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을 문학으로 번역하는 일은 어렵습니다. 단어 하나하나를 정확하게 옮기려 하면 서로 다른 언어의 틀 사이로 겹치지 않는 의미가 새어 나오고, 저자의 의도를 담아내기 위해 의미에만 집중하다 보면 주관에 의해 오역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좋은 번역은 그 둘 사이의 균형을 잘 맞추어 작품의 문학성을 최대한 보존하여 다른 언어라는 그릇으로 옮겨냅니다. 이처럼 생각만 해도 어려운 일을 해내는 작품을 만나는 것은 여지없이 기쁜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이런 작품을 알고 있습니다. 바로 번역이 필요 없는 모국어로 쓰인 소설입니다. 작가만의 고유한 어휘, 익숙함을 비트는 문장 구조, 안개처럼 모호하던 생각을 무심코 읽게 하는 담대한 비유, 그 속에 담긴 작가의 사유와 물음을 작가의 언어로 온전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이런 소설은 분량이나 시대에 상관없이 빛나는 문학성으로 우리에게 긴 여운을 남깁니다. 고전의 반열에 오른 20세기 한국의 명단편을 소개합니다.
아이러니한 일상으로부터의 일탈
이상, 『날개』
한국의 천재 문인을 꼽으라면 빠지지 않는 이름이 있습니다. 바로 이상입니다. 하지만 정작 이상이 활동하던 1930년대의 평단과 독자들은 그간 보지 못했던 그의 작품 세계에 혼란을 느끼며 이상을 천재보다는 광인, 혹은 기인이라고 불렀습니다. 거의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위적인 소설로 뽑히는 이상의 대표작을 살펴보면 그가 얼마나 시대를 앞서나간 인물이었는지 짐작해 볼 수 있을 겁니다. 아이러니로 가득 찬 시대를 조명하는 단편 소설 『날개』 입니다.
『날개』는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의 이야기입니다. 매춘 일은 하는 아내의 기둥서방으로서 무기력한 일상을 이어 나가는 주인공은 삶과 서먹서먹합니다. 방에 갇힌 듯이 살아가는 그는 할 수만 있다면 이 무의미한 인간의 탈을 벗고 싶다고도 생각하죠. 그러던 중 그는 몇 차례의 외출을 감행합니다. 처음엔 호기심으로, 그다음엔 욕망으로, 그다음엔 자신의 의지로 집 밖을 나서죠. 마지막 외출에서 정신없이 도착한 백화점 옥상에서 살아온 삶을 회고하던 주인공은 정오를 알리는 사이렌 소리를 들으며 다시 한번 삶에 대한 의지를 확인합니다.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는 그 자체가 아이러니한 존재입니다. 천재는 재능과 재주를 가진 사람을 뜻하는 말로 인간의 내적 가치에 주목하는 반면 박제는 내부를 비우고 겉을 방부 처리해서 외적 형태를 보존하는 방법입니다. 주인공은 언뜻 외부와 차단된 채 자신만의 견고한 세계에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자신의 내부 세계 또한 흐리멍덩한 상태입니다. 안이 텅텅 빈 박제죠. 하지만 그는 몇 번의 외출, 즉 외부 세계와의 접촉을 통해 자신의 내부 세계를 고민할 계기를 얻습니다. 마지막 외출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자신의 내부 세계에 존재하던 자신(천재)과 마주합니다. 곧이어 금이 간 표면으로 바람이 새어 들어오듯이 그는 자신을 감싼 외부 세계의 활기를 느낄 수 있게 됩니다.
이때 뚜우 하고 정오 사이렌이 울었다. 사람들은 모두 네 활개를 펴고 닭처럼 푸드덕거리는 것 같고 온갖 유리와 강철과 대리석과 지폐와 잉크가 부글부글 끓고 수선을 떨고 하는 것 같은 찰나! 그야말로 현란을 극한 정오다.
_이상, 『날개』
이해하기를 포기하고 싶을 만큼 아이러니한 세계에서 박제된 천재가 자신의 표면을 깨고 발견하는 삶에 대한 희망과 야심은 피로한 우리의 삶에도 모종의 고양감을 남깁니다. 이상의 감각이 잘 묻어난 문체로 쓰인 시대에 대한 고찰을 『날개』에서 만나보세요.
