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자연을 잇는 건축
물을 담은 공간들

한강의 미래를 기대하며
톺아보는 해외 건축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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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 시민들이 휴식부터 레저까지 다채로운 문화생활과 편의를 누릴 수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바로 한강입니다. 전 세계 여느 곳과 비교해도 빼어난 명소인 한강의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 서울시에서는 ‘그레이트 한강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한강 최초 보행교로 전환될 잠수교, 국제적 감성 조망명소를 조성하기 위한 한강변 노을 특화 공간 ‘한강노을즐김터’, 서울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될 ‘노들 글로벌 예술섬’ 등 한강을 중심으로 한 공간들의 변화를 꾀하는 다양한 설계공모가 연이어 진행되고 있죠.

색다른 수변공간을 품고 우리에게 돌아올 한강을 기다리며, 물이라는 요소를 차용하여 독특하고 낭만적인 수변공간을 구현해 낸 세계 여러 나라의 특별한 건축 작품을 소개합니다. 모두 자연과 사람이 어우러질 수 있는 생경하고도 이색적인 경험을 선사하는 장소입니다. 우리의 한강을 더욱 다채롭게 즐길 수 있는 시원한 여름날을 상상하며 해외의 물을 담은 공간들을 먼저 만나보세요.


알바로 시자,
레사 다 팔메이라

포르투갈 출신 건축가 ‘알바로 시자(Alvaro Siza)’는 조형적인 화려함보다는 기존 대지와 지형에 최대한 어우러지는 공간을 만든 건축가입니다. 그의 말에서 ‘실재’는 대지, ‘변형’은 건축행위로 대응시켜서 해석할 수 있죠.

미메시스 아트뮤지엄
미메시스 아트뮤지엄, 이미지 출처: mimesis art museum

그는 20세기 모더니즘 건축을 이끈 대표적인 건축가 중 한 명으로, 자연광과 흰 벽을 통해 다양한 공간감을 불러일으키는 건축물을 만들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알바로 시자의 다섯 가지 작품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중 파주출판단지에 있는 미메시스 아트뮤지엄은 건축가 본인이 뽑은 최고의 건축물이기도 한 걸작이지요. 미니멀하면서도 조형미가 느껴지는 특유의 디자인은 그의 건축 철학을 고스란히 표현하고 있어서 작은 규모의 공간임에도 관람객들에게 풍부하고 다채로운 공간감을 선사합니다.

‘건축의 시인’이라는 별명을 가진 그의 작품은 유독 여유롭고 편안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그런 알바로 시자의 특징이 잘 표현된 초기 작품으로 ‘레사 다 팔메이라(Leca da Palmeira) 수영장’을 소개합니다. 팔메이라 수영장은 관광지로 사랑받는 도시 포르투 인근에 있어 관광명소로 알려진 곳이기도 하지요.

레사 다 팔메이라
레사 다 팔메이라, 이미지 출처: consejosdeportugal

이 수영장은 건축물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난해할 수도 있습니다. 언뜻 보면 원래 물이 있는 곳을 단순히 벽으로 구획하여 수영장으로 활용하는 듯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건축가의 강한 의도가 숨어있지요. 수영장이라는 인공물이 마치 자연스러운 지형의 일부처럼 느껴지도록, 건축적 개입을 최소화해 디자인한 것입니다.

알바로 시자는 수영장으로의 극적인 진입 경험을 제공하고자 하였습니다. 처음 탈의실로 들어선 사람은 수영장으로 향하는 통로를 지나갑니다. 좁고 어둡게 설계된 외부 통로를 지나 수영장에 가까워질수록, 어디선가 들어오는 빛으로 통로는 서서히 밝아지지요. 긴 통로를 지나 수영장에 다다를 무렵, 태양이 비추는 밝은 빛으로 반짝이는 광활한 대서양 바다와 마주하게 됩니다. 화려한 장식 요소는 없지만, 이런 이색적인 과정을 거쳐 진입하는 수영장에서의 경험은 더욱 특별하게 각인됩니다.


피터 줌터,
발스온천

발스온천
발스온천, 이미지 출처: vals.ch

‘건축가들의 건축가’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다니는 건축가 피터 줌터(Peter Zumthor)는 건축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건축가로 꼽힙니다. 공간 본질에 관한 진지한 탐구와 물질적인 것을 좇지 않는 그의 행보는 늘 귀감이 되곤 하지요. 실제로 스위스의 쿠어라는 작은 마을에서 사무소를 운영 중인 피터 줌터는 2000년 프리츠커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는데, 다른 수상자들과 달리 유명하고 화려한 작품을 남기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지요. 마치 베일에 감춰진 은둔 고수와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피터 줌터는 장인정신으로 가득한 건축가입니다. 특히 재료가 가지는 물성에 대한 관심이 많으며, 그 재료로 이루어진 공간에서의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하지요.

묵묵히 자신만의 건축 활동을 이어가던 피터 줌터가 세상에 알려진 계기가 된 건물이 발스온천입니다. 한적한 시골 마을인 스위스의 발스라는 지역에 온천샘이 나오자, 주민들이 지역건축가인 그에게 온천 설계를 의뢰하며 프로젝트가 시작되었습니다. 피터 줌터는 알프스산맥 줄기의 경사진 땅에 건축물을 지을 때, 형태가 외부로 드러나는 것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온천은 지하화 되었고, 건물은 지형과 잘 어우러지게 되었습니다. 마감 재료는 발수 지역의 고유한 석재를 고집하여, 시공 과정이 길어지는 문제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준공 후에 건축물에 대한 작품성이 높게 평가받아 국가 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인구가 채 1,000명이 되지 않는 마을이 주목받는 온천휴양지로 급부상하였습니다.

