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를 묻는 일이 부쩍 어색해진 요즘입니다. OTT 서비스와 SNS가 발달할수록, 또 알고리즘이 고도화될수록 새로운 취미를 갖기는 점점 어려워집니다. ‘독서와 음악감상’ 같은 흔한 취미도 이제는 마이너한 영역으로 여겨지고 있는데요. 취미를 갖는 일, 그중에서도 특히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일이 낯설고 어렵게 느껴진다면 추천하고 싶은 공간이 있습니다. 서로 다른 세 가지의 예술 분야에 입문하도록 돕는 공간 세 곳을 만나보세요. 한 발짝 들어서는 순간 새로운 세계가 펼쳐질지 모릅니다.
청음을 위한 비밀 아지트
망원동 ‘쿼터’
철물점 옆에 놓인 작은 간판 ‘쿼터’를 찾아 들어가면, 좁은 복도를 지나 아늑한 청음 공간이 등장합니다. 풍성한 사운드를 자랑하는 커다란 오디오와 어두운 조명 덕분에 바깥과 단절된 느낌을 받게 됩니다. 빛과 소리가 차단되어 음악에 더 몰입할 수 있는 공간인 셈입니다.
망원동의 쿼터는 재즈와 클래식 음악을 주로 들을 수 있는 청음 공간 겸 카페인데요.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곡을 신청하는 방식입니다. 작은 종이에 원하는 곡과 뮤지션뿐만 아니라 키워드를 적어 새로운 곡을 추천받을 수 있습니다. 재즈와 클래식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어떤 곡을 들어야 할지도 모르겠다면 쿼터 사장님의 키워드 큐레이션을 적극 활용해 보세요. 음악 취향을 새롭게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오로지 음악 하나에 집중해 보는 경험은 일상을 벗어난 신비한 기분을 선사합니다.
“청음은 30%의 오디오, 30%의 셋업, 39%의 매체, 그리고 1%의 청중으로 이루어집니다. 오디오 취미는 값비싼 오디오가 아니라 듣는 사람들과 내용으로 채워진다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_쿼터 사장님이, 청음 입문자에게.
INSTAGRAM : @quarter_official_accou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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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글 쓰는 밤
뚝섬 ‘출판전야’
글을 쓰기에 완벽한 공간이란 어떤 모습일까요? 뚝섬역 인근에는 글 쓰는 창작자를 위한 환경을 오랫동안 고민하며 만든 공간이 있습니다. 가구와 향, 음악과 조도까지 고민의 흔적이 역력합니다. 크고 튼튼한 책상은 쓰는 사람의 근심마저 받쳐주고, 블루투스 스피커 대신 놓인 CD 플레이어는 긴 재생 시간 덕에 집중력을 해치지 않습니다.
출판 바로 전날 밤을 뜻하는 이름의 공간, 출판전야는 완벽한 환경을 통해 글 쓰는 일을 돕습니다. 만약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품어왔다면 더 이상 미루지 않고 이곳에서 나만의 출판전야를 만나보면 어떨까요? 반드시 작품 하나를 완성하지 않더라도 괜찮습니다. 글을 쓰는 일은 자기 안으로 침잠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곳에서 고요한 자기만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쓰기 경험이 한층 즐거워질 것입니다. 고독한 1인 서재라는 컨셉으로 만들어진 이 공간에서 내면에 떠도는 생각을 정리하고, 고민하고, 되새기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쓰고 싶은 마음이 고독을 만나 글이 나옵니다.”
_출판전야 사장님이, 글 쓰기 입문자에게.
WEBSITE : 출판전야
INSTAGRAM : @night.before.publis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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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필름 생활
용산 ‘픽셀 퍼 인치’
오래된 상가 3층의 파란 문. 익숙한 문고리를 잡아 돌리면 오밀조밀한 물건으로 가득 찬 공간이 드러납니다. 서점 같기도, 소품샵 같기도, 사진관 같기도 하죠.
픽셀 퍼 인치는 이름에서 예상해 볼 수 있듯이 사진을 주제로 운영하는 공간입니다. 필름 현상소에서 출발해 독립서점으로까지 확장되었다고 하는데요. 필름카메라에 대한 독립출판물이나 직접 찍은 사진으로 만든 굿즈를 판매하기도 합니다. 아기자기한 공간을 둘러보다 보면 ‘사진을 좋아하다 못해 다른 사람도 즐기길 바라며 만든 공간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필름카메라를 대여해주거나 포토부스에서 폴라로이드 촬영을 하는 등 누구나 즐길 수 있도록 만든 다양한 콘텐츠와 프로그램이 있거든요. 아이폰 카메라를 벗어나 필름의 세계를 엿보고 싶다면 이곳을 먼저 둘러보길 추천합니다. 아날로그한 장비가 주는 생경한 감각이 오히려 삶의 해상도를 높여줄 수도 있습니다.
“필름으로 가볍고 편하게 찍고, 깊고 오래가는 추억을 남기기 바랍니다.”
_픽셀 퍼 인치 사장님이, 필름 입문자에게.
INSTAGRAM : @pixel.per.inch
픽셀 퍼 인치 네이버 지도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면 ‘취미’는 즐기기 위해 하는 일이기도, 아름다움을 이해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취미에는 전문성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예술을 잘 모른다고 생각하더라도 상관없습니다. 새로운 취미를 만드는 데는 ‘얼마나 잘 아느냐’보다 ‘얼마나 좋아하느냐’가 더 중요하니까요. 공간이 만드는 분위기에 빠져드는 것에서 출발해 보세요. 하나의 대상을 깊이 애정하는 이들이 만든 공간에 방문하는 일은 그 매력과 미학을 느끼기에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소개한 세 곳의 소규모 예술 공간이 취미로써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첫 번째 문을 열어주기를 기대합니다.