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곧
스릴러가 된 영화 4편

가장 일상적이고도
살벌한 서스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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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스릴러를 유발하는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효과적인 도구입니다. 보편적 개념이기 때문에 쉽게 공감할 수 있고 물리적 제한이 있기 때문에 사건을 더욱 궁지로 밀어넣을 수 있죠. 우리 손에 땀을 쥐게 했던 스릴러를 돌이켜본다면 모두 ‘시간의 제한’이 있었다는 것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이 시간을 단순한 조건이 아닌 소재로 끌어 올려 엄청난 압박감을 선사한 영화 네 편을 소개합니다.


출퇴근 교통체증의 공포
<풀타임>

영화 <풀타임>
이미지 출처: iMDB

경기도민인 필자는 이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서울 어디를 나가든 편도 100분은 각오해야 하는 설움을 떠올리며 말이죠. <풀타임>은 환승이직을 시도하지만 교통 파업으로 인해 난관에 처한 싱글맘의 이야깁니다. 그는 호텔 룸메이트에서 사무직으로 전환할 기회를 얻지만 면접 볼 시간을 비우지 못합니다. 아이를 맡긴 옆집에선 계속 눈치를 주고요. 특히 파리 교외에 있는 집과 직장이 있는 시내 사이 대중교통이 파업하며 모든 상황이 꼬이게 됩니다. 그 어느 시간도 맞출 수 없는 상황입니다.

영화 <풀타임>
이미지 출처: iMDB

<풀타임>이 훌륭한 건 ‘일상의 스릴러’를 그려 냈기 때문입니다. 그저 직장인이 지각하지 않기 위해 발을 동동 구르는 것만으로도 살벌한 긴장감을 연출해내죠. 담백하고 고요한 톤을 가졌지만 우리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아주 현실적인 재난입니다.


시간이 화폐가 될 때
<인 타임>

영화 <인 타임>
이미지 출처: iMDB

시간 잔고를 소진하면 그 즉시 사망합니다. 수명을 다 썼으니까요. <인타임>은 시간이 화폐가 된 독특한 미래 세계를 상상합니다. 커피 1잔의 가격은 4분이고 버스는 2시간, 스포츠카는 59년입니다. 가난한 자는 겨우 몇 분이 없어서 굶지만, 부유한 자는 시간을 탕진하며 부를 과시합니다. 은행 금고에서 돈 대신 시간을 저장하고 있을 만큼 모든 시장 경제는 다를 게 없습니다. 다만 빈자의 시간이 0을 보이는 순간 바로 심장마비로 사망한다는 게 이 세계관의 잔혹함이죠.

영화 <인 타임>
이미지 출처: iMDB

<인 타임>은 도둑과 형사라는 전형적인 추적 서사를 따르고 있지만 시간을 활용해 밀도를 더합니다. 타깃을 눈앞에 두고도 뒤따라갈 만큼의 시간이 없어 결국 발을 돌리는 형사, 시간이 너무 많아 영원히 살아야 하는 삶에 권태를 느껴 자살하는 억만장자 같은 상황 말이죠. 다소 단순한 로맨스로 전개되긴 하지만 이를 상쇄할 만큼 충분히 매혹적인 사이버펑크 영화입니다.


시공간을 유영하는 황홀한 다이내믹
<1917>

영화 <1917>
이미지 출처: iMDB

개봉한지 불과 4년여 밖에 되지 않았지만 영화사에 큰 업적을 기록한 작품입니다. 2시간의 러닝타임 전체가 끊김없이 한 샷으로만 이어진 원 샷 원 테이크 영화인데요. 장면 전환 없이도 다양한 공간 이동과 풍성한 시각적 다이내믹으로 화제를 모았습니다.

영화 <1917>
이미지 출처: iMDB

배경은 세계 1차 대전, 공습 명령이 함정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급히 길을 떠난 영국군 이야기입니다. 서부전선을 건너 각종 부비 트랩과 무인지대를 거치는 하루치 여정이죠. <1917>의 재밌는 점은 실제 상영이 2시간 밖에 되지 않음에도 주인공의 24시간을 온전히 동행한 듯한 착시를 준다는 것입니다. 영리하게 시공간을 압축하고 편집에 이물감을 없게 했기 때문에 관객은 24시간을 체험했음에도 실제론 2시간 밖에 지나지 않은 신기한 현상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시간의 선형성을 거부하는
<롤라 런>

영화 <롤라 런>
이미지 출처: iMDB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을 기회를 주는 영화입니다. 순간의 사소한 선택으로 완전히 망가뜨려진 결과에 계속해서 여지를 주죠. 스토리는 간단합니다. 조폭 두목의 돈을 잃어버려 죽을 위기에 처한 남자친구를 구하기 위해 롤라가 끊임없이 달립니다. 20분 안에 10만 마르크의 현찰을 전달하는 게 그의 목표입니다. 하지만 미션에 실패해 결국 남자친구가 죽자 롤라는 분한 표정을 짓습니다. 그리고 일순간, 다시 모든 것이 리셋되며 그에게 새로운 기회가 주어집니다.

영화 <롤라 런>
이미지 출처: iMDB

여기까진 헐리우드의 또다른 타입슬립 영화 <엣지 오브 투모로우>와 비슷한 설정 같아 보입니다. 하지만 <롤라 런>은 보다 철학적인 관점에서 실험적인 연출을 진행합니다. 비규칙적으로 거칠게 널뛰는 편집과 강렬한 일렉트릭 음악을 섞어 시간의 선형성을 거부합니다. 과거/현재/미래의 귀억을 꿰뚫으며 운명의 절대성과 가변성을 고민케 하는 영화입니다.


재밌는 건 분초에 생사를 거는 영화를 지켜보며 역설적으로 우리의 시간을 잊는다는 것입니다. 시간이란 관념의 침투는 너무나 쉽게 인간을 옥죄고 간절하게 만들기에 관객을 더욱 작품에 몰입시킵니다. 내 시간을 망각하면서 가장 밀도있게 타인의 시간을 체감하는 시간인 것이죠. 영화가 끝난 뒤 그 살벌함을 되새기며 생각하곤 합니다. 내 하루에서 나를 긴장시키는, 내 시간의 스릴러는 무엇일까 라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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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임

다 보고 난 후에야 '진짜 시작'을 외치는 과몰입 덕후.
좋아하는 게 많아 늘 바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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