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팔기 위한 집이 아닌
살기 위해 만든 집

당신은 살고 싶은 집에
살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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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도시를 머릿속에 그려보세요.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나요? 저는 우뚝 솟은 빌딩, 그리고 빽빽하게 자리 잡은 아파트가 연상됩니다. 우리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아파트가 삭막한 도시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지요. 프랑스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는 이러한 대한민국의 도시풍경을 ‘아파트 공화국’이라고 칭하며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아파트는 우리의 생활공간보다는 부동산적인 자산가치의 기준이 되어버렸습니다. 단기간에 많은 수의 주택공급을 위해 필연적이었던 아파트는 개발 중심의 발전을 이룬 우리의 과거를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합니다.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 이상이 거주하는 주거 양식인 아파트는 진정한 주거의 의미를 담고 있을까요? 주거의 진정한 의미가 담긴 공간을 만나보시죠.


루이스 바라간, 바라간하우스

루이스 바라간, 바라간하우스
이미지 출처: barragan-foundation

루이스 바라간은 멕시코 출신의 건축가로 20세기 건축, 조경사를 통틀어 가장 독창적인 세계를 구축한 예술가 중 한 명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프리츠커상을 수상했으며, 수상 연설에서 “나의 건축은 자서전적이다”라고 말한 것으로 유명하기도 합니다.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된 바라간하우스는 멕시코 쿠에라마로에 위치한 건물로, 그의 작업실로 사용되었습니다. 색상, 빛, 질감, 형태에 대한 건축가의 철학을 담고 있는 바라간하우스는 멕시코시티 주변 동네와 멕시코라는 지역의 기후, 대지와의 조화도 놓치지 않았다는 점이 핵심이지요.

바라간 하우스의 특징은 자연 채광을 이용해 따뜻한 감성을 자아내는 집이라는 점입니다. 바라간은 정교한 창문 배치로 각 공간의 조명, 복도를 비추는 자연의 빛을 조절했습니다. 또한, 분홍색, 노란색, 오렌지색 등 강렬한 색상을 입힌 벽을 만들어, 햇빛과 화려한 색감으로 건축물 전체에 활기와 따뜻함을 불어넣었죠. 이러한 벽은 태양의 이동에 따라 자연히 변화하는 그림자를 만들어 그 자체로 거대한 예술품으로 느껴지곤 합니다. 이렇게 빛과 색채로 가득 찬 바라간 하우스에서는 집 전체가 따스하고 평화로운 생활공간임과 동시에 활기 넘치고 열정적인 멕시코 그 자체를 대변하는 것 같다고 느끼게 되죠.

CASA LUIS BARRAGÁN
이미지 출처: CASA LUIS BARRAGÁN
barragan-foundation
이미지 출처: barragan-foundation

바라간은 집안의 이동 동선도 정교하게 설계했습니다. 현관에 들어선 뒤 어두운 복도를 통과하고 나서야 주요 생활공간에 들어서게 됩니다. 침실로 가기 위해서는 다시 복도형의 공간을 지나야 하죠. 공간과 공간 사이를 이어주는 공간을 전이 공간이라고 하는데, 그는 이 전이 공간을 통해 각 공간의 독립성을 확보하고 주택에 깊이감을 더하고자 하였죠. 이런 전이 공간은 작은 주택 내에서도 우회적인 접근을 유도하며 프라이버시를 유지함과 동시에 공간을 더욱 풍부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습니다.

이 집의 또 다른 인상적인 점은 외부 정원입니다. 거실의 한쪽 벽을 전부 유리로 만들어 외부 정원을 마치 집으로 끌어들인 듯합니다. 화려한 외관, 개성 있는 건축 요소들을 중시하면서도 집의 본질을 놓치지 않은 것이죠. 생활 공간의 기능은 확실하게 보존하면서, 외부의 자연을 집 안으로 연결해 생동감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자 했던 건축가의 철학이 엿보입니다.


