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시처럼 노래한
여름의 그림책 3권

그림과 글 너머
보이지 않는 의미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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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하러 나갔더니 금세 땀이 납니다. 올여름은 또 얼마나 더울까 벌써 걱정입니다. 밤잠을 설치게 만드는 매미 울음소리와 온몸을 녹여버릴 듯한 더위 대신, 바라만 보고 있어도 마음마저 시원해지는 녹음을 기대하며 여름을 맞이하고 싶습니다. 한여름의 문턱에서 자연 속 색다른 휴식이 되어줄 그림책 3권을 소개합니다. 마치 시처럼 때로는 아리송하고 때로는 마음을 울리는 표현이 빛나는 이야기인 만큼 상상력을 발휘해 읽는 재미가 있습니다.


샤를 베르베리앙
『나무는 자라서 나무가 된다』

그림책 『나무는 자라서 나무가 된다』
이미지 출처: 키위북스

“날이 너무 좋다! 이렇게 멋진 날 너랑 같이 숲에 오길 정말 잘했어.” 이야기를 여는 첫 문장입니다. 마치 독자를 향해 말하는 듯합니다. 예고 없이 듣는 환영의 말에 독자는 이름 모를 숲으로 곧장 진입합니다. 이 책은 어린 아들과 엄마가 숲에서 나누는 문답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어린 아들의 질문은 어린아이만이 할 수 있는 순수함이 담겨 있습니다. 어른의 눈에 다소 엉뚱하고 대답하기 난감하게 느껴질 만한 질문에도 엄마는 시구처럼 아름다운 대답을 합니다.

그림책 『나무는 자라서 나무가 된다』
이미지 출처: 키위북스

‘꼭 그렇지는 않지만 그렇다고도 할 수 있다’는 말이 인상적입니다. 사람과 나무가 닮았다는 말은 자연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필자에게 위로가 되고, 그럼에도 사람과 나무가 다르다는 점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킵니다. 숲 안쪽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어린나무에 대한 아들의 질문은 그치지 않고, 엄마의 대답은 다시 또 아들의 질문을 낳습니다. 미리 챙겨온 어린나무를 숲에 옮겨 심으며 두 사람은 이런 대화를 나눕니다.

두 사람은 머리 위 하늘을 가득 메운 나무들을 올려다보고 있습니다. 키 큰 나무에 둘러싸여 있던 기억을 돌이켜봅니다. 향기로운 풀 냄새와 다채로운 녹색의 풍경에 즐거워했던 순간은 숲이 지친 나를 위해 마련해 준 선물이 아니었을까? 모자의 대화가 곱씹어 읽을수록 의미를 만드는 시처럼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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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아트리체 알레마냐 ∙
사라 스트리스베리
『우리는 공원에 간다』

그림책 『우리는 공원에 간다』
이미지 출처: LOB

푸릇푸릇한 잎사귀와 형형색색의 놀이 기구, 활기차게 뛰고 걷는 사람들로 가득한 곳. 이 책에 그런 공원은 없습니다. 어딘가 쓸쓸해 보이는 색깔에 어린아이의 그림처럼 과감한 형태와 묘사가 궁금증을 불러일으킵니다. 이 책은 그림 작가의 그림을 보고 난 후 글 작가가 이야기를 쓰는 방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림을 그대로 묘사하는 듯한 설명적인 글 대신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야기가 펼쳐지죠. 더욱 흥미로운 것은 독자가 글을 먼저 읽고 그림을 보게끔 이야기의 시작을 구성했다는 점입니다.

책을 여는 말입니다. ‘그래서’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공원은 그 어떤 질문도, 해답도 요구하지 않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라는 의미일까요? 얼굴을 보여주지 않은 누군가가 어딘가로 향하는 그림마저 수수께끼 같습니다.

그림책 『우리는 공원에 간다』
이미지 출처: LOB

번개 냄새는 도대체 어떤 냄새일지 궁금합니다. 이 공원은 마치 마법과도 같고, 으스스하기도 할 것 같고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는 곳 같습니다. 그는 수상한 질문을 던지고 사람들이 저마다의 답을 꺼내게 하는 현자나 철학자일지도 모릅니다.

끝까지 이 이야기가 무슨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책 속의 누군가처럼 그럼에도 어쨌든 우리는 공원에 갑니다. 공원에선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고, 누구든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어떤 나쁜 일이 있어도, 우리가 어떤 나쁜 사람을 만나도 언제든지 찾아갈 수 있는 곳이 바로 공원이라는 뜻은 아닐까요? ‘그래서’ 우리에겐 공원이 꼭 필요하다는 이야기는 아닐까요? 이 책을 그렇게 읽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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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예 톨만∙로날트 톨만
『나무집』

그림책 『나무집』
이미지 출처: 여유당출판사

북극곰 한 마리가 나무 한 그루에 터를 잡습니다. 나무 기둥은 물에 잠겼고, 북극곰은 헤엄을 쳐서 이곳에 도착했습니다. 갈색 털로 뒤덮인 다른 곰 한 마리도 나무 배를 타고 새로운 집을 찾아왔습니다. 책은 그림으로만 이루어져 있습니다. 나무집을 판화로 똑같이 찍어내어 모든 페이지가 동일한 배경으로 구성된 것 또한 큰 특징입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무집이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마치 틀린 그림 찾기를 하는 것처럼 페이지를 왔다 갔다 하면서 동물들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읽는 재미가 있습니다.

사실 이 재미는 현실에서 일어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빙하가 모두 녹아 나무에 의지해 살아갈 수밖에 없는 북극곰도, 습성이 다른 동물들이 한곳에 모여 사는 것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은근하게 모든 물이 말라버리는 상황도 지구에서 사는 모든 생명체에게 재난을 넘어선 재앙을 의미합니다.

그림책 『나무집』
이미지 출처: 여유당출판사

하지만 독자는 그저 이야기로, 또 다른 비유로 책을 읽을 수도 있습니다. 다양한 존재가 한 곳에서 평화롭게 어울려 사는 모습은 그림뿐인 이 책에서 아름다운 장면 중 하나입니다. 게다가 나무집에서 한자리씩 차지했던 동물들은 어느 순간 나무집을 떠납니다. 돌아갈 곳이 어디인지는 알 수 없지만 때가 되면 인사하고 돌아서는 장면은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자연과 생명의 순리를 보여주는 것은 아닐지 짐작하게 합니다. 보이는 것 너머의 이야기를 무한히 상상하게 하는 이 책에서 독자 여러분은 어떤 의미를 발견할지 궁금합니다.


『나무집』 구매 페이지


글을 쓰면서 다시 한번 그림책을 읽었습니다. 첫인상과는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구절이 있었습니다. 어떤 그림에서는 처음에 보지 못한 것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독자에 따라 얼마나 다양한 의미가 만들어질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웠습니다. 시간을 들여 생각할수록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세 편의 이야기를 통해 그림책을 문학처럼 읽어 보는 건 어떨까요? 한 편의 시를 읽듯 글을 소리 내 발음해 보고 그림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에 귀를 기울여 보는 겁니다. 그림과 글의 관계를 통해 각 이야기의 고유한 리듬을 느끼는 것도 좋습니다. 책 속에만 존재하는 숲과 바다에서 색다른 감성과 자극을 경험해 보시길 추천합니다.


Picture of 김자현

김자현

그림과 글, 잡다한 취향의 힘으로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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