠. 하지만 본 필자는 그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모든 영감을 오직 자신의 내면에서 찾았다는 그에게 유효한 레퍼런스는 그 자신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인터뷰 기사 발행 직전까지도 고민스러웠습니다. 계보조차 찾을 수 없는 이 독특한 사례에 관해 안티에그 독자들과 나눌 수 있는 고민은 무엇일까? 특별하고 비범한 이의 특별하고 비범한 성공담으로 매듭지어질 것 같아 두려웠습니다.
‘벤치마킹하려 한 롤모델은? 레퍼런스는? 콜라보 하고 싶은 브랜드는?’
그래서 묻고 싶은 것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질문들에 돌아온 대답들은 전부 필자의 예상을 벗어나는 것들이었습니다. “아무것도 의도하지 않았고, 무언가를 벤치마킹하지도 않았고, 그저 머릿속에 떠오른 것을 실행으로 옮겼을 뿐이에요.” 저는 어떤 대답을 기대했던 걸까요? 처음엔 맥이 빠졌지만 권태호 대표의 대답을 듣고 난 뒤 며칠이 흐른 지금 저는 태호서울을 너무 도식적으로 이해하려 했음을 후회하고 있습니다.
태호서울은 제2의 무신사, 제2의 떠그클럽이 될까요? 현재로선 불명확합니다. “저는 제가 할 일을 열심히 하겠습니다 여러분들도 여러분이 할 일을 하십시오 다만 제가 바라는 건 이겁니다 저는 제가 그리는 원과 여러분이 그리는 원 이 두 가지의 원이 살짝 겹치는 부분이 태호서울이면 좋겠습니다 그것 말고는 하는 일도 사는 곳도 주어진 환경도 모든 게 다른 우리에게는 방법이 없는 것 같습니다” 태호서울은 말 그대로 찰나의 불꽃처럼 번지다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밈처럼 이 세상에 그런 게 존재했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우리 기억 속에서 사라져버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스물두 살의 그가 제 가슴에 남긴 자국들은 오래토록 사라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1주년을 맞이한 태호서울이 앞으로 걸어갈 모습을 조금은 들뜬 마음으로 앞으로도 지켜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