발스온천은 물을 통해 즐길 수 있는 다양한 경험을 제공합니다. 각 탕의 규모에 따라 다양한 소리의 울림, 매끄러운 석재의 촉감, 어두운 공간으로 새어 들어오는 빛, 온천수 특유의 향기 등 미각을 제외한 특별한 오감의 체험이 가능합니다. 또한 노천탕에서는 눈 덮인 알프스산맥을 바라보며 온천을 즐길 수 있지요. 같이 운영되는 호텔의 투숙객에게는 특별히 늦은 밤과 이른 새벽에 온천 이용을 제공합니다. 밤에는 쏟아질 것만 같은 별 들을 바라보며 몸을 녹일 수 있고, 새벽에는 일출을 즐기며 낭만적인 하루를 시작할 수 있지요. 우리나라에는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은 장소인데, 신혼여행으로 일반적인 휴양지가 아닌 색다른 장소를 원한다면 이곳, 발스온천이 최적일지도 모르겠네요.

발스온천
발스온천, 이미지 출처 : vals.ch

BIG,
오르후스 해수 풀장

덴마크에 기반을 둔 건축그룹 BIG는 대표 건축가 비야케 잉겔스(Bjarke Ingels)의 이름을 딴 회사로, 건축계에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주로 간결하고 명료한 건축개념을 형태로 끌어내는 방법론을 사용하며, ‘Less is more’를 오마주한 ‘Yes is more’라는 제목의 작품집을 통해 더욱 주목을 받게 된 건축가이지요.

오르후스 해수 풀장
오르후스 해수 풀장, 이미지 출처: archdaily

오르후스 해수 풀장(Aarhus Harbor Bath)은 BIG 특유의 색깔로 잘 디자인된 건축물입니다. 덴마크에서 코펜하겐 다음으로 큰 도시인 오르후스의 항구지역 도시계획으로 만들어진 공간입니다. 고밀도의 공동주택으로 주거시설을 확충하였고, 외부의 공공영역을 수영장이라는 기능으로 재구조화한 작품이지요. 오르후스 수영장은 해수를 활용한 2개의 수영장과 사우나, 화장실까지 갖춘 공공장소입니다. 수영을 할 수 있음은 물론,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산책로를 통해 바다를 더욱 가까이서 만날 수 있지요.

오르후스 수영장이 디자인적으로 우수한 건물이기도 하지만, 이 곳은 공공영역이 바다를 향해 적극적으로 확장되어 수변공간에서의 새로운 경험을 제공한다는 것에 가장 큰 의의가 있습니다. 이 매력적인 친수공간은 매년 수많은 이용자가 즐길 수 있는 명소가 되었지요. 산업시설 중심의 항구도시였던 지역을 새롭게 활성화하는 초석이 된 수변공간 재개발의 성공적인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오르후스 해수 풀장
오르후스 해수 풀장, 이미지 출처: archdaily

이렇듯 매번 단순하지만 혁신적인 형태의 디자인을 선보이는 까닭에 건축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유난히 많은 사랑을 받는 건축가이기도 하지요. 전 세계를 무대 삼아 작품활동을 이어오고 있으며, 우리나라에는 최초로 현대차의 울산하이테크센터가 2027년에 준공될 예정으로, 많은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한강의 미래

정부에서 주도하는 ‘그레이트 한강 프로젝트’로 한강변을 색다른 공간으로 조성하여 관광 명소이자 복합 문화공간으로 구현하고자 하는 시도는 상당히 고무적이지만, 기대되는 측면만큼이나 문제점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특정 민간업체의 이익 의혹, 시민 편의보다 경제 논리에 의한 부동산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크다는 비판, 이전 정책의 무비판적인 재탕, ‘자연과 공존하는 한강’을 표방했으나 대규모 토건 사업으로 인한 생태계 파괴 등 여러 방면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습니다.

건축적인 측면에서는 어떨까요. 한강이 지닌 물리적인 가치는 전 세계 여느 도시의 강과 비교했을 때도 뒤지지 않을 만큼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지녔지만, 그 쓰임은 다소 떨어집니다. 이는 과거 서울의 도시계획 과정에서 비롯된 문제로, 보행자의 접근성이나 공간 유용성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화려한 랜드마크도, 미래 보전을 고려한 환경 생태계의 인공적인 조성도 좋습니다. 하지만 한강 공간을 실제로 향유할 시민들의 접근성, 그리고 한강을 더 오래 즐기기 위한 지속가능성의 측면을 더욱 세심하고 면밀하게 고려해야 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물을 담은 공간’은 그 공간을 경험할 이용자를 고려할 뿐 아니라 장소의 맥락을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 결과 건물 하나만으로 빛나는 것이 아닌 주변 환경의 특성, 재료, 이용객의 유형이나 동선까지 고려해 자연과 사람이 공존하는 경이로운 공간이 탄생했죠. 이런 해외 사례들을 경험할수록 우리가 한강을, 그리고 물이라는 요소를 더욱 가까이 즐길 수 있을 날을 보다 간절한 마음으로 염원하게 됩니다. 시민의 삶과 한강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수변공간을 품은 자랑스러운 한강을 곧 만날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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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현

글을 짓고, 집도 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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