소우 후지모토, House N

소우 후지모토, House N
이미지 출처: Archdaily

일본 건축가 소우 후지모토는 기존 건축 구조의 문법을 파괴하는 파격적인 작업을 선보이곤 합니다. 그중에서도 House N은 중첩 구조를 활용해 공간 안에 공간을 둔 독특한 주택입니다. 두 사람과 한 마리의 강아지를 위해 설계된 이 집은 총 3개의 중첩 구조로 되어있습니다. 가장 바깥쪽 외벽은 건물 전체를 덮어 반 실내 정원을 만들고, 외부와 내부 사이 제한된 공간을 둘러싸는 두 번째 구조를 지나면 가장 중심이 되는 실내 생활공간이 나오는 삼중 구조로 이루어졌습니다. 외부와 내부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서 실내지만 마치 야외 같은, 야외인데 실내 같은 주택이 만들어졌죠. 중간 공간에 있는 외부 정원이 마치 실내 정원으로 인식되는 것처럼 말이죠.

건물 전체에는 큰 구멍들이 많습니다. 이 구멍은 풍성한 채광뿐 아니라 개방된 시야를 확보해 집이 더 넓어 보이게 합니다. 게다가 유리로 막혀 있지 않고 뚫려있어 테라스 정원이나 욕실, 주방이 외부에 열려 있는 형태죠. 이 구멍들은 내외부의 사이 공간에 대한 경계를 흐려주는 독특한 건축적 요소로 작용합니다.

소우 후지모토 집과 거리가 단일한 벽을 두고 분리되어야만 하는 고정관념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하나의 벽을 두고 내부, 외부 경계가 칼로 자른 듯 분절되는 공간 경험은 지양하고, 점진적으로 경계를 허물며 자연스러운 공간의 변화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주거 공간에서도 사이 공간의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그의 의도였죠. 그런 중에도 주거 공간의 본질에 충실해, 이 구멍이자 창문을 엇갈리게 매치하여 내부 공간은 가장 사적인 공간으로써 보장된 프라이버시를 누릴 수 있도록 설계했습니다.

소우 후지모토, House N
이미지 출처: Archdaily

House N 설계 의도에서 엿볼 수 있듯, 소우 후지모토는 ‘본질’에 집중하는 건축가입니다. Hosue N에는 ‘도시와 집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으며, 단지 대상에 대한 다른 표현과 접근법을 지녔을 뿐’이라는 그의 생각이 담겨있습니다. 이 세상의 기원도 무한히 중첩된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본질적인 개념을 작은 주택에도 녹여내 궁극의 집을 탄생시킨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소우 후지모토는 본질을 파악해 건축물과 환경 간의 공생 관계를 조성하는 건축물을 만드는 건축가입니다. 그래서 그의 건축은 그 어떤 건축물보다 유기적이고 상호 연결된 관계성을 중시하는 형태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거주자들이 상호 소통하고 이야기를 만들어가면서 진화하는 유기체. 이것이 그가 의도한 궁극의 주거 공간입니다.


승효상, 수졸당

승효상, 수졸당
이미지 출처: C3 KOREA

‘보잘것없는 집’이라는 뜻을 지닌 수졸당을 설계한 승효상 건축가는 한국 건축계를 대표하는 건축가 중 한 명입니다. 그는 우리나라에 만연한 주택을 사용보다는 소유를 중시하는 풍조에 대해 지적한 바 있습니다. 우리는 집의 공간이나 삶보다는 집을 구성하는 벽체, 지붕의 모양과 같은 물리적인 형태에 관심을 두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높은 담을 쌓거나 아파트처럼 기능에만 충실한 집을 짓게 되었다는 것이죠. 이웃의 개념도, 개인의 프라이버시도, 거주자의 아이덴티티도 찾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수졸당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저자이자 전 문화재청장인 유홍준 교수의 자택입니다. 당시 설계를 의뢰한 유홍준 교수는 승효상 건축가와 주거 공간의 본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자신의 정체성을 담은 진정한 주택을 만들어달라 요청했죠. 이에 수졸당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우리나라 건축과 주택에 대한 사유를 담고자 했습니다. 주택에서 삶의 형태와 공간의 형태는 어떤 관련이 있을지, 주택은 기능적이어야 하는지, 이 시대가 요구하는 주거형식 등 그의 다층적인 고민을 거쳐 탄생한 집이 ‘수졸당’입니다.