나는 불현듯 겨드랑이가 가렵다. 아하, 그것은 내 인공의 날개가 돋았던 자국이다. 오늘은 없는 이 날개. 머릿속에서는 희망과 야심이 말소된 페이지가 딕셔너리 넘어가듯 번뜩였다.
나는 걷던 걸음을 멈추고 그리고 일어나 한 번 이렇게 외쳐 보고 싶었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_이상, 『날개』
인간은 어떻게
살아있는 상태를 이어가는가
김승옥, 『생명연습』
이상과 달리 그 시대가 인정했던 천재가 있습니다. 1962년 등단한 뒤 1964년 『무진기행』, 1965년에 『서울 1964년 겨울』을 선보이며 평단으로부터 ‘감수성의 혁명’이라는 극찬을 받은 김승옥입니다. 김승옥은 대학 2학년을 마치고 다음 학기 학비가 부족해지자 떨어지면 군에 입대할 마음으로 신춘 문예에 지원했습니다. 그해 신춘 문예에 당선된 그는 소설가로 데뷔하게 됩니다. 감수성의 혁명이 시작된 그의 등단작 『생명연습』을 소개합니다.
『생명연습』은 자기 세계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작품에는 쉽사리 이해하기 힘든 자기 세계를 가진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눈썹과 머리를 밀어버린 고등학생, 하나님의 명을 받아서 자기 성기를 잘라버린 전도사, 얼굴에 수많은 그늘을 거느리고 다니는 만화가 오 선생, 대단히 진지한 태도로 여자를 하나하나 정복해 나가는 영수,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것이 무엇일지 묻자 ‘여신의 멘스’라고 답하는 한 교수의 딸까지, 이들은 자신만의 강력한 방식에 따라 세상을 살아가는 듯 보입니다. ‘나’는 한 교수와의 대화와 회상을 통해 이들을 차례차례 떠올리며 이들을 살아가게 하는 ‘자기 세계’에 대해 생각합니다. 소설의 끝에서 ‘나’와 한 교수의 이야기를 통해 그 자기 세계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밝혀집니다.
김승옥은 권태와 허무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의 내면적 방황과 성장에 주목합니다. 삶과 허무가 겹치면 필연적으로 떠오르는 질문인 ‘사느냐, 죽느냐’의 기로에 앞서 그는 이런 물음을 품습니다. ‘인간은 이 허무와 고통 속에서 어떻게 죽지 않고 살아있을까?’ 하는 물음입니다. 『생명연습』은 여러 욕망이 부딪히며 발생하는 갈등과 고통, 그리고 이내 모든 것이 허상처럼 허물어지는 허무 속에서 생명을 유지하는 이들에게서 공통적으로 자기 폐쇄적인 욕망을 봅니다. 이 인물들은 삶에 대한 자신만의 욕망으로 성곽을 쌓아 올려 그 속에서 삶을 견뎌내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격리된 세계인 그 성은 과연 다른 세계와 이어질 수 있을까요?
생명을 유지한다는 것, 즉 삶은 그 자체가 끝없는 연습의 과정일지도 모릅니다. 그 연습을 바라보는 김승옥만의 독특한 시선은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러 질문을 던집니다. 대화와 회상을 전환하는 영화적 구성과 세련된 문체로 여전히 젊게 남아있는 『생명연습』에서 그 질문을 확인해 보세요.
‘자기세계’라면 남의 세계와는 다른 것으로서 마치 함락시킬수 없는 성곽과도 같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 성곽에서 대기는 연초록빛에 함뿍 물들어 어른대고 그 사이로 장미꽃이 만발한 정원이 있으리라고 나는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지만 웬일인지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 중에 ‘자기세계‘를 가졌다는 사람들은 모두가 성곽에서 특히 지하실을 차지하고 사는 모양이다. 그 지하실에는 곰팡이와 거미줄이 쉴새 없이 자라나고 있었는데, 그것이 내게는 모두 그들이 가진 귀한 자산처럼 생각된다.
_김승옥, 『생명연습』
죽음과 삶에 대한 상상력
윤대녕, 『천지간』
미학적인 문체로 소설가보다 오히려 시인이라는 평을 받는 작가가 있습니다. 도시다운 감수성과 섬세하게 공들인 미문으로 9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 윤대녕입니다. 데뷔 이래 시적 감수성이 도드라지는 문체로 주목을 받은 그의 대표작 중 1996년 이상 문학상 수상작인 『천지간』을 소개합니다.
이것은 죽음을 쫓아 떠난 여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나’는 외숙모의 문상에 가던 길에 얼굴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여자와 마주칩니다. 알 수 없는 이끌림으로 장례식장으로 향하던 발길을 돌려 그녀와 같은 버스에 오른 그는 자신이 겪었던 죽음의 일을 반추합니다. 어릴 적 물에 빠진 자신을 구한 친구의 죽음을 떠올리며 자신의 목숨 역시 구해진 목숨이었음을 상기한 그는 삶과 죽음이 뒤엉키는 신화적 여정에 뛰어들게 됩니다. 소설의 끝에서 여자를 죽음으로 당기던 인연을 끊게 도와준 그는 홀로 터덜터덜 그곳을 돌아 나옵니다.
『천지간』에서 색은 생과 죽음을 빛은 그 둘 사이의 상태를 비유합니다. 죽음을 상징하는 ‘검은’ 상복, 생을 상징하는 ‘붉은’ 피, 그리고 죽음과 생 사이를 서서히 이어주는 여러 빛깔이 존재합니다. ‘나’는 과거 물에 빠져 죽을 뻔한 때 보았던 빛깔을 떠올립니다.
삶과 죽음이 벌거벗은 남녀처럼 엎치락뒤치락하는 가운데 마침내 날숨이 코까지 올라왔고 이어 실크 커튼처럼 부드러운 빛이 내 손과 발을 조여 묶기 시작했다. 짙은 푸른빛이었던 실크 커튼은 점점 보랏빛으로 변해 갔다. 그리고 보랏빛이 흰빛으로 바뀔 즈음 나는 의식을 잃고 말았다.
_윤대녕, 『천지간』
죽음을 시각적으로 이해하고 있던 주인공은 여자의 죽음의 그림자를 알아채고 뜻밖의 여정을 떠나게 됩니다. 그 여정의 끝에서 여자는 죽음이 아닌 새로운 삶을 얻고 주인공 또한 그녀를 구함으로써 이전과는 다른 사람으로 거듭납니다. 일상에서 일탈하여 여자를 따라 들어온 길을 다시 홀로 걸어 나가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분리와 변형을 거쳐 다시 귀환으로 이어지는 인간의 성장 서사를 엿볼 수 있습니다.
생이 죽음으로 저무는 것은 혹자의 말처럼 바다에서 물을 한 바가지 퍼내고 담는 일과 비슷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천지간』은 인연으로 구해지는 생을 조명합니다. 친구에게서 주인공으로 주인공에서 다시 여자로 이어지는 삶의 물결은 하늘과 땅 사이에 사람이 있음을 다시금 상기하게 합니다. 시각적 상징을 통해 생생하게 묘사되는 생과 죽음에 대한 상상력을 『천지간』에서 만나보세요.
“그래, 죽음 앞에 납작 엎드리러가다 나는 산[生] 죽음과 서로 어깨가 부딪친 거야. 아주 오래 전에 누군가 내 목숨을 구한 일이 있어.”
_윤대녕, 『천지간』
명작은 시간의 영향을 적게 받습니다. 새로움이라는 감투를 벗고도 여전히 생생함을 간직한 채 긴 여운을 남깁니다. 작가의 빛나는 지성과 공들여 고른 단어로 이루어진 문학 작품을 만났을 때, 이 작품을 온전히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이 모국어의 축복처럼 느껴지곤 합니다. 일상의 언어를 예민한 감각으로 재구성한 작품들을 통해 삶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은 물론 모국어의 아름다움을 깊이 음미해 보세요. 더 넓은 세계로 우리를 이어주는 견고한 다리가 되어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