승효상, 수졸당
이미지 출처: C3 KOREA

수졸당은 기와가 없는 현대식, 도시형 한옥으로 지어진 2층 규모의 단독 주택입니다. 승효상은 ‘빈자의 미학’이라는 철학을 지녔는데, 호화로운 건축에서는 허황된 삶이 만들어지고, 초라한 건축에서 바르고 곧은 심성이 길러진다는 의미이죠. 그 일환으로 수졸당에는 비움으로써 채워지고, 불편함에서 빚어지는 거주자의 삶과 자아를 고려한 설계들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낮은 담으로 이루어진 집의 전통 창호 격자로 만든 대문을 넘어 안으로 들어서면 아담한 나무 한 그루가 있는 마당이 나옵니다. 마루가 있는 마당 외에도 흙 마당, 뒷마당도 배치된 독특한 구조로, 마치 마당이 이 집의 중심을 지키는 것 같습니다.

마당과 방 사이에는 연결 통로를 만들었는데, 공간과 공간을 넘어가는 동안 일부러 불편한 동선을 만들어 움직이는 동안 자연스러운 사유의 발현이 이루어지도록 유도했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아파트를 비롯한 일반적인 현대건축에서 나타나는 동선의 단순화를 거부한 것입니다. 그는 이 복잡한 동선을 경험하면서 진실하고 깊은 사유가 이루어진다고 믿었습니다. 사유하면서 우리 삶을 관조할 수 있는 즐겁고 불편한 집이 곧 아름다운 집이라고 본 것이죠. 더 크고 높고 빽빽하게 채우려는 주거 문화에 반기를 드는 듯 절제되면서도 반 기능적인 이 집은 마치 건축가와 건축주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 모습이 투영된 듯합니다.


우리나라도 새로운 형식의 주거 공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테라스하우스와 같은 마당 있는 아파트, 다양한 층고를 가진 복층형 아파트와 같은 새로운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도 결국은 아파트라는 기존의 큰 틀을 벗어나지는 못합니다.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라 불리는 백사마을을 알고 계십니까? 드라마나 영화 촬영지에서도 가난한 동네 풍경으로 많이 등장하는 이 마을은, 서울시의 발 빠른 노후화 동네 재개발 추진으로 인해 서울에서 찾아볼 수 있는 유일한 달동네가 되었습니다. 백사마을의 가치를 보전하기 위해 국내 유명 건축가 10인이 모여 진정한 주거의 의미를 고민하여, 기존의 마을이 가진 골목길, 집터 등을 살리며 일반적인 임대아파트 방식의 재개발이 아닌 조금 더 아기자기한 마을형 재개발을 계획했습니다. 그러나 이마저도 결국 공사비, 수익성 등의 문제가 제기되며 전면 재검토 요구에 들어간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주거는 ‘살기 위한 공간’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주거에는 총체적인 삶의 문제, 생존하는 모든 시간과 인간 본질에 맞는 거주 방식이 고려되어야 합니다. 진정한 거주는 자기 삶의 정체성을 담은 곳에서 평안하게 존재할 수 있을 때 완성됩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에 천편일률적으로 확산된 아파트라는 주거 형태에는 우리의 각기 다른 정체성을 개별적으로 담아내기 어렵습니다. 기능적으로 관리와 시공의 용이함을 쫓아 전체 주거 집합 형태를 정해 놓는 풍조 속에 우리는 살고 싶은 집의 개념을 망각한 채 살아갑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곧 주거 공간의 형태와 주변 생활환경에 대한 변화를 끌어냅니다. 각자의 주거 공간에 우리 정체성을 담아내야 한다는 철학을 지닌 사용자들이 늘어나면서 주거 형태에 대한 담론을 만들어간다면, 획일화된 우리 도시풍경이 더욱 다채롭고 아름답게 변모할 수 있지 않을까요. 어떻게 주택을 사는지(買) 고민하는 소비자에서 어떻게 살 것인지(住) 고민하는 생활자로 우리 관점을 바꾸는 데 그 단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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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현

글을 짓고, 집도 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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